애플 아케이드를 문득 시작하게 됐다. 월 구독료가 잠시 마음에 걸렸는데, 주요 모바일 게임의 10연뽑기 가격을 생각하니 부담이 덜했다.

애플 아케이드 게임 중 눈에 들어온 것은 이상한 체스 게임이었다. 폰이 있을 위치에 나이트가 있었다. 비숍이 6개인 경우도 있었다. 매판마다 기물들이 바뀌었다. 막상 해보니 기존 체스 게임과는 플레이 양상이 전혀 달랐다.

게임 이름은 '리얼리 배드 체스+'. 안드로이드 버전도 있다. 개발자를 살펴보니 자크 게이지(Zach Gage). 마음속으론 그를 흥미로운 인디 게임 개발자로 분류했다. 게임에 관심이 생겨 자크 게이지 개발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뉴욕에 있는 자크 게이지와는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 자크 게이지(Zach Gage) 개발자

요즘 '리얼리 배드 체스+'를 재밌게 하고 있다. 체스 기물에 무작위성을 부여할 생각을 어떻게 했나?

= 난 체스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지만, 항상 배우고 싶어했다. 몇년 전 친구가 체스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같이 하자고 하더라. 그때 나는 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나이트는 어디로 이동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체스 초보와 규칙도 모르는 사람이 즐기려니 재미가 없더라. 그때 아예 체스 규칙을 바꿔버리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무작위성은 게임 개발에서 접근성을 높이는 기본적인 기법이다. 포커를 예로 들면, 초보도 고수를 이기는 경우가 생긴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이는 무작위성 때문이다. 체스에도 무작위성을 부여해보니 서로 실력이 달라도 접근성이 높아지더라.

개발 자체는 기존 오픈소스로 나온 체스 게임과 인공지능을 적용했다. 놀라웠던 것은 체스를 전혀 모르는 나도 인공지능을 이겼을 때다. 이때 '리얼리 배드 체스+' 가능성을 봤다. 단순히 개인 프로젝트에 그칠 게 아니라 완성도를 높여 많은 게이머에게 선보이기로 했다.


잠시 개발자로서 이력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 개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어머니 덕이다. 어렸을 때 나는 비디오 게임을 하고 싶어서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것도 사주지 않았고 "게임을 하고 싶다면, 직접 만들어서 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게임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컴퓨터와 관련 소프트웨어를 사주셨다. 이후 어린이용 코딩 프로그램인 키드 픽스(Kid Pix), 하이퍼스튜디오, 애플 교육용 프로그램인 코코아(Cocoa)를 통해 개발을 접했다.

대학에서는 인터랙티브 예술(Interactive Art)을 전공했다. 작가로서 작품을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의 참여를 이끌고 싶었다. 난 내 아이디어에 게임 프로그래밍을 접목했다. 그 첫 작품이 '루즈/루즈(링크)라는 게임이다. 2007년경 작품으로, '우리는 컴퓨터 안에서 살아간다'라는 아이디어를 구현했다. 지금이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가 일상화됐으니 다들 이 명제를 공감할 것이다. 당시에는 아직 이견이 있었고, 나는 내 명제를 입증하고 싶었다. 게임은 간단하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에 나타나는 적이 실제 컴퓨터 파일이고, 적을 없애면 파일이 삭제된다. 게임에서 지면 프로그램 자체가 삭제된다.

당시 '루즈/루즈'는 의외의 논란을 일으켰다. 게임을 선보일 때만 해도 누군가 화낼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진심으로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화를 냈다는 건 데이터에 불과한 파일이 실제 의미가 있다는 걸 뜻한다. 사람들은 내게 파일을 삭제시켰다며 항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여러 메일 중 눈에 띄는 것은 한 게이머가 보낸 내용이었다. 그 게이머는 예술(ar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루즈/루즈' 컨셉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고 게이머의 언어로 잘 설명했다. 사실, 인터랙티브 예술은 여러 예술 중에서도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게 많다. 그런데 그 게이머는 인터랙티브 아트에 대한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이때 인터랙티브 예술과 게임이 접목될 때 가능성을 봤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예술 게임(art game)'을 만들고 싶어졌다. 아티스트 입장에서 보면 게임을 만든다는 게 하나의 아트 갤러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게임은 현실 갤러리보다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기에, 나는 아티스트로서 더 많은 청중에게 다가가는 기회를 얻었다.

현재 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매체로서 게임의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기존 현장에 있는 갤러리와 다르게 게임은 작가와 청중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도 게임을 통해 청중과 상호작용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높일 수 있도록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 "게임의 상호작용 요소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게임 개발은 어떻게 하고 있나?

= 게임 개발 자체는 11년 정도 됐다. 처음 9년은 혼자서 했고, 최근 2년 동안에 두 명의 동료가 생겼다. 개발 엔진은 유니티를 사용한다. 개발에 관한 공부는 고등학교 시절 프로그래밍을 배운 적이 있다. 이후에는 프로그래밍 관련 캠프를 가거나 잘하는 친구에게 배우기도 했다. 실질적으론 독학으로 게임 개발을 익혔다. 또, 뉴욕시 내에 게임 디자이너 모임이 있다. 이 모임에 참가해 개발자들과 어떤 방식이 효율적인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개발 디자인 과정에서 난 폰트를 중요하게 여긴다. 일례로 게임을 개발할 때 이미지를 확대하면 왜곡되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폰트는 왜곡되지 않는다. 이를 이용해 폰트 내에 게임을 넣는 식으로 개발한다. 그래픽 위주 게임 개발과는 디스플레이를 이용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스도쿠, 솔리테어를 활용한 게임도 소개한다면?

= 많은 사람이 스도쿠를 할 때 쉬운 난이도로만 즐긴다는 걸 알았다. 내 경우엔 스도쿠에서 숫자 세는 걸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굿 스도쿠'에선 귀찮은 과정으로 여길 수 있는 계산을 최소한으로 했다. 귀찮은 셈은 생략하고 퍼즐의 재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솔리테어를 모바일에 맞게 5개 덱으로 줄였다. 캐주얼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위와 아래에서 떨어지는 기능을 추가해 복잡성을 더했다. 기존 솔리테어가 한 개의 매듭을 푸는 것과 같다면, '플립플롭 솔리테어+'는 두 개의 매듭을 푸는 식이다.


기존 놀이 방식 그대로 개발하지 않고, 재해석하는 이유가 있을까?

= 기존 놀이를 내가 즐기지 않았기에 게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즐기지 않았던 놀이를 탐구하는 게 철학적인 과정이라고 여겼다. 내가 즐기지 않았던 것을 알아가고, 내가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다른 이유론, 더 많은 사람에게 게임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이는 내 목표 중 하나다. 많은 사람에게 깊이 있고 매력적인 놀이를 게임으로 보여줘 인터랙티브 예술 이해도를 높이는 게 목표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는 대상은 연령대가 높은 분들(old gamer)이다. 젊었을 때 비디오 게임을 즐기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게임에 대한 흥미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과거 놀이에 게임 개발을 더하면 올드 게이머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정리하자면 이미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에게는 과거 놀이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반대로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비디오 게임을 접할 수 있도록 과거 언어로 다가가기 위해서다.


게임을 유료로 판매하거나 광고를 넣어도 됐을 텐데, 왜 애플 아케이드에 선보이게 됐나?

= 아티스트 관점으로 게임을 봐서일까? 내겐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어떤 경험을 얻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현실 갤러리에 사람들이 그림을 보러 온다면, 단순히 보는 것만이 모든 경험은 아니다. 작품을 얼마나 멀리 떨어져서 보는지, 조명은 어떤지 등 입구로 들어와 작품을 보고 나가는 과정 모두가 중요하다.

난 게임을 예술의 한 형태로 봤다. 게이머가 앱을 키고, 즐기고, 끄는 과정까지 온전히 집중하길 바란다. 이런 면에서 광고는 별로다. 내가 만든 게임에 광고가 끼어드는 게 싫었다.

광고 없이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는 플랫폼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애플 아케이드는 적절했다. 개발자로선 유료 판매보다 더 많은 게이머에게 다가갈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개발자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요소가 애플 아케이드에 갖춰져 있었다. 개발자로선 업데이트만 신경 쓰면 되니까.

▲ "개발자로서 애플 아케이드는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인터랙티브 아트를 게임을 통해 선보이고싶은 아티스트에게 조언한다면?

= 보여주고 싶은 맥락이 게임에 맞는지 고려해보길 권한다. 이미 아트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건 '저니' 같은 게임이 있다. 대부분 우수한 예술 작품은 작가의 주장(statement)이 숨겨져있지 않다. 예술 작품을 하나의 렌즈라 생각하길 바란다. 우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예술도 렌즈처럼 세상을 다르게 보거나,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경험한 뒤에 사람이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게임을 통해 어떤 경험을 주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또, 그 경험이 사람에게 있어 어떤 의미가 될지 고민해달라.


게임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나?

= 사람들에게 게임이 얼마나 아름답고 흥미로운 매체인지 알려주고 싶다. 현재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한다는 것을 시간을 낭비하거나, 쓸모없는 일로 여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게임으로도 좋은 경험을 이룰 수 있다. 게임을 통해 비판적&실용적 사고,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배울 수 있다.

난 좋은 게임이란 플레이한 뒤에 어떻게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 게이머에게 바라는 점은 더 좋은 게임이 나올 수 있도록 자신이 원하는 걸 개발자에게 요구했으면 한다. 사람은 같은 경험을 반복하길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항상 새로운 경험을 하길 바란다. 나 역시 그런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