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공포게임이 나온다. 최초 공개된 트레일러 영상의 면면이 모두 신선하다. 성냥불 하나로 칠흙같은 어둠을 밝히고, 국화가 핀 얼굴의 크리처가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수수께기 같이 스친 영상의 마지막 대사는 '어서 내 가슴을 갈라 열어'라는 한마디다. 지난 10월 9일 새벽 1시 막을 올린 인디 게임 쇼케이스 '더 트리플-아이 이니셔티브'의 첫 순서를 장식한 1인칭 심리 공포 신작 'JIAOHUN(이하 쟈오훈)'의 첫 트레일러 영상의 이야기다. 

12AM 블랙아웃이 만드는 이 게임은 2000년을 코앞에 두고 시간이 멈춘 중국 소도시 백수현 선녀마을이 무대다. 플레이어는 밀레니엄 전야에 멈춘 마을로 돌아와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헤친다. 전투보다 탐색과 퍼즐이 중심이고, 언리얼 엔진 5를 기반해 4:3과 2.39:1 화면비 전환과 필름, VHS 질감을 얹어 오래된 기록 영상 같은 분위기를 냈다. 고어한 장면 하나 없지만, 영상을 보는 내내 불안이 가시지 않았던 것도 흥미롭다. 출시는 2027년, PC 스팀과 플레이스테이션 5다.

혼을 부르다, 한자로 유추하는 재미요소

제목부터 살펴보자. 영상 첫머리에서 영문 제목 JIAOHUN 뒤로 한자 叫魂이 비친다. 부를 규에 넋 혼을 쓴다. 우리 음으로 읽으면 규혼, 말인즉슨 혼을 부른다는 뜻이다. 중국 민간에서는 크게 놀라 혼이 달아났다고 여기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 되돌리는 초혼 풍습을 이 말로 부른다. 


물론, 개발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제목의 뜻을 따로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이야기의 주제가 집념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떠난 혼을 끝내 놓지 못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예상하건대 의도된 집념은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밀려온 변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이 품은 욕망과 집착, 그것이 한 사람을 극단으로 내모는 과정을 심리 공포가 아닐까.

그리고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시작된 두려움이 이웃과 마을 전체로 번져가는 과정도 이야기의 또 다른 포인트다. 영상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가슴을 갈라 열라는 대사는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혼을 부른다는 제목, 집념이라는 주제, 그리고 이 요구를 나란히 놓으면 마지막 밤의 진실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 희미하게나마 그려진다.

새천년 현수막만 남은 선녀마을, 돌아온 이유는 아직 비밀

무대가 되는 백수현 선녀마을은 지도에서 찾기도 어려운 작은 마을이다.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나며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다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마지막 변화를 시도했지만, 그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과는 밀레니엄 전야에 멈춰버린 마을이다. 집집마다 걸린 달력은 새 천년 하루 전에 머물러 있고, 거리에는 '새천년을 맞이하자'는 현수막이 아직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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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는 이 마을로 다시 돌아와 골목과 집을 돌아다니며 그날 밤의 흔적을 더듬는다. 다만 플레이어가 누구이고 왜 돌아왔는지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플레이 방식은 흔히 떠올리는 전투형 호러와 다르다. 환경 탐색과 퍼즐, 워킹 시뮬레이션 요소가 중심이다. 

개발사는 초자연적인 공포를 앞세우기보다 익숙했던 공간과 기억이 낯설게 변해가는 과정에서 오는 불안을 그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 중국 소도시의 생활상과 시대의 기억을 소재로 끌어왔다. 건물과 거리는 물론 생활 공간 구석구석의 세부 요소까지 당시 분위기를 살리는 데 공을 들였다는 설명이다.

마치 레트로 영화처럼, 성냥불과 VHS 노이즈가 만드는 긴장

그 분위기를 완성하는 것이 연출이다. 언리얼 엔진 5로 만들면서도 4:3과 2.39:1 화면비를 오가고, 필름과 VHS 테이프를 떠올리게 하는 화면 효과를 더했다. 화면비 자체를 연출 수단으로 쓰는 셈이다. 덕분에 영상은 게임 플레이 장면이라기보다 오래된 기록 영상을 재생하는 느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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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부터 그렇다. 작은 성냥불로 어두운 공간을 밝히며 조심스레 나아가는 장면은 어릴 적 보던 레트로 공포 영화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낯선 공포가 아니라 이미 몸이 기억하는 긴장이다. 밀레니엄 직전에 멈춘 선녀마을의 풍경 역시 1990년대 초반 중국 영화 속 한 장면을 옮겨 놓은 듯하다. 시대 재현의 밀도가 어느 정도인지 한 컷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면 공간은 지극히 평범하다. 낡은 아파트, 오래된 나무문, 비 내리는 좁은 골목처럼 누구나 한 번쯤 지나쳤을 장소들이다. 공포는 이 익숙한 풍경과 소리가 조금씩 어긋나는 순간에서 나온다. 영상에 고어하거나 유난히 기괴한 장면은 없다. 그런데도 끝까지 심리를 건드리는 묘한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쟈오훈 첫 공개 영상의 가장 큰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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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처는 여러 형태로 번갈아 등장한다. 탐색 중심 호러인데도 지루할 틈이 없어 보이는 이유다. 그중 가장 눈에 남는 것은 얼굴에 국화가 핀 크리처다. 국화는 동아시아에서 조문과 애도에 쓰는 꽃이다. 혼을 부른다는 제목과 포개 보면 이 연출이 숨겨진 이야기와 맞닿아 있으리라는 추측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쇼케이스가 쟈오훈을 앞세운 이유

한편, 더 트리플-아이 이니셔티브는 데드셀 개발사 이벌 엠파이어가 주최하는 인디 게임 케이스로, 진행자도 광고도 없이 트레일러만 45분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해마다 4월에 열리던 행사가 10월에 한 번 더 열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날 40개 타이틀의 소식과 8개의 월드 프리미어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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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나리움 2', '탈로스 원리 3', '디 이스케이피스트 3' 같은 이름값 있는 속편이 줄을 이었고, 국내 작품으로는 누적 판매 1,000만 장을 넘긴 '데이브 더 다이버'가 마지막 DLC 소식을 알렸다. 그 40편 가운데 맨 앞자리에 선 작품이 쟈오훈이다. 쇼케이스의 오프닝은 행사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자리다. 이름난 속편을 뒤로 미루고 신생 개발사의 신작을 첫 순서에 올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최 측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읽힌다.

가을밤과 잘 어울리는 공포라는 점도 짚어둘 만하다. 쟈오훈은 점프스케어로 깜짝 놀라게 하는 게임이 아니다. 서서히 조여오는 불안, 비 내리는 골목과 성냥불 같은 정서적 연출이 중심이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에 불을 끄고 천천히 빠져들기에 알맞은 공포다. 1999년 밀레니엄을 앞두고 느꼈던 기대와 불안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기억이다. 중국 소도시가 무대라고 해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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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는 2027년, PC 스팀과 플레이스테이션 5로 예정돼 있다. 스팀 페이지는 이미 열려 위시리스트 등록을 받는다. 기대할 만한 대목을 꼽자면 ▲ 쟁쟁한 신작 사이에서 오프닝을 차지한 존재감 ▲ 세기말 중국 소도시라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시공간 ▲ 화면비와 필름 질감을 연출로 끌어들인 감각, 세 가지다. 새천년 현수막 아래 멈춘 마을에서 누군가 불러낸 혼이 어떤 진실을 품고 있을지, 2027년까지 눈여겨볼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