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도 역시 오한별로부터 시작한다.

메이플의 근본스토리들은 ~~의 서처럼 텍스트로 직접 풀었음.
그래서 그때 당시 잼민이였던 우리들은 이해 못하고 넘겼지만, 제대로 파고든 사람은 매력을 느꼈지.

샤모스의 마법
정명한 방법을 쓸 거였으면 기사가 되었어야지, 자네는 도적이지 않나.

이런 스크립트들은 어린애들이 보기엔 수준이 너무 높았음.
하지만 오한별 이후부터, 유딩 초딩이었던 우리들이 초딩 중딩으로 올라가며 수준도 높아짐과 동시에, 오한별이 스토리에 가치관을 담기 시작했음.
이 가치관을 다른말로 하면 주제임. 빅뱅이전  (정확히는 아란 이전이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사는 빅뱅이후니 편의상 빅뱅으로 칭함.) 스토리는 캐릭터와 사건 간의 반응으로 이루어진, 어찌 보면 고전 희곡같은 스토리였음. 그런데 빅뱅 이후로 소설적 스토리가 나왔음. 군상극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 단막극에서 장편으로 탈바꿈한거임.

이 서사성, 검은마법사라는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영웅즈 용사들이 모여 봉인했고, 마왕이 부활하려 하기에 과거 세대와 현 세대가 힘을 합쳐 막는다.

이 간단한 시놉시스가 거대한 메인퀘스트가 되어 서브퀘스트간의 유기성을 높였음.
빅뱅이전 메이플은 하다가 막히면 접고 관뒀지만, 빅뱅이후엔 스토리라는 이유가 생김. 30레벨 스토리, 50레벨 스토리, 70레벨 스토리, 100레벨 스토리, 120레벨 스토리, 200레벨 스토리로.
영웅즈들을 예시로 들면, 10레벨에 깨어나 30레벨에 수련을 하고 인맥을 되찾음. 그리고 50레벨에 과거의 자신을 알려주고 70레벨에 다른 캐릭터와 본격적으로 상호작용함. 그리고 120레벨에 군단장들과 마찰을 빚고 200레벨에 사건을 끝냄.
군상극이라 하지만, 캐릭터 하나가 거대한 서브퀘스트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음.
그래서 그 캐릭터의 갈등이 끝나기 전까지 우리가 애정을 갖고 키울 수 있었음. 그리고 그때가 만렙이었고.

이 구조를 짧게 만든 게 차원의도서관임. 레벨링구간을 모두 없에고 각 캐릭터의 서사를 '보여주기'만 함.
검은마법사에 대적한 최초의 용사 이야기
여제에게 가르침을 주는 참된 스승의 이야기
잊힌 용사 류드의 이야기
나인이었던 제로가 세븐이었을때의 이야기
루비안을 지키는 악마 에레고스

전부 다 시놉이 곧 줄거리인 단막극들임. 단편형 스토리들은 기승전결이 정해져 있고 갈등과 캐릭터가 정해져 있기에 그 에피소드 안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을 수 있음. 그리고 그 에피소드의 느슨한 유기성이 후에 나올, 또는 전에 나왔던 스토리와 연계되어 군상극의 형태가 되는 것임.

하지만 원기 이후는 다름.

강원기식 스토리인 히오메의 단점이 용두사미에다 갑자기 추가된 아브락사스의 설정임.
까려면 8분도정미처럼 겁나게 깔 수 있는데, 그냥 간단히 말해봄.
기승전결에서 끝나지가 않음.

게임이니 결 없는게 맞지 않나? 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님들이 생각하는 결은 세계관 자체의 종결임. 내가 말하는 에피소드의 종결과는 다름.
투비컨티뉴를 중간에 놓는게 아니라, 에필로그에 넣어야 하는 거 알거임. 대표적으로 외계인 잡는게임 엑스컴. 엔딩 이후에 마리아나 해구에서 보랗빛 번쩍이는 에필로그가 나옴. 이게 정상적인 플롯인데, 원기식 스토리는 에피소드 절정때 끊어버리고 에필로그를 던져버림. 떡밥 감당못해서 열린결말이나 연재중단으로 소설 던져버리는 웹소설 많이 봤으면 뭔 말인지 알거임.

이 문제점의 대표적인 예시가 만물카오설임.
아케인리버 사가를 이끌기 위해 소멸의 여로, 츄츄아일랜드, 레헬른, 아르카나, 모라스, 에스페라, 테네브리스의 안인 문브릿지, 고통의 미궁, 리멘.
이 모든 걸 카오가 먼저 겪고, 후에 여로에서 '나'를 만나는게 메인플롯임.
이게 문제임. 3년짜리 스토리를 자기 혼자 관통하고 있음.
중간에 타나가 아르카나 모라스를 보조했지만, 결국 타나도 플롯 망치는 캐릭터일뿐임.
모든 스토리가 미완의 상태로 느슨하게 앞뒤 지역과 이어졌음.
매번 새 지역을 갈 때마다 비약이 일어나고 있음.
결국 이 문제를 끝내려면 여로는 여로의 스토리가 있고, 여로의 사건을 만나는 캐릭터들이 있고, 갈등을 빚는 사람들이 있어야함. 그리고 그 모든 걸 여로에서 끝내되, 츄츄로 이어질 여지를 남겨야함.

46캐릭터가 있어서 군상극 안된다 하는데, 그건 핑계임. 46캐릭을 다 내놓는게 아니라, 그 지역에, 그 사건에, 그 갈등에 맞는 캐릭터를 내야 하는거임. 여로에 카데나 왔으면 카이저 엔버 오고, 카이저 불안해하면 엔버가 좋은말로 멘탈케어해줌과 동시에 카데나가 틱틱대며 현실적인 조언, 왕가의 보물 위치도 뿌려줘야 제대로 된 사건이 되지 않겠음?
여기서 카데나의 말 믿고 보물위치 갔다 허탕치면 그땐 카이저와 카데나의 '갈등의 여지'가 남음. 그리고 진짜 보물이 있으면 '호혜의 여지'가 생김. 삼국지에서 조조가 서주대효도 해서 유비가 그거 막고, 뒤질때까지 조조 서주로 물어뜯고 정당성 훼손했잖음. 그거랑 비슷한거임.
이처럼 캐릭터가 많으면 써먹기라도 해야 하는데, 원기식 스토리는 그런게 전혀 없음.
자기 캐릭터를 감당을 못함. 그래서 캐릭터가 등장하면 작가가 캐릭터를 통제하는게 아니라 캐릭터가 작가를 휘두르고 다님.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카오고.

그나마 테네브리스 스토리가 낫다 하는데, 왜냐하면 테네브리스는 테네브리스만의 별개의 플롯이 있기 때문임. 카오의 아케인리버 플롯에 검은마법사에 대적하는 메이플연합의 플롯이 겹쳐져서, 상대적으로 사건이 되지 않는, 그러니까 더 스토리다운 검은마법사 플롯이 조금 더 존재감을 드러낼 뿐임.
사실, 문브릿지는 사실상 갑판닦이랑 더스크빔이 끝인데다, 미궁은 힐라의 2시간 가스라이팅이 스토리의 끝이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케인리버 스토리를 견인하는 카오보다 더 존재감을 드러냈음. 이게 원기식 스토리, 장편 준비도 안 된 스토리의 문제점임.

소설 읽어본 사람이면 "한국에 장편 뇌 있는 작가가 적다"는 거에 공감할거임. 단편과 달리 장편은 밀도를 유지하기 매우 어려운데다, 밀도가 높으면 피곤하다고 뭐라하고 낮으면 무의미하다고 뭐라하기 때문임.
번역되는 장편들은 일단 수지타산에 맞을 만큼 작품성이 좋기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기도 하지만, 딱히 틀린말은 아님. 한국은 모더니즘이 아닌 포스트모더니즘때문에 장편이 적기도 하니. 걍 간단히 말해서 외국 나가서 한국 소설 찾아보면 한강부터 나오는거라 보면 됨.

이게 원기식 스토리랑 뭔 상관이냐고? 위에서 말했듯, 원기식 스토리는 장편의 형태임에도 장편의 구성이 아니기 때문임.
이 문제는 그란디스부터 심해지다가 결국 도원경 아르테리아에서 장편의 형태를 포기하고, 단편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해결되기 시작함. 마침 이때가 등단작가를 고용했다고 발표했던 때임.

그래서 요즘 나온 아르테리아 카르시온 탈라하트는 그 지역 에피소드는 그 지역에서 끝내려는 기조가 생김. 근데 오히려 그 강박이 오한별 시절의 '스토리 간의 느슨한 유기성'을 없에버림.
언리맞고 템값수호단 양성한 메이플마냥, 장편짓하다 초단편짓에 강박이 느껴질 정도로 집착하게 됨.

이게 바로 내가 원기식, 그란디스 스토리를 싫어하는 이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