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블리즈컨.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의 메인스테이지 스크린에 웬 쿵푸팬더(?)가 등장했을 때 기자가 느낀 솔직한 감정을 얘기하자면 불타는 성전이나 리치왕의 분노 때와 달리 당혹감 쪽이 더 많았습니다.

블리자드에서 Mists of Pandaria라는 도메인과 상표권을 준비하고 있을 때만 해도 “에이 설마, 워3에 나오던 중립영웅이 나오겠어? 당장에 대격변에서 데스윙을 때려잡는 판인데 티탄이나 불타는 군단 본거지로 쳐들어가도 모자를 판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설마 설마 했건만...



실제로 판다리아의 안개 공개 후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판다라니, 중국 시장을 너무 겨냥한 것이 아니냐”, “게임 분위기에는 전혀 안 어울린다”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한국에선 2005년)부터 라그나로스, 네파리안, 크툰, 킬제덴, 리치왕, 데스윙 등등 아제로스를 갈아엎고 싶어서 안달이 난 수많은 악당들과의 지긋지긋한 투쟁을 생각해보면 한번쯤은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긴 합니다.

물론 가로쉬의 목을 따고 루팅을 하는 것을 기대하는 분도 많습니다만…….




▲ 불성-리치왕-대격변을 거치며 개념을 찾는 듯했지만 레이드 보스가 내정된 가로쉬




아무튼 코앞까지 다가온 확장팩, 판다리아의 안개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전히 안개를 붙잡는 것처럼 아리송한 주인공 종족 판다렌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보기만해도 왠지 푸근해지는 술과 음식의 종족, 그들의 탄생비화를 함께하시죠!




■ 게임 내 이스터 에그가 디자이너의 오너캐?


판다렌의 탄생을 이야기하자면 빼놓고 넘어갈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블리자드의 수석 디자이너 “샘와이즈 디디에(Samwise Didier)”가 그 주인공인데, 블리자드의 초창기 멤버로 크리스 멧젠 크리에이티브 개발팀 부사장과 함께 블리자드 게임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아트 부분을 담당하는 개발자입니다.




▲ 블리자드 아트의 어머니 샘와이즈 디디에. 워3 유즈맵을 즐겼다면 봤을 에러 아이콘의 주인공



팬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는, 블리자드 아티스트의 모임인 Sons of the Storm에서도 팬더 캐릭터를 오너캐(Owner Character : 통칭 자캐)로 사용할 정도로 팬더를 사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판다렌 전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워크래프트3에서는 악마사냥꾼(Demon Hunter)의 반월검에 팬더 모양 문양이 새겨지거나 얼음 타일 맵의 중립몬스터로 팬더를 집어넣는 등의 다소 장난스러운 이스터 에그를 확인할 수 있었고, “팬더 영웅이 나옵니다!”라는 만우절 농담이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등 샘와이즈의 팬더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 이것 때문에 왜 아지노스에 팬더 마크가 없냐고 항의하던 플레이어도...



▲ 왜색이 짙던 판다렌 초기 원화. 후에 "첸"과 "리 리"의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우절 농담인줄만 알았던 팬더 영웅은 워크래프트3의 확장팩, 얼어붙은 왕좌(프로즌쓰론)에서 정식 영웅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블러드엘프 시나리오에서 보너스 미션인 타워 디펜스를 성공하면 다음 미션에서 한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웅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스랄이 듀로타에 정착해 오그리마를 세워나가는 과정을 다룬 보너스 캠페인에서는 렉사르, 로칸과 함께 델린 프라우드무어 제독(제이나의 아버지)가 이끄는 쿨티라스 해군과 맞서 싸우는 등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에 공식적으로 판다렌이라는 종족과 그들의 고향인 판다리아가 추가된 것입니다.




▲ 렉사르도 뱉어낼 독한 술을 만드는 양조기술자 첸



판다렌 브류마스터(Pandaren Brewmaster/판다렌 양조기술자)라는 이 중립영웅의 등장은 꽤 호평을 받았는데, 비스트마스터와 함께 우주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모 프로게이머가 활용하면서 사기 나이트엘프 시대를 이끌기도 했고, 특유의 귀염성과 독특함 때문에 유즈맵 게임인 도타나 비슷한 AOS 게임인 카오스, 히어로오브뉴어스(HoN) 등에 등장하기도 하는 등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 DoTA 판다렌 브류마스터의 궁극기 시전 모습과 HoN의 영웅 판다모니엄





■ WoW에 남아 있던 판다렌의 흔적


이처럼 인기를 끌었던 판다렌.

하지만 워크래프트3의 후속작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에서는 판다렌의 흔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워크래프트3에서 등장했던 판다렌 ― 첸 스톰스타우트와 관련한 퀘스트가 칼림도어의 십자로(크로스로드)에 있기는 했지만 그 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정식 NPC로 등장하는 렉사르와 달리 첸의 행방은 묘연했기 때문입니다.




▲ 대격변으로 칼림도어가 박살나면서 없어진 "첸의 빈 술통" 퀘스트



일설에는 “팬더의 고향인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블리자드가 팬더 사용을 자제하기로 했다”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블리자드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펫으로 판다렌 수도사가 등장하거나 스타크래프트2의 초상화로 팬더 해병이 등장하는 등의 활용은 계속되는 편이었습니다.

어쨌거나 불타는 성전-리치왕의 분노-대격변으로 이어지는 확장팩이 이어지면서 “다음 적은 누구냐!”라는 상황에서 판다렌은 점점 잊혀지는 듯 했지만……2011년 블리즈컨에서 공식적으로 판다렌이 플레이어 종족으로 추가되고 새로운 직업인 수도사가 등장하게 되면서 이 털복숭이 종족은 워크래프트 세계에 다시금 등장하게 됩니다.




▲ 만우절 농담 캐릭터가 이젠 WoW 레귤러 멤버가 되었다!





■ 판다렌은 어떻게 아제로스에 등장하게 되었나?


워크래프트3의 판다렌 브류마스터에 대한 설정은 판다리아에 거주, 술을 좋아하는 무술의 달인, 대지와 자연의 힘을 빌려 쓰는 주술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 정도로 간략했지만, 판다리아의 안개 발표 이후 판다렌과 관련된 설정은 실로 다양하게 공개되었습니다.

판다렌은 고대에 판다리아의 땅에서 모구라는 종족에게 노예로 부려졌지만, 그들에게 반발해 독립을 얻을 수 있었으며 현재의 판다리아 땅에 제국을 세워 번영을 이룩한 역사가 있습니다.




▲ 판다렌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 로그인 화면의 석상은 숙적인 모구 종족의 유산이다.



하지만 판다리아에는 여전히 모구나 다른 토착 종족들이 판다렌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불타는 군단이 아제로스를 공격해오던 “고대의 전쟁”이 벌어지자 멸망의 위기라고 생각한 판다렌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샤오하오는 외부의 그 누구도 자신들을 찾아낼 수 없도록 판다리아를 짙은 안개로 감싸버립니다.

물론 이러한 조치에 거부감을 느낀 판다렌도 많았는데, 수 세기 전에 모험심 많은 판다렌 탐험가들은 거대한 거북이 센진 수를 타고서 안개로 가로막힌 바깥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 유랑도의 기반인 거대한 거북이 센진 수. 등에 박힌 가시가 비행선이라니 얼마나 큰 걸까?



그러나 안개 밖으로 나간 판다렌 역시 고향인 판다리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립된 이들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거대 거북이 센진 수를 유랑도라 이름 짓고 고향으로 돌아갈 그 날을 기다리게 되었고, 그 중 무술에 능한 양조 기술자들은 아제로스의 대륙으로 넘어가 새로운 술 재료를 찾기 위한 탐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데스윙에 의해 대격변이 일어나자 상황은 조금 바뀝니다.

판다리아를 감싸고 있던 짙은 안개는 대격변의 여파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고, 데스윙을 처치하고 주변 상황을 살필 여유가 생긴 얼라이언스와 호드는 이 새로운 대륙이 엄청난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판단하고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 판다리아 시작 지점인 비취 숲은 이미 얼라-호드 간 전쟁으로 치열하다.



이 와중에 얼라이언스의 비행선인 하늘불꽃호가 유랑도에 추락하게 되었고, 판다렌이라는 새로운 종족을 발견하게 된 양 진영은 서로 판다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립 진영인 판다렌이 얼라이언스와 호드로 나뉘어 성장해 나가는 것이 판다렌의 시작 지점 주요 스토리입니다.




▲ 개그맨 이 모씨가 "그래 결심했어!"를 외쳐야 할 것 같은 진영 선택의 순간





■ 느긋느긋 오동통... 판다렌 종족의 특징은?


판다렌의 종족적인 특성을 보자면 그야말로 쿵푸팬더의 주인공 “포”를 연상케 합니다.

요리를 위한 일일퀘스트나 세분화된 요리 계열이 나뉠 정도로 요리와 미식을 즐기고, 느긋한(게으른) 성격에 유머까지 갖춘 무술가라는 점에서 둘 간의 공통점은 상당히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성룡의 취권이나, KOF의 친 겐사이 같은 술을 즐기는 무술의 달인 컨셉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무조건 쿵푸팬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긴 어렵지만, 다양한 미디어에서 영감을 얻는 블리자드인만큼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쿵푸팬더의 설정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 등장 캐릭터도 비슷한 느낌이 상당부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술 마시고 맛있는 걸 먹고 잠만 자는 종족이라고만 하면 판다렌에게 미안한 것이, 그들 나름대로 조화와 균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자신들의 고향과 형제 가족들을 위협하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판다렌의 성향은 새로 등장하는 수도사에 적극 반영이 되어 있으며, 탱커와 딜러, 그리고 힐러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수도사는 판다리아의 안개에서 독특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판다리아의 안개 공식 시네마틱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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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모험을 기대하며...


WoW의 외전격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판다리아의 안개.

새로운 종족들과의 만남과 새로운 모험, 그리고 그동안 희미해지고 있던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갈등의 골을 사정없이 후벼 파는 이번 확장팩에서 과연 판다렌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얼라이언스의 동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호드의 일원이 될 것인가.

그 모든 선택과 결과는 9월 27일부터 진행되는 확장팩에서 직접 체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귀여운 종족과 함께하는 새로운 모험을 통해 그동안의 WoW와는 또 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