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롤스터는 '슈퍼팀'으로 불릴 만 했다. 1라운드 후반부터 경기 중-후반의 약점이 드러난 것처럼 보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의 kt 롤스터의 면모는 확실히 달랐다. 몇 주 전에 펼친 경기에서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MVP-삼성 갤럭시에게 차례로 3:0 완승을 한 것. 큰 무대에서 승자로 남는 법을 아는 팀이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kt 롤스터의 행보는 아쉬웠다. 정규 시즌 중에는 SKT T1-MVP전을 통해 드러난 후반 교전-운영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갔다. 번번한 패배로 굳건했던 2위 자리를 내주면서 한동안 자신들의 스타일마저 못 찾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의 상대는 자신들이 넘지 못했던 SKT T1마저 꺾은 삼성 갤럭시. 자신들과 반대로 후반 운영에 강하고 2라운드 분위기마저 최절정에 있던 팀이었기에 분명 쉽지 않은 상대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의 kt 롤스터는 더욱 독해져 돌아왔다.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장점이라고 평가받던 라인전, 초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더 강하게 몰아쳐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벌린 것이다. 경기는 점점 기울어져서 어느새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가 돼 버렸다. kt 롤스터는 밴픽부터 와드 위치 하나까지 준비해 결과로 만들어냈다. 정규 시즌과 확연히 달라진 그들의 포스트 시즌 역전 드라마를 확인해보자.



kt 롤스터의 '라인'전 - 너희는 이 '선'을 넘지 못한다



▲ 긴 사거리로 고통을 선사하는 kt 롤스터 봇 듀오

특정 챔피언이 라인전에 강하다, 약하다는 말은 숱하게 들어봤을 것이다. 라인 주도권을 바탕으로 포블, 운영 등이 이어지기에 많은 팀들이 라인전이 강한 픽을 선호한다. 삼성 갤럭시 역시 1-2세트 모두 라인전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원거리 딜러 루시안을 선택했다. 서포터 역시 룰루, 카르마를 가져오며 충분히 라인전을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kt 롤스터는 '루시안은 라인전이 강하다'라는 말의 함정을 정확히 노렸다. 단순히 강하다는 표현은 많이 나오지만, 어떤 상황에서 강한지 kt 롤스터가 한 번 더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루시안은 맞붙어서 싸우는 교전에서 OP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거리가 긴 챔피언에게 먼저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들어가지 못하면 루시안의 장점은 사라지고 만다. kt 롤스터는 이 점을 노려 사거리가 길거나 라인 클리어가 빠른 챔피언을 밴하고, 케이틀린-애쉬를 차례로 선점했다. 포탑으로 들어가는 빅웨이브를 받아먹기 바쁜 루시안에게 긴 사거리로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어 라인전의 강함을 없애버렸다.

서포터인 '마타' 조세형 역시 '강함'의 틀에 갇히지 않았다. 너프 후 라인전이 많이 약해졌다고 평가받는 말자하를 선택해 1레벨부터 긴 사거리를 자랑하는 공허의 부름(Q)으로 강한 압박을 이어갔다. 포탑 뒤로 숨어있는 상대 챔피언들까지 침묵하게 했을 정도로. 스킬 샷이 빗나가더라도 상대에게 이 '선'을 넘는 순간 호되게 당할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까지 심어놨다. 룰루로도 2세트에서 상대가 부시로 들어오자마자 맹렬한 딜 교환을 이어갔다. 뒤를 돌아볼지 않고 패기있게 전진하는 플레이에 상대의 점멸까지 뽑아내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kt 롤스터는 라인전 자신감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상대 정글러인 '하루' 강민승의 리 신은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초반을 주도하기로 유명하지만, kt 롤스터의 적절한 와드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글러 간 직접적인 교전은 없더라도 탑-미드에서 철저한 와드로 상대 정글의 동선을 파악하려고 했다. '스멥' 송경호는 일찌감치 라인을 밀고 적 정글에 와드를 설치해 리 신의 위치를 봇 듀오에게 알려줬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봇 듀오는 라인을 끝까지 밀어넣어둘 수 있었던 것이다. '스코어' 고동빈 역시 틈틈이 부시에 매복해 봇 듀오의 작은 위험마저 캐어해주는 역할을 했다. 직접적인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나머지 팀원들이 봇 듀오의 라인전 자신감에 힘을 실어준 팀 플레이였다.
▲ 어디로 가야하오...




봇 듀오만 신경쓰게? - 한 팀 kt 롤스터 '시너지'



▲ 밴픽 의도 그대로, 봇-탑 결과로 그대로 이어진 2세트

완승을 거둔 kt 롤스터는 1세트 흐름을 이어 더욱 독하게 라인전에 힘을 줬다. '스코어'가 잘 다루는 그레이브즈가 풀렸음에도 애쉬를 선픽으로 가져오며 1세트와 비슷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스코어'를 중심으로 중-후반을 이끌어나가는 예전의 kt 롤스터를 떠올리면 의아할 수 있는 밴픽이었다. 그리고 kt 롤스터는 라인전 중심의 밴픽을 이어갔다. 바로 케넨을 가져오고 엘리스까지 더 해 이번에는 탑 라인에 힘을 제대로 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밴픽의 흐름은 경기까지 그대로 이어져 버렸다. 봇에서 상대의 점멸까지 뺄 정도로 심한 압박을 가한 뒤, 바로 탑 라인에서 kt 롤스터의 선취점을 올렸다. 와드 시야 밖에서 갑자기 등장한 '스코어'의 엘리스가 깔끔하게 탑 라인 갱킹에 성공했다. 밴픽 구도부터 경고가 이어졌고, '큐베' 이성진의 제이스가 점멸까지 활용했지만, 케넨-엘리스로 이어지는 빈 틈 없는 CC 연계에 킬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하루' 그레이브즈의 화력이 강하긴 했지만, 라인 간 격차가 이미 더 벌어진 상황으로 엘리스 픽의 의미를 확실히 증명했다.

한 번의 날카로운 갱킹 이후 제이스가 케넨을 상대로 할 만하다는 말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스플릿 구도에서 솔로킬을 내주며 kt 롤스터의 단단한 '날개'에 눌리고 말았다. kt 롤스터의 1/3/1 스플릿 푸시 '날개 운영'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한 박자 더 빠른 날개짓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린 것이다. 스플릿 중심의 AD 케넨이지만 합류 싸움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으며 경기 전반에 자신의 영향력을 알렸다. 지난 2라운드 삼성 갤럭시 전에서 '스멥'은 후반 화력 담당인 갱플랭크와 탱커 그라가스 등을 했을 때와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었다.

모든 라인이 강하게만 몰아붙일 수만은 없다. 누군가 그 밸런스를 잡아줘야하는데, 미드 라인에서는 '폰' 허원석이 그 역할을 해줬다. 시작은 라인전에서 최고의 기세를 달리는 '크라운' 이민호를 상대로 안정적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교전에서는 르블랑-에코와 같은 픽으로 정확히 치고 빠지는 움직임으로 상대를 교란했다. 과감히 파고드는 르블랑과 에코에 삼성 갤럭시가 화력을 낭비할 수밖에 없었고, '폰'은 유유히 빠져나와 살아남는 역할을 했다. 라인 간 밸런스부터 교전에서 딜을 받아내는 것까지 아군이 활약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준 게 허원석의 역할이었다.


kt 롤스터는 리빌딩 초창기부터 팀 플레이를 맞추는 것이 과제였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점점 하나의 팀으로서 완성된 모습이 갖춰지고 있다. 그레이브즈를 포기한 '스코어', 안정적인 라인전을 선택한 '폰'까지 자신의 캐리력을 발휘할 기회를 포기하고 나머지 팀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확실하게 팀 색깔을 살리기 위한 플레이를 펼쳤다. 이번 플레이오프를 통해 개인 역량으로 승리했던 팀, 그 이상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결승전은 SKT T1과 재대결이다. 라인전부터 뛰어나고 밴픽으로도 막을 수 없는 넓은 챔피언 폭까지 보유한 가장 힘든 상대다. 특히,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경기를 후반으로 끌고 가는 능력이 발군인 팀이기에 단순히 초반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의 kt는 정규 시즌과 확연히 다르다. MVP-삼성 갤럭시에게 정규 시즌에서 무너졌지만, 마지막 승자로 남지 않았는가. 더욱 무서운 초반 라인전을 준비할 것인지, 약점인 후반을 보완할지 어떤 스타일로 경기에 임하든 더 확실한 전략을 들고나올 것이다. 스프링 스플릿 최후의 승자 자리를 노리는 kt 롤스터의 마지막 카드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