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요 근래 온라인 게임 시장을 가장 흔든 게임을 말하자면 다들 한 게임을 말할 겁니다. '오버워치'. 순위 변동이 거의 없다고 봐도 모자란 국내 온라인 시장을 흔든 게임이자, 블리자드가 17년 만에 발표한 새로운 IP의 주인공이죠.

이 '오버워치'의 힘은 바로 '캐릭터'입니다. FPS와 협동 대전이라는 요소야 사실 뭐 그전에도 많았어요. 하지만 오버워치만의 독특하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들은 그 무난한 장르를 단숨에 대세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그만큼 많은 공이 들어갔을 겁니다. 직접 게임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블리자드의 캐릭터 메이킹은 단순히 1단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캐릭터의 모습, 포즈, 움직임, 대사, 그리고 배경 설정과 상호작용에 이르기까지, 겹겹이 늘어선 설정의 레이어가 모여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기 때문이죠.

미국 애너하임에 있는 블리자드 본사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 중인 '홍경호' 선임 애니메이터 또한 오버워치의 캐릭터 메이킹에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사람입니다. 다른 아티스트와 기획자들이 캐릭터의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였다면 그는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캐릭터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역할이고, 그가 작업한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사이보그 닌자인 '겐지'입니다.

▲ 바로 이 녀석

IGC2016의 첫째 날.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홍경호 애니메이터와 짧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던 그가 유학을 떠난 이유, 그리고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난과 에피소드까지. 강연에서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더 물어보았습니다.

IGC 강연 기사 바로가기 : ▶ [IGC2016] 오버워치 '겐지'의 애니메이터, '홍경호'가 말하는 개발 기록




▲홍경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 선임 애니메이터


Q. 미국 진출 이전에 국내 개발사에서 8년간 일했었죠. 어쩌다 유학을 선택하게 되었나요.

당시에는 관련 학과나 교육 기관이 따로 없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할 수단도 적었죠. 사실 처음에는 그다지 자극도 받지 못했어요. 그냥 일하고 퇴근하고 그랬죠. 그러다 어느 날 클립을 하나 보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외국 애니메이터들이 자신들이 작업한 클립을 인터넷에 올리곤 했거든요. 제 기억으로는 에일리언이 춤을 추는 영상이었는데, 이 영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서 분석을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도무지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프레임 단위로 다 끊어서 분석을 해보았는데 말이죠. 그전까지는 애니메이터와 모델러의 구분도 따로 없었고, 그다지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클립을 본 이후 생각이 달라졌어요.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마음먹었고,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죠. 문제는 당시 국내에는 관련 교육 기관이 전혀 없었다는 거에요.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때는 제가 게임회사에 취직했다고 하면 동네 어르신들이 오락실 가서 동전 세는 일 하는 거냐고 묻고 그랬어요. 그 정도로 게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하려다 보니 2D 애니메이션 정도는 공부할 수 있었는데, 이쪽 분야 역시 당시로써는 굉장히 열악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공부를 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해외로 눈을 돌렸고, 처음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트 컬리지를 알아봤죠. 이 학교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교지만, 아쉽게도 학비가 너무 비쌌어요. 연마다 억대의 돈이 필요할 정도였죠. 그래서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셰리던에 입학하게 되었죠. 셰리던은 캐나다 토론토 근처 작은 마을에 있어요.

▲ 캐나다에 위치한 '셰리던'. 애니메이션의 명가 중 하나


Q. 당시 셰리던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을 텐데, 강연 중에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기초에 가까운 내용을 배웠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일단 처음엔 제가 영어를 너무 못했어요. 때문에 의사전달 과정이 힘들 수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이 점이 전화위복이 되었죠.

제가 만들고자 하는 바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말이 통하질 않다 보니 이를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양의 자료를 수집했어요. 제가 모은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내용을 만들고 싶은지 설명하는 거죠.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기에 이 방법은 제 영어보다 더 효과가 좋았고, 이 버릇은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도 전 작업 전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자료를 수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 외에도 절 가르치신 분이 워낙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분이다 보니 애니메이션의 기초와 기본에 대한 내용을 굉장히 강조하셨고, 또 가르쳐 주셨죠.

▲ 강연에서도 내내 강조한 자료 조사


Q. 2011년 5월에 졸업을 하셨고, 바로 6월에 블리자드에 지원서를 넣었어요. 블리자드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나요?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입사 신청을 했던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사실 제가 왜 입사 지원을 했었는지도 잘 이해가 안 가요. 보통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를 한국과 일본의 관계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사실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는 미국과 한국의 관계와 별로 다를 바가 없어요. 비자가 필요한 건 똑같거든요.

그래서 캐나다에서 입사 지원을 한다 해도 미국 내 기업들은 웬만하면 뽑지 않아요. 비자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요. 그래서 제가 입사 지원을 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는데, 7개월이 지나 전화가 왔죠. 처음에는 어디서 전화가 온건지도 몰랐는데 받아 보니 블리자드더군요. 한번 테스트를 받아 보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 그렇게 블리자드에 합류


Q. 서구권의 몇몇 게임사들은 면접을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하는 걸로 유명해요. 블리자드 역시 마찬가지였나요?

맞아요. 사실 한국에서는 길어 봐야 30분 정도의 면접을 볼 뿐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는 온종일 회사 내에 머물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눠요. 이 팀과 한 시간 정도 얘기하고, 또 다른 팀과 그 정도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종일 팀 내의 인원들과 깊이 있게 대화를 하죠.

2, 3시간 정도만 함께 이야기를 나눠도 본성이 드러나요. 근데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함께 얘기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한 시간이 만들어지죠. 회사는 이 사람이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고, 면접자는 이 회사 사람들이 자신과 어울릴 것인지를 봐요. 어떻게 보면 상호 간에 면접을 본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전 이 과정이 처음이었고, 굉장히 주눅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오자마자 바로 기절해 버렸어요.

재미있는 건, 인터뷰 과정에서 본 모든 이들이 너무나도 착하다는 거였어요. 단 한 명도 텃세를 부리거나, 투덜대는 일이 없었어요.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다가도 생각해 보면 그럴 사람들이 면접 과정에서 다 걸러져 나갔구나 싶더군요. 그런 과정 중에서 서로 함께 일해도 불편함이 없는 팀들만 남은 것 같았어요

▲ 서로를 깊이 이해한 이후 일을 함께하게 된다.


Q. 앞서 강연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로 '겐지'를 꼽핬어요 작업한 캐릭터의 수가 적은 것은 아닌데 왜 그중에 겐지를 꼽게 된 거죠?

아무래도 전체적인 애니메이팅 전반을 제가 작업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어요. 전 3인치 시점의 겐지를, 다른 분이 1인칭 시점의 겐지를 작업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겐지를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정이 들게 된 것 같아요.

가장 어려웠던 건 달리기와 궁극기인 '용검'의 발동 애니메이션이었어요. 애니메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제일 쉬운 캐릭터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캐릭터에요. '리퍼'를 작업하는 과정이 이와 같았죠. 하지만 겐지는 항상 비스듬하게 서 있어요. 용검이라도 뽑았다 하면 팔까지 머리 옆으로 치켜들고 다리도 꼬이고…. 엄청나게 어려웠죠. 그 상태에서 덤블링을 하거나 하는 등 파생된 애니미에션도 만들어야 했고요. 무엇보다도 그 날렵하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살리는 것이 어려웠어요. 때문에 용검을 뽑은 겐지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면 말이 안 되는 동작들도 많아요. 허리가 180도 돌아간다거나 하는 거요.

▲ 겐지의 수많은 아버지 중 한 분 되시겠다.


Q. '바스티온'도 작업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 바스티온도 어렵지 않았나요? 변신 동작을 생각하면 굉장히 어려웠을 거 같은데 말이죠.

장난 아니었죠.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바스티온 같은 경우는 다 만들어진 캐릭터를 애니메이팅한게 아니라 부품 하나하나를 만드는 과정부터 함께 작업했어요. 그 과정에서 규격도 딱 맞춰야 했고, 변신 과정의 메커니즘 또한 말이 되는 수준이어야 했기에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죠. 실제로 바스티온의 모습을 보면 수색 - 경계 간의 모드 변환이 실제로 만든 모형에서도 이뤄져요. 실제로 작업해 보면 다른 캐릭터들과 비교해서 다섯 배 정도의 컨트롤이 요구돼요.

게다가 궁극기인 전차 변신은 나중에 추가된 요소다 보니 더 애매했어요. 원래 바스티온의 궁극기는 전차 변신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전차 변신은 아예 거짓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실제로 평소 수색 모드의 바스티온을 보면 캐터필러나 포신 같은 부품은 아예 없거든요.

▲ 저 변신 장면이 고난의 시작


Q. 게임 개발의 3대 역할로 개발, 기획, 아트를 말하곤 하지만, 사실 게임의 기획을 짜는 것은 거의 기획자들이 하기 마련이에요. 블리자드는 조금 다른데,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기본적으로 전체적인 기업 분위기가 개발 단계부터 아티스트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요. 게임 기획자가 이렇게 할 거다 저렇게 할 거다 한다기보다는 함께 모여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나가죠. 사실 기업 분위기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지만 이런 분위기가 아닌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 지시를 받고, 지시하는 시스템에 굉장히 익숙했어요. 하지만 블리자드 직원들의 경우 어떤 경우라도 '왜?'라는 말을 하죠.

어떤 업무를 지시하려 해도 실무자를 이해시켜야 해요. 왜 이런 작업이 필요하고, 이걸 통해 어떤 것을 만들 것인지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더 좋은 게임이 만들어지는 길이 열려요.

▲ 첫 단계부터 각 팀간의 협업이 이뤄집니다.


Q. 아티스트, 그리고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해 주실 수 있나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부탁할게요.

항상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늘 비슷하게 대답해 드리는 것 같긴 하네요. 많은 분이 이렇게 질문하시면서 내심 이런 대답을 기대하실지도 모르겠어요. '게임에 대한 열정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은 더는 게임업계에서 꿈을 펼치기 위한 소양이 아니에요. 열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에요. 게임에 대한 열정은 너무나도 기본적이라 더 말할 이유가 없는 거죠.

하나의 게임을 주제로 몇 시간씩 대화를 한다거나, 아주 조그만 시스템 변화를 두고 오랜 시간 토론을 반복하는 일은 게임업계에서 굉장히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에요. 특별히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게임에 대한 열정은 언제나 가슴에 품은 채, 실력을 갈고 닦으세요. 꿈을 꾼다면 그 꿈으로 가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알아야 하는지 늘 고민하세요. 자신을 갈고닦다 보면 기회는 옵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늘 자신을 살피세요.

어떻게 얘기하다 보니 혼내는 톤이 되어버렸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요. (웃음) 언제나 앞을 위해 달려갈 힘을 키우고, 망설이지 않고 달리시길 바랄게요. 그러면 이루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