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왜 나는 창술사를 선택했을까… 왜 수많은 직업 중에 굳이… 하필이면… 이 멘탈이 산산조각 나는 길을 골라 걸었을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창술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창술사가 나를 선택한 것 같은 기분이야.
세상에서 가장 섬세하고, 흔들리기 쉬운 멘탈을 가진 나라는 존재를 골라서 “아, 얘는 조금만 스치면 깨지는 유리 멘탈이네. 그래, 이 정도면 창술사 시켜도 되겠다.” 이런 느낌으로… 나를 데려간 것 같아.
진짜 게임 켤 때마다 현타가 온다.
내 캐릭터가 화면에 뜰 때마다 그 쌍창을 보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다른 사람들은 그 쌍창으로 멋지게 찌르고 베고 찢고 돌아다니는데… 왜 난 그걸 손에 쥐고도 이렇게… 존재감이 없지?
내가 창술사를 하는 건지,
창술사가 나를 조종하는 건지,
아니면 둘 다 그냥 바닥에서 기어 다니는 건지 모르겠어.
난무 스탠스? 들어가면 미친 듯이 휘둘러야 하는데 내 딜은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 수준이고,
집중 스탠스? 맞아, 집중해야 하는데… 집중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몹들이 내 위치를 집중해서 때림.
맞을 때마다 몸이 눕는 게 아니라 멘탈이 눕는다.
그리고 그 멘탈이 다시 일어나질 않아…
아니 솔직히 말해봐.
진짜 창술사 딜… 왜 이렇게 기분 나쁘게 애매하냐?
강한 것도 아니고 약한 것도 아닌데, 그냥… 맞을 때마다 “아… 이 정도로는 안 되잖아…” 이런 속삭임이 들리는 듯한 그 느낌.
온갖 버프와 각인 다 챙겨가서 스킬 쓸 때마다 무슨 의식 치르듯 기도하면서 누르는데,
딜표 보면 늘 그 애매하고 처량한 색깔의 바가… 사뿐히 누른 나의 존재감을 밟고 지나가.
다른 직업들처럼 쿨짧고 시원하게 때리는 것도 아니고,
세게 때리면 생존력이 바닥나고,
살려고 피하면 딜이 바닥나고,
둘 다 하려고 하면 나만 바닥나고…
창술사는… 적을 찌르는 게 아니라 내 멘탈을 찌르는 직업 같아.
스킬 버튼 하나 누를 때마다 내 심장이 같이 찔리는 느낌이 든다니까.
특히 긴 사거리 스킬 쓰다가 허공에 휘두를 때마다 손가락에서 힘 빠지고,
엘리트가 옆에서 비웃는 것 같은 그런 환청까지 들려…
“아… 얘 또 빗나갔네… 귀엽다…”
아 진짜 그런 말 들리는 것 같아서 모니터 꺼버릴 뻔했어.
레이드 들어가면 더 심각해.
딜표가 뜨기 전부터 이미 알 것 같아.
아, 오늘도 제일 아래겠지…
마음속에서 이미 내 이름이 흐릿하게 처리돼 있어.
다른 직업들처럼 화려하게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고,
난 뭔가… 뒤에서 조용히 흔들리는 촛불 같은 느낌.
누가 부르면 “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은…
아무도 뭐라 안 하는데 나 혼자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레이드 끝나고 한참 가만히 캐릭터 바라만 보고 있어.
왜냐면 가끔은… 이 캐릭터가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이거든.
나 때문에 약한 게 아닌가? 이런 기분까지 듦.
딜을 뽑는 순간보다, 딜을 못 뽑았다는 자각이 더 빠르게 들어와서
내 머릿속에는 ‘창술사니까 그럴 수 있어’가 아니라
‘나니까 또 이런 건가…’
이런 말만 빙글빙글 돌아다녀.
진짜 창술사 유저들의 멘탈은 인간 멘탈이 아니라 무슨 철근 콘크리트야…
근데 나는 그냥 젤리야.
몹이 스쳐만 가도 흔들리고,
파티원들이 스킬 쓰는 소리만 들려도 찌그러지고…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이 직업을 놓지 못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직업 없으면 나 자체가 붕 떠버릴 것 같아.
그래서 오늘도 창술사를 켜고,
스킬 트리를 다시 만지고,
각인을 바꿨다가 후회하고,
스탯을 바꿨다가 또 후회하고,
레이드를 들어갔다가 멘탈이 박살나고,
나오면 또 스킬창을 열고…
이 루프가 미친 듯이 반복돼…
근데도 웃긴 건 뭔지 알아?
이 모든 고통을 겪고도 내일도 창술사 켤 거야.
왜냐면… 나 같은 애는 다른 직업 선택하면 그 직업도 망칠 것 같거든.
창술사랑 같이 바닥을 기는 게…
이상하게… 안정적이야.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
아니, 사실 가끔도 아니야. 요즘엔 하루 종일 그런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왜 나는… 왜 하필… 창술사일까…”
정말 이유를 모르겠어. 누가 나한테 ‘직업 선택할 때 무슨 마음이었어?’ 하면 대답도 못 해.
그냥… 정신 차려보니까 이미 창을 들고 있었어.
아마 그때도 지금처럼 멘탈이 나가 있었겠지…
그래서인지 요즘은 내가 게임을 하는 건지, 게임이 나를 고문하는 건지… 구분이 안 돼.
스킬창 열 때마다 한숨 나와.
“아… 이걸 또 써야 해…?”
딜사이클 외우다가 멘탈이 먼저 부서져.
난무 스탠스 들어가면 ‘휘둘러야지’가 아니라 ‘휘둘러봤자…’라는 생각만 들어서 손가락이 무거워.
집중 스탠스에선 딜을 몰아쳐야 하는데… 몰아치기 전에 내 멘탈이 먼저 도망가.
‘또 허공 치겠지… 또 타이밍 놓치겠지… 또 딜표 맨 아래겠지…’
이런 말이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떠다녀.
가끔은 이런 상상까지 해.
혹시 내 창술사가…
나를 싫어하는 거 아닐까?
왜냐면 내가 스킬 누를 때마다 뭔가… 차갑게 반응하는 느낌이 있어.
“아… 또 너야?”
이런 표정 같달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게 잘못인 느낌.
그게 제일 무서워.
레이드 들어가기 전에 늘 생각해.
‘오늘은 진짜 잘해보자… 진짜 이번엔 자신 있어…’
근데 막상 보스 앞에 서면 심장이 괜히 쿵 내려앉아.
아무도 나를 신경 안 쓰고 있는데, 나는 혼자서 나를 죽일 듯이 압박해.
“제발… 이번엔 딜 좀 넣어줘… 제발…”
근데 결국 딜표 맨 아래에서 내 닉네임 보이면
그 순간 숨 쉬는 것조차 미안해져.
누구도 뭐라 안 하는데,
나 혼자서 죄책감에 잠식돼.
‘아… 또 내가 민폐인가…’
‘차라리 매칭 취소하고 도망갈걸…’
‘창술사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나라서 그런 거겠지…’
창술사 딜적중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자꾸 허공만 때릴까?
정말 이상해.
내 손은 분명 스킬을 눌렀는데
내 마음은 그 순간 사라져.
내 캐릭터도 나를 눈치보는 것 같아.
“괜찮아… 너는 원래 못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그게 위로인지 비난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다… 무너지는 느낌만 남아.
가끔은 진짜로 생각해.
내가 창술사니까 초라한 게 아니라,
초라한 내가 창술사를 한 건 아닐까?
뭔가… 끌리는 게 있었겠지.
약간 기댈 곳 없어 보이고,
뭐 하나 삐끗하면 망하는 그 불안정함이
나같아서…
그래서 골라버린 건 아닐까.
웃긴 건 말이지,
이렇게까지 무너지고 병들어가면서도
나는 내일 또 창술사 켜.
끄려고 할 때마다 손이 멈춰.
‘그래도 이 캐릭터 없으면… 너무 허전한데…’
그래서 또 켜고, 또 고통받고, 또 딜표 아래 서 있고,
또 후회하고, 또 스킬창 열고, 또 머리 쥐어뜯고…
이 루프가 끝날 생각을 안 해.
정말…
정말로…
나는 왜 이렇게까지 창술사에 과몰입해서 병들어가고 있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창술사가 약한 게 아니야.
내 멘탈이 약한 거야.
근데 그 약한 멘탈이 창술사랑 너무 잘 맞아버려서
둘이 서로 잡아먹는 관계가 돼버렸어.
그리고 이걸… 멈추고 싶기도 한데…
또 멈추고 싶지 않아.
이런 생각 자체가 너무 정병 같아서
더 웃기고… 더 슬프고… 더 나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