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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3 05:59
조회: 13,335
추천: 7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실상![]() <국내에서 와키자카가 쓰잘데기 없는 명성을 얻게 된 이유> 전부 불멸의 이순신 탓이다. 사실 이 드라마 이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이름을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정도. 하지만 불멸의 이순신에서 엉뚱하게도 이순신의 라이벌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뭔가 대단한 명장인 것처럼 추앙 받게 되었다. 이건 드라마 방영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던 문제인데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럼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어떤 인물인가. 이 사람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시즈카타케 칠본창에 속하게 되면서다. 이것도 유독 우리나라에서 왜곡이 많은 편인데 시즈카타케 칠본창은 엄청난 명장들이 엮인 이름조차 아니다. 실제로 명장 운운하는 사람치고 칠본창에 누가 들어있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도 못한다. 고니시나 도도 같은 인물이 칠본창에 들어있다고 답하는 경우마저 있을 정도.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히데요시는 밑바닥에서 올라온 인물이라 전국시대의 다른 여러 다이묘들과는 다른 면이 많았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 다른 다이묘들은 누대에 걸쳐 봉공해 왔던 가신들이 존재했던데 비해 히데요시는 자신의 수족을 처음부터 키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시즈카타케 칠본창은 이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소위 낙하산 집단으로서 그 면면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필두의 자리를 지켰던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어머니가 히데요시의 이모였으며, 그 다음 가는 위치였던 가토 기요마사는 히데요시의 7촌 외조카였고, 가토 요시아키 등은 히데요시의 시동 출신이다. 와키자카는 이런 다른 칠본창들과는 다른 출신 성분을 지니는데, 멀게나마 히데요시의 친척이거나 시동출신인 다른 칠본창들과는 달리 딱히 접점이랄 것이 없는 위치라 칠본창 내에서도 들러리나 듣보잡 취급을 당했다. 실제로 칠본창의 명단이 공개되었을 때 칠본창 필두인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내가 저런 놈과 동급이라고?" 하면서 황당해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뒷담화조차 아니다. 본인 앞에서 대놓고 그랬다. 이런 연원이 있다보니 다른 칠본창들이 낙하산 답게 쑥쑥 지위가 성장할 때도 와키자카는 거의 외면 받다시피 한 느낌으로 고작 3만석의 영지를 지키게 된다. 3만석이라고 해서 대단한 영지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이것 역시 오산이다. 전국시대 당시 영지 규모당 병력수에는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대충 1만석당 200~1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당시 와키자카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수는 기껏해야 최대 3천 정도라는 얘기고 실제로 임진왜란 때 와키자카가 이끌고 있던 병력수는 약 1600명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용인 전투) 선봉이었던 가토나 고니시가 만단위의 병력을 이끌고 있던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그 지위가 보잘것 없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장성급이었던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연대장이면 잘 쳐준 수준이란 얘기다. 한산도에서 명목상 수군을 이끌게 된 것도 딱히 와키자카가 수군에 적성이 있어서가 아니다. 당시 일본의 수군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은 이른바 해적집단이다. 이들은 세토 내해 같은 수로 인근을 점거하고 통행세를 받는 것이 주요 수입원이었는데 실제로 해적으로 이름 높았던, 구키나 구루시마 같은 이들이 바로 이런 해적집단의 두목들이며 일본에서도 와키자카보다 수군대장으로 이름 높은 건 바로 이 구키와 구루시마 같은 인물들이다. 거의 바지사장 정도 위치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와키자카가 이런 해적집단을 통솔하게 된 것은, 주어진 영지가 세토 내해에 접한 곳이었던 것이 이유다. 아무리 그래도 일군의 통솔역에 이런 해적 두목들을 세우기는 곤란한 일이고, 그나마도 히데요시의 동생이었던 히데나가의 부하를 거쳐온 도도 다카토라보다 명성이나 실적면에서 훨씬 뒤처지는 면모를 보인다. 원균을 때려잡았던 칠천량 해전에도 참가했지만 당시 수군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것은 도도 다카토라였을 정도. 이전에도 이후로도 임란 당시 실질적인 왜군의 수군 총대장 역할은 거의 도도 다카토라가 맡았으니 수군에서의 존재감 또한 와키자카는 그저 곁다리 바지사장, 아니 사장도 과하고 낙하산 부장 정도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럼 1600명으로 수만의 삼도근왕군을 흩어버렸던 용인 전투는 어떤가. 당시 고니시나 가토 같은 왜군 수뇌부들은 삼도근왕군이 집결하여 한양에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자 안쪽으로 깊숙이 끌어들여 포위섬멸하기로 전략을 세운다. 그런데 와키자카가 자기 부하들 이끌고 나가서 이렇게 모인 삼도근왕군을 흩어버렸다. 왜군 수뇌부들로서는 저게 뭐하는 짓이냐며 통탄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이고 이렇게 온존된 병력으로 인해 왜군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병탄하는 일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었다. 와키자카는 수뇌부의 중요 전략조차 전달받지 못했을 정도로 왜군 내부에서 그 위치가 한없이 듣보잡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자, 그런데 왜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런 듣보잡을 이순신의 라이벌로 띄워주게 된 걸까. 알다시피 이순신 장군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유래가 없었을 정도의 먼치킨이시다. 먼치킨 소설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뭔가. 너무 짱짱 센 탓에, 한번 툭 치면 다 쓰러져 죽으니 극적 긴장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당시 이순신 장군의 처지가 마냥 좋았던 것도 아니고 원균이라는 희대의 트롤에 의해 수군이 박살나는 과정을 겪기도 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패 전승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룬 장수인 것만은 분명한 일이다. 와키자카가 이순신의 라이벌 역할로 선택된 건, 이렇게 부족해질 수 있는 극적 긴장감을 고양시키기 위함이었지만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에도 저딴 듣보잡을 어디 충무공의 라이벌로 띄워주느냐며 역덕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을 정도다. 실제로 이것은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가 역덕들 사이에서 평가절하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차라리 드라마에서의 위치에 들어가야 할 것은 도도 다카토라가 맞다. 실질적인 수군 총대장의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고 히데요시와 맞먹을 정도로 일개 아시가루에서 다이묘의 위치에 올라간 인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도도 다카토라도 이순신의 라이벌 위치에 놓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인물인 건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순신에 대응할 만한 인물 자체가 없는 것이 사실이니 차라리 원균을 만악의 근원으로 삼아 조선 내부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편이 더 높은 극적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기야 불멸의 이순신은 원균맹장론마저 들고 나온 드라마이니 할 말 없다만. 그런데 이런 것도 모르고 그저 드라마에서 본 것이 세상의 진리라도 되는 양 아직도 와키자카를 무슨 천하에 둘도 없는 명장인 것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을 보면 볼때마다 속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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