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괴담 따위.
자.... 밀고 당기기를 한번 해봅시다. (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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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진검(眞劍) 한자루를 소장하고 있는데
군 제대이후 제대로 연습 해보지도 못하고 방 한구석에서
먼지만 맞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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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 혹은 간단히 사인검(四寅劍)이라고 불리우는 양날의 칼이 왕실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이 칼은 마(魔)를 물리치기 위해 특정한 날에 만들어졌다는 참사검(斬邪劍)중 하나로,
12간지중 호랑이를상징하는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제작된 것으로서
순양(純陽)의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음(陰)한 사귀(邪鬼)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어졌습니다.
사가(私家)에서도 일부 제작된 흔적이 있으나 사인검의 대부분은 왕실에서 제작하여 궁중에 보관하거나
혹은 종친(宗親)과 총신(寵臣)들에게 하사되었습니다.
미신을 배격하는 조선의 유학자들은 사인검 제작 풍습을 좌도(左道)라고 비난하고 중단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말기까지 사인검의 제작은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사인검은 대부분이 주조(鑄造)에 의하여 제작되었고 단조(鍛造)로 만들어진 경우에도 재질이 연철(軟鐵)이었기 때문에
실전적인 의미에서는 칼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벽사용(僻邪用)의 부적(符籍)에 가까운 물건입니다.
검날 길이도 거의 2미터에 가까을 정도로 길었기 때문에 사용하기는 힘든 검이 였을 겁니다..
하지만 개화기에 우리나라를 찾았던 외국인들은 다른 칼은 다 제쳐 놓고 이 사인검에만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으며
현재도 해외의 도검 관련 사이트에서 가끔씩이나마 이야기 되는 조선의 칼은 이 사인검 뿐입니다.
사인검은 그 형태가 일본, 중국의 도검과 확연히 구별되며 검면과 손잡이등에 온갖 기이한 주문과 기호,
다양한 별자리가 칼 전체에 걸쳐서 금과 은으로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에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동양적 신비감이 느껴집니다.
현대에 와서 사인검 제작의 전통은 단절되었으나 사인검의 전통 공예적인 가치와 그 안에 담긴 전통 신앙의 의미는 여전하며 이를 복원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현재 진
행되고 있죠.
마를 물리치는 목적으로 특정한 날에 제작되는 참사검(斬邪劍)에는
사인검(四寅劍)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삼인검(三寅劍), 사진검(四辰劍), 삼진검(三辰劍)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모두는 참사검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겠으나 현재 전해지는 유물 중에는 삼진검이나 사진검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나마 사인검이라는 이름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
한편, 삼인검은 사인검을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지며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에 제작된 인검(寅劍) 중에서
인시(寅時)에 만들어진 것을 사인검이라고 하고 그 이외의 시간에 만들어진 것을 삼인검이라고 하는 것이므로 그 의미나 제작 과정은 동일하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사인검 유물은 약 30여점 정도로 알려져있는데 원래 사인검 자체가 주로 궁중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상당수는 경복궁에 소장되었다가 나중에 궁중유물전시관과 육군박물관 등에 소장되었습니다.
그밖에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종중 및 개인 수집가에게 여러점이 소장되어있으나 그 실상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사인검 유물을 칼자루의 형식에 따라서 나누어 보면 대략 다음의 세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삼엽환두(三葉環頭) 양식-
삼엽환두(三葉環頭) 양식은 칼머리가 세개의 원이 꽃잎의 형상을 띄고 있는 것으로 삼국시대의 삼엽(三葉) 환두대도(環頭大刀)와 삼루(三壘) 환두대도(環頭大刀)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입니다.
삼엽문은 세잎고리 양식이라고도 하고 삼루문은 세고리 양식이라고도 하는데 이 둘 모두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걸쳐서
환두대도의 병두에 자주 나타나던 양식이죠.
환두 대도와 삼엽환두양식의 사인검간에 계통적인 상관관계는 분명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조형적인 감각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상관 관계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병두와 칼자루는 모두 검신과 별도로 주조하여 조립하였으며 재질은 검신과 같고,
삼엽환두양식의 사인검에는 검신과는 별도로 주조한 황동제 코등이가 부착되어있는데
이 코등이는 여러겹으로 겹쳐진 연꽃잎의 모양이며 칼날 쪽에 수직으로 뻗어있습니다.
- 여의두(如意頭) 양식-
여의두(如意頭) 양식의 사인검은 칼자루 끝에 넓고 평평한 여의두 형태의 병두가 달려있고
그 가운데에 연잎문양으로 테두리를 장식한 구멍이 있습니다.
여의(如意)란 원래 당(唐) 현종(玄宗)이 등을 긁는 "효자손"을 두고 여인지의(如人之意)라고 한데서 비롯되었으나
나중에는 그 자체가 길상(吉祥)의 상징이 되어 상아, 옥, 산호 등 진귀한 재료로 만들어 집안에 두었으며
불가에서는 승려들이 법문을 할 때 이를 사용하였습니다.
여의주(如意珠)나 여의봉(如意棒)이라는 말도 다 여기에서 비롯되었죠..
이 여의두 양식의 사인검은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의(五禮儀)》에 그려진 금장도(金粧刀), 은장도(銀粧刀)와 거의 유사한 모습이며
조선시대의 무인석에서도 이러한 양식의 검을 짚고 서있는 것들이 발견됩니다.
여의두 양식의 사인검 코등이는 환도의 코등이와 유사한 형태이며 꽃잎 모양의 코등이 위에는 범어 주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 당검(唐劍) 양식-
당검 양식의 사인검은 칼의 전체적인 형태가 중궁의 당검(唐劍), 혹은 송검(宋劍) 양식과 유사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중국검과 달리 병두에 비교적 큰 고리가 달려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는 중국 도교의 칠성검 양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국 남조(南朝) 때 편찬된 《동현령보도학과의(洞玄靈寶道學科儀)》의 「작신검법품(作神劍法品) 에는 도교의 제의용 검의 제작 방법이 설명되어있는데
여기에 칼자루에 고리를 달고 이 고리에 주문을 담는다고 하였습니다.
당검 양식의 사인검 코등이에는 중국 검에서 흔히 나타나는 치우문양이 새겨져있습니다..
사인검(四寅劍)의 제작과정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실물 유물을 검토해보면
그 제작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사인검 제작은 조정(朝廷)에서 국가적인 행사로 실시된 것이 아니라 왕실(王室)에서 환관(宦官)들이 주도 하고 내수사(內需司)의 재물을 동원하여 이루어졌다.
숙종(肅宗) 때에 사인검 제작을 위해 선혜청(宣惠廳)이 내수사(內需司)에 재물을 지원한 적이 있으나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에 해당하며
원칙적으로는 왕실 재정만으로 충당하였다. 이는 사인검 제작이 국가적 안위를 비는 것이 아니라 왕실의 안녕을 비는 행사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사인검 제작은 궁궐(宮闕) 안이나 적어도 궁궐 부근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연산군 때 궁궐 안에서 사인검을 제작한 기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인검은 제작 과정 자체도 하나의 벽사(僻邪) 행위였으므로 다른 시대에도 궁궐 안에서 사인검 제작
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 사인검 제작에는 공사(公私)의 장인(匠人)들과 잡역을 맡은 군사들이 동원되었는데 숙종조의 기록을 보면 이들 장인들은 번갈아가면서 하루나 이틀씩 노역을 했다.
- 사인검의 제작기간은 적어도 1개월 이상에서 수개월이 소요되었다.
사인검 제작에 사용되는 철은 기왕의 무쇠나 시우쇠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산역(山役)을 통하여 쇳물을 녹여 만들기 때문에
이 산역에만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일단 칼날이 형태가 잡힌 이후에도 입사(入絲)와 연마(硏磨)등 후속 공정에 상당 기간이 소요되었다.
- 사인검 제작에는 주조(鑄造) 방식과 타조(打造) 방식이 모두 이용되었다.
사인검 제작이 가능한 시간은 두시간으로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일반 도검을 제작할 때와 같이 단조(鍛造)작업만으로 칼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이며
사인검의 대부분은 주조 작업만으로, 혹은 주조로 가단주철(可鍛鑄鐵)을 만든 뒤 이를 단타(鍛打)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인검은 실용적면은 전혀 없는 상징이였지만 숙종때 집안에 사인검을 보관 하고 있던 있던 장인의 아들이 부모를 죽이려는 산적을
사인검으로 베어 죽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사인검은 분명 날도 없고 들기도 어렵지만 강감찬이나 을지문덕 같은 명장들은 어린 시절부터 들고 휘두를수 있었는데
바위도 벨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사인검이 주술적인 면도 크지만 뭔가 주인의 의기를 발현하는 신검적인 힘을 갖고 있음을 증명 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인검이 당시 민중들에게 얼마나 신성시 됬는지 알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흠(申欽)이 지은 《상촌집(象村集)》 제7권에는 사인도가(四寅刀歌)라는 칠언고시(七言古詩)가 실려있습니다.
선조(宣祖)의 부마였던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이 신흠에게 인년(寅年)ㆍ인월(寅月)ㆍ인일(寅日)ㆍ인시(寅時)에 주조한
사인검(四寅劍)을 선물하자 그 기쁨을 노래한 것이로 이 내용을 보면 사인검이 우리 조상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사인도가(四寅刀歌)
林有魈兮山有夔- 숲에는 이매(魑魅)가 있고 산에는 도깨비가 있고
陸有虎兮水有螭 -땅에는 호랑이가 있고 물에는 이무기가 있어
夜而行兮晝而伏 -밤이면 돌아다니고 낮이면 숨어버리며
攬余裾兮嚙余足 -나의 옷깃을 끌어당기고 내 발을 깨무네.
橫中途兮不可制 -길에서 횡행하니 제어할 길이 없고
爲民害兮勢漸猘 -백성에게 해가되니 그 기세가 점점 더 거칠어진다.
我有刀兮名四寅 -나에게 칼이 있으니 그 이름을 사인(四寅)이라 하네.
讋地祇兮通天神 -지신(地神)을 두렵게 만들고 천신(天神)과 통한다.
白銀粧兮沈香飾- 백은(白銀)으로 단장하고 침향(沈香)으로 꾸몄으며
光潑潑兮霜花色 -빛이 번쩍이며 뿜어지니 마치 서릿꽃과 같다.
防余身兮奚所懼 -내 몸을 보호하니 어찌 두려워할 바가 있으리
邪自辟兮罔余迕 -삿된 것은 저절로 피하니 나를 얽어매지 못하리.
精爲龍兮氣爲虹 -정(精)은 용(龍)이 되고 기(氣)는 무지개가 되어
橫北斗兮亘紫宮- 북두성(北斗星)을 가로질러 자미원(紫微垣) 까지 퍼지네.
行與藏兮惟余同 -길을 다닐 때 몸에 감추어 함께하니 내 몸과 한가지로 생각하네.
歲將暮兮倚空同 -장차 늙어지면 함게 공동(空同)으로 돌아가리라. }
이 향가는 우리 조상들에게 사인검은 천신(天神)과 통하고 지신(地神)을 두렵게 만드는 신물(神物)이며,
이 신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어떤 귀신이나 요물도 자신에게 범접하지 못하리라 여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시에서 사인검을 통해 제어하고자 하는 대상은 이매(誾魅), 기(夔), 호랑이, 이무기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매는 숲속의 정령으로서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몸을 하고 다리가 넷인데 요물이며 기(夔)는 외발 달린 도깨비인데
이 둘 모두 사람을 홀리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망량과 허주, 독각귀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는 사람이 죽어서 생기는 귀신과는 다르며 《해동잡록(海東雜錄)》에 의하면
산과 바다의 풀, 나무, 흙, 돌, 물 등의 정기가 모여서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밖에 호랑이와 이무기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는 산과 물에 실제로 존재하는 영험한 짐승이었다. 따라서 사인검이 목적하는 주요 구축(驅逐) 대상은 죽은 자의 귀신
이 아니라 만물의 음기가 뭉쳐서 이루어진 도깨비와 위험한 영물(靈物)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인(寅)의 순양(純陽)한 기운을 받고 칠성과 28수의 천상 기운을 내려 받은 사인검은 음기(陰氣)로 이루어진 요물을 쫓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가 큰 것이죠..
사인검에는 다양한 상징과 주술적인 수단이 담겨있습니다.
우선 사인검 자체가 칼의 형태를 지닌 부적이고 또한 인(寅)이 들어간 시간에 제작하여 하늘의 양기를 칼에 담고자 했습니다.
검신과 검파에는 입사(入絲)와 상감(象嵌)으로 칠성문(七星紋), 28 성수문(星宿紋), 한문주문(漢文呪文), 부적(符籍), 범어진언(梵語眞言), 길상문(吉祥紋)등을
금은으로 새겨 검의 신비한 힘을 더하였습니다..
사인검을 부적의 일종이라고 볼 때 이 부적의 가장 큰 특징은 검(劍)의 형태로 철을 부어 만들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칼로써 사악한 요귀를 쫒는다는 믿음은 도교의 전통 속에 널리 자리잡고 있는데,
도교의 천신과 신선이 요귀를 물리치는데 검을 사용한 예로는 현천상제(玄天上帝)의 칠성검(七星劍), 장릉의 참사검(斬邪劍), 여동빈의 순양검(純陽劍) 이
대표적이며 현재에도 도교의 도사들은 목검을 써서 귀신을 물리칩니다. .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에서도 죽은 사람은 칼을 쓴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장군거리에 사용하는 장군칼,
칠성거리에 사용하는 칠성칼등이 굿거리에 등장하며 무당은 자신의 영험을 실은 대신칼을 사용합니다..
사인검 제작에 담긴 가장 또 하나의 중요한 상징은 바로 인(寅)이 들어간 날에 극양의 기운을 받아 만든다는 점입니다. .
조선의 사인검은 반드시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를 기다려 12년마다 한 번씩 만들어졌으며 이 때문에 사인검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물론 인년 인월에는 인일(寅日)이 몇차례 있지만 양기가 가장 왕성하다는 첫 번째 인일(寅日), 상인일(上寅日) 에만 사인검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참사검은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드는 것일까?
이들 인(寅)과 진(辰)은 모두 음양 오행상 양(陽)에 해당되며 특히 인(寅)은 양(陽)중에서도 씨앗 속의 양기가 밖으로 막 빠져나오는
순간의 양(陽)이며 진(辰)은 밖으로 빠져나온 양기가 활발히 일어서기 시작하는 시기의 양(陽)입니다.
주역에 따르면 모든 기운은 가득차면 이내 기울기 때문에 인(寅)이나 진(辰)처럼 처음 생성되는 시기의 양(陽)이야 말로 가장 순수한 진양(眞陽)이며
양(陽)으로서의 기운도 강한 것입니다..
참사검이 음기(陰氣)로 이루어진 요귀를 물리치려면 순양(純陽)의 기운을 가져야 하며 따라서 양이 가장 강한 이 날에 참사검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일(寅日)에 양의 기운이 강해진다는 믿음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서 《포박자(抱朴子)》 등섭편(登涉篇)에는 부적을 만들 때 양의 기운이 강한 인일(寅日)을 택하여
양(陽)의 기운을 상징하는 붉은 색 글씨로 쓴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중국와 우리나라에서는 인불제사(寅不祭祀)라 하여 인일(寅日)에 제사를 지내거나 귀신에게 빌지도 않았는데 이는 인일(寅日)에 양의 기운이 강하여 귀신이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인검에는 대부분 북두칠성이나 동양의 고대 별자리중에서 가장 중시되었던
28 성수(星宿)가 새겨져 있으며 이는 사인검의 핵심 상징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북두칠성은 북극성의 바로 옆에 국자 모양으로 늘어서있는 일곱개의 별이고 28성수(星宿)는 적도대(赤道帶)를 28구역으로 나누어
각각을 하나의 별자리로 구성한 것입니다.
위의 사인검에 새겨진 28수의 별자리 이름은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東方七宿>
각(角) 항(亢) 저(?) 방(房) 심(心) 미(尾) 기(箕)
<西方七宿>
두(斗) 우(牛) 여(女) 허(虛) 위(危) 실(室) 벽(壁)
<南方七宿>
규(奎) 루(婁) 위(胃) 묘(昴) 필(畢) 자(?) 삼(參)
<北方七宿>
정(井) 귀(鬼) 류(柳) 성(星) 장(張) 익(翼) 진(軫)
사인검에는 칼에 신령한 기운을 불어 넣기 위해서 한문으로 주문이 새겨넣는 경우가 있는데
검의 명칭을 제외하고 총 24자의 한자가 전서체로 입사(入絲)되어 있습니다.
한 사인검에 들어간 내용을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四寅 斬邪劍
사인 참사검
乾降精 坤援靈 日月象 岡?形 ?雷電
하늘은 정(精)을 내리시고 땅은 영(靈)을 도우시니 해와 달이 모양을 갖추고 산천이 형태 이루며 번개가 몰아치는도다.
運玄坐 推山惡 玄斬貞
현좌(玄坐)를 움직여 산천(山川)의 악한 것을 물리치고 현묘(玄妙)한 도리로서 베어 바르게 하라.}
위의 문장은 명문에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적혀있는데
앞 부분의 15자는 음양 오행의 이치를 설파하는 부분이며 뒤의 9자는 직접적인 벽사(僻邪)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앞부분을 살펴보면 이는 《주역(周易)》의 8괘를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양(全陽)에 해당하는 건(乾)은 곧 하늘을 나타내며 전음(全陰)에 해당하는 곤(坤)은 곧 땅을 의미합니다.
건(乾)과 곤(坤)은 각각 일월의 정(精)과 산천의 영(靈)을 내죠..
그리고 아버지에 해당하는 건(乾)과 어머니에 해당하는 곤(坤)이 만나면 ‘맏아들’에 해당하는 뇌(雷)가 가장 먼저 태어나는 것입니다.
앞부분의 15자는 이렇듯이 《주역(周易)》의 8괘중 건, 곤, 뇌의 세가지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사인검이 구축(驅逐)하고자 하는
산천의 삿된 요귀들이 모두 곤(坤)으로부터 비롯된 음기(陰氣)임을 밝히고 하늘의 양기(陽氣)로써 이를 물리치는 도리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음의 9자중 첫머리에 나오는 현좌(玄坐)란 원시천존(元始天尊), 옥황상제(玉皇上帝) 혹은 현무대제(玄武大帝)가 머무는 북방의 하늘을 의미하며
현좌를 움직인다는 것은 사인검으로 이들 천신을 마음을 움직여 힘을 빌린다는 의미입니다.
다음 구절의 퇴산악(推山惡)은 ‘산과 같은 악을 물리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인검의 제작 목적을 고려하여‘산천(山川)의 악한 것들을 물리친다’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마지막 구절의 현참정(玄斬貞)은 현(玄)으로 악한 것들을 베어 바르게 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현(玄)이란 음(陰)도 아니고 양(陽)도 아닌 것으로서
깊고도 깊으며 현묘한 도리, 즉 도(道)를 의미합니다.
정(貞)은 단순히 바르다는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주역(周易)》에서는 정(貞)을 건(乾)이 갖는 네가지 덕중의 하나로 설명합니다.
양(陽) - 음(陰)
건(乾) - 곤(坤)
하늘 - 땅
정(精) - 령(靈)
일월(日月) - 강전(岡?)
현좌(玄坐) - 산악(山惡)
사인검(四寅劍) - 요귀(妖鬼)
결국 위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사인검의 명문은 《주역(周易)》과 도교(道敎)의 우주관을 담고 있으며
음양(陰陽)의 원리를 따라서 산천(山川)의 음기(陰氣)가 뭉쳐서 생성되는 요귀(妖鬼)를 하늘의 양기(陽氣)가 담긴
사인검으로 제거하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5) 부적(符籍)
사인검의 칼자루 중에는 도교의 부적이 새겨진 것이 일부 존재합니다..
사인검에 그려진 부적의 구성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면, 참(斬)자는 벽사부(?邪符), 제마사부(除魔邪符), 진살령부(鎭殺靈符) 등에 쓰이는 전자(纏字)로서
삿된 것을 베어 없앤다는 의미이며 정(正)자는 원래 북두성의 다른 이름인 강(?)자의 변형입니다.
일(日)자는 해와 양(陽)을 상징하기도 하고 불을 다스리는 조왕(?王)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출(出)자는 요귀에게 밖으로 나가라는 명령이죠,
부적 아랫 부분의 받침은 좌우봉명(左右奉命) 이라고 하여 부적의 명을 받들어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사인검에 새겨진 부적은 퇴마(退魔)와 제사(除邪)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 범어진언(梵語眞言)
일부 검신에는 범어 혹은 티벳 문자로 불교의 진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옴마니반메훔(Om mani padme hum)'인데 이는 불교의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입니다.
이 진언은 반드시 불교에서만 사용되는 진언은 아니며 고대의 인도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육자진언은 '온 우주(Om)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mani)와 자비(padme)가 지상의 모든 존재(hum)에게 그대로 실현될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되지만
그보다는 그 자체가 우주의 울림이며 진동라고 합니다.
불교의 진언은 도교에서도 수용되어 범음(梵音)이라고 불리웠으므로 이를 직접적인 불교적 주술 수단의 이용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7) 기타 문양
사인검에는 연화문, 화염보주문, 여의두문, 길상초문등으로 해석되는 다양한 불교 계통의 문양이 새겨져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양들을 반드시 불교적인 상징으로만 이해하기는 곤란하며 불교에서 비롯되었으나
조선에서 토착화된 길상 문양으로서 사인검을 장식하는데 이용되었다고 보는게 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