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중소도시를 기반으로 한 팀이 보여준 업적이라고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빛나는 업적이었다. 리그 수준으로는 당대 따라올 수 없었던, 90년대 세리에 A의 파르마 AC(현 파르마 칼초 1913)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들의 90년대는 '작은 거인' 이라는 표현이 가장 들어맞았으리라.

1. 파르마라트의 인수
파르마라트의 인수 이전, 파르마는 그저 세리에 B를 전전하던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작은 중소도시 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팀의 운명은 파르마를 연고로 하는 거대 유제품 기업 '파르마라트'의 인수 이후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당시 파르마라트의 회장 칼리스토 탄치는 파르마 토박이로, 그 또한 이탈리아 사람 아니랄까봐 축구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파르마라트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그에게는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바로 고향팀이기도 한 파르마를 이탈리아 최강팀으로 만드는 것이었으니. 이런 큰 꿈을 가지고, 탄치는 1990년 여름, 세리에 A에 갓 올라온 파르마를 직접 인수하고 구단주 자리에 취임하였다. 당시 파르마를 승격시킨 감독은 현재까지도 파르마 최고의 감독으로 손에 꼽히는 네비오 스칼라. 파르마라트의 자본을 등에 업은 파르마는 본격적으로 그 날개를 피기 시작하였다.

2. 네비오 스칼라 시대(1990~96)
1990년 여름에는 파르마라트의 자본에 힘입어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급 골키퍼이자 훗날 갈라타사라이의 레전드로 꼽히는 타파렐, 벨기에의 스위퍼 조르주 그륀, 훗날 94년 월드컵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토마스 브롤린 등이 팀에 합류하였다. 승격 첫 해 파르마는 6위라는 승격팀 치고는 매우 훌륭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이어진 91-92 시즌에도 훗날 팀의 중추로 활약하게 되는 알베르토 디 키아라, 안토니오 베나리보 등이 '잘로블루'(파르마의 애칭)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91-92 시즌은 파르마라는 팀이 본격적으로 세리에의 강호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알리는 시즌이었다. 리그에서는 전년도 시즌에 이어서 6위를 하였고, 피오렌티나, 제노아, 삼프도리아 등을 연파하고 진출한 코파 이탈리아의 결승전에서는 유벤투스를 합산 2-1(당시 코파 이탈리아는 단판이 아니었음.)로 제압하며 승격 후 첫 트로피를 챙기게 되었다. 이 결승전을 시작으로 파르마와 유벤투스는 생각치도 못한 라이벌 구도로 자리잡게 되었다.
스칼라의 전술은 확고했다. 4백을 버리고 3-5-2와 5-3-2를 유연하게 병행하면서 팀을 세리에 A에 완벽하게 정착시켰다. 상기 언급한 디 키아라와 베나리보는 이 병행이 가능하게끔 해주는 요소였고, 이러한 스칼라의 전술은 훗날 파르마 역사상 최고의 시즌인 98-99시즌에 알베르토 말레사니 감독의 지휘 하에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며, 92-93시즌에는 벨기에의 로열 앤트워프를 제압하고 컵위너스컵, 첫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품에 안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이 이어지자, 스쿠데토를 향한 파르마라트의 투자도 더욱 불이 붙었다. 콜롬비아 국가대표 공격수 파우스티노 아스프리야, 첼시 레전드로 유명한 잔프랑코 졸라, 당대 남미 최고의 수비수 로베르토 센시니, 이탈리아 국가대표급 미드필더 마시모 크리파 등이 엔니오 타르디니(파르마의 홈 구장)에 합류하였다.
스칼라 체제의 절정은 바로 94-95 시즌. 리그 3위, 코파 이탈리아는 유벤투스에 우승을 내어주었지만, UEFA컵에서는 달랐다. 이 시즌 유베에서 영입한 디노 바조의 2골에 힘입어, UEFA컵 결승에서 유베를 합산 2-1로 제압하고 화려하게 복수에 성공하며 트로피를 안게 되었다.
첫 UEFA컵 우승

그러나 스칼라의 시대는 어이없게도 막을 내렸는데 바로 스칼라와 구단주 탄치의 갈등이었다. 당시 탄치는 소위 말하는 S급 선수를 팀에 더하기를 원했고, 그 대상이 바로 불가리아의 발롱도르 위너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였다.(파르마라트가 동유럽 진출을 위해 영입했다는 이유도 있음.)
다만 스칼라의 생각은 달랐다. 스토이치코프를 큰돈주고 데려와봤자 이미 잘해주는 아스프리야와 졸라 대신에 쓸 이유가 없었으니까. 결국 이듬해 95-96 시즌을 무관 및 리그 6위로 마치고, 스칼라가 팀을 떠나며 스칼라 시대는 막을 내렸다.

3. 카를로 안첼로티 시대(1996~1998)
스칼라의 후임으로는 오늘날 브라질 국가대표 감독을 맡던 카를로 안첼로티가 감독직에 임명이 되었다. 안첼로티 시절 가장 큰 성과로는 역시 9697시즌 세리에 A 2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그 막바지까지 유벤투스와 치열한 우승 레이스를 펼치던 파르마였지만 밀란-유베 2연전에서 2연무를 캔 것이 준우승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말았다(우승 유베 65점-준우승 파르마 63점. 만약 파르마가 유베를 이겼으면 우승.)
그러나 안첼로티 시절 주목해야 하는 요소는 바로 파르마가 영입한 선수들. 엔리코 키에사, 에르난 크레스포, 마리오 스타니치, 릴리앙 튀랑 등, 팀의 중추로 자리잡은 선수가 모조리 안첼로티 시절 영입이 되었다. 또한 잔루이지 부폰이 1군에 자리 잡은 것도 이 시기. 안첼로티 시절에는 믿을 수 없는 재능들이 파르마에 모인 시대였으니, 트로피가 없어도 성공적인 시기라고 부를 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스쿠데토를 원하던 파르마가 원하는 감독이 아니었다. 9798시즌도 무관으로 마무리하자, 팀은 피오렌티나를 이끈 알베르토 말레사니에게 지휘봉을 건네주게 된다.

4. 알베르토 말레사니 시대(1998~2001)
두 번째 UEFA컵을 우승하다.

말레사니가 감독직을 맡게 된 98-99시즌은 상기 언급했듯 파르마 역사상 최고의 시즌이다. 당시 여름 이적시장, 잘로블루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을 보면, 말이 필요없는 클래스인 베론, 프랑스의 근면한 미드필더 알랭 보고시앙, 이탈리아 국대급 날개 자원 디에고 푸세르 등이 여름에 잘로블루의 유니폼을 입었다. 말레사니는 스칼라의 3-5-2 전술을 다시 팀에 입혔다.
부폰이 지키는 골문 앞에는 칸나바로-센시니-튀랑이라는 당대 최고의 센터백들이 벽을 세웠다. 이들을 보호해주고 힘을 실어주는 중원에는 로베르토가 아닌, 또다른 월드클래스 '바조' 였던 디노 바조와 보고시앙이 존재했고 이들의 꼭짓점에는 베론이 섰으며 베론의 천재적인 패스를 받아주는 선수들은 바로 엔리코 키에사와 에르난 크레스포. 작은 중소도시 팀이라고는 너무나도 보기 힘든 화려하고 아름다운, 90년대 파르마의 '절정' 이라할 라인업이었다. 여기에 그들을 받쳐주는 지원군, 즉 또다른 자원으로는 베나리보, 스타니치, 아벨 발보, 스테파노 피오레 등, 다른 팀에 갔으면 소위 말하는 '닥주전'급 선수들이었다. 98-99 시즌, 파르마는 리그에서는 4위에 그쳤지만, UEFA컵에서는 페네르바체-비슬라 크라쿠프-레인저스-보르도-아틀레티코 마드리드-마르세유를 연파하며 두 번쨰 UEFA컵을 품에 안았다. 특히 8강 2차전 보르도를 6-0으로 개박살낸 경기와, 모스크바에서의 결승전 마르세유를 3-0으로 완파한 경기는 그들의 저력을 보여주는 명경기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잘로블루의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결승에서 말레사니의 전 친정팀인 피오렌티나를 제압하며 우승컵을 품에 안았고, 99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도 당시 리그 우승팀이던 AC 밀란을 제압하고 1999년에만 3개의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파르마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4. 몰락
작은 중소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팀의 핵심 선수들에게 당연히 다른 클럽들이 침을 안 흘릴 수가 없었다. 베론, 크레스포, 센시니가 합계 약 9500만유로(크레스포는 현금+세르지우 콘세이상+마티아스 알메이다 형식)로 라치오로 이적했고, 튀랑과 부폰 또한 비슷한 규모의 이적료를 남기고 유벤투스로 떠났다. 공수의 핵심이 모조리 빠진 파르마는 는 걷잡을 수 없이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로마에서 나카타, 유로 2000에서 활약한 사보 밀로세비치 등이 파르마에 합류하였지만 저들의 클래스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 와중에도 피에트로 카르미냐니 감독의 휘하에서 2002년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했지만 팀은 리그 10위로 곤두박질을 쳤다. 그러나 이 비극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3년, 유럽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회계부정 스캔들 '파르마라트 스캔들'이 터지며 팀은 완전히 조각이 났다. 당시 파르마라트는 사업의 글로벌 확장을 위해 문어발식 인수를 진행하였는데 이 인수한 회사들이 모조리 적자투성이었던 것. 당연히 파르마라트의 빚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를 가리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회계부정을 저지르다 발각이 된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소유 축구팀이던 파르마도 이 마수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04-05시즌에는 팀이 무려 17등으로 추락, 같은 지역 라이벌 볼로냐와 강등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고, 질라르디노와 골키퍼 세바스티앵 프레이의 활약으로 어찌 잔류에는 성공하였다.(웃긴건 당시 UEFA컵에서는 준결승까지...잔류 플레이오프하려고 준결승 상대 CSKA 모스크바전에서는 아예 로테돌릴정도)
그러나 팀은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하였다. 당시 핵심이던 질라르디노와 프레이도 모조리 돈을 받고 팔아치웠고, 아탈란타에서 온 이고르 부단 등이 힘을 보탰지만 2008년, 그들은 끝내 강등을 맞이하며 한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파르마의 고통은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2015년에는 클럽이 파산하고 아예 세리에 D로 추락하는 수모까지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옛 명가임을 보여주듯, 18-19 시즌 다시 세리에 A 승격에 성공하였고, 20-21 시즌 다시 강등되었지만 23-24 세리에 B를 우승하며 현재 그들은 세리에 A에 자리를 잡고 있다.

파르마의 90년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저 지방의 작은 팀이 보여준 것을 넘어서 당시 세리에 A 7공주 중에서도 그들이 보여준 실적 또한 확실했다. 당대 대도시 로마, 밀라노의 팀들을 상대로 보여준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다시 보기 힘들지어도, 기억에서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팀갈하고 싶은 팀 찾다가 파르마를 우연히 짜보게 되었고, 마침 유튜브 알고리즘에 9899 UEFA컵을 우승할 당시의 경기들을 보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정작 팀은 짜봤는데 역시 선수풀이....)
디노 바조, 엔리코 키에사 등은 언젠가 인게임에서 직접 보고 싶기도 하네요. 7공주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