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아케이드게임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이 한국 개발자에 의해 리메이크될 전망이다.

누나 엔터테인먼트 김주보 대표는 지난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의 원 제작자인 드루 매니스캘코(Drew Maniscalco)와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김주보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어릴때부터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라이센스를 확보해 리메이크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관련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의 20주년을 맞이해 드루 매니스캘코에게 축하메일을 보낸 후 친분을 쌓아왔고, 최근 미국에서 직접 방문해 라이센스 계약을 진행해 판권을 획득했다고 덧붙였다.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은 1993년 IREM 아메리카에서 개발한 액션 아케이드 게임으로, 국내에서는 주로 '야구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적절한 난이도 및 특유의 코믹한 컨셉으로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은, 개성이 뚜렷한 4명의 야구 닌자 캐릭터와 격투 게임의 커맨드를 연상케하는 액션이 특징이다.

계약 이후의 개발 계획 및 일정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김주보 대표는 "미국 DC 코믹스의 유명 캐릭터 '배트맨'과 혼동될 수 있다는 판권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향후 출시되는 시리즈는 '닌자 베이스볼 맨'이란 이름으로 출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김주보 대표의 페이스북 내용 전문이다.

[승전보]

친애하는 가족, 친구, 그리고 원수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김주보입니다.
저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오후 6시 경을 기해 인천 공항에.

떠날 때가 2주 전이었지요. 시절이 에르메스 뒷꿈치처럼 속절없이 빠르게 가는군요. 벌써 이렇게 귀국을 하다니 감개가 무량..., 이런 젠장, 왜 이리 주절주절 서론이 길까요. 저는 이게 문제인 것 같네요. 본론으로 워프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기억 하시나요? 제가 출발할 때, ' 계획한 일이 잘 안 되었을 때 쪽팔리니, 자세한 내용은 일이 성사되었을 때 하겠다'고 했던 것. 결론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
.
.
성공했습니다. 야호!!

저의 파트너 드루 매니스캘코(Drew Maniscalco) 씨와 저는 멤피스 공항의 한적한 레스토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라이센스 계약조항에 사인을 했습니다. 앞으로 본 캐릭터가 등장하는 신작 게임은 저 김주보가 만듭니다.

모든 일의 계기는 얼마 전 본 게임의 탄생 20주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1993년에 발매된 아케이드 액션 게임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저는 어릴 때부터 이 게임의 팬이었고, 지난 세월 꾸준히 이 게임에 관한 정보를 모았습니다.

이 게임의 라이센스가 드루 씨에게 돌아갔다는 뉴스, 한국에서는 모르는 녀석이 없을 정도로 히트쳤지만 미국에는 43대밖에 팔리지 않아 쪽박 찬 것, 게임에 관한 모든 설정정보와 컨샙 모티브, 제작자였던 드루 씨의 정보까지...

본격적인 계기는 제가 원작자인 드루씨에게 전화를 건 것이 발단이 되었어요. 저는 다짜고짜 '헬로, 여긴 한국입니다!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의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라고 준비해둔 대사를 영어로 던졌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전화를 받은 드루 씨는 적잖이 당황했죠. 이 날의 사건은 그 뒤로 저와 드루 씨가 메일을 주고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임 이야기나 만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친해졌습니다. 이후 '7살 때부터 이 게임을 좋아해, 고등학교 때는 기판(오락실에 있는 그 장농만한 오락기)을 중고로 사다 들여놓을 정도였죠.' 등의 심히 덕후같은 이야기를 이어갔죠.

저는 저대로 고전명작의 제작자를 직접 만나서 영광이었고, 드루 씨도 본인 나름대로 기억해 주는 팬이 있어 흐뭇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나온 이야기가,

'이 게임을 리메이크 하고 싶습니다. 라이센스를 주세요.' 입니다. 선생님, 리메이크가 하고 싶어요...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라 스스로도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 이후는 모든 일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들아갔습니다. 좀 무서울 정도로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멤피스에 도착한 때는 마침 매형(될 사람)인 대니얼 형님이 '매형'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었습니다. 저의 친척누나를 몹시 사랑한 대니얼 형은, 친척 동생인 저에게도 점수를 따고 싶었던 거죠. 모 일본계 자동차 판매소에서 일하는 대니얼은 계약서에 익숙합니다. 네이티브 아메리칸인 그는 능숙한 글솜씨로 영문 계약서 양식을 작성해 주었습니다.

뉴저지에서 멤피스로 오겠다던 드루씨가 '일이 많아 시간이 날 지 모르겠다'고 해서 곤란한 적이 한 번 있긴 했으나, 친척누나는 드루에게 전화를 걸어, '내 동생이 지구 반 바퀴를 왔으니, 나머지 거리는 당신이 인지상정으로 와라' 라고 당차게 이야기해 줬습니다. 덕분에 드루 씨께서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결국 공항으로 옵니다.

이런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될 듯 안 될 듯 했던 일들이 하나 둘씩 거짓말처럼 이루어지고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저와 드루씨는 만날 수 있었습니다.

드루씨는 세심하게도 저의 어릴 적 우상이었던 캐릭터 호세(Jose)가 그려진 티셔츠와 함께, 20년 전 게임잡지(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광고가 실린)와 드루 씨의 싸인지를 제게 선물했습니다.

'Number 1 NBBM Fan, Jubo.'가 적혀 있는 사인패드와 콜렉션을 품에 받아들자, 그만 7살로 잠시 돌아가버렸습니다. 울먹울먹...

이후 드루 씨가 20년 전 게임을 만들다 회사에 자금이 떨어져 그만둔 이야기, 위키피디아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항목에 지기 이름이 없어 추가했으나, 어떤 초딩이 끈질기게 지운 이야기...등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놀랐던 점은, 저와 드루 씨의 인생이 참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이나 일하면서 겪은 고충 등,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뭔가 통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서로 만나러 온 걸지도...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우리는 공항 천장의 성조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습니다.

한국 오는 비행기 안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미국에 오기까지 모든 과정은 20년 전인 1993년, 7살 때 부평 칠성 오락실에 있던 그 게임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 같네요.
'나는 이걸 갖게 될거야.' 라고, 꼬마 시절에 생각했던 기억이 나면서 그게 현실이 되자 소름이 돋았습니다.

마치 영화 '서칭 포 슈가맨'같았던 저의 이야기는 사실 이 이야기의 스무 배는 됩니다. 오늘은 일단 오랜 비행으로 지친데다 내일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어서, 여기까지 씁니다. 나머지는 추후에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그동안 도와주고, 밀어주고, 조언해주고, 돈 빌려주고, 밥 사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꼭 보답하겠습니다.

▲ 김주보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계약서 및 선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