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에 말씀드려야 할 건 저는 다캐릭 증후군이 심해 암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딜러들을 살게 영웅까지는 돌려봤고, 그렇다고 신화를 7신화 이상 뚫었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닌,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부캐 많이 가지고 있는 양민입니다. 그 중 어느 부캐를 집중적으로 파야할지 고민을 엄청나게 많이 했고, 그 고민의 중점 포인트 중 하나가 '각 클래스의 전설 의존도는 어떻게 다를까' 였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써봅니다.

그럼 '의존도'라는 걸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른바 코어 전설이랄 게 존재하지 않는 직업은 없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가장 높은 dps 기대값을 갖는 1, 2위의 전설이 그 직업의 코어입니다. 흔히 '코어빨 덜 받는 전설이 머에여~~~?' 이런 질문이 나올 때 '모든 직업이 코어빨 받아여 ㅎㅎ'라는 답이 꼭 한두개씩 달리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껏 해오던 전설 의존도에 대한 논의 포인트는 '코어빨 덜 받는 직업은 무엇인가'에서 조금 비틀어, '1, 2위 전설과 그 외 전설 간 성능의 격차가 적은 클래스는 무엇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걸 더욱 간단하게 말하자면 '굳이 두어개의 전설에 매달리지 않아도 성능을 낼 수 있을 정도의 다른 대안 전설들이 존재하는가'가 됩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의존도가 낮은' 경우입니다.

이걸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보면 됩니다;

1. 각 전설 별 성능(dps)
2. 각 전설 별 편중도(실제 착용률)

이를 위해서 기본적으로 데이터 포인트가 가장 많은 WCL을 참고했습니다. WCL에서 두 가지 정보가 다 확인 가능한데, 전설 별 dps의 경우 당연히 개별 아이템의 dps 상승치를 아는 건 불가능하고, '해당 전설을 착용한 parse의 dps 평균치'로 산정이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그래프의 모양을 보세요. 위쪽 두세개에 몰빵돼있으면 의존도가 크고, 고르게 분포해 있으면 낮은 겁니다.

말씀드려야 할 건, 단일딜(고로스) 기준으로만 봤습니다. 광까지 생각하면 너무 복잡해서... 광은 여러분이 한 번 살펴보세요 ㅎㅎ


1. 냉죽



의존도가 있는 편입니다.
토라본, 차마가 높고, 콜티라 밑으로는 고만고만합니다.


2. 부죽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입니다.
타크, 차마와 그 외 전설 간의 격차가 매우 큽니다.


3. 야드



의존도가 낮습니다. 전설이 고른 성능 분포를 보이고 있고, 착용률 또한 매우 고른 편입니다.


4. 조드



의존도가 높습니다. 흠지정/오네스과 그 외 격차가 큽니다.


5. 징기


의존도가 낮거나 보통인 편입니다. 
상위 4개 전설 간의 편차가 크지 않고 착용률도 고른 편입니다. 단, 상위 4개 전설과 그 외의 격차는 큽니다.


6. 고흑


의존도가 낮은 편입니다. 성능/착율률 둘 다 꽤 고릅니다.


7. 악흑



의존도가 있는 편이나, 엄청 심하지는 않습니다. 의식, 윌프레드가 강하고 충성 머가리도 좋습니다.


8. 파흑



징기와 유사한 양상으로, 4개 전설이 강세를 보입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착용률과 실제 parse dps의 차이입니다(신도레이).


9. 고술



의존도가 높습니다. 황눈, 심장이 투탑입니다.


10. 정술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그리 의존도가 높지 않습니다.
심장, 신발이 코어인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전설들의 성능 및 착용률이 꽤 고른 편입니다.


11. 격냥



의존도가 있는 편입니다. 직업반지/우를/마크투가 강합니다.


12. 생냥



의존도가 낮습니다. 후진 전설 몇 개를 제외하면 고른 성능 분포를 보입니다. 다만, 착용률의 편중도는 야부, 세푸즈에 몰려 있습니다.


13. 야냥



의존도가 낮습니다.
거의 제일 낮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고른 성능 분포 및 착용률을 보입니다.


14. 냉법



의존도가 높습니다. 엑소, 마그가 코어입니다.


15. 비법



의존도가 높으나 코어가 세 개로 부담이 약간은 덜합니다.


16. 화법



의존도가 있긴 하나 엄청 심한 편은 아닙니다. 
제 주캐라서 가장 잘 알고 있는데, 사람들의 인식처럼 선킹 없으면 아예 손도 대면 안되는 클이냐? 보시다시피 선킹>>>>>미만잡은 아닙니다.


17. 무법



의존도가 조금 애매합니다.
3개 코어가 비교적 균등한 반면, 그 외 전설들은 가파른 성능 하락률을 보여줍니다.


18. 암살



암살도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의존도가 낮은 편입니다. 착용률은 어깨, 조르딕, 신발에 편중되어 있으나 성능은 꽤 고른 편입니다.


19. 잠행



의존도가 높은 편입니다. 다만 첫죽이라는 2코어 외의 대안이 존재해 부담이 약간은 덜합니다.


20. 암사



의존도가 높습니다. 만가자/세푸즈와 그 외입니다.


21. 악사



의존도가 높습니다. 위망/반거인이 잘 아시는 코어입니다.


22. 분전



의존도가 있습니다. 직업반지가 부담을 약간 덜어주네요.


23. 무전



의존도가 높습니다. 잘 아시는 아얄라/칼폭대가리가 코어입니다.


24. 풍운



의존도가 높은 편인데, 진리의 뿔캇 외에 공생체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모습니다.
이에 대해서 아래에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한번 쭉 살펴봤는데, 재밌네요.

말미에 꼭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는, 제가 전설 의존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ㄴㄴ 나는 심장 먹고 디피 6만 오름', 'ㄴㄴ 상위 로그 보면 다 직업반지임', 'ㄴㄴ 해보니까 징박도 나스 없으면 병신임'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듣는데, 이런 논의는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이야기를 해보자면,

1. 개인의 경험

개인적인 경험이나 체감, 세팅에 따른 차이는 

- 본인의 스탯 상황
-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전설을 대체하게 될 부위 아이템'의 성능
- 본인의 숙련도 

등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900 템을 970으로 바꾸는 것과 950 씹탄벼림을 970으로 바꾸는 것은 후자가 아무리 코어라고 하더라도 상승치의 기대값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제 야드는 반지를 좋은 걸 끼고 있어 대드영보다 킬제덴의 기대값이 오히려 높습니다.


2. 상위 로그의 전설

이건 설명하기 좀 민망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인데, 상위 로그가 특정 전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건 사실 전설 의존도를 평가하는데 거의 중요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조금이라도 좋은 전설이 있으면 그걸 쓰는 게 맞고, 그걸 쓰는 로그가 점수가 잘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중요한 건 '1, 2위 전설의 성능이 9, 8이야' 가 아니고 '3, 4, 5위 등등 전설의 성능이 7, 6, 5인지, 3, 2, 1인지, 7, 5, 3인지' 입니다.


3. 상식

세 번째, 상식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서 사실 이 글을 썼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식'이라고 받아들이는 아이템의 강함, 특성의 우선순위, 딜사이클 등이 늘 존재합니다. 이 상식은 열심히 심크를 돌리는 해외 디스코드 theorycrafter, PTR에서부터 주구장창 허수 두드리는 실험맨들의 노력에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의 경험이 귀납적으로 축적되어 형성됩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까보면 이 상식이 잘못되었던 경우가 꽤 빈번하게 존재합니다. 두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A. 풍운, 뿔캇 -> 뿔공

풍운의 경우 2+4셋의 엄청난 성능 덕에 6피스 모두 티어로 고정되며, 뿔잔(손목)과 캇스오(신발)이 2코어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는 꽤 오랜 기간(최소 2달) 동안 진리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해외 유명 플레이어들과 theorycrafter(바빌로니우스같은)들의 분석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풍운은 평안으로 오프닝 때 미친 딜을 넣는데, 공생체가 이를 극대화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는 궁리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실제로 이렇게 해보니 뿔캇보다 좋다는 결과들이 한 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알고보니 심크가 불완전해 뿔공의 theorycrafting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지금은 enemy death의 체력 pct를 보정하는 식으로 제대로 돌려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상식이라는 게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일례로 신화 고로스 풍운 로그를 1위부터 100위까지 보시면, 해외는 이제 대부분 뿔공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국내는 여전히 대부분이 뿔캇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B. 악사, 혼돈 이론

저는 혼돈 이론이 PTR에 떴을 때 '이거 꽤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 뚜껑이 열리고 나니 길드, 레이드, 혹은 악게 등의 커뮤니티에서 혼돈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이 전설을 쓰레기 취급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심크를 제 캐릭 기준으로 돌려봤을 때 혼돈 이론이 엄청 높게 나오기에 이에 대한 의구심은 더 커졌었지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심크(이론)상 좋지만 이거 존나 안터져요 실제 써보면 진짜 병신 전설임' 이었습니다.

해외 디스코드 등에서 kib 등의 theorycrafter들은 '혼돈 이론이 탑티어는 아니지만 A급이야~'라고 말을 하기에, 왜 이렇게 상식의 온도차가 존재하는지 궁금했었습니다. 

그래서 로그를 한 번 들여다보니, 반거인, 위망 등에 비빌 바는 절대 아니나, 공생체/세푸즈처럼 '나쁘지 않은' 전설이라는 게 보이더군요. 최~~~소한 악게에서 혼돈 이론을 쳐봤을 때 흔히 보이는 '혼돈 이론 쓰레기' 정도의 평가는 부당하더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상식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들은 늘 존재하는 듯 합니다.



제가 남들도 WCL 들어가서 클릭 몇 번 하면 다 볼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스샷 따가며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세 가지 말을 꼭 하고 싶어서입니다.

1. 대부분의 클래스들이 특정 전설에 대한 의존도를 갖지만, 그 정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닐 수 있다.
2. 우리가 전설 의존적이라고 생각했던 클래스들 중 사실 별로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존재한다.
3.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우선순위 중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존재한다.

그러니 '님 이 클래스는 XX 없으면 씹구데기임ㅋ', '헐 세푸즈 드셨네요 애도...' 이런 말들에 지나치게 겁먹지 마시고, 낙담하지 마시고, 괘념치 마시고, 하고 싶은 걸 하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첨언.

댓글에도 달았는데, 정말 중요한 이야기인데 제가 죄송스럽게도 강조를 하지 않은 것 같아 본문에도 붙입니다.

본문과 댓글에서 한 차례씩 말씀드렸지만 노파심에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해당 dps는 '해당 전설을 착용한 parse의 평균 dps'값입니다. 이는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는데, '코어 전설(혹은 그에 준하는 성능이 좋은 전설)'을 보유한 사람들은 그 캐릭터를 계속 플레이할(속된 말로 열심히 팔)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각 전설 별 parse(로그의 개별 전투 기록값) 수가 코어가 훨씬 높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전설, 전부위 915를 착용한 어떤 클래스에 모든 전설을 심크를 돌렸을 때 위와 같은 코어vs노코어의 격차는 절.대.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자면, 실제 전설의 dps 기대값의 편차는 위 로그처럼 극단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대모 끼고 있던 유저가 세푸즈 낀다고 갑자기 디피가 14만이 오르진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이야기지요.

사족같지만 두어마디만 덧붙이자면, 일례로 악사 로그를 보시면 반거인과 공생체 사이는 15만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암사보다도 크지요. 그런데 반거인 없으셨던 분들, 반거인 드시고 15만이 오르시던가요? 절대 아니지요! 평균적으로는 3만 정도셨을 겁니다.

위 로그는 그렇게 이해하시면 안됩니다. 반거인 먹은 사람들이 '올 반거인 나왔네 ㅋㅋㅋ 악딜 존나 파야지 ㅋㅋㅋ' 라면서 악딜을 팔 가능성이 크고, 또 반대로 악딜이 재밌어서 겁나 팠던(그로 인해 숙련도가 올라가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 올전설, 그리고 그 중 반거인을 보유하고 착용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프의 모양을 보시라는 거지, 그래프 막대 간의 절대적인 수치 차이를 보시라는 게 절대 아닙니다.



첨언 #2.

댓글에 좋은 의문을 제기해주신 분이 있어 짧게 덧붙입니다.
신화 로그의 경우 몇몇 비주류 직업(e.g. 생냥, 무법, 악흑 등)의 신화 참여자가 많지 않아(ㅠㅠ) 착용률이 낮은 전설의 경우 통계적 유의성이 확보될 정도의 표본 수(대충 n≥40~50)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대신 영웅 로그를 참조하신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