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고전으로 분류되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 '툼레이더'가 현대적으로 리부트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는, 사실 그렇게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툼레이더는 정식 넘버링 시리즈 이후에도 작품을 꾸준히 출시해왔는데, 그때마다 '초심'이란 단어를 빼먹지 않았으니까. 항상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외쳤지만, 막상 나오는 작품들은 그들만의 매너리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게 대부분이었다. 이번 작품도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은 '툼레이더 리부트'의 실제 플레이가 담긴 트레일러 영상이 공개되며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우리가 알고 왔던 라라가 아니었고, 툼레이더가 아니었다. 퍼즐은 현대 트랜드에 맞게 간편하지만 심도있게 바뀌었고, 전투 시스템도 한 층 디테일해졌다. 무엇보다도 영화 못지않은 연출은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툼레이더 리부트'가 출시된 후 평점도 예상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외 유명매체들은 약 8점 대 후반의 점수를 메기며 뛰어난 작품 중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기자가 예상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같은 연출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받은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KGC 2013 강연장에 모습을 드러낸 '알렉스 윌머(Arex Wilmer)'는 '툼레이더 리부트'의 영화같은 표현력에 힘을 보탠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음악을 담당했다.





[ ▲ 알렉스 윌머 음악감독 ]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히 그의 프로필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앞서 언급한대로 '툼레이더 리부트'의 음악 작업을 총괄했으며, 현재 그의 회사 '크리스탈 다이내믹스'에서 준비 중인 트리플A급 게임의 음악 녹음을 담당하고 있다. 오스카에서 후보작으로 꼽힌 'Conscience of Nhem-en'과 'The Most Danerous Man in America'가 그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다.

"사실은 말이죠. 저는 게임 음악 무시하던 사람 중 한명이었어요.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시절에도 이런 컨퍼런스에 몇 차례 참가한 적 있었는데, 그 때는 오디오 관계자들에게 게임 음악은 다른 엔터테인먼트의 음악과 동등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었고요"

그는 시작부터 솔직했다. 음악을 생산하는 시스템 구조가 타 엔터테인먼트 장르에 비해 게임은 상대적으로 열악했다는 것.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부분은 많이 개선되었고, 자신 역시도 툼레이더 프로젝트 참가가 확정되었을 때, '내가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막상 게임음악에 목적을 두니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었다고. 특히 작업량 차이가 컸다. 영화는 약 90분 정도로 마무리되지만, 게임은 엔딩을 볼 때까지 10여 시간이 소비된다. 그 역시 평소 겪어보지 못한 업무량에 부담을 가졌으나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 마음을 다잡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알렉스 감독의 음향작업에는 '제이슨'이라는 작곡가가 함께했다. 그는 '툼레이더 리부트'의 전반적인 멜로디 구조를 짰고, 그가 살을 붙였다. 그는 인물에 맞춰 음악을 입히는 방식을 추구했다. 이를 테면, 게임 내에서 라라의 멘토로 등장하는 로스는 배경음악도 라라의 음악과 유사하다. 또한, 적들이 등장할 때는 치찰음과 같은 불쾌한 음색을 첨부해 위화감과 긴장감을 조성했다.

또, 음악 역시 스토리와 함께 흘러가는 느낌이 드는데 특별히 신경썼다. 플레이어의 라라가 성장해나가는 것처럼, 음악도 이에 따르는 것.

"라라가 깨닫고, 점점 강해지는 것처럼 배경음악에도 점점 살이 붙습니다. 같은 음악 구성이라 해도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 음악은 연주에 사용된 악기가 많아요. 점점 많아지는거예요."

대부분의 게임은, 음악 개발 과정과 게임 개발 과정 시간대가 다르다. 먼저 작업한 뒤, 덧씌우거나 나중에 작업해 입히는 방식. 하지만 '툼레이더 리부트'는 메인 게임 개발과 음악 개발 과정이 완전히 일치한다. "여기에는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게임 분위기를 완벽하게 파악해 부합할 수 있죠. 저희 작곡가 중 한 명이 컨셉아트 디자이너 출신이기에 높은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시도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도 높다는 것. 크리스탈 다이내믹스의 사운드 팀은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따로 스크립트를 짰어요. 이른바 모음곡을 만든 겁니다. 이 모음곡은 정말 굉장한 밀도로 구성되었어요. 딱 보면 이 작곡가가 뭐하는 사람인지 느낄 수 있게요. 각각의 라인들은 악기를 나타냅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이 모음곡 구성을 보고 이게 어떻게 들려질지 대충 알 수 있을 겁니다"

각각의 파트는 각기 특색있는 템포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조합하면, 2분짜리 음악을 15분~20분 짜리 음악으로 확장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그는 파트별 구성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색이 다른 포스트잇을 붙이기도 했다.




알렉스 감독은 '툼레이더 리부트'의 음악적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반복작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약 1년 정도 걸렸다고. 그 안에서 꾸준히 개선했다고 전했다. 레이어를 구별하고, 작곡가와 상담한 뒤, 더욱 다양한 곡을 만들기 위해 준비했다. 즉, 모음곡 조합으로만으로는 만들 수 없던 음악을 제작하는데도 주의를 기울였다는 게 골자다. 이는 '툼레이더 리부트'와 배경음악의 연관성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라라가 게임 시작 부분에서 보트를 발견할때는 중간 톤의 플룻 사운드를 넣었습니다. 상황이 어렵지만 희망적이라는 느낌이 나도록 말이죠. 아, 보트는 완전히 망가졌지만, 그래도 내 친구들은 살아있을거야 이런 마인드를 갖추게끔 만들었습니다. 라라도 그렇고, 플레이어도 말이죠"

복선은 선형적이지만 힘이 있었다. 초반 튜토리얼의 중반부에 들어서면 플룻의 싱글루트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린다. 전보다는 조금 더 높고 미묘한 음색. 이는 라라가 섬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친구들의 생존여부에 대해 비관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낭떠러지에 걸린 비행기를 이용해 이동할 때는 음악이 끝으로 흐를수록 점차 높은 톤을 보여주도록 작곡했다. 긴장감 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전적인 표현이지만, 2가지 플룻 음색을 혼용하여 비관적인 느낌까지 담았다. 또, 라라가 있는 아일랜드가 '진짜' 위험하다는 메세지를 조금 더 힘있게 표현했다.

"긴장감이 넘치는 음악이지만 사실 2분 정도 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모든 음악은 목적성을 띕니다. 이건 필수예요. 음악 만들 때는 말이죠. 만약 자신이 작곡하는데 이유가 없다면, 아예 음악 안하는 편이 낫습니다"



플레이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툼레이더 리부트'는 선형적 게임이다. 즉, 게임 내에서는 자유도를 발휘할 요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작곡자 입장에서도 선형적 게임은 그나마 작업이 용이하다. 하지만 오히려 선형적이기에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고 그는 언급했다.

"선형적이기는 한데, 플레이어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수는 있어요. 예를 들어 문을 열고 충격적인 장면을 봐야 하는 구간이 있다고 해 보죠. 그럼 작곡가는 문 열기 전까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을 깔아놓은 뒤, 딱 문여는 순간에 클라이막스를 넣는 겁니다. 그런데 플레이어가 문을 여는 척만 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는 시연 영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문 여는 것을 망설이는 플레이어에 맞춰 음악도 잠시 소강된 뒤 클라이막스 직전의 음색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후 문이 열면 클라이막스가 바로 터질 수 있도록. 쉽게 말해 전혀 어색하지 않도록 부분적인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전투 중에서도 나타난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을 수 있다. 또, 총으로 죽여야 하는 적이지만 눈치 못채도록 접근한 뒤, 뒤에서 심장에 칼을 박아넣는 경우도 생긴다. 알렉스 감독은 이러한 부분에도 앞서 언급한 부분적 기술을 적용해 어색한 느낌이 없도록 최대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강연의 백미는 마지막에 있었다. 현존하는 악기로는 '툼레이더 리부트'에 어울리는 음색을 낼 수 없다고 느낀 알렉스 감독은 금속을 다루는 아티스트를 섭외해 세상에서 하나 뿐인 악기를 제작했다.

악기의 외형은 일반적인 구조가 아니다. 그는 '마치 게임세계에서나 나올 법 한 디자인'이라 표현했고, 기자가 보기에도 그랬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곧게 꽃혀있는 철사를 켜는 장면이었다. 마치 바이올린처럼 철사를 켤 수 있도록 했는데, 켜는 도구가 라라 크로포트가 들고 다니는 무기인 활과 매우 유사하다.

차임은 맑은 소리를 내고, 원주민이 등장할 때 필요한 세련된 음색은 반으로 쪼갠 글래스볼의 작품이다. 그리고 가장 아래측에 위치한 냄비는 원주민을 몰아내고 섬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버린 스캐빈저가 등장할 때 이용된다. 강한 치찰음이 특징인 이 음색은 주로 극적인 장면에서 많이 연출된다.

▲ 툼레이더 리부트 음악 녹음 영상






강연의 마무리 단계. 그는 '툼레이더 리부트'의 음악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했다.

"사실 저도 툼레이더1, 2편 해봤고 진짜 재밌게 했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을 보니 전작을 즐기지 않으면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더라고요. '전작도 안해봤는데 이걸 즐길 수 있으려나' 이런 생각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저는 음악을 통해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나타내려 했어요. 전작을 많이 해 봤든, 안 해봤든 동등한 조건이라는 거. 그걸 나타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