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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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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짱깨들은 우리 옷을 좋아했구만![]() 장욱(張昱), 궁중사(宮中詞) “궁중 의복 새로이 고려 양식 숭상하니 허리 지난 모난 깃에 짤막한 옷소매네.밤마다 궁중 에서 앞 다투어 구경하니 전에 이 옷을 입고 어전에 왔기 때문이라네.” 張昱, 宮中詞 : “宮衣新?高麗樣, 方領過腰半臂裁. 連夜內家爭借看, 爲曾著過禦前來.” 가한노인집(可閑老人集)권221 붉은 비단 나라 궁녀들 직공에 능하여 궐문 안에서 이불을 수레에 실어서 간다네.당번이 된 여자 짝이 보자기를 잘 만드니 고려 여인을 흉내 내어 머리로 받쳐 입궁한다네 可閑老人集권221:“緋國宮人直女工, 衾?載得內門中. 當番女伴能包?, 要學高麗頂入宮 권형(權衡), 경신외사(庚申外史) 지정 이래 궁중의 급사와 사령은 태반이 고려의 여인이었다.이 때문에 사방의 의복과 신발, 모자, 기물이 모두 고려를 따라 일시의 유행이 되었으니 어찌 우연하다 할 수 있는가? 權衡, 庚申外史:“自至正以來, 宮中給事使令, 大半爲高麗女. 以故, 四方衣服鞋帽器物, 皆依高麗樣子. 此關系一時風氣, 豈偶然哉!” 원사(元史)권78 “여복지(輿服志)”一24) “백관의 질손복은 겨울에 모두 9등급으로 나눈다. … 여름의 질손복은 모두 14 등급으로 나눈다.진(秦)의 금금(金錦: 실크의 한 종류)하나, 보리(寶裏)를 장식한 금금(金錦) 하나, 진주를 장식한 대추 갈색 혼금간사(渾金間絲: 실크의 한 종류) 하나, 보리(寶裏)를 장식한 진한 빨간색 관소(官素: 실크의 한 종류) 하나, 빨강색 명주답자(明珠答子: 여러 조각으로 만듬, 실크의 종류에 속함) 하나, 분홍색, 파란색, 초록색, 은갈 색 각각 하나, 고려 검푸른 색 운수라(雲袖羅) 하나, 낙타 갈색, 어두운 빨강, 백모자(白毛子) 각각 하나, 보리(寶裏)를장식한 검푸른 색 관소(官素) 하나. 元史 권78, 輿服志一:“百官質孫, 冬之服凡九等, … 夏之服凡十四等, 秦納石失一, 聚線寶裏納石失一,棗褐渾金間絲蛤珠一, 大紅官素寶裏一, 大紅明珠答子一, 桃紅、藍、綠、銀褐各一, 高麗鴉?雲袖羅一,駝褐、?紅、白毛子各一, 鴉?官素帶寶裏一. 도종의(陶宗儀), 남촌철경록(南村輟耕錄)권28 “두청벽 선생은 소집에 응하여 전당에 갔다. 여러 유생들은 앞다투어 그의 주소로 달려갔다.연맹초는 시를 지어 이를 비웃었다. 시에는 ‘자색의 종등(棕藤)으로 모자를 묶으며, 신발은 고려의 모양으로 만드네.처사들은 문 앞에서 잡역부를 담당하네. 란 구절이 있다. 듣는 자가 모두 이를 전하여 웃는다. 자색의 종등으로 모자를 묶고,고려의 모양으로 신발을 만든 것은 모두가 당시에 유행하였던 것이다.” 陶宗儀, 南村輟耕錄권28:“杜?碧先生本應召次錢唐, 諸儒者爭趨其門. 燕孟初作詩嘲之, 有‘紫藤帽子高麗靴, 處士門前當怯薛’之句, 聞者傳以爲笑. 用紫色棕藤縛帽, 而制靴作高麗國樣, 皆一時所?.” 양유정(楊維楨), 무제효상은체(無題效商隱體) 繡靴??句驪樣,공 찰 때 신은 수놓은 신은 고려 것을 닮았고, 羅?垂彎女直?.비탄 손수건은 구부렸다 폈다하며 여인들이 치장하네. 願汝康?好眠食,그대여 편안히 잘 자고 잘 먹기를 바라네. 百年歡樂未渠央.오래토록 근심 없이 즐겁기를. 육용(陸容), 숙원잡기(菽園雜記) “마미군은 조선에서 시작하여 경사에 들어왔으며, 경성 사람은 사서 입었지만 만들 줄 몰랐다.처음에는 부상, 귀공자, 그리고 가기만 입었다. 후에 무신들이 많이 입었으며, 경성에도 그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귀천 없이 입는 자가 날로 늘었다. 그리하여 성화 말년에는 신하 들도 대부분 이를 입었다.” 陸容, 菽園雜記:“馬尾裙始於朝鮮國, 流入京師, 京師人買服之, 未有能織者. 初服者惟富商、貴公子、歌妓而已. 以後武臣多服之, 京師始有織賣者, 於是無貴無賤, 服者日盛. 至成化末年, 朝臣多服之者矣.” 사계좌(?繼佐), 죄유록(罪唯錄)권4, “관복지(冠服志)” “성화년간(1465~1478)에는 마미군이 유행하였다. 이것은 조선에서 시작하여 경사에 들어왔다.경성사람들도 점차 이를 입는 것에 익숙해졌고, 각신(閣臣)인 만안(萬安)은 겨울과 여름에도 벗지 않았다.” ?繼佐, 罪唯錄권4, 冠服志:“(明憲宗)成化中, 馬尾裙盛行. 此制始於朝鮮國, 流入京師, 京師人亦漸習爲之, 閣臣萬安, 冬夏不脫. 풍몽룡(馮夢龍), 고금소사(古今笑史) 경성의 사인들은 마미군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 때문에 관말의 말갈기와 꼬리를 홈쳐 뽑는 경우가 생겼다.이는 군대의 큰일을 지체하는 것이니 금지하기를 청한다. 馮夢龍, 古今笑史 :京中士人好着馬尾?裙, 因此官馬被人?拔?尾, 有誤軍國大計 乞要禁革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 권214 원기32 원황후도 역시 고려미인으로 삼아, 대신유권자는 곧 이를 귀하게 여겨, 수도 고관귀인은 반드시 고려여자를 얻은 후에야 명가가 된다. 그렇게 된 이래, 궁중급사사령 대반이 고려여자이며, 이런 이유로 사방의 의복, 신발과 모자, 기물 모든것을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 같다. 續資治通鑒 卷214, 元紀32:“後亦多畜高麗美人, 大臣有權者, 輒以此遺之, 京師達官貴人, 必得高麗女然後爲名家. 自至正以來, 宮中給事使令, 大半高麗女, 以故四方衣服、靴帽、器物, 皆?高麗, ?世若狂. 이익(李瀷) 성호사설(星湖僿說) 권5, 만물문 생채괘배 생채와 괘배 원(元)나라 사람 양윤부(楊允孚)의 시에, 고려 생채 중 맛 좋은 생채를 다시 이야기하니 향기로운 새박 나물과 줄 나물을 모두 수입해 들여 온다. 하고, 스스로 주석하기를, ‘고려 사람은 생채 밥을 쌈에 싸서 먹는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풍속은 지금까지도 오히려 그러해서 채소 중에 잎이 큰 것은 모두 쌈을 싸서 먹는다. 그 중 상추쌈을 제일로 여기고 집집마다 심으니, 이는 쌈을 싸 먹기 위해서이다. 장광필(張光弼)이 궁중의 풍경을 읊은 시에도, 궁중의 옷차림은 고려의 모습을 새로 숭상하여서 방령은 허리에 지나가건만 어깨는 반밖에 덮이지 않는다. 하였다. 지금 풍속에도 오히려 이런 제도가 있는데, 길이는 무릎까지 닿지 않고 넓이는 어깨까지 닿지 않는다. 양쪽 옷자락은 서로 싸이지 않고, 방령은 겨우 마주 닿는 것이 학창(鶴?)처럼 생겼다. 양쪽 옆으로는 구슬과 가락지를 달아서 마주 끼우게 되어 있는데, 옷 이름을 괘배(掛背)라고 한다. 장광필의 시에서 말한 것이 이 괘배인데, 풍속으로 되어 전해 온 지가 이미 오래다. 요즈음 이 괘배를 도복(道服) 위에다 덮어 입는 이도 더러 있다. 추측건대 고려 시대에도 역시 이와 같이 했고 원나라 사람은 이것을 본떠서 만들었던 듯하다. 星湖僿說 卷5, 萬物門 生菜掛背 元人楊[允孚]詩云. 更說高麗生菜美, 摠輸山後?菰香. 自註, 高麗人以生菜?飯食之. 我俗至今尙然, 蔬菜葉大者皆如此. ??爲上, 家家種之, 爲此故也. 張光弼宮詞, 宮衣新尙高麗樣, 方領過腰, 半臂裁. 今人猶有此制, 長不至膝, 廣不及臂. 兩襟不掩, 方領適對, 如鶴?. 兩邊爲珠爲?, 以搭住, 名?背. 此詩, 所擧者是耳, 俗之流來者遠矣. 近時, 頗有加諸道服之上者. 或者, 麗時亦如此, 而元人效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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