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일 PD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3월, R2가 처음으로 발표되는 자리에서였다. 그 때는 아크로드 이후 NHN이 다시 선보이는 새로운 MMORPG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실제 플레이 영상을 보고 난 후 R2라는 게임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들로 게임을 개발했다는 PD가 어떤 인물인지는 별로 신경 쓰지 못했다. 프리젠테이션 진행이 조금 투박하구나 하는 느낌?


아무튼 R2는 빅3도 울고 간 국산 MMORPG 시장에서 오랜만에 성공을 거둔 게임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김대일 PD는 빠른 속도로 다음 작품에 돌입했다. 그리고 2009년 시장에 선보인 액션RPG, C9 또한 그 해 거의 유일하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 온라인 게임으로 기록되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나면서 김대일 PD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김태곤 이사, 송재경 대표와 함께 KGC 키노트의 한 자리를 맡는가 싶더니 2009 게임대상에서는 수상폭탄을 맞았다. C9은 게임대상은 물론, 그래픽, 사운드, 캐릭터까지 4개 부분을 휩쓸었다. 그리고 그는 단 한 명의 개발자에게 주어지는 우수개발자상을 수상했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여전히 무대 위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서툴다는 것. 예상 밖에 여러 번 시상대에 올라야 했던 그는 생각해두었던 수상소감이 다 떨어지자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게임 만들겠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홍보팀들은 ‘PD님, 수상소감 좀 멋지게 해주시지’하고 장난스레 타박했다.


그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때. 앞으로 뭘 더 어떻게 어떤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일까. 4년 만에 게임 두 개를 성공시키고 인정받은 그는 과연 어떤 식으로 게임을 만들어 왔을까.



[ 2009 게임대상 시상식에서 우수개발자상을 받고... ]



요새 뭐해요?

C9이 다음 달이나 업데이트가 될 거예요. 그거 하고 있지 뭐. 그래도 C9은 이미 본전을 뽑았기 때문에.


언제 뽑았어요?

우린 계약하면서 뽑아버렸어. 계약하고 나니까 ‘어 우리 본전 뽑았네?’


30억 들었죠. 첨부터 30억 잡고 했어요?

아니. 원래 25억에 끝내려고 했지.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들었어요. 쓸데없이 시스템을 부풀려서. 정확하게 예측을 못 한 거지. 필요 없는데 왜 했지? 이런 거. 내가 판단을 잘못한 것도 있고. 실제로 다른 게임을 만들어도 그렇게 개발비가 많이 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계속 연구했던 분야 중 하나가, 프로세스 중심의 개발을 했던 것. 그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 같아.

외부 툴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가 해결하자. 해결할 사람들이 게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까 너네 마음대로 하고 결정도 마음대로 해라. 그 개발과정에서 정치가 뛰어들지 않게 시스템을 구축했으니까. 그래서 값이 싸졌지.


외부 툴 사 쓰면 아무래도 비용이니까.

외부 툴도 있고. 언리얼 하나가 20억이니까. 만약 우리 게임에 도입했으면 한 60억 정도로 뛰었을 거야. 거기서 세이브 하고. 그런데 이게 100억, 200억 게임은 사서 하든 말든 큰 이슈가 아니에요. 오히려 더 좋은 퍼포먼스가 나올 수도 있죠.

결국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사람이거든요. 투자를 많이 안 했던 부분이 그래픽 쪽. 디자이너를 많이 뽑지 말자. 대신 퍼포먼스가 좋은 디자이너를 고용하자. 지금은 뭐 많아졌지만.


C9 그래픽은 좋잖아요. 게임대상 그래픽상도 탔고.

내가 잘하는 애를 6개월 꼬셨어요. 퀄리티 좋은 사람은 많거든요. 중요한 건 퍼포먼스가 좋으냐 하는 건데 둘 다 갖춰진 사림이 많지 않아요. 야, 너 잘한다. 와라. 잘 해줄게. 굽신굽신. 그랬지.



[ 그런 과정을 거쳐 샤먼이 탄생되었다 ]



보면 팀원들을 1:1로 주변에서 꼬셔서 채우는 느낌이에요.

PD의 일은 1/3이 사람 모으는 거예요. 사람이 없으면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 잘하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모셔와야 하는 거죠. 휴… 이것도 힘들어.


지금은 어느 정도 된?

어느 정도 꾸려졌죠. 지금은 골라서 뽑죠. 기본 가닥은 됐어요. 장기적으로 게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초 인력은 갖춰졌다. 고민은 이 사람들을 계속 다니게 충분한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돈을 많이 벌어야지 뭐.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이 줘야죠. 주식이든 돈이든. 우정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어.


팀원 되게 챙기시면서…

물론 인간적인 건 있지만… 중요한 건 생활 때문에 고민이 없어야 되요. 생활 고민이 없어야 일에 몰입할 수 있거든요. 일에 몰입할 수 있으면 좋은 게임이 나와요. 그렇게 할 수 있게 회사에서 해줘야죠. 개발자들이 다른 생각 할 필요 없이 개발에 몰두할 수 있도록. 그게 회사가 해줘야 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죠. 그런데 그걸 잘 안 해들.


PD님이야 뭐 안정적이니까.

아유. 집에서 아버지가 자꾸 내려와서 김 팔라 그래.


C9은 어떻게 만들게 됐어요.

열 받아서.


왜요.

R2를 만들었더니 날 무슨 그런 게임만 만드는 사람으로 생각 하나 봐. 그래서 내가 잘하는 걸 하자. 릴 때 액션 디자인 했던 친구랑 둘이 의기투합해서 ‘제대로 된 액션게임을 만들어보자.’ 그 때는 그런 게임이 없었어요. 경쟁작들 발표 나기 전이니까. 우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 액션감 좋은 게임.

맨날 무슨 신작 게임 발표할 때 나오는 말 있잖아요. ‘뛰어난 타격감, 화려한 스킬.’ 그런 게임을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자.

또 우리 수준을 한번 뛰어넘어보자. 우리가 어릴 때 했던 게임들 있잖아요. 캡콤 게임들 이런 거. 그걸 이상으로 생각하고 그런 게임을 바라보면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MMORPG를 만들다 보니까 자꾸 멀어지는 거야. 못하는 것도 많고. 그래서 지친 거지. 그래서 아예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액션성, 조작감, 타격감이 좋은 게임을 만들자.

만약에 유저들이 그런 부분에서 ‘액션성 별론데?’라고 한다면 저희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부족한 거죠. 그러면 더 해야지 별 수 없죠. 더 해야지.





유저들 피드백이 있죠.

피드백도 있고. 일단 우리는 우리가 매일 플레이 하니까. 밥 먹으면서도 옆에서 하는 거 보고. 그러다 보면 게임의 약점이 보이죠.

액션게임을 만들어 본 경력자가 없어요. 액션 게임을 만들어 본 애니메이터도 많이 없고. 프로그래머도 그렇고. 그러니까 우리도 만들면서 이제 아는 거예요.

MMORPG는 어느 정도 공식화 되어 있어서, ‘알아서 만들어라’ 하면 알아서 나올 정도에요. 그게 아니니까.

우리들끼리 이야기하다가도 우리 게임 이게 문제야.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냐? 주위에서도, ‘야 그것 때문에 게임 못하겠어’ 그러면서 문제라는 걸 알죠. 그럼 고치는 거죠. 그런데 방법이 2개야. 그 중에 어떤 방법으로 고칠 것인가. 그걸 또 이야기하고. 그런 식이죠.

올 해는 캐릭터 성장도 재미있게 만들고 리플레이 부분도 보강할거고. 올 해는 시간투자를 그런데다 할 거예요.


은근히 게임에 대한 평가를 신경 많이 쓰는 느낌이에요.

내 생각이 틀리거든 많이. 내가 아무리 잘하는 분야라도. 게임 디자인은 내가 게임을 다 플레이 해 볼 수 없으니까 듣는데 신경을 써야죠.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내가 저런 꼰대가 되면 안 되겠다. 그런 것도 있고.


이 정도 했으니까 다음에는 대작 한 번 해보자고 할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걸로 알고는 있는데. 욕심은 그렇게 생기지 않아요. 더 욕심나는 건 따로 있으니까. 그건 돈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게임이 잘 만들어지는 게 엄청나게 돈을 부어서 엄청난 리소스로 하는 방식도 완성도를 높이는 하나의 길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는 길은 시간이 많이 필요한 방법이에요. 사람이 많은 것보다. 몇 명만 있으면 되거든요. 프로토타입을 2년 정도 만들어보고 여기서 리소스만 불리면 게임이 된다, 이 게임의 전략을 어떤 식으로 가져갈 것인가 하는 걸 먼저 세운 다음에 하는 거죠.

이제까지는 그런 걸 못했어요. 그러니까 개발하면서 전략을 세우고.


동시에?

동시에 진행되니까 물론 싸게 만들긴 했지만 개발자들이 너무 지치는 거야. 어느 정도 만들고 났는데 ‘아 이거 잘못 판단했다’ 하는 것도 생기고. 그런 걸 줄이려면 초기에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잘못된 전략이 뭔지 잘 알아내지. 리소스나 세계관이나 라이브러리를 먼저 할 수도 있지 않겠냐 하겠지만 그 이전에 해야 되는 거죠.

프리프로덕션에 3명? 2명? 그 정도로 프로토타이핑을 2년 정도 하고 그 후에 규모 있게. 대규모가 아니라 30명, 40명 정도로. 요즘은 아예 그게 되기 전에는 TF팀도 꾸려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TF팀이 꾸려지는 순간 돈이 들어가고 계속해서 결과물을 내놔야 하니까.

허들 같은 거 하잖아요. 저는 그런 시스템에 있으면 숨 막힐 것 같아요. 자유롭게 생각할 시간이 충분해야 하니까. 대신 전제조건은 있어요. 3명이서 프로토타입 못 만들거면 만들지 마. 그 게임 개발하지도 마. 왜? 어차피 만들어봐야 계속 사람이 더 필요한 구조가 되거든.


게임 개발이 처음에는 보통 그렇게 핵심멤버로 시작하죠.

보통 3명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생각할 시간도 많이 주고.


그럼 차기작 아이디어도 많이 생각하겠어요. 다음에 쓸 엔진도 집에서 만들고 있잖아요.

아이디어도 내고 프로토타이핑도 직접 하죠.



[ C9 에 사용된 엔진의 다음 버전? ]



혼자서 다 하려고 그러시네.

노가다야 이건. 그러니까 집에 못 가는 거예요. 잘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많이 잘 하는 건 아닌데. 많으면 나도 좀 편하겠지? 그런데 의외로 약해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 전체가 약하잖아요. 내가 봤을 때는 하드웨어는 직접 물건을 파는 거라서 대우해주는 것 같아. 소프트웨어 쪽은 잘 해주지 않잖아.

게임회사 다니면서 느낀 건데 아직 꼰대 문화가 있어요.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 중용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다는 거지. 리더 문화가 있고 매니저 문화가 있는데 게임 쪽은 철저하게 리더 문화가 되어야 하거든요. 게임이라는 건 물론 민주적으로 의견도 듣고 통합해야 하지만 한 명이 잡아줘야 하거든요.

그런 게 있어요. 난 MMORPG가 게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SNS 내지는 하이텔, 천리안 이런 것처럼 생각하는 게임이 있는데 마음에 안 들어요. 물론 그것도 잘하면 좋겠지만 결국 게임은 게임인데.


온라인 게임에서 커뮤니티는 중요하잖아요.

물론 중요하죠. 남하고 같이 플레이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그게 주가 될 수는 없어요. 게임은 게임이니까 그 이전에 게임 그 자체로 재미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해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이번 C9에서 증명이 되면 계속 이 길로 가는 거고. 근데 잘 모르겠어.


C9에 공성전 넣는 게 결국 MMORPG 가 가진 커뮤니티성을 집어넣겠다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한데, MMORPG는 MO스타일의 컨텐츠를 넣기가 쉽거든요. 인던 넣어서 너네 4명이서 알아서 깨라 하면 되는데, MO에는 MMO의 요소를 넣기가 쉽지 않단 말이죠.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이 잡혀서 하는 건지.

장르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MO라서 공성전은 안 될 거야, 뭐라서 뭐는 안 될 거야. 이런 걸 되게 싫어해요. 저한테 그런 이야기 한 사람이 한 두 명이겠어요? 실패하든 성공하든 해봐야죠. 해봐야 알죠. 잘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뭔가 잘못했겠지 우리가. 그럼 그 원인을 찾아보고. 게임 디자인은 계속 찔러보고 찾아보고 하는 과정이에요. 일단 뭐든 해보자, 시간이 되고 능력이 되는 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개발자들이 보존되고 경험이 축적되면 다음에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겠죠. 제가 싫어하는 게 ‘야 그건 안 돼’ 이런 거. 이번에 공성전 하자고 할 때도 처음엔 다들 ‘엥?’ 이런 분위기였는데 설득했죠.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걸 알게만 되도 좋다고 생각해요.


공성전 넣는다고 한 게 벌써 꽤 오래 전이에요. C9 오베 하기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으니까.

공성전을 한다는 건 같은데 그 때와는 달라졌어요. 유저들이 모여서 싸울 수 있는 공통의 목표를 준다 하는 건 있는데 MMORPG의 커뮤니티성? 이런 걸로 접근하는 건 아니에요. 게임은 결국 목표와 도전,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이 반복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방법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했어요. MMO면 그냥 공성전 해! 하면 되는데 MO니까.

그런데 웹게임에는 그런 게 많더라고요? 턴 베이스인데 공성전을 해. 그런 데서 아이디어를 좀 얻었어요. 땅을 따먹어가면서 마지막에 쾅 하고 붙는 거. 땅따먹기라는 컨셉자체가 재밌거든요. 옛날에 코에이 삼국지 할 때 재밌었잖아. 전투를 준비하고, 교두보를 마련하고, 전쟁을 하는 과정을 거치잖아요. 마찬가지로 길드를 키우고 아이템을 좋은 걸 장착하고, 스팟을 먹으면서 성으로 가는 길을 뚫어서 친다.



[ 이런 느낌? ]



전공이 프로그램이시죠.

네.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어쩌다 게임을 만들고 싶게 되었어요.

다른 개발자한테 물어봐도 거의 동기가 비슷하더라고요. 자기가 하는 게임이 있는데 마음에 안 든 거야. 이렇게 조금만 바꾸면 되게 재밌을 것 같은데… 그 생각으로 하게 되는 거죠.


그 생각을 하게 만든 게임이 뭐예요.

뭐냐면 음… 듄2, 심시티 2000, 대항해시대2.


대부분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 받는 게임들인데?

더 하고 싶은데 패치가 안 되잖아. 그 때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으니까. 확장팩이 나오긴 해도 잘 안 내주고. 그런 게임을 만들어야 되는데…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이랑은 좀 다른 게임들이네요.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해보는데. 시간이 도저히 안 나요.


인생은 기니까.

그렇게 벌써 계획 잡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나중에 나이 들어서 가족끼리 게임 만들겠다는 거야. 제 주위에. ‘무슨 소리야’ 그러면 또 주위에서 ‘왜? 괜찮은데?’ 이러고.


지금은 젊은 편이잖아요. 개발자 상도 최연소 기록이고. 상 받을 때 좋았어요?

막상 받으니까 좋더라고요.


그렇게 받을 줄 알았어요?

저는 뭐 그냥 한두 개 받겠지 하고 갔어요. 그런데 스크립터가 와서 ‘줄창 올라가셔야 할 거예요’ 듣는 순간 아! 멘트 몇 개 준비 안 했는데 큰일 났다. 어떻게 이 위기를 모면할까. 앞에 가서 어리버리 할 텐데. 몇 개를 말해야 하나.


말도 잘해야죠 이제.

물론 말 잘하는 것 중요하죠. 그런데 게임 잘 만들어야지 말도 잘 해야 되? 내가 스티브 잡스야?


발표하고 하는 일도 많잖아요.

그게 잘 안 늘더라고요.



[ 그래서 정작 C9이 대상 받을 때는, 무대에 올라가지 았았던 그다 ]



다 받았는데 기획, 시나리오 상이 빠졌죠.

이번 게임의 목표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 인력에 이 정도 실력에 이 정도 퍼포먼스면 우리 스튜디오 사람들이 기획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C9 기획자는 다 무경력자를 뽑았거든요. 릴 때도 개발 초기 이후에는 기획자 없이 했고. R2 때도 순수하게 기획자 코스를 밟아온 기획자는 없었어요.

전 게임 디자이너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냐고 하면, 다 할 줄 알아야 해. 그림도 그릴 줄 알아야 되고 글도 쓸 줄 알아야 되고, 아이템 수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되고, 게임을 굉장히 다양하게 플레이 해봤어야 하고 그 중에 몇 개 게임은 굉장히 깊숙하게 플레이 한 사람. 그런데 의외로 없어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차라리 내 주위에서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을 시켰고 제 기준에서는 성공했던 것 같아요. C9 때는 철저하게 이런 기준으로 기획자를 뽑았죠. 제가 만든 게임이 어마어마한 세계관이나 어마어마한 컨텐츠를 목표로 하는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면서 기획자는 필요 없다는 말을 했단 말이죠.

2006년도 일인데… 내 의도는 ‘기획자를 따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였는데. ‘기획자는 필요 없다’로 되어있더라고요. 이거 무릎팍도사 됐네.


그 말을 그러니까 왜 하신 거예요.

일단 기획자라는 말 자체가 싫어요. 누가 그 말을 썼는지 모르겠는데, 게임 디자인이라는 말이 맞지.

대기업이나 이런 데 보면 기획실 있잖아요. 기획실에서 모든 정책을 결정하고 밑의 조직들은 따라 만드는 거야. 그런데 내 생각에 게임은 절대 그렇게 만들 수 없는 거예요. 철저하게 아트, 프로그램, 기획이 서로 존중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당시에는 기획자 권한이 너무 셌어. 게임은 다 같이 만드는 거지 기획팀에서 다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게임 아이디어는 누구의 머리에서도 나오는 것이지. 그 중에 괜찮은 게 채택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보통 디자인, 프로그램, 그래픽 해서 같이 가죠.

그런데 기획자가 헤드가 된 거에요. 그래픽 디자이너가 이거 괜찮겠다 하다가 그렇게 만들 수도 있잖아요? 그게 맞네 틀리네 싸우고 그랬으니까. 그게 싫었으니까.


그래도 기획일 하는 사람은 존재했을 것 아니에요.

존재하죠 당연히. 존재해야지.


그럼 뭐라고 불러요? 아, 사람이름으로 부르겠구나. 누구 씨하고.

그런데 미안하게도 기획자라고 불러. (웃음) 그런데 그 말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게임 디자이너라고 해서 그쪽에 무게가 실렸으면 좋겠어요. 제가 만든 게임은 시나리오에 신경을 덜 쓰잖아요. 물론 만드는 방식의 차이겠지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게임 디자인이거든요. 조작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아이템, 스탯은 어떻게, 어떻게 유저들이 플레이 할 것인지, 그걸 결정하고 난 뒤에 시나리오를 씌우는 거지.


그런데 그 ‘말’을 왜 했어요. 그냥 그렇게 생각만하면 되지.

몰라. 내가 말을 자극적으로 했나 봐. ‘없어도 되는 것 같은데요?’ 이러고 말았던 것 같아. 반발심리에서 그 말을 했던 거 같은데. ‘다 중요하다’지 ‘어느 하나가 중요하다’는 아니거든. 기획 하면 뭐해. 만들 사람이 없는데. 그림 잘 그려줄 사람이 없는데. 다 똑같거든. 프로그래머만 있어서도 안 되고. 어디만 중요하다는 뉘앙스의 말인 거 같아서 그 말을 싫어했던 거죠.

그런데 실제로 회사에서는 연봉표만 봐도 딱 달라. 그건 아닌 거 같아.


그래서 다?

다 통일. 얄짤 없어. 잘하는 놈이 많이 받아가야 돼. 그런데 어떤 ‘직군’이라서 많이 받아간다면 그건 아니다.


그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게, R2가 기획적인 요소가 뭐냐. 리니지잖나. 진짜로 안 했구나.

유저들이 그런 거야 괜찮아요. 인정하죠. R2는 그렇게 하려고 만든 게임이 아니니까. 그런데 같은 개발자들이 제일 많이 그랬죠.



[ 클베도 하기 전의 R2 모습. 당시 리니지와의 비교 논란이 상당했다 ]



실제로 기획을 하는 기획자 분들에겐 특히 더 민감한 문제니까.


우리나라 게임 만든 지 20년 됐는데 아직 그런 거에 대한 정의가 안 된 것 같아요. 용어 자체도 회사마다 다 다르고. 역할도 다 다르고.

그런데 릴, R2, C9만들 때는 한 가지 목표가 항상 있었어요. 그게 미안하지만 게임 디자인은 아니었어요. 릴은 우리가 게임을 만들 수 있는지 검증해보고 싶었어요. 그 때는 3D RPG가 없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목표는 일단 만드는 거다.

R2는, 릴은 흥행이 좋지 않았거든요? 흥행이 되는 게임을 만들어 보자.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어떻게 흥행시키지?’ ‘우리가 뭘 알아?’ 성공의 코드를 알아요? 모르잖아요. 만들고 나니까 ‘아 좀 되네?’ 성공의 요소를 조금 감 잡았어요. 그걸 바탕으로 C9에서는 ‘액션게임을 좋은 걸 만들어보자.’

그러니까 기획상을 못 받는 게 당연한 거예요. 우리 목표는 그게 아니었거든. 그런데 다음 게임은 그게 목표에요. 다음 게임 나오면 그거 받을 것 같아요.


그럼 다음 게임은 좀 더 새로운 느낌의 게임?

노력하고 있어요. 게임 디자인 적으로 ‘새로운 걸 해보자’ 하고 접근하고 있어요. 이제 우리 스튜디오는 게임을 어떻게 만들지,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걸 만들지 고민하는 거죠.

그 때가 되면 이야기할게요. 이 게임이 바로 그 목표로 만든 게임이다.


눈 여겨 보는 게임 있어요?

안 봐요.


경쟁게임인데… 마영전은?

물어는 봐요. 잘 되냐? 재밌냐?


위치블레이드가 이비보다 인기가 적다는데…

우리는 샤먼으로 해먹었으니까. 두 번하면 욕먹지.



[ C9의 신규 캐릭터, 위치블레이드 ]



이 게임이 만약에 작년에 나왔으면 상을 못 받았을 수도 있겠다 하는 게임 있어요?

게임이 다 그렇죠 뭐. 그런데 C9이 좀 쓸데없이 빨리 나온 건 있는 것 같아요. 겨울이나 올 해 나와도 상관없었을 텐데...


그래도 그 때 시기는 잘 탔잖아요.

저는 게임 파는데 시기는 별로 안 중요하다고 봐요. 게임이 재미있으면 하는 거고 재미없으면 망하는 거지. 정확하게 게임을 만들고 완성도를 올리는 게 중요하지. 겨울방학, 여름방학 시즌에 개발을 맞춰야 한다는 건 아닌 것 같아. 게임이 다 만들어진 상태면 타게팅해서 팔겠지만. 하여간 전 안 그러고 싶어요 제발. 이번을 끝으로 앞으로는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는 그러면?

그렇게 안 할 거예요.


전에도 그랬잖아요. 그렇게 안 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랬는데, 그렇게 됐어.


그렇게 할 수 있냐는 거지.

나 괜찮아. 나 머리 컸어. 할 수 있어. (웃음) 안 그랬으면 좋겠어. 다른 회사도 안 했으면 좋겠고. 그게 압박이 되면 퀄리티가 떨어진다고요.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 같아. 언젠가는 ‘아! 퍼펙트하다’ 이런 상태에서 내놓고 싶죠. ‘야, 됐다. 이렇게 해도 게임이 재미없으면 난 그냥 게임을 만들지 않아야 돼’ 하고 내 놓을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어요.


대중성도 신경 쓰면서?

그런데 난 대중성이라는 말이 뭔지 잘 모르겠어.


영화 쪽에는 흥행이 잘 되면 대중성이 있는 것이고, 잘 안 되더라도 작품성이 있는 게 있고.

게임은 그런데, 재미없으면 망하는 거야.




[ 그의 지론이다. 다 필요없고 재미있는가 ]



게임은 이래야 된다.

게임은 만드는 사람이 재밌어야죠. 만드는 사람도 재미없으면 뭐...


온라인 게임은?

별로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만약에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시장이 다 죽어버리면, 난 다른 게임 만들고 있을 거야.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요?

평생 만들고 싶어요. 계속 새로운 게임을. 만든 건 잘 팔면서. 결국 게임을 잘 만들어야 잘 팔리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