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20 LCK 스프링에서 밴픽과 경기 양상에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난 시기는 언제였을까. 한동안 LCK는 우수한 능력을 자랑하는 원거리 딜러, '국밥'처럼 든든한 탑에 탱커-딜탱형 챔피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양상이 굳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스프링 스플릿의 후반부로 들어설 무렵 LCK 경기 양상에 변화가 생겼다. 바로 탑에서 오른-세트-아트록스가 아닌 딜러인 제이스가 첫 픽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타 메이저 지역에서 자주 등장한 픽은 아니었으나 LCK에서 가장 많이 28회나 등장해 최고 승률 57%를 거뒀다. 제이스가 OP 챔피언은 아니지만, 장점을 잘 살렸을 때 그만큼 힘을 발휘하는 챔피언이었다. 탑 위주로 경기 양상을 바꿔놓을 정도로 굳어가는 LCK 경기에 제이스가 변화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등장한 제이스 픽은 프로게이머조차 완벽히 다루진 못했다. 제이스가 미끄러져 제대로 넘어진 경기 역시 자주 나왔다. 연이은 기본 스탯 너프를 경험한 제이스라 활약하기 위한 조건 역시 까다로워졌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제이스가 LCK에서 선픽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등장 배경은?
드래곤 싸움=포킹 강세, 다시 떠오른 제이스

▲ LCK PO 포킹 중심 제이스 아이템(출처 gol.gg)

▲ 다 빼앗아갔지만, 전격 폭발 살아남았다...

가장 큰 이유는 조합 시너지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올해부터 드래곤의 영혼 획득을 위해 드래곤 싸움이 중요해졌다. 드래곤 대치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포킹 챔피언들이 득세한 것은 조이-바루스-코르키와 같은 픽이 떠오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나 정교한 스킬샷을 자랑하는 프로 단계에서 포킹의 위력은 배가 된다. 제이스 역시 대표적인 포킹 챔피언으로 가속 관문(E)-전격 폭발(Q)이라는 대표 스킬을 보유하고 있기에 이런 조합에 빠질 수 없다. 확실히 톱날 단검 중심의 코어 아이템을 둘렀을 때, 포킹에 맞은 딜러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나아가, 빠른 포킹을 위해 많은 LCK 선수들이 이번 시즌에는 재사용 대기시간 감소 능력치가 있는 아이오니아 장화를 선택했다.

라이엇도 제이스와 관련한 각종 초반 스탯 너프 속에서 중-후반 포킹 딜은 살려놓았다. 제이스는 주로 전격 폭발 스킬의 후반 버프를 최대로 활용하는 픽이라고 보면 된다. 초반보단 중-후반 장점의 최대화를 위해 미니언 처치시 추가 골드 확보할 수 있는 '수확의 낫'을 선택하는 경우 역시 많아졌다. 이전보다 중-후반 지향형 챔피언으로 거듭났다고 보면 된다.

이는 담원 게이밍의 탑 라이너 '너구리' 장하권이 성공적인 사례를 선보이면서 LCK에서도 유행처럼 번졌다. 강한 라인전을 자랑하는 '너구리'는 탑 라인 압박과 동시에 파밍, 그리고 톱날 단검이 나온 타이밍에 솔로 킬까지 내면서 제이스픽의 강함을 제대로 보여줬다.


까다로운 활용 조건
프로 단계서 드러난 제이스 약점은?

▲ 제이스로 롤드컵 우승한 '더샤이'도 적응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많은 프로들이 이런 제이스 플레이를 소화하긴 쉽지 않았다. 1:1 구도에서야 개인 피지컬과 역량으로 일방적인 딜 교환이 가능하지만, 2:2 상황부터 크게 말리기 시작한다. 초반 능력치가 너프되면서 예전만큼 한 명을 데려갈 초반 화력이 나오지 않는다. 라인을 몰아넣고 딜 교환에 성공했더라도 상대 정글러가 합류한 2:2 상황에서 힘이 많이 빠진다. 제이스로 월드 챔피언십 우승까지 해봤던 IG '더샤이' 강승록이 TES와 2세트에서 '카사'에게 말려 KDA 0/5/0을 기록했고, LCK PO 1R '너구리' 역시 DRX '표식' 홍창현의 연이은 갱킹에 쓰러지곤 했다.


더군다나 수확의 낫부터 올렸을 때, 초반 제이스의 힘은 더 떨어지게 된다. 이는 LCK 스프링 결승전 마지막 세트에서 드러났다. 젠지의 미드 '비디디' 곽보성이 먼저 라인을 밀고 합류하고 있어도 도착하기 전에 '라스칼' 김광희의 제이스가 킬을 내줄 정도로 아쉬운 초반부가 나왔다. 수확의 낫 선택이 다른 아이템에 비해 생존과 딜 모두 부족하기에 자칫 미끄러지기가 정말 쉽다. 충분히 골드를 수확하기 전에 합류했을 때, 예전 제이스를 생각하기 힘들게 됐다.

이와 반대로 제이스가 일방적으로 아군 정글에 힘을 받아 활약하는 경기 역시 나왔다. 젠지의 정규 스플릿 1위 결정전에서 1세트에서 발목을 잡은 KT '소환' 김준영이 펜타 킬을 올렸다. '보노' 김기범의 확실한 탑 갱킹과 협곡의 전령을 활용한 골드 몰아주기가 밑바탕이 됐고, '소환' 역시 자신이 지켜야할 선을 정확히 지키며 최대로 딜을 뿜어내 펜타킬까지 기록했다. 이후로 '소환'의 제이스는 밴이 되거나 상대에게 넘겨주면서 볼 수 없었다. DRX '도란' 최현준의 제이스 역시 PO 2R에서 T1을 상대로 '표식' 세주아니의 도움을 바탕으로 한 세트를 따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경기에서 제이스가 있는 탑에만 집중할 수 없는 법. 자신이 사려야할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이를 조절하는 탑 제이스는 이번 스프링에서 보기 힘들었다. '기인' 김기인의 제이스, '너구리' 역시 홀로 상대 개입을 극복하진 못했다. T1 '칸나'가 PO 2R에서 갱킹이 왔을 때 '도란'을 데려가는 장면이 최선이었다.




기존 약점 극복?
탱커에 약하다는 평가를 넘어선 '너구리'


▲ '도끼'룬과 망치로 '국밥' 깨는 '너구리'

제이스가 선픽으로 나오는 것이 놀라운 이유로 카운터 픽이 충분히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LoL 프로씬에서 제이스는 오른을 상대로 7경기 42.9%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예전부터 사이온을 비롯한 탱커들이 제이스를 상대로 등장해 좋은 성과를 내왔고, 올해 역시 큰 흐름은 그대로 이어진 듯했다. 뛰어난 갱 호응과 의외의 스킬 딜을 뿜어내는 탱커들에게 취약한 점은 분명히 있다. 한 번이라도 끊기는 순간, 제이스의 힘이 더 빠져 라인전-한타에서 모두 밀리는 쓸모없는 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위험을 넘어서 결국 '국밥 그릇'을 깨버린 프로들도 있었다. 이전부터 '너구리' 탱커를 상대로 정복자 특성을 들고 사이드 라인에 확실히 힘을 주는 선택을 했다. 톱날 단검 대신 칠흑 양날의 도끼와 버프된 몰락한 왕의 검-무라마나를 활용해 사이드 돌파에 힘을 주는 선택을 했다. 단단하기로 소문난 오른 역시 위 영상처럼 LCK 스프링 PO 2R 4세트에서 후반부에 솔로 킬을 내주고 말았다. 탱커도 넘어서는 딜러의 모습을 '너구리'가 꾸준히 보여줬기에 제이스가 선픽으로도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달라진 밴픽, 새로운 LCK
LCK 새 흐름을 일으킬 챔피언이 필요하다


여전히 제이스는 솔로 랭크와 팀 게임에서 모두 '완성형'은 아니다. 약점이 뚜렷하고 활용 조건이 까다롭기에 그렇다. 하지만 좋은 스탯의 챔피언, 후반만 바라보는 챔피언이 주로 나오는 일관된 양상을 깨는데, 제이스는 올 스프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제이스라는 픽 자체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플레이 방식으로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앞으로도 LCK에서 이런 변화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너구리' 장하권은 작년부터 다양한 챔피언의 도벽룬 활용을 비롯해 톱날 단검 위주의 제이스 템트리를 활용해왔다. 톱날 단검 위주의 템트리는 제이스를 포킹 메타에 최적화된 챔피언으로 거듭나게 하는 밑바탕이 됐다. 그 외에도 다양한 아이템-룬 트리를 연구해오면서 제이스를 탱커마저 넘을 수 있는 픽으로 끌어올렸다. 앞으로도 제이스는 팀적으로 숙련도를 더 높여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는 픽이다. 그리고 제이스 외에도 LCK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만한 챔피언이 등장한다면, LCK 경기 양상이 더 풍성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