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구로에 위치한 지오 PC방이 스타크래프트2로 들썩였습니다. 인기 없는 개그맨으로 유명한 김기열 씨가 동료 개그맨들과 '스타크래프트2' 대회인 'KGSL(김기열배 스타리그)'을 개최한 현장이었습니다.

김기열 씨는 e스포츠 현장을 직접 방문할 만큼 스타크래프트의 열성적인 팬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개그콘서트'에 함께 출연하는 동료 개그맨 25명이 이번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게 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회에 걸린 상금이 상상 이상으로 든든했거든요. 우승 상금이 무려 200만 원, 준우승을 해도 100만 원!




역시 인기 없는 개그맨 김기열 씨답게 생중계를 지켜본 최대 인원이 3천 5백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시청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방송을 돕기 위해 합류한 인원도 화려합니다. 스타테일의 여신, 여성 프로게이머 '아프로디테' 김가영 선수가 해설진에 합류했고요. 오랜 스타크래프트 인터넷 방송 경험을 가지고 있는 BJ '인트마스터' 역시 화려한 입담으로 해설을 도왔습니다.



김가영 선수는 "집에 내려가 있다가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진짜 재미있을 것 같은 거예요. 김기열씨가 스타크래프트에 관심 많으시고, 저번에 결승전을 직접 보러 오신 것도 봤거든요. 그래서 급하게 오늘 올라왔어요"라고 참석 계기를 밝혔습니다.

"같은 게이머 입장에서 스타크래프트2를 홍보하기 위해 이런 대회를 열어주신 점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모두 게임을 사랑하고 열심히 즐기는 분들이라, 이런 소규모 대회에도 많이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앞으로 있을 대회에서도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9시 30분경 대회 시작과 함께 조 추첨식이 있었습니다. '개그콘서트'에 함께 출연하는 개그맨들이니만큼 서로간의 실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우승 후보와 1라운드에서 만난 참가자들은 괴성을 지르면서 자신의 운을 저주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라죠?

특히 인상에 남은 것은 김지민 대 양상국의 대결 3세트였습니다. 모든 시청자가 눈물을 흘리며 지켜본 이 명승부(?)는 30분 가까이 계속되는 시간 동안 양쪽 모두 가스를 전혀 캐지 않고 광전사만 뽑아 어택땅 승부를 펼치면서 본진 자원이 소모되는 혈투로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김지민 씨가 남성 시청자들의 염원을 저버리고 항복을 선언하면서, "지겨워서 나갔어요"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 고백하자면, 기자는 사심을 담아 김지민 씨와 투샷을 따로 찍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2'를 꾸준히 즐긴 듯한 실력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세상에 없던 놀라운 빌드를 창조하는 라이트 유저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떨까요. 기존 대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웃음과 즐거움, 그리고 순수함이 가득한 현장인걸요. 경기가 끝나고 서로 만담을 나누는 모습이나, 중계석에 난입해 각자의 끼를 과시하는 모습은 '이게 생활 속 e스포츠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우승은 신인 개그맨 정해철 씨가 차지하면서 상금 200만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김장군 씨와의 결승전에서 첫 세트를 내준 정해철은 2세트에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엘리전 끝에 극적으로 승리하고, 3세트에서도 난전을 승리로 장식하면서 짜릿한 역전 우승을 만들어냈지요.

해설진의 한 축을 맡고 경기 진행까지 관여하느라 중계 중에 컵라면을 끓여먹어야 했던 개그맨 김기열 씨를 휴식 시간에 힘들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이 행사를 어떻게 진행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개그맨들이 굉장히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해요. '스타1' 시절에도 우리끼리 대회가 자주 열렸는데, 개그맨이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앞서가야 하는데도 이상하게 '스타크래프트'만큼은 전편에 머물러 있더라고요. 저는 '스타2'를 하는 입장에서 최근 김유진 선수와 이신형 선수의 WCS 결승전을 직접 보러 갔더니 더 재미있는 거예요.

"아, 그렇다면 우리 개그맨끼리 리그를 만들어서 진행하면 정말 재미있겠다" 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죠. 블리자드 측에 건의를 했더니 한 달 동안 준비를 하셔서 만들어줬어요. 사실 블리자드 분들이 다 해준 거예요. 제가 이걸 하면 어떨지, 저걸 하면 어떨지 말하면 그때마다 회의를 열어서 준비를 해주었죠.


- 오늘 동료 개그맨들의 실력을 보니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음... 정말 형편없고(모두 웃음), 진짜 이 정도까지 못할 줄은 몰랐어요. 사실 유명 개그맨들이 우승을 해줘야 다음 대회도 준비를 하고 그러는데요. 사실 유명 개그맨들은 정말 바빠요. 연습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일단 좀 무명에 가까운 개그맨들이 시간이 많기 때문에, 상위권에 무명만 남게 됐어요. 이래선 안 되는데.

제가 분명 양상국, 김지호 씨한테 그랬거든요. "그냥 저글링만 뽑아서 들어가면 이긴다". 다들 실력 보면 아시잖아요. 저글링 만들면 이겨요. 그런데 들은 척도 안 하고 굳이 프로토스를 해서 광전사 뽑고 하다가 졌죠. 답답해요(웃음).



- 김기열 씨는 실력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동료들에게 가르쳐줄 생각이 있는지?

틈틈이 가르쳐주면서 하고 있어요. 따로 방을 만들고 1:1 연습을 관전하면서 알려주곤 했는데, 저도 다이아 등급까지는 못 가고 아직 플래티넘 등급이에요. 가르쳐주기에는 실력이 아직 부족해서 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스타2' 대회 경기를 다 보거든요. SK텔레콤 T1의 팬이고요. 임요환 감독님도 정말 좋아하고 정윤종 선수도 좋아해요. 최근에 있었던 STX 소울과의 프로리그 준플레이오프 경기를 봤는데,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1차전이 굉장히 안타까운 게 3:2로 이기고 있다가 3:4로 역전패를 당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마지막 두 경기가...

(응원팀에 대해 세세히 풀어놨던 아쉬움의 표현은 생략했습니다)


- 오늘 대회에 이어서 차기 대회도 열 생각이 있나요?

네, 블리자드 분들과 협력해서 2회와 3회 넘어 계속 치를 생각이고요. 다음에는 연예인들 모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려고요. 개그맨들 너무 못하네요(웃음). 연예인 중에도 몇 분 하시는 걸로 알고 있고요. 다음 대회에는 저도 참가해보고 싶어요.


- 3천 명이 넘는 인원이 지켜봤는데, 시청자 분들에게 한 말씀 드린다면?

처음에는 몇백 명 정도였는데, 경기가 시작되고 보니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보러 와주셨어요. 앞으로 굳이 개그맨 대회가 아니라도 이번처럼 재미있는 대회를 많이 만들어서 즐거움을 많이 제공하겠습니다. 사실 '스타2'가 재미있긴 한데 잘 모르는 사람은 재미가 없더라고요. 같이 보자고 해도 잘 안 봐요. 그런데 이렇게 알려져 있는 개그맨들이 나오니 관심 없던 사람도 보게 되잖아요. 방송국과도 합의를 해서 같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