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1등을 차지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든 일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맡은 일에서 최고로 손꼽히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모두가 해낼 수 없는 일이기에,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은 존경을 한몸에 받게 마련입니다.

여기 갖은 노력 끝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해외에서 말이죠. 지금부터 풀어낼 이야기는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은 프로게이머에 대한 것입니다. 북미 지역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게임단인 팀 리퀴드 소속 미드 라이너 '피닉스' 김재훈이 그 주인공입니다.


아마추어로 시작해 북미 지역 1위 팀의 미드 라이너로 우뚝 선 김재훈의 성공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금부터 확인해보시죠.


Q. 정말 오랜만입니다. 인벤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 주세요.

안녕하세요. 팀 리퀴드에서 미드 라이너를 맡고 있는 '피닉스' 김재훈이라고 합니다. 제 아이디 스펠링이 'Fenix'라서 '페닉스'라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피닉스'라고 읽어 주세요!


Q. 북미에서 활동 중이죠.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우선 요즘은 영어가 많이 늘어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요. 처음에는 영어도 모르고 문화도 달라서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영어를 거의 수준급(?)으로 해서 즐거워요. 여기에서는 나이 차이가 나도 전부 친구로 지내요. 문화가 그렇죠. 정글러인 '아이윌도미네이트'가 저보다 5살 정도 많은데 형이나 동생의 개념이 없어요. 그래서 서로 심한 장난도 치죠(웃음). 처음에는 이런 문화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놀리는 걸 즐기고 있어요.



Q. ESG 소속으로 롤챔스 무대에 데뷔했어요. 당시 팀원이 모인 배경이 궁금한데요?

제가 그 당시에 CJ 엔투스 연습생으로 있었어요. 그런데 (복)한규 형이 팀을 만드는데 저를 팀에 포함시키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ESG 소속으로 옮기게 됐어요. 그 당시 CJ 엔투스에는 '플레임' 이호종 선수나 '샤이' 박상면 선수 등 국내 최고의 탑 라이너들이 있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나올 수 있었어요. 주전 선수로 뛰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했거든요.


Q. 2013년 롤챔스 섬머 시즌 진행 중에 진에어 팰컨스 소속이 됐죠?

약간 뭐랄까... 어렸을 때부터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동경했기 때문에 프로 게임단 소속이 된 것이 정말 신기했어요. 특히, 진에어 그린윙스의 전무님이 우리를 엄청 좋아해주셨죠. 그래서 경기에서 질 때마다 전무님에게 정말 죄송했어요.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전무님...

아무튼 진에어 팰컨스 소속이 됐을 때부터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하게 됐어요. 말 그대로 '프로 의식'이 탑재됐죠(웃음). 또한,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시즌에 8강 진출에 성공해서 기분이 좋기도 했고요.


Q. 사실 당시 성적이 그리 좋진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이 아쉬운가요?

우선 제 기량을 스스로의 기준에서 본다면 첫 시즌과 두 번째 시즌은 잘했어요. 특히, 첫 번째 시즌은 제가 캐리하는 경기도 많았죠! 두 번째 시즌이 끝나고 여기저기서 제의를 많이 받기도 했어요. 세 번째 시즌은 제가 봐도 제 실력이 바닥이었어요. 역대 최악의 탑솔러였다고 자부합니다(웃음). 우선 라인 스왑을 하면 상대 탑 라이너가 저보다 CS를 3~4배 정도 더 먹을 정도였죠.

▲ 당시 진에어 팰컨스

제 개인 기량 문제도 있었지만, 팀원들이 라인 스왑 운영에 대한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보완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게 컸어요. 그 결과야 뭐... 공식 경기 최대 연패 기록을 달성했죠. 가장 아쉬운 점은 당시 진에어 그린윙스가 혼란스러웠다는 거예요. 매 시즌마다 새로운 선수를 영입했는데 전부 아마추어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항상 똑같은 걸 계속 배웠고, 그러다 보니 실력이 오히려 퇴보했죠.

아! 마지막으로 그당시 최강이었던 SKT T1 K를 8강에서 만났네요. 만약 그때 SKT T1 K를 안 만났으면 4강에 진출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Q. 진에어 그린윙스에서 나온 뒤, '피의 소용돌이'를 구성해 예선에 임했던 기억이 나네요.

친한 선수들끼리 뭉쳐서 만든 팀이 피의 소용돌이였어요. 일명 '즐겜팀'이었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첫 경기부터 질 줄은 몰랐어요(웃음). 조금 아쉽긴 했지만, '즐겜' 마인드였기 때문에 다들 그러려니 생각했어요.


Q. 인벤저스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경험도 있죠. 팀에 합류한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제가 자취하던 곳과 인벤 방송국 스튜디오가 엄청 가까웠어요. 물론, 가깝다고 팀에 합류한 건 아니었죠. 당시 인벤저스 소속이었던 '낀시' (김)범석이 형이랑 '로어' (오)장원이랑 친하기도 하고, 미드 라이너 자리가 때마침 공석이라는 말을 듣고 들어가게 됐어요. 그리고 애초에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게임하는걸 좋아해서 방송 쪽에 흥미도 있었어요. 이게 가장 큰 이유였죠. 그리고 부수적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필요성도 있었고...


Q.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다가 비 프로팀 소속으로 활동을 이어갔어요. 특별한 경험이었나요?

솔직히 피의 소용돌이는 기억이 잘 안나고 인벤저스였을 때 기억이 많이 나요. 그냥 방송하면서 생활하는게 재미있었고, 팀원들 모두와 친해서 좋았어요. 그리고 '프리'한 분위기도 한 몫 했고요. 프로게임단에 있을 때보다, 연습 일정도 빡빡하지 않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있었어요. 확실히 편하긴 했죠. 그런데 약간 허전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어요. 연습을 체계적으로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Q. 인벤저스 활동 이후, 잠깐 휴식기를 가졌죠. 쉬는 동안 무엇을 했나요?

솔로랭크만 주구장창 했어요. 체계적인 연습을 많이 못했던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거든요. 놀려고 해도 불안해서 놀지를 못하고 잠도 잘 안오더라고요. 그러다가 중국과 북미에서 입단 제의를 몇 번 해왔어요. 많이 고민하다가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북미로 오게 됐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쉬는 동안 정말 무서웠어요. 프로게이머 생활을 더 하고 싶긴 한데 확실한 비전이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진짜 초조하고 불안했어요.


Q. 그러다가 커스, 지금의 팀 리퀴드에 합류했어요. 해외 진출이 큰 압박감으로 다가오진 않았나요?

솔직히 전 잘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집이 제주도라서 자취 생활을 오래 했거든요. 그래서 외롭다는 생각도 별로 하지 않는 성격이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외에 나와 보니 조금 힘들더라고요.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이 가장 컸어요. 말이 안 통하는 것 때문에 많이 우울하기도 했죠. 가족이랑 친구들 얼굴이 수시로 떠올랐어요. 그런데 프로게이머 생활을 계속 하고 싶다는 의지가 더 컸어요. 그래서 꾹 참고 버티기로 했죠.

▲ 북미에 첫 발걸음을 내딛은 김재훈


Q. 국내가 아닌, 해외 게임단으로 눈을 돌린 이유가 궁금한데요?

제가 제 스스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법이잖아요? 제가 생각해도 저의 마지막 시즌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게다가 저는 미드 라이너를 하고 싶은데,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줬던 저를 누가 주전 미드 라이너로 뽑아주겠어요. 그래서 바로 해외로 눈을 돌렸죠. 선수들에 대한 대우가 더 좋기도 하고요.


Q. 당시 커스에는 '피글렛' 채광진이 합류한 상태였죠. 이러한 사실이 팀 선택에 있어 도움이 됐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스스로 잘할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죠. 그런데 막상 팀에 같은 한국인이 있으면 정말 도움이 돼요. 서로 의지하게 되거든요. 제가 영어를 모를 때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어요.


'피글렛' (채)광진이 형이 처음부터 저를 엄청 도와줬어요. 조언도 많이 해주고 캐리도 많이 해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다른 프로게이머보다 광진이 형이라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해요(웃음). 참고로 광진이 형이 평소에 연습을 정말 많이 해요.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우승했던 선수가 바로 옆에서 그렇게 연습을 하는데, 제가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있을리가 없죠.


Q. 미드 라이너를 꿈꾸던 탑 라이너가 그 꿈을 이뤘어요. 하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쉽지 않았죠. 솔로랭크를 하면 탑에 갔을 때 더 쉽게 이겼어요. 그런데 확실히 미드 라이너로 경기에 임하는 것이 더욱 재미있어요. 무엇보다 미드 라인에 서는 챔피언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요. 약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처음 접했을 때 느낌 같다고 할까요? 해도 해도 질리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더 쉽게 연습한 것 같아요.

직접 대회에 나서는 미드 라이너가 되기 위해 연습을 하다 보니, 미드 라인이 엄청 심오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연구할 것이 정말 많았죠. 또한, 할 때마다 계속 실력이 늘어요. 특히, 잘하는 상대를 만날 때마다 한층 더 성장하는 느낌을 받아요.


Q. 소속 팀인 팀 리퀴드가 우여곡절 끝에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어요. 감회가 남다를텐데요?

정말 기뻤어요. 일단 행동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요. 평소와 똑같이 행동해도 주위에서 멋있게 봐주더라고요. '꼴찌 팀' 선수에서 우승 팀 선수가 된 기분은 막상 경험해보지 못하면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냥 어깨가 자동으로 펴지거든요(웃음). 그동안 연습한 보람이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자만하지 않고 연습에만 집중해야죠!


Q. 아직 팀 리퀴드를 잘 모르는 국내 팬들에게 팀을 홍보해주세요.

팀 리퀴드는 북미에서 오래된 프로게임단 중 하나예요. 이전에는 '커스'라는 이름이었고, 만년 4위만 하는 팀으로 유명했어요. 저번 시즌에 처음으로 만년 4위에서 벗어나 3위를 차지했어요. 그리고 이번 섬머 정규 시즌에서는 1위에 올랐고요.


탑 라이너는 '콰스', 정글러는 '아이윌도미네이트', 미드에는 제가 서 있고, 원거리 딜러는 '피글렛' (채)광진이 형, 마지막으로 서포터로는 '엑스페셜.' 이렇게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에요. 우리 팀 로고가 말인데, 정말 말처럼 달리겠습니다(웃음).


Q. 북미 게임단 소속으로 활동한 지 약 8개월이 흘렀죠. 장점과 단점을 알려주세요.

장점은 일단 국내 게임단에 비해 자유롭고 재미있어요. 스케줄이 엄청 빡빡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영어를 배우는 것이 정말 좋아요. 응원해주시는 팬들도 정말 많고요. 물론, 단점도 있어요. 가끔 외로움을 느껴요. 향수병이라고 하죠. 그중에서도 한국 음식이 정말 먹고 싶어요. SNS에서 한국 음식들을 보면 제 배가 슬퍼해요. 배야, 미안하다...


Q. 팀원들과는 잘 어울리고 있나요?

당연하죠. 제가 팀의 분위기 메이커입니다! 우리 팀이 힘들 때마다 제가 웃음을 선사해주죠. 아무런 거부감 없이 친한 것 같아요. 가끔 제가 '리얼' 아메리칸이 된 것 같기도 해요. 팀원들이 저의 미숙한 영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주고, 평소에도 정말 잘해줘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요.


Q. 팀원들 중 누가 가장 잘 해주나요?

일단, (채)광진이 형은 같은 한국인이니까 제외할게요. 팀원들 모두 잘해주지만, 탑 라이너인 '콰즈'가 잘 챙겨줘요. 이 사진을 보면 언제든지 저에게 '커져라!'를 사용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같이 헬스 클럽도 다니고요. 진짜 좋은 친구예요.



Q. 국내 복귀에 대한 꿈은 없는지 궁금해요.

아직까진 없어요. 우선 바로 앞에 있는 것부터 생각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지금은 롤드컵만 바라보고 있어요. 가끔 보면 (채)광진이 형은 국내 복귀에 대한 꿈이 있는 것 같아요.


Q. 곧 포스트 시즌이 시작되네요. 롤드컵에 대한 욕심이 당연히 있을텐데요?

가야죠. 무조건 롤드컵에 가야 해요.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출발이 좋아요. 무조건 가고 싶어요. 만약 못 가게 되면 미쳐 버릴 수도 있어요. 무조건 가고 싶다! 그냥 모든 프로게이머의 꿈인 것 같아요.


Q. 포스트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알려주세요.

연습을 더 열심히 해서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거나 더욱 발전시키려고 노력 중이에요. 개인적인 발전도 중요하지만, 팀워크에서도 발전해야 될 것 같아요. 우승까지 말처럼(웃음) 달려보겠습니다.


Q.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를 잘 알지는 못할 수도 있는데, 그냥 리그 오브 레전드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한 명의 평범한 사람입니다. 꼭 롤드컵에서 만나게 됐으면 좋겠어요. (채)광진이 형도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고요. 아! 그리고 북미 여성분들이 정말 아름다워요(웃음).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