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콘텐츠 진흥원(이하 한콘진)에서는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을 예방하기 위해 "게임 안으로 게임 밖으로"라는 교육용 도서를 전국 초등학교 및 교육단체 6,000여 곳에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라는 발표를 했습니다.

☞ 한콘진, 청소년 게임 과몰입 효과적 예방 나선다


사건만 생기면 게임을 희생양으로 몰아가는 언론의 작태는 짜증나지만, 게임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건간에 과몰입은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특히 유혹이나 몰입에 빠지기 쉬운 시기의 청소년이나 게임을 처음 접하는 시기의 초등학생들에게는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컴퓨터가 필수가 되어가는 환경에 따라 게임을 처음 접하는 연령대는 계속 어려지고 있는데, 게임업계와 정부의 관련 부처 모두 과몰입이나 사기 등 부작용에 대한 부분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여가생활인 게임에 필요 이상의 시간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어쨌건 게임 과몰입의 예방을 위해 2008년부터 게임문화와 미디어교육 전문가와 함께 연구하고 서울시 교육감의 인정까지 받았다는 "게임안으로 게임밖으로"는 과연 어떤 책일까 내용이 궁금해 신청해 봤습니다.







편견은 위험하지만, 호기심에 비해 사실 책자를 대하는 첫인상이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최근 개최된 GDC 2010(게임 개발자 박람회)에서 아이폰 부문 RPG 1위를 차지한 한국의 게임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한국 계정에서 구입하거나 플레이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현실에 살짝 뿔이 나 있었기 때문에 이것도 또 하나의 삽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먼저 떠올랐으니까요.

게임과 관련하여 이슈성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자 문화부에서 황급히 과몰입 대책을 발표했으나 정작 실속은 없었다는 전례도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런 이슈들을 땜빵(?)하기 위해 시행된 급한 조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구요.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반쯤 삐딱한 시선으로 책자를 펼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한국 계정으로 구입할 수 없는 GDC 아이폰 1위 선정 RPG, 제노니아. ]



그런데 한장 두장 책자를 넘기고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최근의 이슈성 사건들을 막기 위한 일회성 행사나 단기간의 작업에서 출발한 내용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게임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부터 게임을 즐기는 올바른 자세나 게임이 제작되는 과정과 역할극 등 게이머에 속하는 제가 봐도 초등학생들의 교육용 도서로는 나무랄데 없는 수준입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게임을 학업에 방해되는 장애물로 묘사하거나 꼭 줄여야 하는 규제의 대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축구나 테니스, 스케이트 타기같은 놀이 문화의 하나이자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IT 산업이라고 치켜세워주지만, 정작 속을 살펴보면 게임을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도 싸늘하고 정부도 부작용들의 규제에만 신경쓸 뿐 산업의 규모에 비해 천대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 다행입니다.


초등학생들끼리 즐겨본 게임의 경험에 대해 토론 형태로 이야기를 나눠보게 하거나, 컴퓨터 교육과 병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등 학업과의 연계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다소 분량이 적긴 해도 게임의 사기나 캐쉬, 현금거래 등 피해를 볼 수 있는 부분들의 대처법이나 주의점 등에 대해서 솔직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 합니다. 초등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겨도 대처법을 모르거나 혼나는 것이 두려워 감추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꼭 필요한 부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책자의 단원 소개.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지만 초등학생용 교재라는 것을 감안하자. ]



연표와 설명만 가득한 교과서를 연상했는데, 책장을 넘기다보니 딱딱한 교재라기보다는 재미있는 학습지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설명의 나열보다는 만화로 그려진 캐릭터가 등장해 설명을 하고 카트라이더나 거상, 메이플스토리 등 아이들에게 익숙한 게임들의 스크린샷이 다양한 내용들과 함께 예시로 삽입되어 있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뭔지 모를 도표와 리서치 결과 서너개 가져다놓고 게임도 모르는 사람들이 전문가를 자처하며 연구결과라고 내놓은 책자는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들만 가르치는 탁상공론으로는 아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으니까요.

게임안으로 게임밖으로의 강사용 지침서에서도 게임의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 게임 이용자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등장하는 등 게임의 재미 부분과 교육 부분을 함께 주의점으로 다뤄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즈음해서 "아주 특별한 게임 공략집"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정보 보호, 사기 피하기, 해킹 예방, 자기 관리 등 게임과 관련된 총 11가지의 주의사항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놓았는데, 이 부분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도 한번쯤 꼭 읽어봤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사실 아이들이 게임을 즐길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모르시는 부모님들도 많으니까요.







정부에서 지원도 해주고, 다양하게 언론에 부각되는 학습용 게임 분야와 달리 게임 이용의 올바른 교육이나 접근법, 부작용에 대한 대처 등 교육 및 예방 분야는 아직 걸음마 수준입니다. 짧은 시간에 부족한 게임의 교육과 인식 문제가 해소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책이 배포된다고 해도 강제성이 없는 이상 적극적으로 사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재량 활동 즉 여유 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으니 학업 진도 나가기도 바쁜데 충분히 활용될지도 의문입니다.

점차 게임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게임은 여전히 놀이일 뿐이고 스스로 게임을 즐기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조차 아이들이 게임보다 학업에 열중하길 바라고 있으니까요.


다만 이런 책을 통해 좀 더 솔직하게 게임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고, 그렇게 길러진 인식을 통해 게임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일입니다. 올바른 게임 습관을 길들이는 것도 청소년들에게 충분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들의 *게임 리터러시를 위해 이런 교육용 책자가 등장했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지구 최강(?)의 게이머들을 보유한 한국, 세계에서 손꼽히는 온라인 환경을 자부한다는 한국에서 올바른 게임 습관에 대한 교육용 교재가 부족하다는 것은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니까요. 게임 1위라면 그에 대한 지원이나 대처 역시 1등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 게임 리터러시 - 리터러시(Literacy)는 본래 문학의 뜻이었으나, 최근에는 특정 분야를 처리하는 능력이나 활용 능력, 소양(素養)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즉 게임 리터러시란 게임을 바르게 받아들이고 활용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전반적인 능력을 뜻합니다.)


책자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일선의 고민은 여전히 남겠지만, 아이들에게 올바른 게임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교육용 교재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으니 "게임안으로 게임밖으로"가 원래의 목표대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건전하고 올바른 게임 습관을 길러주고 과몰입의 예방 교육이 자리잡을 수 있는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