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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2 19:11
조회: 2,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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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재탕]대항해시대의 서막-베네치아게시판이 썰렁하니 씁쓸하군요..ㅋ 예전에 조선만랭 찍는동안 끄적대던거 다시 올려봅니다 저도 올드유저인지라.. 제가 올렸던 글들이 사라지고 있네요..ㄷㄷ
-------------------------------------------------------------------------------------- 베네치아 공화국의 탄생 서기697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초대 도제가 선출되면서 베네치아가 사실상의 공화국 선언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는 비잔틴 제국의 한 항구도시에 불과했고, 국가의 모습을 갖추는 것은 10대 도제인 파르테치파치오때 말라모코에서 리알토 지역으로 터를 옮기게되면서부터 입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발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십자군 원정이후 유럽-아시아 무역...의 주역은 바로 베네치아입니다. 아시아의 향료와 직물은 유럽에서 매우 비싸게 팔렸고, 비단 한필당 금 한덩이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갤리선의 도입 중계무역은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 또한 쉬운일만은 아니었습니다. 태풍을 만나면 거래는 물론이고 선박의 안전조차 보장받기 어려웠지요. 태풍보다 무서운것은 바로 해적!!
큰 피해를 입고있던 베네치아 정부에서는 해군의 주력군함인 갤리선을 개조하여 상선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우선 선원이 많다보니 인부들에게 칼이나 총만 쥐어줘도 백병전에서는 우위를 점하는 것이겠죠... 갤리는 기동력 또한 뛰어나서, 안습한 아드리아해의 역풍을 뚫고 무역하는 베네치아 상인들에게 큰 힘이 되어줍니다. 갤리의 발전과 함께 베네치아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대표선박-갤리스/갈레아스/갈레아차
범선과 갤리선의 특징을 합해서 만든 선박으로 바리스타(잡종) 이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16세기후반 베네치아 해군이 고안한 선박으로, 길이45m 폭10m , 흘수선부터의 높이가 10m에 이르는 대형선박입니다. 백병용이 아닌, 포격전을 목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노잡이는 포실아래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뱃머리의 포대는 합계 10문의 대포가 마스트방향을 제외한 270도 전체를 사정권 안에 두었고, 좌우현, 선미쪽에도 대포가 장착되어 배 전체가 포대라 해도 좋을 정도였지요.. 승무원은 인부를 포함하여 4~500명 정도가 탑승하였습니다.
갤리스의 단점은 기동력이었는데, 혼자서 움직이기가 힘들어 다른선박으로 전장까지 예항하여 사용한 경우도 있다는군요..
오스만과 지중해 패권을 다투었던 레판토 해전에 출전한 갤리스는 6척이라고 합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쇠퇴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함께 베네치아는 쇠퇴하게 됩니다.
베네치아가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을 무렵에는 프랑스는 본국의 일에 힘들 쏟고 있었지만 프랑스 국내가 안정되고, 베네치아의 상선대를 무력으로 제압하면서 지중해의 주도권은 조금씩 프랑스로 넘어갑니다.
또한 교역품들과 함께 딸려온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20만의 베네치아 인구는 10만으로 줄어듭니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오스만투르크는 전 유럽과 맞먹는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 제국의 옆에붙은 쪼그마한 공화국이 무사할리가 없겠죠... 베네치아 상선대의 길목인 에게해를 봉쇄였고, 에게해를 지나간다 하더라도 이슬람 해적과 오스만 해군이 가만 둘리도 없겠죠....
오스만 제국의 등장으로 전 유럽이 신항로를 개척하는 때에.. 베네치아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갤리선의 쇠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그 뒤로 대충 설명하자면... 대충대충 살아가던 베네를 나폴레옹이 점령하고... 오스트리아 통치하에 있다가 이탈리아 왕국에 통합되어서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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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나나나나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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