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을 짜면서 생각해본.. 고민을 상당히 많이 하게 될 것 같은 부분 중의 하나가 12부라고 생각했었지요.

 

예상대로 여기서부턴 건드리기가 상당히 복잡해지더군요..후우 일단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대클을 탄 5월 21일부터 한번 주절거려 보도록 하지요

 

패치가 6월 중순에 이루어진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다들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때였습니다

 

패치 내용 중 '투자로 인한 점유율 변동폭의 제한'과 '오스만 망명' 그리고 '수에즈 운하'가 가장 큰 내용이었습니다.

 

뒤의 둘은 뭐 서버 정세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만..앞의 점유율 변동폭의 제한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지요

 

간단하게 말해서 '패치 직전에 점유율차이 개처럼 벌려두면 뒤에 수복하기가 힘들어진다' <- 이거죠

 

이당시 국가별 전략을 간단하게 언급해보자면..

 

폴투 , 에습 : 그냥 불구대천의 원수마냥 두캇전이 24시간 발생합니다(나폴리 마술리 리우)

 

네덜 : 6월달 패치 전 약 3주간의 휴식기를 가지고 다들 자기 할일을 합니다, 수에즈 칙명에 모든 힘을 쏟기 위해서죠

(정의 , 아레스 길드가 넘어왔으나 6월달부터는 투자전이 현저히 줄어드는 북해입니다)

 

잉글 : 네덜이 투자를 멈추자 넘쳐나는 두캇을 주체하지 못하는 두캇포화상태 정도라고 볼 수 있겠군요

(잉글 몇몇 유저들이 하바나 발전도 투자를 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지요)

 

프랑 , 베네 : 베네치아가 칙명을 하던 5월 중순경은 프랑스의 독주나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칙명을 끝내고 재정비한 베네치아의 반격으로 5월 말은 프랑 - 베네가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동지중해는 베네, 서지중해는 프랑의 구도였지요)

 

저때 저도 정말 개처럼 돈을 벌러 다녔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주금 3탐 , 점심먹고 쉬엄쉬엄 리우금 3탐 , 소화시키면서 툼바가, 저녁먹고 육메 2회, 심야 핑다 or 잉로

 

저거 대충 3주간 반복했습니다 아 진심 저짓은 태어나서 한번은 해봐도 두번은 하면 안되는 짓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힘들게 모은 돈을 투자전하느라 소모하는걸 보면서 든 생각은

 

'모든 돈은 교역소주인에게서 나와서 도시관리에게로 돌아간다'와 '매니아는 두캇인출기' 였지요

 

모험가였던 저도 두캇전쟁에 휩쓸렸던 시기니 폴투 - 에습 1:1 구도에선 박진감 넘쳤던 시절이었던듯 합니다.

 

다음 내용은 어떻게 써야 할지 참 고민을 많이 한 부분입니다만.. 에습 - 잉글랜드 대해전 이야기입니다.

 

이전부에서 언급했다시피 자메이카 대해전은 '할 곳이 없어서 그냥 어쩔수 없이 하게 된'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야말로 친선 대해전이었지요. 너도 나도 즐겁게 공적을 노나먹는 대해전.

 

근데 이 친선이란 의미를 받아들이는 입장이 에습과 잉글에 차이가 있었다는게..문제가 됐지요.

 

썹 초반부터 플레이하신분들은 아시겠지만..대투와 대해전에 에습이 끼지 않은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경우 자메이카 대해전이 최초의 대해전이었습니다. 다들 열정을 가지고 대해전을 준비했지요.

(처음 하는 대해전 + 옵션으로 대해전 작위)

 

산전수전 다 겪은 동네랑 처음 하는 동네랑 당연히 같은 물건을 봐도 보는 시각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양국간의 친선을 바라보는 시선을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에습 : 친선이니 끝까지 할건 없고 공적 비가산때까지만 공격하자, 잉글 : 친선이니까 재탕 삼탕은 좀 덜하겠지

 

뭐 첫날부터 '친선 대해전'은 8:45 heaven 했지요.. 첫날은 에스파냐의 대승으로 끝났습니다.

 

잉글랜드분들이 이를 악물고 다음 대해전 준비하셨던걸로 기억합니다.. 둘째날은 잉글랜드의 승리였지요.

 

문제는 3일차에서 터졌습니다.. 에스파냐 정예팟에 잉글 한 팟이 제대로 썰렸는데요.

 

에습팟에서 어떤분이 일챗으로 방사를 했다고 합니다(나잡아봐라 <- 였던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대해전하면 다들 감정 격해지는건 아실겁니다. 저게 장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거죠 잉글입장에선.

 

여튼 대해전이 끝나고 잉글랜드 큰손 유저 한분이 카리브에 공투를 감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이었기에

 

저당시에는 저 문제가 그다지 커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그 유저분도 평정심을 되찾으셨죠.

 

하지만 저렇게 일단락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만.. 기존 잉글에서 사금무역을 하던 사람들,

 

그리고 에스파냐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점점 뭉치기 시작합니다.

(저때부터 카리브와 관련된 잉글 - 에습간 비화가 몇개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되면 중간중간 이야기가 나올듯 하네요)

 

5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듯 하네요. 13부부터는 2009년 6월 내용을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p.s.1. - 전 대해전 하면서 '너넨 그냥 샌드백이야' , '꼬우면 더 끌고와서 덤비던가' 소리듣고 3일동안 100탕도 당했..

 

p.s.2. - 잉글에서 망명온 저로써는 잉글에 지인이 상당히 많을 수 밖에 없었죠. 분쟁 막느라 힘들었어요.

 

            에습에서도 나름 위치가 있고..잉글에는 인연이 많고..심적으로 가장 부담스러웠던 시기였던거 같아요

 

            제가 훈련소 안가고 계속 중재하고 있었으면 잉글 - 에습이 지금 어떻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솔직히 언젠간 터질 일이라 싸움은 대판 터졌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