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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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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 “축구에 감사하다” 중 -1![]() 나는 항상 시티에서 내 동료들에게 말한다. 나는 영국식 영어가 아닌 미국식 영어로 말한다고. 걔들은 나를 정말 많이 놀린다. ㅎㅎ '힙하다' 라는 것 때문인지 옷입는 걸로 자주 놀린다. 가끔은 내가 말하는 방식 때문에 놀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다. 사실 나는 맨체스터나 런던에서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 미국 코네티컷 주의 숲 속에서 배웠다. 그래서인지 난 미국식 영어가 편하다. ‘아이노우~, 매앤~. 헤이요~. 하우유두잉?, 브로?’ (대충 이런 식으로..) 알다시피, 우리 가족에게 교육은 정말 중요했다. 아버지는 내가 1년 동안 미국 고등학교에서 교환 학생으로 지내길 원하셨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내 꿈 때문에 그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내가 14살이 됐을 때, 코네티컷 숲 속 한가운데에 있는 여름 캠프에 갔다. ‘코네티컷’이라는 이름 자체도 마드리드에서 온 아이에게는 엄청 이상하게 들렸다. 근데 도착했을 때 마치 할리우드 영화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호숫가 캠프에서 나무로 만든 카누를 타고, 나무를 타고 오르며, 텐트에서 자고, 나무 막대로 불을 붙이는 그런 영화 있잖아? 진짜 그랬다. 마시멜로와 비스킷을 불에 구워 먹는 것도 했다.. 초콜릿이랑 같이 ㅎㅎ 스모어! 정말 끝내줬다. 핸드폰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었다. 새로운 나라에서 혼자 친구를 사귀려고 했다. ‘안녕, 나는 로드리고야. 나는 마드리드에서 왔어.’ 나는 항상 서툰 영어로 말했다. ‘얘들아, 우리 축구 언제 할거야?’ ‘그래, 로드리고. 좀 이따가 할 거야. 우린 돼지 가죽(럭비공)을 던질 거야.’ 난 생각했다. ‘돼지 가죽??’ ‘브로, NFL 같은 거야.’ 솔직히 말해서, 꽤 재밌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했다. ‘얘들아, 나 축구(soccer)하고 싶어.’ ‘사커? 사커는 안해, 매앤~.’” 더 안 좋았던 건 내가 2010년 월드컵이 시작되던 시기에 거기 있었다는 거다. 인터넷도 확인할 수 없어서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메인 오두막 사무실에 작은 컴퓨터가 있었는데, 매일같이 캠프 직원들에게 누가 이겼는지 물어봤다. 스페인이 첫 경기에서 스위스에게 졌다고 했을 때, 그들이 나를 놀리는 줄 알았다. ‘스위스? 진짜로요?? 제대로 구글링 한 거 맞아요???’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서 스페인은 점점 더 잘하기 시작했다. 토너먼트에서 계속 이기고, 독일과의 준결승이 다가왔을 때 난 미칠 지경이었다. 아마도 그때 카누 여행 중이었을 거다. 계속 직원에게 ‘제발, 제발 점수 좀 확인해줘요’라고 부탁했었다. 마침내 우리가 오두막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해줬다. ‘스페인이 결승에 진출했어.’ 난 그때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동시에 집이랑 가까이 있는 기분이었다. 결승전을 보기 위해 직원에게 그의 컴퓨터로 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빌려준 컴퓨터는 10인치 정도 되는 화면이었다. 당신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 작은 노트북 있잖아? 딱 그거였다. 정말 작았다. 하지만 난 생각했다. ‘아름답다. 상관없어. 그냥 보게만 해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숲 한가운데 있었으면서도 합법적이지 않은 스트리밍 사이트를 찾아서 결승전을 봤다. 미국인들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니에스타가 골을 넣었을 때 나는 정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밖으로 뛰쳐나가 호숫가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바아아아모오오오스!!!! 아아아아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비바 에스파냐!’ 미국인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저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들은 나를 보면서 ’잠깐, 스페인 애가 울고 있는 거야? 그 사커 때문에?’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들은 내게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를 미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진짜 미쳤었을지도 모르고… 나는 평생을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왔다. 하나는 축구, 다른 하나는 ‘진짜 세상.’ 가끔 동료들이 나를 ‘평범’하다고 놀린다. 재밌는 건, 만약 내 여자친구나 심지어 우리 엄마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내가 정상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고 말할 거다. 축구에 관해서는, 나는 완전 중독자다. 내가 ‘평범’이라면, 그건 아마도 소셜 미디어나 400파운드짜리 운동화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페라리가 타고 싶으니 축구 선수가 되고싶어!’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니었다. 내가 존경하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보여준 플레이가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했다. 다섯 살 때였던 게 기억난다. 우리 동네에 공동 수영장이 있었고, 작은 정원도 있었다. 여름이면 축구, 수영, 축구, 수영. 점심 먹으러 집에 갔다가 다시 수영장... 열 살이 됐을 때, 경기에서 잘 못하면 하루 종일 부모님과 대화할 수가 없었다. 너무 속상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얘 왜 이러는 거야? 그냥 게임일 뿐이잖아?’ 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거의 약물 같은 거였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하나의 약속을 했다. 우리가 이걸 말로 한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해된’ 약속이었다. 내가 축구의 꿈을 추구하고 싶다면, 대학에도 가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17살 때, 나는 마드리드를 떠나 비야레알로 이사 갔고, Jaume I 대학에도 등록했다. 첫 해에는 비야레알 아카데미의 기숙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18살이 되면 ‘늙었다’고 간주되어, 스스로 아파트를 찾아야 했다. 엄마가 아이디어를 줬다. ‘왜 그냥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지 않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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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