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바레시

Franco Bare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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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포지션:SW

키:​177cm

생일:​1960년 5월 8일

​별명:피스치느

​주요 클럽:​AC 밀란

​선수생활 기간:AC 밀란 (1977-97​)

  

​클럽 커리어

     

 AC 밀란 719경기 33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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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 6회

이탈리아 세리에B 우승 2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4회

유로피언컵 우승 3회

UEFA 슈퍼컵 우승 3회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2회

 

​국대 커리어

  

​82경기 2골

 

1980 유럽 선수권 대회 4강

1982 FIFA 월드컵 우승

1988 유럽 선수권 대회 4강

1990년 FIFA 월드컵 3위

1994년 FIFA 월드컵 준우승


개인 커리어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1회

1989 발롱도르 2위

1990년 FIFA 월드컵 올스타팀

이탈리아 세리에A 올해의 선수상 1회

AC 밀란 영구결번 6번

FIFA 100 지명



​상처입은 밀란을 짊어지고

   
 
어려서부터 축구에 재능이 있던그는 1974년 처음으로 형인 주세페바레시를 따라서 인터밀란에 입단테스트를 보러갔으나 형은 붙고 그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불합격한다. 그러나 밀란의 레전드 리드홀름에 눈에 띄어 라이벌팀 밀란으로 입단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며 18살에 77-78시즌 첫 데뷔전을 가진다. 그리고 그 다음시즌은 팀의 사실상 모든 경기를 소화하며 19살만에 주전으로 자리매김과 함께 첫 스쿠데토를 들어올린다. 그렇게 계속 승승장구할것 같았으나 팀이 승부조작에 연루된것이 밝혀지며 팀은 세리에B로 강등된다. 80-81시즌을 세리에B에서 맞이한 밀란은 이미 중요선수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갈쯤이었다. 그래도 바레시는 끝까지 팀에 남아 타소티 등과 함께 팀을 다시 세리에B우승과 함께 1부리그 승격으로 이끈다. 그러나 이미 팀의 상태는 재기불능수준이었고 1부리그에서도 또 다시 강등된다. 두 번의 강등에도 계속 팀에 남아있는 바레시를 여러 빅클럽에서 데려가려고 노력했지만 그 스스로가 그런 제의들을 거절하고 팀에 남아 주장완장을 찬다. 그렇게 몰락의 길을 걷나 싶었으나 1986년 베를루스코니라는 재벌이 밀란을 매입한다. 
   
 
밀란 제너레이션의 캐피탄
   
      
베를루스코니가 오기 전 상황은 굉장히 참담했다. 60-70년대를 주름잡았던 팀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안좋은 성적을 보여주며 중위권 아니 하위권에서도 강등만 안 당할정도로 겨우 1부리그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팀을 살리려 폭풍영입을 시도했고 도나도니,반바스텐,굴리트 그리고 레이카르트 등의 선수들이 보강되었다. 그리고 당시 감독이었던 그리고 바레시를 유스에서 키운 리드홀름을 경질시키고 이리고사키를 감독자리에 앉혔다. 역대급스쿼드와 역대급 감독은 성적에 보답을 했고 '네덜란드삼총사'가 온 87-88시즌에 두번째 스쿠데토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그 다음시즌인 88-89시즌에는 수비라인에 말'바'코타와 '네덜란드 삼총사'가 제대로 가동되며 유로피언컵을 우승 그 다음시즌도 유로피언컵 우승 2연패에 성공한다. 특히 88-89와 89-90시즌에는 각각 50경기와 46경기를 소화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고 1989년에는 반바스텐에 이은 발롱도르 2위를 수상한다. 갑자기 사키가 부진하기 시작했으나 바로 카펠로감독이 자리를 매꾸었고 93-94시즌 다시 챔피언스리그우승을 하며 명실상부한 유럽최고의 클럽이라는것을 보여줬고 은퇴시즌까지 꾸준히 활약하며 1997년 현역은퇴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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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리의 작지만 큰 리베로

   

       

그의 첫 메이저대회는 유로80이다. 그러나 출전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20살이라는 적은 나이와 당시 최고였던 가에타노 시레아가 주전자리를 꿰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82월드컵 역시 자국이 우승하기는 했지만 바레시의 활약은 없었다. 이 후 90월드컵 전까지는 팀의 수차례의 예선탈락으로 별 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90월드컵에서는 수비라인에 베르고미-페리-바레시-말디니로 이어지는 역대 최강의 수비라인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 수비라인은 517분 무실점기록을 이어가지만 마라도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1골을 내주며 승부차기로 가서 도나도니의 실축으로 패배한다. 아쉬웠던 90월드컵이 끝나고 94월드컵이 찾아왔다. 94월드컵은 이전월드컵처럼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커녕 조별예선도 통과하기 힘들었다. 바레시는 조별예선에서 부상까지 당하며 최악의 상황을 겪지만 코스타쿠르타와 말디니의 혼신을 다한 우주방어,바죠의 크레이지모드로 결승에 진출한다. 결승상대는 호마리우의 브라질이었다. 바레시도 이 때 마침 부상에서 복귀했다. 복귀 했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코스타쿠르타는 카드누적으로 못나왔기 때문에 부상에서는 완전히 복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레시는 적응력 그런것 필요없이 호마리우와 베베토를 싸잡아 묶으며 코스타쿠르타의 공백을 완전히 메꿨다. 이번엔 둘다 승부를 내지 못해서 승부차기로 가지만 첫번째 키커로 나간 바레시가 실축하고 마지막 키커 바죠의 실축으로 아쉬운 준우승을 한다. 잘모르는 사실은 바죠의 실축때문에 묻혔지만 바레시 역시 승부차기를 실축했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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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타일 및 평가

    

​바레시의 별명 '피스치느'는 이탈리아어로 '작은'이라는 뜻이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입단테스트에서 떨어질 정도 였으니 그의 신체적한계가 수비로써는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대인마크나 태클능력이 역대급은 아니고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수비라인조절,커팅능력 그리고 특히 타이밍을 봐서 한번에 끊어내는 능력은 역대급이었다. 패스,슛팅,드리블 모두 수준급이었다. 94월드컵 결승은 그의 소름끼치는 수비력을 설명하는 영상이다. 유튜브에 치면 그의 선수시절 스페셜 영상보다 더 위에 있는게 94월드컵 볼터치. 바레시는 직접 볼을 잡고 경기를 흔드는 스타일을 아니었지만 하프라인까지 넘어가며 공격가담할때는 별다른 드리블스킬없이도 툭툭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코파이탈리아에서는 득점왕도 하는것을 봐서는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기회가오면 놓치지 않았다는것도 알 수 있다. 이는 수비에 치중하지는 않고 수비와 공격 둘다 적절히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밀란에서 그의 등번호 6번은 현재 영구결번이 되었으며 밀란에 유일한 2개의 등번호는 말디니와 바레시다. 밀란에는 수많은 선수들이 있지만 이 둘만 영구결번이 되어 있는것으로 봐서는 말디니에 버금가는 밀란과 아주리의 유일무이한 선수였을것이다.

   
 

"마크할 수 없는 선수가 나타났을 때 은퇴할것이다."

- 프랑코 바레시 -

 

 

 

저번 글과 같이 제 블로그에서 수정없이 가져왔습니다. 때문에 오타가 있을 수도

http://blog.naver.com/avec3525/220675181986

바비무어와는 말이 많지만 저는 무어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혹시 궁금한점이 있으시면 댓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