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끊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혜성처럼 등장하는 신성들의 활약 때문이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을 보고 우리는 열광한다. 메시나 외데가르드처럼 입단 때부터 어마어마한 관심으로 어느 정도 활약이 예견된 케이스가 있는가 하면 호날두처럼 벤피카에서 버려진 경력 있는 선수가 세계를 호령하는 경우도 있다.

피파17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알렉스 헌터'는 후자의 경우다. 물론 EPL 명문 팀에서 벤치에 앉는 것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키보드와 게임 패드만 잡으면 슈퍼스타가 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벤치 멤버로 게임을 즐기는 게 석연치 않지만 뭐 어쩌겠는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모드인데.


현실감을 담으랬더니 현실을 담았어... 알렉스 헌터의 삶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으로의 전환, 세트피스 리워크 및 물리 현상 전면 조정 등 피파17은 한 번에 큰 폭으로 변화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건 '여정(Journey)'모드. 현실감을 담으랬더니 현실을 담았다.

시연 버전에서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고정되어 있고 후반 70분에 교체 투입되어 피치 위를 누비게 된다. 교체 투입하기 전 루니, 즐라탄, 무리뉴 등이 나오는 데 얼굴이 현실과 판박이다. 오히려 더 특징이 두드러진 얼굴이라고 할까. 교체를 당하는 선수는 선발 출전한 헌터의 라커룸 동료로 헌터를 약간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친구다. 그가 교체되어 나올 때의 억울해하는 표정도 관전 포인트. 표정이 전작보다 다양해졌다. 확실히 그래픽이 전작보다 좋아졌다.

헌터가 피치 위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여정' 모드에서 축구를 플레이할 수 있다. 피치 위에 들어가는 순간 보너스 목표가 부여되며 이를 완수할 경우 보너스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다.

▲ 사실 무리뉴가 날 투입할 때 별로 믿는 듯한 표정은 아니었다.

게임은 슈나이덜린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첼시에게 동점 골을 허용한 상황에서 재개된다. 교체되어 들어갈 때 기존의 피파와 마찬가지로 팀 전체를 조작할 것인지, 헌터 혼자만 조작할 것인지 물어보는 창이 등장한다. 나는 헌터만 조작하기로 했다.

헌터 혼자만을 조작하는 경우 엑스박스 패드 기준 A 키를 눌러 패스를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피파17에서 새로 도입된 액티브 인텔리전스 시스템 덕분인지는 몰라도 동료 선수들은 상황에 따라 적합한 움직임을 행하기 때문에 AI 때문에 답답하지는 않다. 공간을 찾아 들어가거나 2:1 패스도 시도하는 등 수비의 움직임을 속이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도 행한다. B 키를 누르면 현재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슛을 차게 제안할 수도 있다.

전작보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보다 디테일하게 조작이 가능해졌으며 단순히 공을 던지거나 차는 게 아닌, 공의 회전과 힘을 세부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볼 경합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어 움직임이 묵직해졌다. 묵직하지만 답답하지는 않다.

반칙하거나 안타까운 슛을 했을 때 나오는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실제 중계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오히려 실제 중계보다 '쨍한'느낌이 든다.

▲ 누가봐도 슈나이덜린

조작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후반 85분 무렵. 헌터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 진영에서 루크쇼가 따낸 공을 슈나이덜린이 이어받았다. A 키를 누르자 슈나이덜린은 오른쪽 공간으로 뛰어가는 나에게 로빙 스루패스를 공간으로 정확히 전달했다. 볼을 잡자마자 반대쪽 포스트를 보고 슛을 날렸다. 슛은 골대를 맞고 나왔고, 골 마우스를 서성이던 즐라탄이 가볍게 밀어 넣어 역전 골을 만들어 냈다. 데뷔전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89분 포그바의 패스를 이어받아 마침내 데뷔골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경기 종료 후 믹스트 존에 들어서면 플래시가 터지면서 질문세례가 이어진다. 질문의 선택지는 세 가지. 각각 '핫', '콜드', 중립' 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선택지에 따라 해당 영역의 게이지가 차는 방식이다. 조조전의 선택 메커니즘과 비슷하다. 또한, 선택에 따라 감독과의 관계, 팬들과의 관계가 변화한다. 다만, 시연 버전은 인터뷰 이후 바로 끝나기 때문에 변화한 수치가 게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 답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팬들의 마음을 얻고 감독의 마음을 잃었다. 무리뉴 너란 남자...



NFL말고 다시 스포츠 게임 에 빠지게 되다니...
정말 뭐 별거 안 한거 같은데 30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항상 소폭의 변경과 향상이 있어왔던 시리즈라 소위 '우려먹기'라는 시선이 있던 게임인데 이번에는 다른 것 같다. 다만 커스터마이징 요소가 전무한 것은 조금 아쉽다.

개인적으로 직접 조종하는 축구 게임을 안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피파 시리즈나 위닝 시리즈나 매년 그렇고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항상 약간의 변화와 향상이 있던 게임이라 이번 시리즈도 엔진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피파17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요소를 격변 급으로 혁신하며 게임 자체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여정' 모드는 신의 한 수라고 표현하고 싶다.

시연 버전은 헌터가 라커룸에서 대화를 나누며 대화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 부분, 교체 되어 피치로 들어간 부분, 경기 종료 후 믹스트 존에서 인터뷰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아주 짧은 구성이지만 어느새 30분에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모드 특성상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다보면 재미가 반감되겠지만 일단 30여 분의 체험하고 난 다음에 느낌을 묻는 스태프의 '쿨하냐?'라는 질문에 '쏘 핫하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첫 느낌은 무척이나 좋았다. 분명 커리어 모드나 얼티메이트 모드와 다른 성장의 느낌이 존재했다.

▲ 코치님 저는 토템이 아닙니다. 뛰게 해주십쇼!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커스터마이징이 없다는 점. 컷신 등 스토리가 있으므로 외형적인 모습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없다면 적어도 '콜네임' 정도는 넣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한, 대화 답변 성향이 극단으로 나누어진 선택지만 존재하기에 약간 '성격파탄자'가 아닌가 싶은 느낌도 조금 든다.

기존의 피파 시리즈는, 아니 거의 모든 축구 게임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선수를 육성하고 스케쥴에 따라 리그를 소화해가는 진행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일 년에 한 번씩 신작이 나올 때마다 약간의 그래픽 향상, UI 변경, 로스터 패치 등이 변경됐었지 시스템이나 모드는 변경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정' 모드는 새로운 모드이면서도 그 재미가 쏠쏠하다. 축구 선수의 삶을 담는다는 거창한 의미를 붙이기는 쉽지 않아 보이나 다른 관점에서 축구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설레는 일임이 분명하다.

게임과 같은 창작 미디어는 항상 매너리즘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한다. 앞으로 매너리즘을 혁파한 사례로 '피파17'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격찬 아니냐고? 이 작은(?) 모드 하나가 프랜차이즈의 무게감을 다르게 만들었다. PVP 대전에 지친 유저들에게도, 혼자서 즐기는 유저들에게도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EA의 빡빡한 핸즈온 규정만 아니었다면 몇 번이라도 더 해보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 FC서울 버전 여정 모드만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두 줄 요약:
+ 실제 선수, 감독들과 '똑같은' 모델링이 등장해 몰입도를 배가한다. AI가 좋아져 답답하지 않은 점은 덤.
- 커스터마이징 요소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 선택지는 성향질문지와 중립질문지 총 세 가지가 주어진다.

▲ 나는 알렉스 헌터. 맨유를 이끌어갈 남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