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파판을 처음 해본건 한섭 오픈 초기 신생시절
새벽에 피방에서 친구랑 새 게임 나왔다고 해보자고 시작했던 게임.
초반엔 빠져서 하다가 토토라크 수면감옥에서 기절하고 귀신같이 접었음. 첫 던전은 처음 만나는 던전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토토라크에 와선 도저히 버티기 힘들었음.

그리고 잊고 지내다가 몇 년 뒤 네이버 메인에 뜬 창천의 이슈가르드 광고를 보고 다시 한 번 해볼까 싶어 시작했던 당시 율동 현역시절이었다. "Rpg의 귀족은 힐러지" 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백마를 잡았고 그 때 당시 5초쿨에 켜지면 힐이 젬병되는 오리지날 성전에 감명받아 나름 재밌게 레벨링했다.

문제는 56렙 던전 교황청부터 시작됐다.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던 잡몹의 수와 데미지 출렁이는 탱커 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당시 암기와 거축을 손에 꼭 쥐고있던 나...
그 이유를 구브라 도서관에 가서야 한 딜러분이 말해줘서 알았다.
50렙 이후에도 잡스킬이 계속 있다는 사실을...
당시 새싹을 달고있던 나는 잡스킬의 존재를 몰랐다.
RPG를 하면 메인퀘만 보고 달려가고 단 하나의 서브퀘도 깨려하지 않았던 나는 거축 이후로 잡스킬이 없었다...
애초에 그땐 스킬창에 52~60렙 잡스킬이 불이 꺼진 채 라도 보여지지 않았고 진짜 감춰져 있으니 진짜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60렙을 찍은 나
마나 커터를 터덜터덜 타고다니며 석판도 모아서 장비도 맞춰보고 채작도 깨작깨작 건드려보고 온갖걸 다했던 기억이 있다. 그냥 그땐 뭘 하던 재밌던 시기.
아직도 기억에 남는건 극 나오라 토벌전, 당시 현역인 토벌전이기도 했고 후반부에 나오는 장판퍼레이드는 라바나까진 그럭저럭 쉬운편이었지만 얜 진짜였다.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그때의 브금과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처음 들어갔던 자유부대가 <<버프>>였다. 아직도 계시는지 모르겠는데 부대장이셨던 비버두목님께 빌어먹게 신세 많이 졌다.
당시 채집이 돈이 된다는 소식을 부대장님께 전해들은 나는 채집60을  찍고 녹나무가지를 하루에 1200개씩 캤다. 전부 다 팔거나 부대장님한테 싸게 넘기며 뉴비땐 만져볼 수 없었던 큰 돈을 만지게 되었고 채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유부대 집앞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 채작을 했고 <<독보적인 채작가>> 타이틀을 따고 참 좋아했었다.

그리고 동시에 천동 영식 레이드도 맛을 봤다. 김빠진 사이다 같았던 일반 레이드와는 다르게 적당한 난이도와 긴장감이 재밌었다. 그리고 이때는 죽었다 레이즈로 부활하면 탈진이었나 디버프가 붙었는데 최대체력감소가 붙어서 중첩되면 30%가 깎여나갔던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한두번 죽고나면 진짜 툭맞고 쓰러지는 유리몸이 되어버려서 힐러가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땐 힐러 마나가 절실해서 기공이나 음유를 참 좋아했다. 음유님 제발 노래켜주세요! 레이즈 한 두번 땡기면 마나관리가 진짜 빡세졌다.

그리고 오랜 기간 끝에 업데이트된 홍련, 처음 맞이한 확팩이었고 스토리는... 창천에 비하면 김새긴 하는데 게임 재미는 창천보다 재밌어졌다. 수영도 생기고~ 수중던전도 이쁘고 백호토벌전에서 칼막는것도 재밌었다. 이 때부턴 친구들한테 영업도 많이 했다. 많은 친구들이 왔다갔지만 결국엔 아무도 남지 않아서 김빠지긴 했었다.

홍련와서는 기억엔 탱커가 너무 없었던 기억이 있다. 파티모집을 켜면 항상 힐힐 딜딜딜딜은 차있는데 탱커는 거의 멸종수준이던 시기. 이유는 딱히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그때 탱커가 맡아서 하는 기믹들과 주차에대한 부담때문에 다 탱커를 하기 꺼려하던 시기였던거 같다.
그래서 나이트를 키우기 시작했고 결국엔 나이트를 키워 시그마 영식에 도전하게 된다. 어느때나 똑같이 1~2층은 너무나 쉽게 깨버렸다.
문제는 3층에서 시작되는데...

당시 기억에 3층이 기믹이 참 많기도 했고 순간순간 긴장을 놓지 말아야하는 순간들이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탱커도 탱교대도 하고 쫄몹 어그로도 끌어왔어야 하고 그때 딜러 1명에게 미사일이 꽂히는 기믹이 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거 또 감싸기로 케어도 해주고 참 바쁘게 움직였는데 그거완 별개로 며칠째 깨질 못했다. 그렇게 지쳐가던 찰나 인벤에서 공대를 구하는 글을 보고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인생 첫 고정공대. 진도는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착해서 1층부터 같이 트라이 해주었고 3층까진 빠르게 왔다. 가물가물하지만 기억이... 전나 백학 용음흑솬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중간에 흑마가 태도와 실력이슈로 추방당하긴 했지만 좋은 공대였고 음유랑 솬사랑 셋이서 친해져서 매일같이 놀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솬사님 닉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다. 뒤틀린 황천의 최룡해였나 그랬던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4층 후반부 갓프카까지 깼다. 그 때  깨고 나서의 그 노란 하늘이 기억에 아직도 남았다. 그리고 절바하가 나와서 시도해봤으나..!
발 한 번 스윽 담궈봤더니 매워서 호다닥 도망갔다.

그리고 나왔던 에우레카도 맛봤고
이때와선 약간 게임이 하루의 일부가 되어서 할 일 없어도 그냥 키고 마을에서 뛰어다니고 그랬다. 그리고 공대 음유랑솬사님이랑 친해져서 정든 버프 부대를 떠나고 카벙클에서 톤베리 섭으로 옮기게 되었다.

톤베리섭으로 옮기고 나선 딱히 길드도 없어서 림사나 기라바니아 장터게시판 앞에 앉아서 쓱싹쓱싹 만들어팔기도 하고 지나가다 뉴비 보이면 100만길씩 쥐어주면서 열심히 하라고 응원도 해주고 NPC처럼 지냈다.

그러다 내가 한창 예민해지던 시기가 있었다. 내 현생에 먹구름이 끼던 시기였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괜한 심술에 같이 놀던 좋은 사람이었던 음유와 솬사를 멀리했고 그리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그렇게 정처없이 혼자 떠돌다 칠흑이 나오기 전 게임을 접게 되었다.

칠흑이 나온시기 스토리를 밀기도 했지만 정말 찍먹이었다.
그래도 전엔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땐 정말 혼자였기 때문에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이후로는 피방에 가끔 가게 되면 추억에 한 번 켜보는 그런 게임이다.
약 3년이라는 시간이었고 추억이 참 많았던 게임이다.
나는 지금은 로아를 하고 있지만 가끔 생각날때가 있다.
여러모로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내 닉네임은 <<징징대면 성전안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