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드리운 전장 위에 고요한 음률이 퍼졌다. 바드는 은빛 하프를 조용히 품에 안고 눈을 감았다. 그녀가 연주하는 서곡은 따스한 빛처럼 아군의 몸과 마음을 감싸며 지친 기력을 회복시켰다. 전투의 피로는 바람처럼 흩어졌고, 사람들은 그녀를 믿고 다시 칼과 방패를 굳게 쥐었다.

저 멀리 어둠이 출렁였다. 이 세계의 종말을 알리는 존재, 카제로스가 깨어난 것이다. 그는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이 그의 발걸음에 흔들렸고, 전장 위 사람들의 눈에 두려움이 일렁였다.

"흔들리지 마세요. 제 노래가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지지 않아요."

바드의 목소리는 작지만 단호했다. 그녀의 하프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용기의 선율이 전장을 휘감았다. 사람들은 그 힘을 받아 다시금 일어섰다.

카제로스는 분노하며 손을 뻗었다. 그의 힘은 어둠을 뚫고 바드를 향해 뻗쳐왔지만, 그녀의 하프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보이지 않는 방패가 되어 공격을 튕겨냈다.

그러나 카제로스는 멈추지 않았다.

"어리석구나. 결국 모든 것은 무(無)로 돌아가리라."

그의 목소리는 공포를 몰고 왔지만, 바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과거 스승의 목소리가 또렷했다.

"음악은 마음의 빛이야. 어둠을 밝히는 것이 너의 소명이란다."

바드는 다시 하프의 현을 튕겼다. 그녀의 선율은 더욱 강력해졌고, 빛은 점점 커져 마침내 카제로스의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음악이에요. 당신의 어둠을 몰아내고 이 세계를 다시 밝힐 거예요."

그녀의 음악은 커다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카제로스는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고, 그의 힘은 서서히 봉인되어 갔다.

마지막 선율이 울려 퍼지자, 카제로스는 굉음을 내며 깊은 잠으로 다시 떨어졌다. 바드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전투는 끝났지만, 그녀는 이 전투가 진정한 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프를 가슴에 꼭 끌어안으며 그녀는 전장을 떠났다. 이 세상에 다시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그녀는 언제나 노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