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과 숲 가장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인동초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죠. 쌀쌀한 날씨를 이겨낸 뒤에는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개화합니다. 그래서 금은화라고도 불리기도 하고요. 아마 락스 타이거즈의 '린다랑' 허만흥을 식물로 표현하면 인동초가 적합할 것 같습니다.

'린다랑'은 2016년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혹독한 데뷔 시즌을 보냈죠. 정규 스플릿 데뷔는 고사하고, 2016 KeSPA컵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전 2패. 무언가를 보여주기에 한없이 부족한 기회였으며, 패배만 기록했을 뿐입니다.

이후 2017년에는 강현종 감독을 따라 락스 타이거즈로 적을 옮깁니다. 당시 스프링, 서머 스플릿에서 19승 33패를 기록해 '무장점의 탑 솔러'라는 오명을 받았습니다. 팬들의 비난은 거셌고, 재계약 여부도 미지수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 번 더 손을 내민 사람은 강현종 감독이었습니다. 여기서 멈추면 '린다랑'은 그저 그랬던 선수로 남을 게 뻔했으니까요.

기대에 부응하듯 '린다랑'은 2018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스플릿에서 재능을 꽃피웠습니다. 현재까지 무려 네 번이나 경기 MVP를 수상했고, 심심찮게 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강해졌습니다. 이에 팬들의 평가도 순식간에 뒤집혔습니다. 어느덧 '린다랑'에게 '따봉 린다랑'이라는 캐릭터가 생겼고, 시그니쳐 챔피언으로 카밀이 오르내릴 정도로 말이죠. 약 1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지나 지금의 '린다랑'이 완성된 과정을 들어봤습니다.







Q. 반갑습니다. 이런 인터뷰 자리가 처음이라는데,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락스 타이거즈의 탑 라인을 맡고 있는 따봉 '린다랑' 허만흥이라고 합니다.


Q. 개막 전만 하더라도 락스 타이거즈가 최하위라는 분석이 많았어요. 본인의 영향이 꽤 컸다고 생각하세요?

지난해 스플릿에 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기 때문에 당연한 평가라 생각했죠.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달라져야겠다는 자세로 임했어요.


Q. 팬들의 반응도 무척 부정적이었어요.

원래 반응을 보지 않으려 했었어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못했으니 팬들의 안 좋은 반응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기분은 좋지 않지만, 제가 잘해지는 게 유일한 답이잖아요.


Q. '상윤' 권상윤이 "우리 팀도 노력하지만, 다른 팀도 그만큼 노력하고 있어서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고 예상했나요?

솔직히 자신감이 있지는 않았어요. 다른 팀들이 로스터에 큰 변화가 없어서 계속 강할 거라는 생각에 걱정이 많았거든요. 그래도 팀원 모두 서로 이끌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Q. 개막 전에는 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개막 전까지만 하더라도 스크림 성적이 나빠서 다들 승강전 탈출부터 하자고 다짐했어요.


Q. 팀의 성적도 좋아졌고, 본인의 경기력이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샤이' (박)상면이 형을 찾아가서 여러 조언을 얻었어요. 대화를 나눠 보니 마음도 편해지고, 압박감이 줄어들더라고요. 그 뒤로 편하게 플레이하니까 자연스럽게 경기력이 올랐어요. 그때 상면이 형이 "너는 잘할 수 있고,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대신 한 번에 보여주려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거부터 천천히 하면 좋겠다"고 응원해줬어요. 이전까지 제 이미지를 바꾸겠다고 조급하게 플레이했었거든요. 상면이 형과의 대화가 마인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Q. 아직 스플릿이 끝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의 성적은 만족스럽나요?

kt 롤스터를 꺾을 때만 하더라도 더 올라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8.4 버전으로 바뀌고 2연패를 당했어요. 그래서 아쉬운 부분이 더 커요. 스플릿 초반이 아니라 마무리하는 단계라 그 패배들이 더 확 와닿아요.



Q. 아직 '린다랑'에 대해 모르는 팬들이 많아요.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CJ 엔투스 테스트 과정에서 감독님 눈에 띄었고, 이후 아프리카 프릭스에 미드 라이너로 입단했어요. 그때는 연습생에 더 가까웠죠. 그런데 연습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당시 제가 순간이동 챔피언을 즐겨 사용했거든요. 감독님이 그 모습을 보고 탑을 해보는 게 어떻냐고 권유하셨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고민이 많았죠. 미드 라인에 쏟아부은 시간이 있어서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고, 이왕 하는 거 '페이커' 이상혁 선수처럼 최고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제 생각이었고, 결과적으로 포지션 변경을 잘했죠.


Q. 탑 라이너로서 첫 시작은 좋지 않았어요. 다시 미드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솔직히 장난으로나마 다시 미드로 가야하나라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러면 탑 라이너로 연습한 시간이 또 전부 날아갈까 두려웠지만요.


Q. 만약 미드 라이너로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면 어느 정도 성장했을 것 같아요?

열심히 하고 자신만 있었다면 6등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요. 탑 라이너로서는 좋은 모습도 보여드렸지만, 안 좋은 모습이 더 많아서 상위권은 절대 아니죠. 이번 스플릿 기준으로는 중위권 정도로 평가하고 싶어요.



Q. 최근 8.4 패치가 이뤄졌는데, 본인한테는 잘 맞나요?

처음 패치가 됐을 때만 하더라도 빠르게 굴릴 수 있어서 좋은 성적을 기대했어요. 그런데 '지휘관의 깃발'에 너무 꽂혀서 정작 해야 할 플레이를 못 한 거예요(웃음). 최근 MVP전에서 보여준 플레이가 그 단점이에요.


Q. 이번 스플릿에서 본인이 생각해도 가장 완벽했던 경기는 언제에요?

SKT T1과의 1세트가 기억이 나요. 1라운드 경기였거든요. 1:2로 패하기는 했는데, 1세트 때 정말 생각한 플레이가 잘 돼서 자신감을 가지게 됐어요. 그리고 최근 bbq 올리버스와의 대결에서 일라오이를 했던 경기가 생각나요. 잘했다기보다 제가 자신감이 넘쳐서 상대 갱킹이 오는 것을 보고도 1:2로 붙었거든요. 결국, 죽어 버려서 많이 아쉬웠죠.


Q. 락스 타이거즈가 정말 집요할 정도로 바론을 좋아했잖아요. 주로 누구의 오더였나요?

지금은 덜 좋아하는 편이에요. 누구의 오더는 아니고, 저희가 바론 버프를 이용한 스노우볼 외에는 다른 방법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다들 무언가 떠오르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바론으로 향했어요. 아프리카 프릭스 시절부터 이어져 온 느낌이지만, 그때는 '눈꽃' (노)회종이 형이 바론 타이밍을 잘 잡았어요. 그 '바론 정신'이 저희에게 계승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바론 버프가 이상하리만큼 취하 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요(웃음). 그래서 최근 MVP전에서 보여드린 경기가 바론에 취한 가장 안 좋은 예라고 보시면 됩니다.


Q. 간혹 팬들이 '18 XXX', '17 XXX'처럼 한 선수를 연도로 나눠 비교잖아요. 본인의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각 연도별로 비교하면 어때요?

'16 린다랑'은 라인전에만 집중하고, 형들한테 묻어가는 선수였죠. 못 믿으시겠지만, 그때는 라인전만 놓고 보면 자신 있었어요. 경기도 KeSPA컵이 전부였고, 솔로 킬도 내주면서 가장 많이 실수한 경기였어요.

'17 린다랑'은 가장 암흑기죠(웃음). 개인적으로는 자신감을 가진 해였는데, 실수가 반복되니 원하는 만큼 못 보여드렸어요. 그래서 계약 기간에 인맥으로 팀에 붙어있다는 말을 들을까 봐 감독님께 못하면 팀을 나가는 게 맞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혼자 화내지 말고 열심히 해서 결과를 만들자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너를 못 믿는 사람들에 대한 최고의 노력이며, 힘들고, 화나는 게 있다면 경기에서 풀어야 한다"고 재계약을 하자 하시더라고요.


Q. 패배에 익숙해지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경기 출전이 무척 두려워지죠. 걱정이 많아지니까 연습 자체가 많이 힘들어요. 제가 멘탈이 강한 편은 아니라 마음고생을 좀 했었어요. 당연히 저한테 화도 나고, 팀원들한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도 '상윤' (권)상윤이 형은 제가 주눅 들거나 자신감이 떨어질까 봐 더 장난도 많이 치고, 평소처럼 대해주더라고요.



Q. 문득 궁금해졌어요. '린다랑'이라는 소환사명의 뜻이 뭔가요?

중학생 때, 중국어 시간이었을 거예요. 드라마 주인공 이름이 '린다랑'이었어요. 제가 워낙 결정도 잘 못 하는 스타일이라 한참 고민하다 떠오른 게 '린다랑'이에요. 사실 멋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정이 들어서 계속 사용하게 됐어요.


Q. 현재 LCK 내에서 가장 박빙인 라인이 탑이라 생각해요. 탑 라이너들에 대한 여러 표현이 많잖아요. 병적인 탑 라이너 순위를 매겨볼까요.

요즘은 '칸' 김동하 선수가 진짜 최고가 아닐까 싶어요. 연습이나 솔로 랭크에서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대회에서 보여준다는 게 진짜 대단해요. '스멥' 송경호 선수는 잘하긴 하는데, 저희 쪽 계열은 아니에요. 오히려 '크레이지' 김재희 선수가 진짜 뒤 없이 라인전을 해요. 딜 교환도 살벌하고, 상대를 무조건 때리려는 스타일이에요.

탑 라인전은 패기가 무척 중요하잖아요. 이게 선수들끼리 서로 한 대씩 쳐보고 딱 알아요. 상대가 위축됐다 싶으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요. 저는 미드 라이너 출신이라 패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말이 탑 라이너들의 변명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도 어느새 그렇게 되고 있네요(웃음). 실력 다 떼고 패기로만 보면 저도 꽤 상위권이 아닐까요.


Q. 실력으로도 충분히 보여주고 있잖아요. 프로게이머들은 어느 순간 '이기는 방법'을 깨우치는 시기가 있다고 하던데, 본인은 지금이 그 때인가요?

살짝 포텐이 터지려고 했거든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다시 가라앉았어요. 보통 성적이 좋고, 자신감이 있을 때 느낄 수 있거든요. 소위 말해서 뭘 해도 이기는 단계라고 하죠. 아직 저는 한참 멀었어요.


Q. 혹시 올해는 롤드컵까지 욕심을 내고 있나요?

최종 목표니까 끝까지 달려봐야죠. 롤드컵에 가게 되면 한국이라 적응이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좋아요. 대신 해외 무대에 대한 로망은 있어요. 솔직히 롤드컵 무대에서 소환사의 컵을 들어 올리는 상상 많이 했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상상은 자유잖아요(웃음). 간단히 말해서 그렇지 킹존 드래곤X와 '칸' 김동하 선수를 꺾고, 꽃가루 속에서 팀원들과 울먹거리며 포옹하는 장면까지 그려봤어요.



Q. 매번 하는 질문 중 하난데, 실력과 상관없이 함께 팀을 해보고 싶은 선수는 없어요?

'레이스' 권지민 선수가 좋은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 사실 친분은 하나도 없고요(웃음). 칭찬 감사하고, 앞으로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생활적인 부분은 '프레이' 김종인 선수가 궁금해요. 사람이 재미있어 보이고, 팀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아서 경험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엄티' 엄성현 선수가 저를 상대로 갱킹을 엄청 하는 거예요. 혹시 저를 싫어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집요해요(웃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네요.


Q. 이제 팬도 많이 늘은 것 같더라고요. 체감되나요?

예전에는 팬 미팅 때, 상면이 형의 줄이 정말 길었어요. 반면, 저는 진짜 팬이 없어서 그 자리가 너무 싫었어요. 한참 팬 미팅이 진행 중인데, 매번 땅만 보고 있으니 죄인이 된 느낌이랄까요. 그런데도 꾸준히 와주시는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하죠. 한 번은 믿음에 보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좀 뭉클했어요. 제가 못할 때부터 응원해주신 거잖아요. 지금 제 줄에 오시면 1:1 토크 콘서트도 가능해요.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고, '쌍 따봉'도 해드릴게요(웃음).


Q. 이번 스플릿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어요. 목표 그리고 꼭 만나고 싶은 팀은 어딘가요?

지금 기세가 조금 꺾였는데,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더 높은 곳까지 가고 싶어요. 만약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면 조금 허무하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릴게요. 만약 오르게 되면 아프리카 프릭스와 만났으면 해요. 너무 처참하게 패해서 한 번 꼭 이겨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믿고 기다려준 팬들과 팀원들 그리고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제가 정말 힘들 때는 팀원들의 말 한마디에 '내가 무시 당하는 건가?'라는 오해도 하고, 혼자 많이 위축됐었어요. 저는 이렇게 안 좋은 생각을 했는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대해준 팀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요. 그리고 강현종 감독님이 믿어주신 거에 비해 아직 보답을 못 했어요. 지금 이상으로 더 잘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 테고, LCK 탑 라이너 분들. 패기로는 안 밀릴 테니 다들 조심하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