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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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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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주신은 왜 가장 희생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지않는가![]() [소설] 주신은 왜 희생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지 않았을까 # 네 개의 불빛 중앙 아티팩트가 모습을 드러내기 삼십 분 전. 단장은 레기온 지휘실 중앙에 떠 있는 푸른 수정구를 바라봤다. 한때 그 수정구에는 열 개의 빛무리가 떠올랐다. 각 빛무리는 하나의 포스였다. 한 포스에는 네 개의 파티가 있었고, 한 파티에는 네 명의 데바가 있었다. 열여섯 명이 하나의 전열을 이루고, 그런 포스가 열 개나 모이면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지휘실은 발 디딜 틈 없이 시끄러웠다. 누군가는 먼저 포스를 짜자고 재촉했고, 누군가는 치유사가 부족하다며 아는 이를 불러오겠다고 했다. 늦게 도착한 데바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어느 전선으로 가면 되냐고 물었다. 그때의 단장은 병력이 부족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구를 어디에 더 보낼지, 어느 전선에 더 강한 포스를 세울지, 어느 길목을 두 겹으로 막을지 고민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밤, 수정구 안에 남아 있는 레기온의 포스 불빛은 네 개뿐이었다. 그마저도 과거의 포스처럼 선명한 빛이 아니었다. 빛은 작고 흐렸다. 한때 열여섯 명의 데바가 한 덩어리로 모여 전장을 밀어내던 포스의 흔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나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각각의 빛은 아직 포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어느 하나도 온전한 포스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빠진 자리가 너무 많았다. 누군가는 전쟁을 떠났고, 누군가는 더 이상 수정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며, 누군가는 아직 이 땅에 있으면서도 레기온의 전장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수정구의 중앙, 아티팩트가 모습을 드러낼 자리를 둘러싸고는 레기온 소속이 아닌 데바들의 작은 빛이 따로 떠 있었다. 그들은 포스도 아니었다. 누구의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저 주신의 축복을 얻기 위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유물을 향해 저마다의 무기를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단장은 손을 뻗어 수정구 표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중앙 아티팩트로 갈 포스는… 없나.” 말은 천천히 흘러나왔지만, 지휘실 안은 오래도록 조용했다. 늪지대 중앙 아티팩트는 공명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가장 먼저 피로 물드는 곳이었다. 그 거대한 유물은 주신의 권능을 머금고 있었다. 천족이 그것을 오래 공략할수록, 주신은 데바들의 소지품 속에 작은 축복을 하나씩 내려 주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위해 전장에 섰다. 아티팩트의 표면에 검을 꽂고, 균열을 넓히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그 시간만큼 축복은 쌓였다. 하지만 아티팩트를 공격한다고 해서 누구나 끝까지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족이 밀려오면 공격은 멈췄다. 유물을 두드리던 데바들은 무기를 돌려 적을 막아야 했고, 방어선이 무너지면 아티팩트는 순식간에 마족의 손으로 넘어갔다. 결국 아티팩트를 공략하려면, 누군가는 마족과 싸워야 했다. 누군가는 진입로 입구를 지켜야 했고, 누군가는 마족의 정찰대를 끊어야 했으며, 누군가는 다른 이들이 유물을 공격하는 동안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는 데바는 많지 않았다. 마족을 막는 동안에는 아티팩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주신의 축복은 유물을 공격하는 자들의 소지품에 쌓였고, 방어선에 선 자들은 피와 수리비,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의 허탈함만 챙길 때도 있었다.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다만 수정구 속 네 개의 불빛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티팩트를 치고 싶은 데바는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아티팩트를 칠 수 있도록 앞을 막아 줄 데바는, 언제나 부족했다. 단장은 그 침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전쟁은 모두의 것이었지만, 보상은 각자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주신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토록 비합리적인 보상 구조를 이들에게 남겨 두었는지, 단장은 알 도리가 없었다. 유물을 오래 두드린 자에게는 축복이 쌓이고, 그 유물을 두드릴 수 있도록 마족을 막아 낸 자에게는 전쟁이 끝난 뒤의 피로와 닳아 버린 장비만 남았다. 누군가는 반드시 앞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언제나 가장 먼저 비어 갔다. 단장도 알고 있었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레기온의 데바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중앙 아티팩트가 아닌 마족의 진입로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이 마족을 막아 내지 못하면 아티팩트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공략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데바들이 유물에 검을 꽂아도, 마족의 칼날이 등을 향해 밀려오는 순간 공략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단장은 알고 있었다.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손해를 감수하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축복을 포기하고 진입로로 가라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이들이 유물을 공략하는 동안 마족의 칼날을 막아 달라고. 누군가에게는 전쟁이 끝난 뒤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지켜 달라고 명령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부탁이 아니었다. 단장이 내리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 명령은, 결국 단원들의 손해 위에 세워지는 명령이었다. 단장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피를 흘리며 길을 지키는 동안, 그 뒤에서는 다른 데바들이 각자의 축복을 위해 아티팩트만을 공략할 것이다. 주신의 은총은 마족의 칼날을 막아 낸 자들의 손이 아니라, 유물의 균열을 오래 두드린 자들의 소지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단장은 그것을 알면서도 병력을 보내야 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그에게 진입로를 맡기고, 그가 얻지 못할 보상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야 했다. 그것은 지휘가 아니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희생을 계산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티팩트만을 공략하려는 이들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들 역시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주신이 정해 둔 방식 안에서 자신의 몫을 얻기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단장은 그들에게 진입로를 지키는 데바들과 동등한 축복을 줄 수 없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주신의 보상 구조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선택을 비난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 모든 선택이 쌓인 끝에, 언제나 누군가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자리로 보내져야 했다. 수정구 속 불빛 하나가 작게 흔들렸다. “단장.” 낮고 잠긴 목소리였다. “제가 진입로로 가겠습니다.” 단장은 그 빛을 오래 바라봤다. 그 포스는 원래 다른 전선을 맡아야 했다. 마족의 정찰대가 가장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길목.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성채 외곽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자리였다. “그쪽은 누가 맡지.” 잠시 뒤, 수정구 속 빛이 더 희미하게 흔들렸다. “어차피… 그쪽도 사람이 부족합니다.” 단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네 개의 빛 중 하나가 움직이면, 다른 곳에는 반드시 빈자리가 생긴다. 한때는 열 개의 포스가 각자의 전선을 지키고도 남았다. 중앙 아티팩트에는 두 포스를 세우고, 성문과 진입로에는 또 다른 포스를 배치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빠져도 자리는 채워졌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제는 어디를 지킬지보다, 어디를 포기해야 할지 먼저 고민해야 했다. 단장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수정구 속 네 개의 불빛을 다시 바라봤다. 한때는 열 개의 포스가 거대한 별자리처럼 수정구를 가득 채웠다. 지금은 네 개. 그마저도 바람 한 번에 꺼질 듯한, 힘없이 떨리는 불빛뿐이었다. 그로부터 스물다섯 분 뒤. 중앙 아티팩트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오 분이 남았다. 그 사이, 첫 번째 레기온 키스크가 파괴되었다. 수정구 한쪽에 떠 있던 작은 푸른 표식이 순식간에 꺼졌다. “서쪽 키스크 파괴됐습니다!” 보고는 짧았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뜻하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레기온 키스크는 단순한 돌기둥이 아니었다. 전장에서 쓰러진 데바들이 다시 전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는 이동형 부활 거점이었다. 데바가 쓰러지면, 그들은 레기온 키스크의 빛을 따라 되돌아오거나 멀리 떨어진 고정형 키벨리스크에서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 죽는다고 해서 데바의 삶이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죽음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랐다. 한 번 쓰러질 때마다 몸에 쌓아 온 숙련도는 조금씩 깎여 나갔고, 전장에서 길러 온 감각은 흐려졌다. 기억의 일부가 희미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지품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둔 주신의 축복 일부가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며칠 동안 모은 축복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수없이 전장을 견디며 얻어 낸 보상이었다.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이 죽음의 값을 없애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데바들은 알고 있었다. 한 번 쓰러질 때마다, 자신이 전장에 남겨 두고 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새 키스크 세워!” 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어디에요?” “서쪽 진입로 뒤! 기존 자리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잠시 뒤, 다른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이어졌다. “단장… 이번이 오늘만 다섯 번째입니다.” 단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키스크 하나를 세울 때마다 레기온의 재정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보급품. 마석. 수리비. 그리고 데바들이 다시 전장으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 전쟁은 사람의 피만 먹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은 레기온의 창고도 함께 비워 갔다. 하지만 키스크를 세우지 않을 수는 없었다. 키스크가 없으면 데바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데바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진입로는 무너진다. 진입로가 무너지면, 중앙 아티팩트는 마족의 손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아티팩트가 넘어가면, 오늘 전쟁에서 흘린 모든 피와 지금까지 부서진 모든 키스크는 아무 의미도 남기지 못한다. “세워!” 단장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단호한 목소리였다. “비용은 내가 생각한다.” 누군가가 마른웃음을 흘렸다. “그 비용도 결국 레기온 돈 아닙니까.” 그 말에 지휘실이 조용해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키스크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 세워졌지만, 그 대가는 결국 레기온 전체가 짊어졌다. 누군가는 전장에서 축복을 얻고, 누군가는 진입로에서 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부서진 키스크를 다시 세우기 위해 레기온의 창고를 비웠다. 단장은 수정구 위에 떠오른 새 키스크의 표식을 바라봤다. 작고 푸른 불빛 하나가 서쪽 진입로 뒤편에서 다시 켜졌다. 그 빛이 꺼지기 전까지, 또 몇 명의 데바가 돌아올 수 있을까. 또 몇 번의 죽음을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 밤이 끝날 때까지, 레기온은 몇 개의 키스크를 더 잃게 될까. 단장은 알지 못했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하나였다. 마족은 데바들을 쓰러뜨리는 것만으로 이 전쟁을 이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데바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리부터 하나씩 지워 나가고 있었다. 새 레기온 키스크가 세워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구 위로 낯선 빛 하나가 빠르게 흔들렸다. 정찰을 나갔던 데바의 신호였다. “단장!” 목소리는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마족 키스크를 찾았습니다!” 지휘실 안의 시선이 수정구로 모였다. 단장은 손을 멈췄다. “위치.” “늪지대 후미입니다.” 정찰 데바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키스크가 하나가 아닙니다.” 지휘실 안의 공기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처음에는 여섯 개로 보였습니다.” 그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안개가 걷히고 바위 능선 뒤편이 드러나자, 더 이상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났습니다.” 수정구 위로, 늪지대 후미를 가리키는 붉은 표식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바위틈마다. 검은 수풀 사이마다. 습지 위로 솟은 나무뿌리 뒤마다. 마족의 키스크가 꽂혀 있었다. 수십여 개.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몰랐다. 마족은 전선을 지키는 데바들보다, 쓰러진 데바들이 다시 돌아올 길을 먼저 만들고 있었다. 한 번 쓰러져도 돌아오고, 키스크 하나가 부서져도 다음 빛을 따라 되살아나고, 그렇게 끝없이 전선으로 밀려 나오는 것. 늪지대 후미는 더 이상 후방이 아니었다. 그곳은 마족 전체가 다시 숨을 들이쉬는 폐였고, 쓰러진 데바들이 끝없이 전장으로 돌아오는 심장이었다. 저 키스크들을 그대로 둔다면, 오늘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마족을 쓰러뜨려도 그들은 늪지대 후미에서 다시 태어나 중앙과 진입로를 향해 밀려올 것이다. 아무리 레기온 키스크를 세워도, 레기온의 재정이 먼저 바닥날 것이다. 단장은 수정구 위에 떠오른 시간을 바라봤다. 오 분. 중앙 아티팩트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남은 시간은 오 분뿐이었다. 단장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정구 위에는 늪지대 후미를 가리키는 붉은 표식들이 수십여 개 떠 있었다. 그 표식 하나하나는 마족 데바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모든 표식을 지우기 위해서는, 레기온의 데바들을 늪지대 후미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단장은 알고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레기온에 남는 것은 없다는 것을. 마족 키스크를 파괴해도 레기온의 창고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부서진 레기온 키스크를 다시 세우는 데 든 비용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늪지대 후미에서 피를 흘린 데바들에게 주신의 축복이 더 내려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들은 축복을 잃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쌓아 온 숙련도가 깎일 수 있었다. 전장에서 익힌 감각과, 수없이 싸우며 쌓아 온 기억의 일부마저 죽음과 함께 흐려질 수 있었다. 그 돌격은 레기온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돌격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전리품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원들의 이득을 위한 선택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천족이 이 전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마족이 끝없이 되살아나 중앙과 진입로를 짓밟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하나의 명분 때문에, 단장은 자신의 레기온 데바들에게 가장 불리한 자리를 명령해야 했다. 개인의 이득과 천족의 승리.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단장은 언제나 천족의 승리를 택해야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 승리는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손실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오늘 밤, 그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자신의 레기온 단원들이었다. 단장은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무거웠다. 누군가는 중앙에서 주신의 축복을 얻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티팩트의 균열을 두드리며 자신의 소지품에 보상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 레기온의 데바들은 그 축복을 얻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늪지대 후미로 들어가야 했다. 마족의 칼날 앞에서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숙련도와 축복과 기억의 일부를 잃고서도 다시 늪지대로 돌아가야 했다. 단장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었다. 보상도. 전리품도. 레기온의 재정에서 따로 돌려줄 수 있는 보상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명분뿐이었다. 천족의 승리. 그 명분 하나가 데바들이 잃게 될 축복과 시간, 그리고 피와 죽음의 값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단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명령은 내려져야 했다. 누군가는 이 선택을 해야 했고, 그 누군가는 단장이었다. 단장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수정구 위의 붉은 표식들이 그의 손끝 아래에서 흔들렸다. “전 레기온, 늪지대 후미로 진입한다.” 지휘실 안의 공기가 멎었다. “남은 시간은 오 분.” 단장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러나 그 어떤 외침보다 무겁게 지휘실을 짓눌렀다. “오 분 안에 늪지대 후미를 뚫는다.” 누군가가 숨을 삼켰다. 단장은 멈추지 않았다. “마족이 앞을 막으면 베어 넘긴다.” “키스크를 지키는 자가 있으면 밀어낸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난다.” 수정구 속 네 개의 희미한 불빛이 조용히 흔들렸다. “축복을 잃어도 된다.” “숙련도가 깎여도 된다.” “기억의 일부가 피처럼 흩어져도 상관없다.” 단장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그 낮은 목소리가 오히려 지휘실 전체를 짓눌렀다. “온몸이 찢겨 나가도 앞으로 간다.” “마족의 칼날에 쓰러져도, 다시 키벨리스크에서 일어나 늪지대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들어간다.” 누군가가 입술을 깨물었다. 단장은 수정구 위 붉은 표식 하나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키스크 하나를 부순다.” 두 번째 표식을 눌렀다. “또 하나를 부순다.” 세 번째. “그리고 그다음도.” 그의 손끝은 멈추지 않았다. 수십여 개의 붉은 표식 위를 천천히, 하나도 빠짐없이 지나갔다. “오늘 우리는 레기온을 위해 늪지대 후미로 들어가는 게 아니다.” 단장이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의 축복을 지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잠시 뒤, 그는 가장 아픈 진실을 입 밖으로 꺼냈다. “천족이 살아남기 위해 들어간다.” 그 말은 승리를 약속하는 말이 아니었다. 레기온의 데바들이 잃을 것을 알면서도, 그 희생을 요구하는 말이었다. “마족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곳을 찢어 버린다.” 지휘실 안의 데바들은 그제야 단장의 명령이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돌격 명령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무용을 기대하는 명령도 아니었다. 마족 키스크가 마지막 하나 남을 때까지, 누군가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쓰러지더라도, 끝내 늪지대 후미를 비워 두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단장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마지막 키스크가 꺼질 때까지 돌아보지 마라.” “누가 먼저 쓰러졌는지 세지 마라.” “누가 축복을 얼마나 잃었는지도 묻지 마라.”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마족의 마지막 부활빛이 꺼지는 순간까지.” “찢어 발겨라.” “마지막 하나까지.” 그 순간, 수정구 속 네 개의 희미한 불빛이 한꺼번에 늪지대 후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때 열 개의 포스가 별자리처럼 빛나던 수정구. 이제는 겨우 네 개뿐이었다. 그러나 그 네 개의 불빛은 더 이상 바람 앞의 불씨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레기온을 위해서도, 자신들의 축복을 위해서도 아닌, 천족이라는 이름 하나를 위해, 자신들이 잃게 될 모든 것을 알고도, 피와 안개와 죽음이 기다리는 곳으로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늪지대 후미의 마지막 붉은 빛이 꺼진 것은, 중앙 아티팩트가 모습을 드러낸 뒤 한참이 지나서였다. 마족 키스크 하나가 무너질 때마다, 늪지대의 안개는 조금씩 옅어졌다. 처음에는 어디에나 박혀 있던 붉은 빛이 바위틈에서 사라지고, 검은 수풀 사이에서 사라지고, 습지 위로 솟은 나무뿌리 뒤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마족의 마지막 키스크가 비명을 지르듯 갈라졌다. 붉은 수정 조각들이 늪지대 위로 흩어졌다. 잠시 뒤, 그 빛은 완전히 꺼졌다. 수정구 위에 떠 있던 붉은 표식들도 하나씩 사라졌다. 수십여 개였던 마족의 부활빛은 이제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늪지대 후미에 남은 것은 안개와 피, 부서진 키스크의 잔해, 그리고 끝없이 거칠어진 데바들의 숨소리뿐이었다.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누군가는 찢어진 갑옷을 붙잡은 채 키벨리스크에서 되돌아온 자신의 몸을 확인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손바닥 위에 남은 축복의 흔적을 바라봤다. 분명 조금 전보다 옅어져 있었다. 죽음을 몇 번이나 건너는 동안, 그들이 쌓아 온 숙련도와 기억, 주신의 축복은 조금씩 깎여 나갔다. 하지만 늪지대 후미의 붉은 빛은 꺼졌다. 마족은 더 이상 이곳에서 끝없이 되살아날 수 없었다. “전 레기온 인원!” 단장의 목소리가 늪지대 후미 전체에 울렸다. “늪지 아티팩트로 이동한다!” 숨을 고르던 데바들이 고개를 들었다. “도착 즉시 키스크를 설치해라!” 단장의 눈은 이미 늪지 아티팩트가 있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다.” “설치할 수 있는 모든 키스크를 세운다.” “늪지대를 틀어막는다!” 단장의 손이 수정구 위로 뻗었다. 그의 목소리는 레기온 지휘실을 넘어, 중앙 아티팩트에 모여 있던 데바들에게, 서쪽 진입로를 지키던 데바들에게, 중층 어비스의 전장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모든 천족 데바에게 전한다!” 수정구 너머, 전장의 모든 소리가 잠시 멎은 듯했다. “늪지 아티팩트의 마족을 몰아냈다!” “마족의 키스크는 모두 파괴됐다!” 그 말이 퍼져 나가자, 여기저기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단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놈들은 다시 올 것이다!” “키벨리스크에서 되살아나, 병력을 모아, 반드시 이 늪지대를 되찾으러 올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하지만 지금이 기회다!” “지금 늪지대를 틀어막을 수 있다면!” “오늘 밤, 천족은 중층 어비스의 세 전장을 모두 가져갈 수 있다!” 단장은 목이 터질 듯 외쳤다. “3:0이다!” “완벽한 승리다!” 늪지대 후미의 데바들은 그제야 단장의 의도를 알아들었다. 방금 전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축복과 숙련도, 기억의 일부를 잃어 가며 마족 키스크를 찢어발겼다. 그들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열어젖힌 길 위로, 천족 전체가 처음으로 완벽한 승리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단장은 다시 외쳤다. “주신의 축복이 간절한 것을 안다!” “아티팩트를 공략하고 싶은 마음도 안다!” “오늘 밤 얻을 수 있는 축복 하나가 각자에게 얼마나 절실한지도 안다!” 그의 목소리가 잠시 낮아졌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은 더 깊고 단단하게 전장에 박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늪지 아티팩트로 달려와 달라!” “천족의 이름으로!” “우리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마족에게서 빼앗긴 길을, 우리 손으로 끝까지 틀어막기 위해!” “늪지대로 와라!” “키스크를 세워라!” “그리고 오늘 밤!” “천족의 발버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자!” 늪지 아티팩트 주변에는 푸른 빛이 하나둘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개였다. 진입로 가장 안쪽, 마족이 다시 밀려올 때 가장 먼저 부딪힐 수밖에 없는 길목에 레기온 키스크 하나가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 푸른 수정의 표면이 낮게 울렸다. 쓰러진 데바들이 다시 전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 레기온이 늪지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왼쪽 수풀 뒤에도 하나 더!” “아티팩트 동쪽 바위벽 아래! 키스크 설치!” “후미 진입로는 비워 두지 마라! 되살아난 데바들이 바로 합류할 수 있게 길을 열어 둬!” 단장의 명령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늪지 아티팩트 주변에는 레기온 키스크가 하나씩, 그리고 또 하나씩 세워졌다. 검은 습지 위로 솟아오른 푸른 불빛들. 바위틈마다. 안개가 짙게 깔린 수풀 사이마다. 마족이 다시 밀려들 길목마다. 레기온의 키스크가 늪지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마족의 붉은 빛이 숨 쉬던 땅은, 이제 천족의 푸른 부활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키스크를 세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설치된 키스크 주변에 방어선을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찢어진 갑옷을 대충 묶은 채, 다시 무기를 쥐고 늪지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축복도. 숙련도도. 기억의 일부도. 그러나 단장은 멈추지 않았다. “서쪽 키스크 세 개 더!” “진입로 바깥쪽까지 넓혀라!” “첫 번째 방어선이 밀리면 두 번째 키스크 지점까지 물러난다! 그 전에 놈들을 최대한 끊어!” 수정구 위에 떠오른 푸른 표식은 계속 늘어났다. 하나. 열. 스무 개.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빛. 늪지 아티팩트는 어느새 푸른 별무리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단장은 전 천족을 향해 늪지 아티팩트 지원을 요청했다. 늪지를 틀어막을 수 있다면 중층 어비스에서 완벽한 승리를 가져갈 수 있다고. 천족의 이름으로, 오늘만큼은 늪지로 달려와 달라고. 그러나 단장은 그 외침에 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올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주신의 축복은 누구에게나 절실했다. 중앙의 유물 앞에서 축복을 쌓는 일은 늪지의 진흙 속에서 키스크를 세우는 일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훨씬 분명한 이득이었다. 단장은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지원군이 올 것이라는 희망 위에 방어선을 세울 수 없었다. 지금 늪지에 있는 것은 레기온의 데바들뿐이었다. 그것으로 버텨야 했다. 마족은 반드시 돌아온다. 키스크를 모두 잃은 이상, 그들은 더 많은 데바를 끌어모아 이 늪지대를 되찾으려 할 것이다. 수십 개의 푸른 키스크가 늪지대의 어둠 속에서 낮게 빛났다. 단장은 그 불빛들을 하나씩 훑었다. 어디가 먼저 뚫릴지. 어디에 병력을 더 세워야 할지. 키스크가 부서지면 어느 길로 다시 세울지. 데바들이 몇 번까지 쓰러질 수 있을지.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음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동쪽 키스크 설치 완료!” “서쪽은 두 개 더 필요합니다!” “후미 쪽 재정비 끝났습니다!” 보고가 쏟아졌다. 단장은 정신없이 전장을 훑었다. 키스크의 위치. 진입로의 빈틈. 늪지 아티팩트 주변의 방어선. 그리고 마족이 돌아올 길.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빠르게. 그때였다. 단장의 손이 멈췄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수정구 위의 표식도, 데바들의 보고도, 늪지대 아래에서 울리는 함성도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감각이 천천히 기어 올라왔다. 소름이었다. 단장은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늪지대의 안개가 짙어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검은 점들이었다. 하나. 둘. 열. 그리고 순식간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검은 점들이 늪지대 상공을 뒤덮기 시작했다. 검은 날개. 마족 데바들이었다. 그들은 늪지대 후미에서 되살아난 자들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키벨리스크에서. 다른 전선에서. 천족이 늪지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마족들이었다. 수백 개의 검은 날개가 달빛을 가렸다. 늪지대 위에 세워진 수십 개의 푸른 키스크가 그 그림자 아래에서 작아 보일 만큼. 단장은 하늘을 올려다본 채, 아주 짧게 숨을 멈췄다. 마족은 돌아왔다. 생각보다 빠르게. 생각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늪지대에는, 아직 레기온의 데바들뿐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날개가 늪지대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수백의 마족 데바가 푸른 키스크가 솟아오른 늪지 아티팩트를 향해 일제히 날개를 접었다. 그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늪지대는 다시 피로 잠길 것이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장… 너무 많습니다.” 수정구 위의 푸른 표식들이 검은 그림자 아래에서 작게 흔들렸다. 방어선에 선 데바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첫 충돌에서 많은 이들이 쓰러질 것이다. 두 번째 충돌에서는 더 많은 축복이 사라질 것이다. 몇 번이고 되살아나야 할 것이고, 몇 번이고 숙련도와 기억의 일부를 전장에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단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늪지대를 뒤덮은 검은 날개를 올려다보며 마치 하늘 전체를 향해 외치듯 소리쳤다. “괜찮다!!” 그 한마디가 늪지대의 안개를 갈랐다. “우리에게는 키스크가 있다!” 단장은 수십 개의 푸른 빛을 가리켰다. 바위틈마다. 수풀 사이마다. 진입로와 아티팩트 주변, 늪지대 깊숙한 곳까지. 레기온의 키스크는 푸른 불꽃처럼 늪지 전체에 박혀 있었다. “놈들이 우리를 베어 넘길 것이다!” “우리는 쓰러질 것이다!” “축복을 잃을 것이다!” “기억도, 숙련도도, 우리가 쌓아 온 것들 일부를 잃게 될 것이다!” 단장의 목소리는 명령이라기보다 절규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끝나지 않는다!” “쓰러지면 키스크에서 다시 일어난다!” “다시 무기를 쥔다!” “그리고 다시 늪지대로 달려간다!” 마족의 선두가 늪지대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날개가 바람을 찢었고, 차가운 그림자가 데바들의 머리 위를 덮었다. 단장은 마족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달려가라!!” 그 외침에 늪지 입구를 지키던 데바들이 움직였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 단장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하지만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첫 번째 마족 데바가 땅을 밟았다. 그 뒤를 따라 검은 날개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단장은 목이 찢어질 듯 외쳤다. “키스크에서 다시 일어나라!” “다시 달려가라!” “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라!!” 푸른 키스크의 불빛들이 늪지대 곳곳에서 한꺼번에 타올랐다. “마족이 마지막으로 물러날 때까지!” “늪지 아티팩트를 빼앗기지 마라!” “오늘 이곳에서, 천족의 길을 막으려는 놈들을 끝까지 붙잡아라!!” 그리고 마침내, 푸른 부활빛과 검은 날개가 늪지대 한가운데에서 충돌했다. 전투는 아비규환이었다. 수많은 마족의 칼날이 늪지대의 안개를 찢고 쏟아졌다. 푸른 키스크 주변을 지키던 데바들은 첫 충돌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둘 쓰러졌다. 누군가는 검은 창에 가슴을 꿰뚫렸고, 누군가는 날개를 접고 급강하한 마족의 칼날에 온몸이 찢겨 나갔다. 늪지대의 검은 물은 피와 부서진 갑옷 조각으로 뒤섞였다. 그러나 쓰러진 데바들은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았다. 숨이 끊기는 순간, 그들의 몸은 푸른 빛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가까운 레기온 키스크 앞에서 다시 눈을 떴다. 정신을 가다듬을 틈도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것은 마족의 함성과, 무너지는 방어선의 비명과, 단장의 목소리였다. “동쪽 키스크 지켜!” “서쪽 방어선 밀린다!” “다시 들어가라!” 데바들은 아직 몸이 완전히 되돌아오기도 전에 무기를 움켜쥐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소지품에 남아 있던 주신의 축복 일부가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는 머릿속 어딘가가 텅 빈 듯한 감각에 잠시 눈을 감았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기억하던 전투의 흐름이, 희미한 안개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오래 멈추지 않았다. 키스크에서 눈을 뜬 데바들은 곧장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늪지대 위를 뒤덮은 검은 날개를 찾았다. 마족은 여전히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푸른 키스크를 향해. 늪지 아티팩트를 향해. 그리고 자신들이 겨우 열어젖힌 천족의 길을 다시 짓밟기 위해. 데바들은 다시 달렸다. 방금 전 자신을 찢어발겼던 칼날을 향해. 방금 전 자신을 쓰러뜨린 마족을 향해. 축복을 잃은 손으로. 숙련도가 깎여 나간 몸으로. 기억의 일부가 흐려진 머리로. 그럼에도 다시 무기를 들고, 검은 날개를 향해 달려 나갔다. 한 명이 쓰러지면, 푸른 키스크 하나가 빛났다. 두 명이 쓰러지면, 다른 키스크가 또 빛났다. 마족은 데바들을 베어 넘겼고, 데바들은 다시 살아나 그 마족을 향해 되돌아갔다. 그날 늪지대의 전투는 누가 더 강한지를 겨루는 싸움이 아니었다. - 누가 더 오래, - - 자신이 잃어 가는 것을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싸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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