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가치와 이에 따른 적정 가격을 어떻게 바로 평가할 수 있을까. 단순히 개인 선호, 가치 판단이라는 주관적인 평가 외에도 글로벌 시장의 물가, 환차 등 고려할 요소도 많다. 그래서 게임 가격의 기준이 되는 게 AAA 및 메인 스트림 게임의 비공식 표준인 60달러. 이른바 풀 프라이스(Full Price)다.

그런데 그 풀 프라이스 가격이 15여 년 만에 70달러로 상승하려는 움직임이 하나둘 일고 있다. 메인 스트림 게임 타이틀 하나에 7~8만 원쯤 하는 시대가 오는 셈이다.


메이저 릴리즈 게임 가격, 풀 프라이스는 완전 가격이라는 표현 그대로 사실상 정가와 유사한 의미로 쓰인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 경쟁이 격화된 2005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그전까지 게임 가격은 사실상 개발사나 퍼블리셔 주도로 이루어졌다.

일본의 대표 RPG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경우 1986년 처음 출시된 게임은 5,500엔에 판매됐으나 드래곤 퀘스트를 여러모로 의식해 제작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출시되며 서로 꾸준히 가격이 상승했다. 패미컴 마지막 게임인 드래곤 퀘스트4와 파이널 판타지3는 각가 8,500엔, 8,000엔에 판매됐고 슈퍼 패미컴 시절 황혼기에는 11,400엔까지 올랐다.

일견 담합이라도 해 가격을 올린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은 게임 매체에 있다. 당대 콘솔은 게임 매체로 제작 비용이 많이 드는 카트리지를 사용했다. AAA 게임의 경우 고성능 사운드 효과나 특수 그래픽 기술 등 최신 기술이 포함된 고사양 칩셋이 더해져 개발비를 높이는 원인이 됐다. 게임 비용이 워낙 비싸니 중고 거래가 활발해져 정작 개발사들의 수익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플레이스테이션은 PC 엔진에서 처음 쓰인 CD 주요 매체로 쓰기 시작했다. 당연히 완성된 게임물을 판매 단계까지 옮기는 제작, 유통 비용이 줄었고 대량 생산도 용이해졌다. PC와의 멀티 플랫폼 대중화와 글로벌 시장 문턱이 낮아지며 적정 가격에 대한 고민도 시작됐다.

일본 내수용 게임은 가격대가 어느 정도 유지됐지만, 업계는 글로벌 시장을 기준으로 게임 하나에 적합한 가격 책정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2005년, PS3와 Xbox 360이 자사 퍼스트 파티 게임의 가격을 59.99달러로 정했다. 이 가격은 차세대 콘솔 출시를 앞둔 지금까지 10년 넘게 유지되고 있었던 셈이다.

▲ 카트리지 개발 비용이 게임 가격에 그대로 영향을 주며 게임 하나가 13만 원에 이르던 90년대

차세대 게임 가격 상승의 시작은 현지 시각으로 3일 테이크 투가 회계연도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NBA 2K21의 가격을 확정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테이크 투는 NBA 2K21의 가격을 기종별로 나눴다. 현세대 플랫폼인 PS4, Xbox One 버전은 PC 버전과 함께 59.99달러에 판매되지만, PS5와 Xbox 시리즈 X 버전은 69.99달러에 판매된다.

특히 시장 조사, 컨설팅 업체 IDG는 게임인더스트리를 통해 주요 퍼블리셔들이 차세대 게임 가격을 동일한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차세대 콘솔 개발사인 소니가 퍼스트파티의 정가를 곧 고시하겠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PS5 퍼스트 파티 게임의 정가가 69.99달러로 결정된다면 콘솔 리드 멀티플랫폼, 나아가 AAA 게임의 풀 프라이스 기준이 여기에 맞춰지게 된다. 여러 종류의 게임과 배급사가 함께 서비스되는 콘솔의 가격은 이른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간 게임의 가격 인상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소니가 1년 먼저 발매된 Xbox 360과 동일하게 59.99달러로 타이틀 가격을 결정한 이후 무려 10년 넘게 지금의 게임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30.8%에 이른다.

물가 상승은 물론 개발비 역시 큰폭으로 증가했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의 회장이었던 숀 레이든은 인터뷰에서 현세대 AAA의 게임을 5년간 개발하는 8,000만 달러 ~ 1억5,000만 달러(한화 약 950억 원 ~ 1,790억 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업계에 뛰어든 후 게임 가격은 59.99달러가 됐지만, 개발비는 10배로 뛰었다고 덧붙였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개발비는 2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 GTA5는 2억 6,500만 달러,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한화 약 3,478억 원이 개발과 마켓팅에 쓰였다

숀이 설명한 개발 비용은 마켓팅 비용을 제외한 수치다. 2014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AAA급 게임의 마켓팅 비용은 블록버스터 영화와 유사하거나 더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기존 지면, TV 광고 외에 온라인 광고 영역이 나날이 늘며 그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실제 개발비는 대중에 알려진 것보다 더 높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기술의 발달로 그래픽과 사운드 등 게임의 연출 표현력이 늘어 세세한 부분을 따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수가 늘어난 것도 개발비 상승의 원인이 됐다.

숀은 AAA의 분량을 줄이며 개발비 대형 게임의 규모 자체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마저도 지금의 게임 판매 비용으로는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게 숀의 설명이다.

하지만 대형 IP, 혹은 프랜차이즈 게임은 약간의 퀄리티 저하가 시리즈 전체 신뢰도에 타격을 주기도 한다. 이에 만듦새를 유지한 채 수익 모델 다각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DLC 판매, 루트 박스 등 추가적인 결재 요소가 도입된 배경이다. NBA 2K, FIFA, PES 등 대다수의 대형 프랜차이즈 게임이 선수 부스터를 판매하고 있고 락스타의 GTA와 레드 데드 리뎀션은 온라인으로 재화로 수익을 충당하고 있다.

▲ 다양한 인앱 결제 요소로 FIFA의 실매출을 이끄는 FUT

시장 조사 업체 NPD 그룹의 비디오 게임 전문 애널리스트 맷 피스카텔라는 SNS를 통해 69.99달러로 게임 가격을 인상한다는 이야기에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적어도 2013년에는 이 가격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노동통계국의 인플레이션 수치를 고려하면 2005년 60달러 게임은 오늘날 76달러로 환산된다.

반면 풀 프라이스 인상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우선 디지털 서비스의 확대에 따른 유통 비용 감소다. COVID-19의 확산으로 대형 리테일 마켓이 줄줄이 문을 닫으며 게임 판매 창구는 온라인 비중이 크게 늘었다.

테이크 투의 2020년 3월부터 6월까지 회계연도 2021년 1분기 실적표에 따르면 디지털 순수익은 지난해 같은 분기 4억2,800만 달러에서 70%가 증가한 7억2,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대형 신작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기록적인 상승률이다. 같은 기간 실물 패키지 판매 비중은 21%에서 12.5%로 줄었다. 테이크 투 외에 액티비전 블리자드, 소니 등 대형 게임사와 플랫폼 역시 디지털 게임 판매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졌던 지난 1, 2분기를 넘어 팬데믹 사태에 따른 언택트 시대의 도래로 그간 온라인 판매에 심리적 저항감을 가졌던 게이머들이 디지털 구매를 이어가리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 회색이 디지털, 하늘색이 인게임 결재 등의 소비 매출. 실물 패키지의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콘솔 게임의 풀 프라이스가 업계의 표준에 가까운 가격 정책을 불러온 만큼 개발 비용과 관계없이 10달러라는 한계 안에서 일괄적 가격 상승이 이루어지리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게임 가격 책정의 기준이 개발비가 아니라 AAA급 게임 대비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 평가해 이루어지면 경우 풀 프라이스 상승분 대비 게임 가격이 덩달아 상승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가격을 올려도 현재 기록적인 수익을 내는 온라인 모드의 재화, DLC, 나아가 골드-디럭스 등 게임 쪼개 팔기로 여전히 큰 수익을 올릴 텐데 가격 상승이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맷 피스카텔라 역시 가격 상승 이후에도 다양한 에디션이 쪼개져 판매되리라 예측했다.

당장 69.99달러 인상 논의의 포문을 연 테이크 투의 게임 정책만 봐도 드러난다. NBA 2K21은 게임 하나만 사면 Xbox One과 Xbox 시리즈 X. 두 콘솔에 최적화된 버전을 지원하는 스마트 딜리버리를 기본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PS4 버전 NBA 2K21을 구매한 플레이어가 PS5 출시 후 PS5 버전 NBA 2K21을 또 사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고(故) 코비 브라이언트가 표지에 등장하는 블랙맘바 에디션은 해당 기능을 지원한다. 블랙맘바 에디션은 99.99달러에 판매된다.

▲ 마켓에서 '에디션'으로 검색하면 같은 게임의 다양한 부가 판매 에디션이 나온다

게임 개발에는 돈과 시간, 그리고 개발자의 노력이 들어간다. 어느 정도의 게임 가격이 적당한 보상 수준인지를 따지기란 어렵다. 게임이 아이디어보다 기술이 핵심이 된 공산품에 가까워져가며 시장 논리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날로 커지고 있다. 가격의 가치가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사고, 그렇지 않다면 사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게임, 프랜차이즈라면 일정 수준의 가격 인상을 감수하고 살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 대체재가 없으니 단순히 가격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거다. 이는 갖은 논란에도 루트박스가 팔리고 매년 발전이 더딘 시리즈 게임이 팔리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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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비용과 가치 사이에서 70달러의 풀 프라이스 가격이 적정한지는 유저들의 선택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