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부덕한 제 책임입니다. 이렇게 꼭 한번 데미안 개발자들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고 싶었습니다. 기사가 나가게 된다면 이 말부터 써주세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며 그가 어렵게 한 마디를 뱉어냈다. 데미안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안재광 PM이었다. 압구정의 한 카페,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시곗바늘은 저녁 9시를 가리켰다. 

첫 만남의 어색함 때문일까, 이제야 모든 걸 밝힌다는 긴장감 때문일까 다소 경직되어 있던 안재광 PM의 눈빛 속에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차라리 커피 대신 소주를 갖다놓을까요?" 기자의 몹쓸 농담 뒤에 이어지는 웃음소리. 그렇게 그는 데미안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되던 2년 전 그때로 우리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2.

지난달 26일 인벤에 미공개 신작의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크라이엔진3'라는 것만 빼면 게임 이름부터 개발사까지 모든 것이 미궁 속이었다.

영상을 본 게이머들은 대부분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화려한 전투 장면과 뛰어난 캐릭터, 배경 그래픽과 압도적인 스케일이 엔씨소프트의 대작 블레이드앤소울과 견줄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상뿐이라곤 하지만 정말이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기자 특유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고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데미안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새벽 2시쯤,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밝혀진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데미안이 개발사인 액토즈소프트의 사업방향 전환 때문에 완전히 중단된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언제 시작될지 기약도 전혀 없는 상태라 했다. 

새로운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 이 게임이 중단되어야만 했을까?' 내 깜냥으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정도 게임을 갑자기 중단시켜야 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물며 데미안을 끝까지 밝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건 기자의 취재욕심보다는 좋은 게임을 잃었다는 게이머로서의 안타까움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일 거다.

그렇게 우여곡절 속 1주일이 지난 후 극적으로 안재광 PM을 만나게 됐다.



[ ▲ 유투브에 기습적으로 공개되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영상, '데미안 프로젝트' ]



[단독] 데미안, 미공개 신작의정체는?



3.

2010년 초, 전 열혈강호 프로그래머 출신의 안재광 PM이 총괄하던 갈릭번 스튜디오는 레이싱 게임 '아쿠아쿠'(AquAqu) 프로젝트를 끝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쿠아쿠의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는 무조건 '최고'라는 단서를 걸었다. 장르는 MMORPG, 컨셉은 무협으로 정했다. 그래픽도 물론 현존 최고의 퀄리티를 목표로 했다.

무협이 배경인 만큼 특히 '야외' 묘사에 대한 그래픽 요구치를 엄청 높게 잡았는데, 개발팀 전체가 모여 그래픽 툴을 고르던 중 때마침 그 당시 이슈을 모으던 '크라이엔진3'를 발견하게 된다.

"야외 묘사가 진짜 뛰어났거든요. 이건 게임이 아니라 그냥 자연 그 자체더라고요. (안재광 PM의 고향은 경남 통영이다.) 광원효과도 정말 멋졌고 그 좋은 그래픽에 캐릭터 수백 개를 갖다 놓고도 프레임이 60 밑으로 안 떨어지는 걸 보고 바로 결심했습니다. 크라이엔진3가 답이구나. 그래픽팀에 주문했죠. '엔진의 한계까지 끌어내 봐라.'"

게임의 기본적인 엔진을 크라이엔진3로 정한 후 안재광 PM이 집중한 것은 다름 아닌 '기획'이었다. 그래픽도 그래픽이지만 최고의 MMO가 되기 위해서는 상투적인 기획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시작할 때 회사에 이야기했습니다. '개발과 기획을 동시에 진행하지 않겠다.' 이 말이 뭐냐면요, 게임 기획, 그리고 크라이엔진3을 포함한 기술적인 R&D가 완전히 끝나야 그때 개발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래야 게임이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4.

어느 정도 분위기를 타자 안재광 PM은 잠시 사실의 진술에서 벗어나 데미안의 기획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우리도 원래 목적을 잠시 잊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말을 중간에 끊기 어려울 정도로 '기획'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명은 '데미안'이지만 이름의 진짜 의미는 클 '대', 아름다울 '미', 눈 '안'을 써서 세계를 바라보는 '크고 아름다운 눈'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데미안에서는 직업의 개념이 없고 대신 '비급'이 존재한다. 무협소설의 그것과 유사한데, 예를 들어 'A 비급'을 어떤 식으로든 획득하게 되면 해당 비급만큼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똑같은 비급이어도 내용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강룡18장이라고 해도 어떤 것은 9장까지만 담긴 비급이 있고, 어떤 것은 12장까지 담긴 비급이 있는 등 비급마다 가능한 무공의 수준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데미안은 캐릭터마다 몇 개의 슬롯이 있고 그 슬롯에 '게임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비급을 장착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소유한 비급의 종류에 따라 유일무이한 캐릭터 특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비급은 실제 무협소설 속의 세계에서처럼 다른 유저간 '거래'도 가능하다.

"R&D 기간이 반드시 필요했던 게 이런 부분 때문입니다. 유저들이 비급을 사고팔았을 때 무수히 많은 변수가 쏟아져 나올 텐데 밸런스는 어떻게 맞출 것인가. 계속 시뮬레이션하면서 기획을 수정하고 보완해서 완벽하게 맞춰나갔죠."

일명 '퀘스트 팩' 시스템도 있었다. 의천도룡기 팩을 선택하면 소설 '의천도룡기'에 관련된 퀘스트와 스토리로 캐릭터를 성장시켜나갈 수 있고, 만약 다른 캐릭터를 육성할 때 기존 퀘스트가 지겹게 느껴진다면 '의천도룡기' 말고 '사조영웅전'이나 '신조협려' 퀘스트 팩을 선택해서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를 즐길 수 있는 것.

현재 대부분 MMORPG에서 채택하고 있는 '몬스터 레이드'에서도 차별을 꾀했다. 컨셉 영상을 보면 엄청나게 거대한 두꺼비가 앞만 보며 전진하고 한참 옆에서 거리를 두고 캐릭터가 추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꺼비를 때려잡는 게 아니다. 안 PM의 표현을 빌리면 '체스' 같은 요소를 도입했다.




거대 두꺼비는 나오자마자 물을 향해 천천히 전진한다. 플레이어의 목표는 두꺼비를 죽이는 게 아니라 로프를 묶든, 화살을 쏘든 게임 내 구현된 다양한 방법으로 물에 못 들어가게 하는 것. 제한시간이 있어서 마냥 넋놓고 구경할 수도 없다.

거대 두꺼비의 등에는 '고급 비급'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다. 그리고, 데미안 속에는 항상 정,사파 간의 분쟁이 존재한다. 즉, 플레이어들은 거대 두꺼비를 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될 수 있으면 거대 두꺼비를 자신 진영의 지역으로 이동시켜서 '고급 비급' 상점을 자신의 진영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거대두꺼비 한 마리로 PvE, PvP를 콘텐츠를 동시에 노리는 전략이다.

이 외에도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신선하고 파격적인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일단은 다시 데미안 프로젝트 자체의 운명에 집중하기로 했다.



5.

데미안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약 10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R&D 과정에서 만들어진 소스를 가지고 영상 하나를 만들었고 회사 내부에서 PT를 한 결과 1차 내부 허들을 통과했다.

"회사에서 한번 제대로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크라이엔진3도 정식으로 구입했고요. 그때부터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6개월 정도 개발을 진행하면서 기획과 그래픽, 그리고 크라이엔진3과의 이상적인 접점을 찾고 있었습니다. 당시 만들었던 영상을 좀 보여 드릴게요."



[ ▲ 맵로딩이 전혀 없는 심리스 오픈월드를 구현했음을 보여주는 영상
역시 심리스 맵 개발을 위한 기술 테스트 과정에서 나온 샘플 영상이다. ]




[ ▲ 한 맵에 1,000마리의 몬스터를 동시에 등장시켜 부하를 테스트했다.
안 PM이 크라이엔진3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




안 PM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시연해줬다.

"아마 2011년 6월 30일이었을 겁니다. 제대로 개발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죠. 액토즈소프트의 모 회사인 중국 샨다 본사에 비행기 타고 날아갔습니다. 내부 컨펌이 끝났고 본사에서 내려온 액토즈소프트 '링 하이' 대표이사도 '오케이'했으니 거의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샨다게임즈 대표 앞에서 PT까지 잘 했고 그렇게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드랍' 통보가 떨어지는 겁니다. 지금 즉시 프로젝트를 중단하라고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죠."



샨다와 액토즈소프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샨다와 액토즈소프트의 관계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1996년 설립된 1세대 게임개발사 액토즈소프트가 있었고, 액토즈소프트 산하 스튜디오 중에 '미르의전설2' 개발팀이 있었다. 이 개발팀이 '미르의 전설2'를 개발하던 중에 별도의 회사로 독립하게 되는데 이 회사가 지금의 위메이드다. 합의 내용은 액토즈소프트가 위메이드의 지분 40%와 '미르의전설2'부터 앞으로 나올 모든 미르 시리즈의 전 세계 영구판권을 소유하는 것.

그렇게 둘의 관계가 정리되고 '미르의전설2'도 개발이 완료되어 정식서비스를 시작한 2001년, 액토즈소프트는 중국의 신생게임사 '샨다'와 '미르의전설2' 중국 서비스 계약을 체결한다. 샨다에 의해 중국에 서비스된 '미르의전설'2은 한국의 리니지, 아이온에 견줄 정도의 그야말로 대박이 났고 샨다는 그 원동력으로 중국 최대게임사 및 퍼블리셔로 급부상하게 된다.

여기가 바로 분쟁의 시발점이다. '미르의전설2'가 중국에서 흥행가도를 달려가는 중에도 샨다가 액토즈소프트에게 '미르의전설2'로부터 발생하는 수수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개발사인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는 샨다가 계약서에 명시된 수수료를 지급해줄 때까지 중국 업데이트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다.

이에 대한 샨다의 대처가 엽기적인데, 분쟁을 제대로 해결하기보다는 '미르의전설2'를 그대로 베낀, 심지어는 '미르의전설2'와 관련된 모든 DB 정보가 그대로 이전 가능한 '전기세계'라는 일명 짝퉁 게임을 만들어 서비스하기 시작한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위메이드는 2003년 북경 인민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고 샨다를 대상으로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 중국법원은 저작권 침해는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바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위메이드와 샨다의 중재를 요청하는 등 한발 물러선 태도로 시간을 끄는데 이 때문에 분쟁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수수료를 받지 못했던 위메이드의 회사살림은 더 어려워지게 된다.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르의전설2'와 앞서 언급한 짝퉁게임 '전기세계'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샨다는 2004년 액토즈소프트의 지분 28.5%를 945억 원에 사들이며 액토즈소프트를 전격 인수하게 된다. (이 이후에도 샨다는 액토즈소프트의 지분을 꾸준히 사들여 현재 샨다가 보유한 액토즈소프트의 지분은 50%가 넘는다.)

그리고 이 인수로 말미암아 분쟁의 구도가 "액토즈와 위메이드 Vs 샨다"에서 "위메이드 Vs 샨다와 액토즈"로 완전히 바뀌게 된다.

샨다는 이제서야 자회사인 액토즈소프트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는데 문제는 액토즈소프트는 위메이드에게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액토즈소프트는 샨다와의 분쟁이 종결되어야만 수수료를 지급하겠다면서 합의를 종용했다.

몇 해 동안이나 제대로 된 수수료를 받지 못했던 위메이드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샨다와 합의를 했고, 그 당시 업계에서는 합의 내용을 창천 온라인의 중국 판권을 샨다가 비싼 값에 사주는 것과 액토즈소프트가 보유하고 있던 위메이드의 지분 40%를 위메이드에게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것으로 관측했었다.

그렇게 위메이드는 샨다, 액토즈소프트와의 분쟁을 종결짓고 지분도 확보한 후 2009년 코스닥 상장까지 이뤄냈다. 하지만, 액토즈소프트는 최근 모회사 샨다의 하락세 때문인지 모바일 게임 회사로 급히 전환한다는 전략적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현재 서비스되는 게임 외에는 개발팀 전원을 퇴사시키는 등 심각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샨다가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한 가장 큰 목적이 위메이드와의 분쟁을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었고 현재는 모든 분쟁이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향후 샨다가 액토즈소프트를 어떻게 둘 것인지에 대해서도 업계의 관심이 모이는 중이다.

'데미안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 샨다와 액토즈소프트 관계를 먼저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

'프로젝트 중단'은 곧 개발팀 해체를 의미한다. 2개월간의 유예 기간 동안 자리를 정리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그 와중에 액토즈소트프의 노상준 부사장이 많은 힘이 돼줬다. "우리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한번 해보자." 하지만, 끝내 샨다의 입장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2011년 7월 중순, 안재광 PM은 액토즈소프트에 알리고 데미안 프로젝트를 받아줄 회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저작권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었지만 안재광 PM은 데미안 프로젝트는 경우가 많이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포기한 게 아니잖아요.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드랍시킨 거고. 1년 넘게 기획과 R&D를 거치며 확보한 개발력과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상으로 보여졌던 것들은, 기술적 테스트과정의 산물들이었고 원래 그래픽 등 리소스 자체를 새로 만들 계획이었어요. 이미 테스트 결과와 노하우가 있으니 만드는 것에서의 기술적 어려움은 상당 부분 극복되었죠. 결국 그런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중요한 거구요. 액토즈의 관계자들도 안타깝다며 나가서라도 잘 되길 바란다고 했어요. 액토즈 분들에게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해요. 그 분들은 우리를 도와줄 만큼 도와주셨습니다."


7.

가장 먼저 접촉했던 곳이 중국 최고 퍼블리셔 중 하나인 A와 B였다. 업계에서의 인연으로 끈이 닿아 관계자들 앞에서 PT까지 했다. 반응이 좋았다. "당장 회사 설립하고 지분 정리되면 다시 찾아 오라."는 멘트까지 나왔다. 그 말에 안 PM은 자신감을 얻었고 "앞으로 잘 풀릴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된다.

그때 접촉한 중국 퍼블리셔의 B사의 한국 퍼블리싱 팀장이 안 PM을 개인적으로 찾아온다. 직장을 그만두고 도울 테니 같이 회사를 차려서 해보자는 제안. 안 PM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정도로 '데미안'의 가치를 인정해준 그가 고마웠고, '투자를 이끌어올 수 있다.'고 호언장담까지 했기 때문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개발에 몰두했던지라 투자와 경영 쪽에는 어두웠던 안 PM의 커리어도 그 결정에 한몫했다. 그렇게, 퍼블리싱 팀장은 새로 설립하는 회사의 부사장이 된다. 대표이사는 당연히 안재광 PM이 맡았고.

보름이 지난 후 실제로 부사장이 투자자 2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두 투자기관에서 서로 나눠서 데미안 프로젝트에 투자를 진행하겠다는 것. 안 PM은 지난 8월 15일, 30명의 데미안 프로젝트 개발자들을 모두 모았다. 최종 회의를 거친 후 데미안 프로젝트의 개발자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모처로부터 투자를 받기로 했고 두 달만 기다리면 모든 세팅이 끝나 새로운 곳에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8.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새로 사무실도 구하고 법인도 설립하던 무렵, 투자기관 중 한 곳이 갑자기 투자가 어려울 것 같다는 소식을 통보한다. 그때가 올해 10월 초, 안 PM이 개발자들에게 통지한 2달이 채 안 되는 시점이다. 일이 그렇게 되자 나머지 다른 투자기관도 혼자서 투자하기는 부담되는 규모의 프로젝트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물리적으로 두 달을 다 썼고.. 개발자들에게는 '나만 믿어라. 다 잘 될 거다.'라고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된 셈이잖아요. 너무 속상하고 미안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고요."

그 와중에 처음 접촉했던 중국 대형 퍼블리셔에게도 다시 연락이 왔다. 안 PM이 1차 알파버전 개발 완료까지 계산한 투자금액, 사무실 임대료부터 인건비, 그 외 부대 비용 전체를 합한 46억 원을 훌쩍 넘는 5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투자금이 지급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결국 현실화 되지는 못했다.

"부사장분이 한국 개발사하고도 접촉했다고 들었습니다. MMORPG 자체가 규모가 워낙 크고 극 초반 개발 단계다 보니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중국 퍼블리셔 쪽에 다시 연락해봤습니다. 투자는 안 되고 자기네 스튜디오에 소속되어 그래픽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기획, 프로그래밍은 자기네들이 하겠다고. 가슴이 아팠죠."

"그게 아마 10월 19일이었을 겁니다. 더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0명이 저 때문에 회사를 나와서 월급도 못 받고 고생하는 걸 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각자 살길을 찾아가자고 했죠. '그래도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테니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 밖엔 할 말이 없었습니다."



9.

"이게 데미안 프로젝트 이야기의 끝입니다."

현재 데미안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개발자의 반은 다른 회사에 취직하거나 생계를 위해 각자의 길을 간 상태다. 설립했던 회사는 폐업 처리됐고 안재광 PM을 포함해 15명의 순수 개발자들만 남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중이다.

한편, 액토즈소프트는 현재 라이브 중인 '라테일'의 개발팀을 제외한 모든 온라인게임 개발팀을 정리했다. 이미 모바일게임에 주력하기 위해 체제를 개편했고, 최근 서울 종로에서 마포 공덕동으로 사옥까지 이전했다.

또한, 액토즈소프트는 지난 10월 17일, 100% 출자한 한 중국 소재 자회사 '메이유'의 신작이자 천년의 후속작 '천년지왕 (영문 Great Master) 에 800만 달러(92억 4,800만 원)를 추가로 투자하기로 하고 공시까지 했다. 국내 온라인게임 개발팀을 전부 해체하는 과정에서 중국 자회사에 초기 자본금 30억 원을 포함해 총 122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감행한 액토즈소프트, 그리고 샨다에 대한 불만도 들려오는 상황.

아이러니하게도 액토즈소프트의 메이유에 대한 투자 발표 시점이 안 PM이 데미안 프로젝트 개발팀의 해산을 선언한 시점과 겹친다.


10.

"지금 가장 어떤 게 하고 싶으세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기자가 물었다.

"하고 싶은 일요? 글쎄요." 한참을 머뭇거리다 어색한 표정으로 그가 웃는다. "그냥 팀원들이랑 모여서 일반 회사처럼 다시 게임 재밌게 만들고 싶은 거, 그게 다예요. 그렇게 된다면 더는 바랄 게 없죠."

가져간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그를 잠시 쳐다봤다. 덥수룩한 수염에 점퍼 차림의 그가 보인다. 이상하게 더 말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일을 하고 싶다.'라는 간절함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기자가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인터뷰를 모두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보겠다.'는 안재광 PM의 진지한 눈빛이 생각났다. 지인의 사무실을 빌려 개발을 계속 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도 머리 속을 맴돌았다.

늦은 밤 우연히 발견한 동영상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데미안 프로젝트와 액토즈스프트, 샨다, 그리고 안 PM을 포함한 30명의 개발자. 누구의 입장이 옳고 그른지, 실제 사실 관계가 과연 어떤지를 이 자리에서 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자본'의 논리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게임개발자가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소원'인 세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담하고 우울했다.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그리고 대한민국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1인으로서, 데미안 프로젝트가 다시 꽃필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