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게임시장은 온라인 게임의 하늘 아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형태로 고착된 지는 꽤 됐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었으니까요. 넥슨 '바람의 나라'를 필두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웹젠의 '뮤'의 순차적 등장을 보면 알 수 있듯 온라인 게임시장은 당시 왕좌에 앉아 있던 PC 패키지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발전 속도로 눈 깜짝할 사이 추월해 버리고 독주체제를 굳혔습니다.

[ ▲ 지금은 추억이 된 풍성한 PC 패키지 게임 ]


그 때문에 PC게임은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이면서도 유연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과거부터 이어져 왔던 플로피 디스크, CD, DVD라는 물질적 매개체를 과감히 벗어버린 PC 게임은 '다운로드 콘텐츠'라는 새로운 유통 방식을 갖추게 됩니다. 물론 컬렉터 처지에선 정품 패키지 소장에서 오는 만족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자신의 수납장을 가득 채운 패키지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은 힘들어졌지만, 대신 언제 어디에서나 빠르게 원하는 게임을 내려받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입니다.

네. 맞습니다. PC게임 유저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만한 '스팀' 이야기입니다. '스팀'은 '하프라이프',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리즈로 유명한 '밸브' 사의 디지털 게임 유통 시스템으로써, PC게임 유통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눈에 확인하기 쉬우면서도 섬세한 라이브러리는 패키지에서 느껴지는 소장의 기쁨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며,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 도전과제는 코어 유저의 수집 욕을 자극합니다. XBOX와 PS로 대표되는 콘솔의 장점을 흡수한 거죠.

'스팀'은 얼마 지나지 않아 PC게임의 새로운 활주로가 됐고, 전 세계 사용자 3,500만 명을 돌파하는 등의 성공을 거둡니다. 국내 사용자 역시 많은 편은 아니지만, 충성도 있는 사용자가 꽤 있는 편으로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분 역시 '스팀'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 '울트라' 코어 유저입니다.

12일 현재 스팀 게임 보유량 1,636개로 국내 랭킹 1위, 세계 랭킹 17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대표 스팀 유저 [KOR]cherry^^ 님을 모셨습니다. (이틀 전까지 세계랭킹 7위)

※ 스팀 유저랭크 사이트 http://sapi.techieanalyst.net/ 기준

[ ▲ 국내 스팀 유저의 Most...! [KOR]cherry^^ 님 ]


만나서 반갑습니다! 인벤 가족 여러분을 위해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PC 게임 및 콘솔 관련 타 커뮤니티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고 체리^^ 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인벤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4월 12일 현재 체리 님이 보유한 스팀 게임 숫자가 무려 1,600개 이상으로 일반인 시점에선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게임을 구매하는데 들인 비용을 알 수 있을까요?

많은 비용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 예상만큼 높은 수치는 아닙니다. 약 2년 동안 한 달에 40-50만 원 정도 구매 비용으로 투자한 것 같은데요. 평소에는 그렇게 많이 사는 편은 아니고, 스팀의 주 할인 시즌인 7월이나 12월에 한꺼번에 구매합니다. 그래서 보유 게임 숫자에 비하면 많은 지출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체리 님은 할인 시즌을 적극 이용하는 유저로, 확실히 구매 타이틀 숫자 대비 지출액이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스팀 게임의 평균 가격은 패키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할인율이 엄청난 수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1,000개 이상의 게임 구매는 정품에 대한 엄청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수치라고 여겨졌습니다.





스팀으로 게임을 처음 구매한 게 언제부터인가요? 그리고 첫 구매 타이틀이 어떤 게임인지 궁금합니다.

2008년에 'NBA 2K9' 및 '콜 오브 듀티 모던워페어2'를 구매하기 위해 필요성을 느껴 이용하게 됐습니다. 구매 이전에는 그냥 카스(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메신저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게임의 정품을 구매하면서 마켓 콘텐츠를 알게 됐죠. 부끄럽게도 이전에는 많은 양의 게임을 어둠의 경로를 이용해 즐겼습니다. 물론 스팀을 알고부터는 불법 복제를 전혀 안 한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맨 처음 스팀 상점을 이용하게 된 동기가 있었을 텐데?

'NBA 2K9'와 '모던워페어2' 때문에 스팀 클라이언트를 자주 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중, 게임을 구매할 수 있는 기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걸 통해서 'NBA 2K10'와 몇몇 하고픈 게임을 구매하기 시작했는데 편한 결제 및 게임관리 덕분에 현재까지도 계속 이용하게 됐네요.


현재 스팀은 한화를 사용하기 어려운 구조이기에 다수의 국내 유저가 '한스팀'이나 '제리얼'같은 대행 사이트를 활용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체리 님은 이 많은 게임을 모두 대행으로 구매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사용하시는 다른 구매 방법이 있나요?

저는 거의 스스로 구매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스팀 안에서 지역제한이 걸려 한국 스팀에서 구매할 수 없는 게임도 간혹 있습니다. 그런 경우 과거에는 VPN 프로그램을 통해서 해외로 우회해서 구매했지만, 지금은 스팀 자체적으로 우회에 대한 단속을 무척 강화했기 때문에 최근에는 외국인과 게임 대 게임을 트레이드 한다거나 페이팔 머니 등을 주고 구해오는 편입니다.


게임을 구매할 때 특별한 우선순위를 갖고 있습니까? 취향이라던가, 아니면 특정 개발사의 타이틀 수집 같은 것 말입니다.

아뇨. 특별히 그런 순위나 취향을 내세우진 않습니다. 전 스팀 게임을 모으는 것 자체가 취미니까요. 만약 제가 특정 장르에 취향이 있었다면 이렇게 많은 타이틀을 수집하진 못했을 것 같아요.


체리 님께서 생각하는 스팀의 장단점을 알고 싶습니다. 세계 정상급의 코어 스팀 유저이다 보니 일반 유저가 모르는 장단점도 왠지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스팀의 장점은 앞에도 설명해 드린 것 같지만 일단 게임의 관리 및 구매가 너무도 편합니다. 관리 부분은 정말 과거에 불법복제하던 시절보다도 편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게임을 구매하기 위해선 해당 게임을 선택하고 결제 버튼 누르면 끝입니다. 이걸로 모든 설명이 될 정도죠. 관리 및 인터페이스 면에선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팀 유저들도 느끼고 있는 점이라고 생각되네요. 하지만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팀은 국내 법상 정식으로 서비스되고 있지 않기에 정책 및 약관이 상당히 독단적입니다. 또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는 점 덕분에 아무리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하소연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재 스팀은 국내 정식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아 한화로 직접 게임을 구매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개인이 직접 결제를 하기 위해선 달러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나 국외 카드를 사용하는 방법뿐이죠. 몇몇 편법이 있지만, 오히려 불편한 점이 더 많아 자주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스팀은 지난 만우절에 '한국 정식 서비스 지원 및 한화 결제 가능'이라는 공지를 띄우고 곧 만우절 거짓말인 것을 밝혀, 잠깐이나마 반색을 표했던 유저들을 쓴웃음 짓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스팀 게임 외에 따로 패키지 게임을 구매하기도 하는지요?

집에 패키지를 모아둘 공간적 여유가 없어 거의 모으지 않습니다. 물론 PS3나 PSP같은 콘솔 게임은 어쩔 수 없으니 예외지만 이 또한 독점작만 모으기에 소량입니다.


체리 님의 보유 타이틀 숫자는 엄청나다는 표현을 몇 번이나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에 반해 플레이 타임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요.

제가 스팀을 시작한 지도 사실 3년 반 정도밖에 안 됐고, 게임 구매욕이 게임을 하는 시간보다 앞서다 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게임을 잘 안 하는 편은 아니에요. 나름 2년간 스팀 등급 10을 놓쳐본 적이 없으니까요. (2주 동안 30시간 이상 플레이) 그렇지만 저는 2K 스포츠의 팬이다 보니 도전과제 달성률 같은 게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 것은 맞습니다.


스팀으로 등록할 수 있는 친구 300명이 항상 가득 차 있는 모습입니다. 스팀 친구들은 모두 지인들입니까? 만약 아니라면 그들이 당신에게 특정 목적을 갖고 친구신청을 하는 건가요?

스팀 친구 중 한국인분들은 주로 제가 활동하는 PC, 및 콘솔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나머지 외국인들은 게임 거래 그룹 및 저같이 게임을 모으기 좋아하는 외국인 컬렉터들이 다수를 이룹니다. 하지만 친구 추가 제한이 걸릴 때는 제가 모르거나 장기간 접속 없는 분들 위주로 삭제하기도 합니다.


게임 거래 그룹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보유 랭크 유저간에 특정 커뮤니티가 있는 건가요? 그리고 체리 님은 랭커들과 연락을 자주 하는편입니까?

주로 한국 그룹중에서는 '스팀부자', 외국 그룹중에서는 'Games Collectors' 같은 곳에서 얘기를 나누는 편입니다. 스팀 랭커들과도 간혹 이 그룹에서 대화합니다.


엄청난 수의 게임을 구매하고 즐기셨으니 어느 정도 게임을 보는 '눈'이 생겼을 것 같은데요. 한국 최고의 스팀 유저에게 '추천 게임'을 듣고 싶습니다. 또 그 추천 게임을 간단하게 인벤 가족분들께 설명 부탁합니다.

추천 게임이라면 최근 출시된 게임으로 '메타 스코어' 및 '게임 랭킹스'도 증명하는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을 들고싶습니다. 방대한 스케일 및 완벽에 가까운 유저 한글화로 인한 몰입도 증가, 또한 최고의 구성 및 스토리로 저에게는 완벽한 게임이었습니다. 자신이 RPG 유저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타이틀이라고 생각되네요. 스팀에서는 매일마다 세일하는 게임이 있고, 그 게임의 메타 스코어 및 유저평을 검색하거나 데모를 미리 플레이해볼 수 있으니 참고하고 결정해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세일할 때 '밸브'의 게임은 거의 전부 추천해 드리고 싶고, 스카이림 말고도 최근에 재밌게 즐긴 게임은 '세인츠 로우 : 더 써드'입니다.

[ ▲ 체리 님의 추천 게임! 좌측부터 '스카이림', '오렌지 박스', '세인츠 로우 : 더 써드' ]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보유한 게임들... 그리고 주로 RPG 게임을 꼽으셨는데요. 좋아하시는 장르가 이 방면인가요?

스카이림 같은 RPG도 좋아하지만 저는 스포츠게임 매니아입니다. 특히 2K 스포츠의 NBA, MLB 시리즈를 매우 좋아합니다. 제가 실제 NBA, MLB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에 플레이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입니다.


스팀 내에서 체리 님의 구매 수치는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업적' 같아 보입니다. 혹시 스팀을 이용하며 업적을 쌓던 중 생긴 에피소드 같은 게 있는지.

지금은 하지 않지만 지인 분들의 게임을 대리구매 해 드리던 적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대리구매 전용 계정이 동결되는 바람에 50만 원 정도를 환불해 준 적도 있었고, 가끔 어이없는 피싱사이트 해킹을 시도하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에피소드는 없는 거 같아요. 제가 조용조용한 사람이다 보니...


혹시 스팀 게임 외에 온라인 게임을 비롯한 다른 플랫폼 게임도 즐기나요? 만약 플레이한다면 어떤 게임인지 알고 싶습니다.

온라인 게임보다는 콘솔 게임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많은 시간 플레이하진 않고 가끔가다 즐기는 편입니다. 특히 콘솔 독점작중에서 '언차티드' 시리즈 및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갓 오브 워' 시리즈의 팬입니다. PSP로는 '철권'과 '슈퍼로봇대전'을 간혹가다 플레이하는 정도입니다.

[ ▲ 스팀 유저지만 콘솔도 좋아합니다. 좌로부터 '언차티드', '파이널 판타지', '갓 오브 워' ]



아까 전에 스팀 게임을 모으는 것이 취미라고 하셨는데요. 달성하고 싶은 목적이 있습니까? 가령, '나는 스팀 게임을 2,000개까지 모아보겠어.' 라던가. 한마디로 체리 님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의 스팀 게임 보유랭킹 1위가 목적이었습니다. 작년쯤에 이 목표는 달성했지만, 이제는 더 욕심이 생겨서 스팀으로 발매된 게임은 모두 보유하는 게 꿈입니다. 물론 현재 판매 종료된 게임도 다수 있기 때문에 랭킹 1위는 사실 어렵습니다. 재발매라도 되었으면 좋겠네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비록 타 게임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인벤이 더욱더 발전하는 웹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양질의 기사와 정보도 좋지만, '한국 내에서 인벤이 유저들로 하여금 정품게임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커뮤니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게이머가 게임의 정품 구매를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가 게임을 이렇게 모으게 된 동기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게이머들이 멀리 미국이나 옆 나라 일본정도의 정품 구매율을 보인다면 우리나라 게임 문화발전이 더 큰 탄력을 받지 않을까 합니다.




인터뷰를 작성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한때 불법복제의 유혹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불법복제는 한국의 게이머라면 극소수를 제외하고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마성의 늪'이었습니다.

스팀 보유 게임 1,600개를 돌파한 국내 유저가 있다는 제목을 보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확인한 지금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제가 체리 님의 인터뷰를 작성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평생 해도 모자라지 않을 게임 숫자에 대한 부러움도, 매니아를 넘어선 단계에서 밀려오는 부담감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정품에 대한 의식 있는 유저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아진다면 온라인 게임 강국을 넘어, 우리나라에도 '건전한 게임문화'라는 나무가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