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전선: White Out (7)

 

 

 

 

작전 개시 77시간 12.

 

남은 단서는 전혀 없었다.

 

NTW-20의 시체와 방을 조사했지만 단서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마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고립되어 떠돌다가 정신 붕괴를 일으켰고, 여기 숨어 다가오는

 

모든 것을 저격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의견을 나누었다.

 

IWS는 정예 소대가 전멸했다고 판단하고 임무를 포기, 지휘부로 돌아가 지원을

 

요청하자고 말했고 마카로프와 AA도 거기에 찬성했다. 거기에 두 사람 모두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니 수리할 필요도 있었다.

 

나 또한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AK-12를 찾고 싶다, 그녀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또 내가 없는 사이에

 

어떤 위협에 노출되었을지 생각하면 불안감에 몸이 떨린다.

 

그러나 그녀가 나를 믿듯, 나 또한 그녀를 믿는다.

 

AK는 최고의 전투 전문가에, 어떤 위기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유연함을 지닌 전술 인형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라면 어디선가 버티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찾고 싶다는 마음과, 지금의 우리로선 그들을 구할 수 없다는

 

현실이 서로 맞부딪혔다.

 

결국 나는 현실적인 대책을 세우기로 마음 먹었다.

 

네게브는 우리의 말을 한참이나 들어주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좋아, 지금의 우리로선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나도 이해했어.

 

무턱대고 돌격했다 다 죽을 순 없지. 지휘부로 복귀하자.”

 

그럼 결정됐군. 경로는?”


남쪽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어. 이대로 북쪽으로 더 올라가서...”

 

네게브가 비상용 전술 지도를 펼친 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이 산까지 가면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을 거야. 설마 산 꼭대기까지 전파 방해가

 

통하진 않겠지...거기서 연락을 하고 지휘부로 복귀, 그 후 이곳의 상황을 보고하고

 

나머지는 지휘관의 판단에 맡긴다. 이게 지금 세운 내 계획이야.”

 

불만 있는 사람? 이라고 네게브가 말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이렇게 돌아가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인가?

 

나는 그 질문을, 입에 담지 않았다.

 

 

 

 

작전 개시 80시간 18.

 

우리는 한참을 걷고 또 걸어, 그 이름 모를 산으로 올라갔다.

 

인간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산이어서 길도 없었고, 눈이 많이 쌓여 사실상 기어서

 

올라가는 것에 가까웠다. 부상을 당한 AA와 마카로프는 IWS와 내가 부축해줬다.

 

구조 요청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AK, 너를 여기에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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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가 들렸다, 뭐지? 무전에 신호가...?

 

, 아무 말도 하지 마. 도청당하고 있을지도 몰라.’

 

AK-12! 나는 너무 놀라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다른 애들한테도 말하면 안 돼, 도청 당했다간 끝장이니까.’

 

지금 어디 있어? 몸은 괜찮아? 혹시 부상당한 곳은 없어?”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다행이다, 네가 혹시 당했을까 걱정했어.

 

앞으로도 연락할게.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마.’

 

알겠어.”


아아, 다행이다. AK가 살아있다, 그녀는 살아있다. 진심으로, 나는 안심했다.

 

하지만 어째서 무전 연락을 숨기라고 하는 걸까? 누가 우리를 도청하고 있다니...?

 

다음에 또 연락이 되면 물어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산장이다.”


이런 곳에 산장이 있을 줄은 몰랐다, 거의 밤이 되어갈 즈음 우리는 버려진 산장을 찾았다.

 

혹시 매복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나와 네게브를 선두로 별장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함정이나 적은 보이지 않았다. 거의 몇 년 전에 버려진 듯 내부는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밤에 눈보라를 피할 곳이 나타난 것에 감사했다.

 

우리는 짐을 풀고, 내부를 수색하다 얻은 통조림 몇 개로 끼니를 때웠다.

 

벌써 유통기한이 좀 지난 것이었지만- 평소에 우리가 먹는 걸 생각해보면 딱히

 

문제될 것도 아니었다. 삭힌 정어리와 과일 통조림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이렇게 편히 쉬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마카로프가 먼저 말을 꺼냈다.

 

확실히 요 며칠 동안 온갖...일이 다 있었죠. 이제 다 끝났어요, 지휘부로 돌아가면-”

 

돌아가면? 우리가 저지른 짓이 드러나겠지. 그리고 전부 해체 당했습니다,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너희는 걱정하지 마. 내가 리더였고, 내가 내린 명령이었어.

 

그 일은 내가 전부 책임질게. 역시 숨기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네게브...”


, 이제 됐어! 나도 리더 노릇하기 질렸어, 이해 못 할 일만 잔뜩 일어나고...

 

그런 지긋지긋한 얘긴 그만 하고, 좀 재미있고 유익한 주제로 토론해볼까?”


그거 재미있군. 예를 들면?”


너희 말이야, 지휘관한테 좋아하는 사람- 아니, 인형이 있다는 거 알고 있어?”

...?

마카로프와 네게브를 제외하고, 우리 모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 그거 지휘관이 비밀로 하자고...”


알 게 뭐야. 그 대상이 누구인지, 상상이 돼?”

 

확실히...그 지휘관이 누굴 좋아할지 궁금하군.”


대체 누구야? DSR-50한테도 안 넘어간 그 돌부처를 유혹할 수 있는 인형이 있어?”


, 이거 비밀로 하자고 했는데- 말하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여기까지 얘기해놓고 그러는 건 너무 치사하잖아요. 빨리요!”

 

그게 말이지, 9A-91- , 이거 진짜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그 아이가

 

지휘관이 야간 당직 설 때 확- 이 뒤는 말 안 해도 알지?”

 

진짜냐!? 아니, 9A? 평소엔 엄청 얌전하잖아?”

 

그거 다 연기야, 누가 야간전용 전술 인형 아니랄까봐 밤만 되면 그냥...!”

 

그래서? 그 뒤에 어떻게 된 거야? 빨리 말해!”


우리는 웃었다.

 

이번 작전이 시작된 이후 처음 웃는 것 같았다.

 

네게브의 비밀 이야기, IWS의 세상 이야기- 마카로프가 들려주는 초창기 지휘부

 

이야기나 지휘관이 처음 왔을 때 얼마나 미숙했는지, 그리고 도저히 믿지 못할

 

위기들을 얼마나 많이 넘겼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나도 몰랐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즐거웠다.

 

나는, 즐겁다는 감정을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산을 마저 올라갔다.

 

다행히 평소보다 날씨가 좋아 시야도 탁 트였고, 기온도 너무 낮지 않았다.

 

지금까지 삐걱이고 뒤틀리던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 부근에 이를 즈음- 네게브가 무전용 PDA를 작동시켜

 

구조 신호를 보냈다. 이제 통신이 연결되는 것만 기다리면 된다.

 

연락이 닿으면 바로 만날 곳을 정하면 돼. 남은 정예 소대나 민간인들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역시 일개 소대만으론 감당할 수 없는 임무야.”

 

자책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었어요, 저희들은 최선을...”

 

최선만으론 부족한 거야, IWS.”


그때, 나는 다시 노이즈를 들었다.

 

‘--------------’

 

뭐야? AK? 거기 있어? 듣고 있어, 말해.”

 

‘----------------보면 안 돼----’

 

...? 뭘 보지 말라고? 그 순간, 나는 구름 너머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았다.

 

저 방향은...

 

나는 쌍안경을 꺼내,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보았다.

 

그리고 멈추었다.

 

모든 게 멈췄다, 모든 추억이, 모든 기억이, 모든 감정이 무겁게 가라앉는 기분.

 

왜 그래? 저게 뭔데-”


우리는 깨달았다.

 

“...말도 안 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두려운 것인지.

 

쌍안경 너머에는-

 

불타오르고 있는, 우리들의 기지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