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막 마을의 수호신-
방금 그 뼛속까지 소름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노석때문에 리시타는 잠시동안 얼어붙어버렸다. 그 경직은 한 건물에서 입을 멍하니 벌리고 '설마.. 그럴리 없어, 그럴리가..!' 하며 뛰어나와 마을밖으로 나가는 남자덕에 풀려졌다. 그사람을 필두로 여댓명의 사람들이 당황하고 창백한 얼굴들을 한채 그 건물에서 뛰어나와 첫 주자를 쫓아갔다. 그들중 보기만해도 머리가 답답하게 느껴질, 특이한 헬름을 쓰고있던 한 남자가 고개를 돌려 리시타를 쳐다보았다.

"너 뭐해?! 신참가은데 안따라오고. 빨리 대장님을 쫓아가자고!"

그는 신경이 날카로워진듯 말하고 다시 뛰어갔다. 리시타는 얼빠진 듯이 그를 쳐다보곤 그들이 떼로 몰려나온 건물이 '칼브람 용병단 기지'인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결심한듯 두 주먹을 꽉쥐고 용병단들을 쫓아갔다.

콜헨 마을의 관문을 지나치며 보초병들도 사라진 것을 보고 리시타는 불긴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약 300m근처에서 부터 용병단들이 멍하니 서서 무언가를 주시하는것이 보였다. 리시타는 그들에게 달려가면서 그들의 시선이 꽂혀있는 것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는 온몸의 털이 쭈삣쭈삣 곤두서는것을 느꼈다. 그 시점은 확실히 먼곳 이었다.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도 눈앞의 바위덩이를 보듯, 그 '물체'의 크기는 상당하였다. 그 물체의 정체는 「거미」였다.

  그것도 소름끼칠 정도로 하얀 털이 부숭부숭 나있고 날카로운 집게발을 가지고 있는.... 커다란 거미였다. 그들이 그 거미를 창백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을때, 한 남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모두들 멍청히 서있으면 어떻하나! 게렌은 지금 즉시 용병단 기지로 돌아가서 남은 대원들에게 무장과 발리스타를 갖추고 평원으로 집합하라고 전해라! 그리고 케아라는 마을사람들에게 대피명령을 전하고. 남은자들은 '놈'을 지켜본다. '저놈'이 콜헨이 아닐지언정 다른 마을쪽으로 선행을 돌릴경우에 바삐 그 마을에 알려야 하니."

그러자 한 대원이 걱정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장, 긴급상황이긴 하지만 게렌녀석의 말을 대원들이 믿는다는게 더 힘듭니다. 차라리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목소리를 듣고보니, 아까 그 특이한 헬름의 남자였다. 남자의 말에 대원들이 '그래 맞아, 그렇군' 하고 긍정의 목소리를 수근거렸다. 그러자 갈색빛을 도는 튜닉을 입고 머리를 위쪽으로 올린 남자가 얼굴이 붉어진채 궁시렁대며 투덜거렸다. 리시타는 그가 게렌인가 하고 추측하였다. 그리고 그 '대장'이라고 불린 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좋다. 그럼 게렌대신 마렉이 다녀오고, 게렌은 여기 남는다. 둘은 빨리 마을로 돌아가라!"

'옛'하고 그 두사람이 쏜살같이 마을로 뛰어갔다. 나머지 용병단들은 그 하얀 괴물을 주욱 주시했다. 그 괴물은 무엇을 갈망하듯 연신 집게발을 허공에 허우적대며 육중한 몸을 이끌고 움직였다. 주변의 나무나 바위가 뽑혀나가거나 박살나는것도 아랑곳 하지 않으며 하얀거미는 어디론가 가고있었다. 몇십분이 채 않지났을때, 마을쪽에서 그 두명의 대원이 수십명의 대원들과 함께 달려왔다. 그 일행들중, 그 헬름을쓴 자가 보고를 하였다.

"주민들에게 모두 피난하라고 하였습니다, 대장."

순간 리시타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까 그 답답한 헬름에서 나오던 목소리는 분명히 남성의 목소리였었다...헌데 여성의 목소리라니..? 이제보니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 헬름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뭔가 주목의 대상이 된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뒤통수가 유난히 따가워졌다. 그러나 그건 리시타의 생각일뿐. 그들은 모두 거대한 거미에게만 시선이 쏠려 그것을 알아채진 못했다. 대원들이 집합한 후에 '대장'이 말을했다.

"모두 집합했으니, 이제 전부에게 임무를 하령하겠다. 20명의 선발부대를 먼저 보내 저 괴물을 쫓는다. 나머지 대원들은 발리스타를 끌고오고, 그들중 10명은 선발대와 발리스타 부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전령을 담당. 분명 저 괴물은 어딘가로 향하는 것일꺼다. 자 그럼 출발한다!"

말을 마친 '대장'은 다른 대원들이 쓴 헬름에다가 커다란 깃을 꽂은 것을 머리에 썼다. 그 깃이 대장을 뜻하는가 보다. 그리고 선발대들과 함께 괴물을 추격하였고, 곧이어 그 전령들이 5명씩을 나누어 두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5명은 선발대를 뒤쫓았다.

 리시타와 남은 대원들은 발리스타 15기를 끌면서 그들을 따라갔다. 그 육중한 물건을 끌고가며 그들은 '선발대에 뽑히지 않아 다행이다'라거나 '심심한데 이게 뭔짓이람.'이라거나 '오늘 내 명이 다됬구나..'하고 신세를 한탄하며, 떠들면서 전진하였다. 그렇게 전진하다가 묵묵히 발리스타를 밀고있던 헬름을 안쓰고 있던 리시타를 다른 대원들이 하나 둘씩 눈치를 채고, 한 대원이 '칠칠맞게 헬름하나 챙기질 못하냐'라고 구박을 하며 헬름하나를 건넸다. 리시타는 그 헬름을 감사히 받았으나, 그 답답해 보이는 헬름을 쓰길 꺼렸다. 그러다 다른이의 눈총덕에 헬름을 쓰고말았다. 하지만 외모와는 다르게, 그 헬름은 답답하지 않았다. 의외로 통풍이 잘되고 시야도 꽤 넓어서 평범하였다. 그렇게 헬름을 쓴채로 발리스타를 밀고있던 리시타는 앞에서 같이 끌고 있던 대원에게 물어보았다.

"대체 저 괴물은 무엇인겁니까? 마족인건가요?"

이 질문을 받은 대원은 고개를 돌려 리시타를 빤히 쳐다보았다. 헬름의 설계상, 눈은 잘 보이게 되있어서 그 대원의 비웃는듯한 눈동자는 선명히 보였다.

"야 너 신참이냐? '저것'을 몰라..? 저건 우리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사람들이 지껄이던 괴물이라고. 그리고 넌 일개 용병이면서 마족구분을 못하냐?"

신랄하고 대놓고 비하하는 폄하에 리시타는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고 묵묵히 발리스타를 밀기 시작했다. 근데 가만, 마을의 수호신이라니. 마을의 수호신이 왜저러는 거지? 더 깊고 깊은 의문을 가지게된 리시타는 속으로 정리를 하며 발리스타를 밀 뿐이었다.

몇시간 동안 발리스타를 밀고 가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던 것이다. 곧이어 잔비가 내리더니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대비처럼 그리 굵은 빗방울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체력을 빼놓기엔 충분한 비였다. 그렇게 비속에서 헉헉대며 발리스타를 밀던 그들은 몇시간후에 선발대를 따라잡았다. 선발대원들은 그들을 맞이하고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엔 꽤 높은듯한 종탑이 있었고, 그 종탑합에는 거대한 거미가 꿈틀거리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미를 '대장'이 주의깊게 보고있었다.

"틀림없군... 눈 바로 위쪽에 마족의 문장이 빛을 발하고 있어..."

빗속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거미의 형체에서 뭔가 붉은빛이 새어나오는게 보였다. 그의 말을 듣고 대원들은 모두 긴장을 하였다. 마족의 문양이 뜬경우, 그존재는 존재여부를 막론하고 무조건 [사살]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이 마족이 아닌 「마을의 수호신」을 사살한다니. 사살한다고 해도 저 괴물은 집채만한 거미였다. 그덕에 이들에겐 사살보다는 '사살 가능성'이 더 중요해졌다. 몇분간 침묵을 지키던 '대장'은 입을 열었다.

"..... 마족의 문장을 띤 이상, 저 괴물을 이제 마족의 수하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저것'을 사사래향 한다, 제군들..... 발리스타를 장전시켜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발리스타를 설치-장전하였다. 처름으로 발리스타를 장전하는 리시타로서는 그저 발리스타용 창을 옮겨주는 것밖에 할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사내가

"신참이라서 아무것도 못하지? 그렇지? 크크큭. 비오는데 빨리좀 날라, 이 굼뱅아!"

하고 입을 놀렸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게렌인듯 했다. 그러자 한 대원이 다가와서 그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 차주었다. '끄아악'소리를 내뱉으며 걷어찬자를 노려보던 게렌은, 오히려 그를 노려보는 시선에 기가 죽은듯 돌아섰다.

"미안... 게렌은 신참이라면 괴롭히고 싶어 안달내는 녀석이거든."

아까 그 여자 대원의 목소리였다. 케아라였던것 같다. 리시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발리스타를 날랐다.

『철컥, 끼리리릭... 따다다닥... 끼이익... 끽...』

긁히는 쇠금속 잡음에 리시타는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그때 누가 어깨를 툭툭쳐서 리시타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정신차려, 신참!"

....마렉이었다. 그는 긴장한 눈빛과 함께 걱정하지 말라는 느낌을 주었다. 리시타를 다독인후, 마렉은 '대장'에게 달려갔다. '대장'은 아직도 그 하얀 거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장! 발리스타의 장전이 끝났습니다!"

'대장'은 마렉을 돌아보지 않은채 담담하게 명령을 내렸다.

".......즉시 발리스타를 발사해 저 괴물을 꿰뚫는다. 조준이 끝나는 즉시 다시 알리러 오게나, 마렉."

마렉은 말없이 '대장'을 지켜보다가 명령을 하달받고 각 발리스타 다원들에게 조준명령을 알렸다. 10분정도가 지나가, 조준이 완료되었다고 그는 '대장'에게 전했다. '대장'은 허리춤에 차여있는 칼의 칼자루 끝을 검지로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갈등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아이단은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발사 준비!"

'대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발사'라는 한 단어만 짧고 굵게 외치면 그 말과 함께 15발의 대형 철창이 날아가 저 거미를 꿰뚫을 것이다. 몇분간의 정적속에서 대원들은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는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단이 오른손을 내리려고 하는 순간,

"잠깐! 멈추세요!"

라고 가냘프고 작은 외침에 '대장'의 팔이 멈췄다. '대장'의 앞에서 한 소녀가 양팔을 벌리고 막아서고 있었다. 예쁜 소녀였다. 하지만 평범한 여자애는 아니었다. 마치 '무녀'같았다. 갸름하고 백옥같은 얼굴엔 난처함과 걱정, 슬픈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이단 아저씨, 않되요! 저아이를 해치지 마세요. 저 아이는 죄가 없어요... 그저 잠시 이성을 잃은것 뿐이라구요!"
"않된다. 마족의 문장을 띤 이상, 우리는 저것을 해치울 수 밖에 없다. 저 괴물이 언제라도 우릴 해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란 말이다."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무녀에게 마렉이 말을 걸었다.

"...티이..! 그만둬, 뒤로 물러나!"

티이라고 불린 그 무녀는 마렉을 보고 간청하였다.

"마...렉..? 마렉, 저아이을 도와줘. 저 아이는 나쁜 아이가 아니야. 사람들을 헤칠 마음도 없을 것이라구."
"...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할 뿐."

단호하게 아이단 이라고 불린 '대장'이 마렉대신 대답했다. 그 말에 티이는 결국 주눅이 들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 순간, 종탑앞에서 거미의 외침이 들렸다.

『키에에에엑! 께에에엑!』

거미가 종탑쪽으로 돌아서더니, 종탑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찍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자들은 눈을 크게 뜬채 서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단이 다시 외쳤다.

"발사 준비!"

「끼리리릭... 철커덕, 끼긱!」

금속성의 마찰음과 함께 발리스타들이 각도를 높였다. 그 순간, 티이가 날카롭게 외쳐다.

"않되요! 멈추세요, 제가 설득할께요! 제발... 저 아이를 해치지 말아주세요!"

티이의 외침은 대원들의 행동을 제지하는데 성공하였다. 평범한 아이가 아닌 무녀여서 그런것일까 하고 리시타는 티이를 바라보았다. 티이의 외침에 망설이는 대원들을 보곤, 아이단이 다시 결단을 내렸다.

"이러다간 결국 끝도없이 결착을 짓지 못할 것이다. ..티이에게 설득할 기회를 주겠다. 하지만 티이, 네가 저 거미를 설득하는데에 실패할 경우... 우린 그때부터 가차없이 저 괴물을 사살하는데 멈춤이 없을것이다. 알겠느냐.."

티이는 그말에 고개를 떨군체.. 고개를 끄덕이고 승낙하였다. 아이단이 다시 각 대원들에게 명령하였다.

"마렉은 저 거미가 만에 하나 종탑에서 내려올 수 있으니 종탑을 넓게 포위하고 있어라. 케아라와 게렌은 발리스타를 대기 시키다가 내가 위에서 신호를 하면 그때 발리스타를 '목표'에 발사하도록."

아이단은 조용히 그들에게 신호를 설명하였다. 그 명령을 들은체 티이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그럼 나, 티이를 포함해 대원 셋이 저 종탑으로 들어간다. 자네 셋. 날 따라오게."

아이단은 무작위로 세명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 세명중에 우연찮게 멍때리던 리시타가 껴버렸다. 그 지명의 손가락을 받은 리시타는 헬름에 가려진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단 일행은 종탑앞으로 나아갔다. 위를 올려다 보니 아직도 거미가 올라가는 소리와 먼지가 요동을 쳤다. 문이 튼튼히 잠겨있자, 아이단은 물을 발로 걷어차 부숴버렸다.

『콰앙! 투두둑..』

굉음과 함께 문이 툭하니 떨어지고, 거미줄과 먼지로 뒤덮은 탑 내부가 드러났다.

"자, 그럼 들어간다."

아이단을 앞에 세우고 4명은 탑 내부로 들어갔다. 리시타는 자신의 손등에서 식은땀이 흘리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얼마못가 붉은 선혈을 만나버렸다.

-제 2막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