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못 이루는 밤...
70년대 초반에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2학년 때 5.18을 맞이했다.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얼른 집에 가라고 해서 '이게 웬 떡이냐' 라며 친구랑 둘이 신나서 뒷산에서 놀다가 돌아와보니 어머니, 아버지 애 죽었다고 난리나서 온 식구가 찾으러 다녔다고 ...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그렇게 맞아 본적이 없었다. 얼굴에 눈물 , 콧물로 얼룩져서  쓰라림에 잠못들고 있을 때 아버지가 찬물에 적셔 얼굴을 닦아주던 그날 밤이 5.18의 시작이었다.

금방 학교에 돌아갈 줄 알았지만 시간은 자꾸 길어져서 어린 마음에 숙제도 없고 놀 수 있는 뜻모를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

어느 날 오후 머리 위를 날아가는 생전 처음 보는 물체, 그리고 친구가  ' 우와! 헬리콥터다! ' 라며 감탄사를 내비칠 때 다시한번 우리 부모님들은 나를 찾았고 급하게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 날  우는 엄마와 '갖다올게요' 라며 인사하는 셋째형에게 '형, 어디가?' 라고 물었지만 아무 말없이 대문 밖을 나서는 셋째형을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형은 큰 덤프트럭에 몸을 싣고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때 엄마가 달려나와 '조심해라잉. 참말로 조심혀잉. 아재들 말 잘 듣고...'라며 엄마가 형에게 보따리를 주었다. 난 보았다. 울 엄마가 그렇게 울음을 꾹 참으며 입술을 떨리며 뭔가 말을 할려고 했지만 목이 잠겨 말하지 못하는 것을...

그렇게 셋째 형이 떠나 간 후 엄마는 신안동 큰 신작로에 털썩 주저 앉아 울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유도 모른 채 나도 따라 울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아무런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녁 놀이 석양에 물들어갈 때 친구들과 하던 다방구를 마무리 할 때 쯤 뒤에서 누군가가 날 불렀다 "육제야(여섯째라는 말인데 식구들은 날 그렇게 불렀다) 여서 뭐들허냐!! 안들어가고!" 셋째형이었다. 형은 친구들에게 얼른 집에 가라며, 내 손목을 세게 잡고 끌어 집으로 들어갔고 함께 돌아온 모습에 엄마는 다시 한번 목놓아 울었다. 식구들은 처음엔 함께 울더니 나중에 화색이 돌았고 셋째 형이 무엇인가 이야기 하자 다들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긴박하게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와 막내 누나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형, 그리고 집에서 함께 일하던 아저씨들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날 밤 엄마, 아버지, 누나와 나는 다락방에, 형들과 아저씨 들은 창고로 쓰던 골방으로 몸을 숨겼다. 왜 갑자기 다락방에 잠을 자야 되는지 모른채 어렴풋이 선잠이 들었을 때 갑자기 큰소리가 들려 왔다.  '빠빠방! 팡! 빠빠바바' 큰 망치로 철판을 연신 두들기는 소리.... 시내와 거리가 있는 곳임에도 소리가 들려왔다.

다락방 창문 너머에서 번쩍거리는 불빛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아버지는 '육제야 소리내지마라 잉. 절대 소리 내면 안된다잉'라며 나를 감싸앉으며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온몸이 떨리는 아버지, 옆에는 엄마와 누나가 서로 부둥켜 꼭 안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그렇게 잠못 드는 밤을 보냈고 난생 처음 날을 샜다.

그날 이후 집 앞에는 하얀 머리 띠를 두른 군인들이 총을 든채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다.

친구들과 그 모습이 신기해서 "국군 아저씨 그거 진짜 총이에요? 우와 이거 만져봐도 돼요?" 라고 묻자 웬지 모를 눈길로 쳐다보던 군인...

그리고 그 순간 언제 왔는지 모르지만  엄마가  내 손을 잡아 끌고 집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난 학교에 다시 등교하게 되었지만 너무 이 방학이 일찍 끝났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학교 생활을 이어 갔다.


두 번째 잠못 이루는 밤
시간이 흘러 내가 중 3이 되었을 때 6.29가 일어났고
대통령 직선제, 김대중..김영삼..전두환..노태우..6공 .. 88 올림픽 ..대학 입학..첫 짝사랑.. 군 입대..졸업과 함께 맞이한 IMF.. 상경..첫 직장.. 결혼... 첫딸..부모님과의 영원한 이별..쉴새 없는 삶에 찌들어 가고 있었기에 난 정치에 관심도 우파, 좌파 이런것에 관심따위 없었다.

그때까지 선거라고는 군시절에 했던 대통령 선거가 전부...

그러던 2001년 12월 겨울 ...눈이 내리는 어느날 그를 처음 보았다. 삼성동 현대 백화점 앞에 조그마한 유세 차량위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데 혼자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미친세끼..이 추운 날 머하는 짓이야. 누가 알아보지도 않구만' 속으로 비웃으며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그의 울림이 자꾸 귀에 들려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먼 발치에서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날 밤 눈보라를 맞으며 끊임없이 외치던 어떤 정치인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저 인간 뭐야.. 말 드럽게 잘하네..' 잠시 뒤 그는 마이크를 거두며 유세 차량에 내려와 사라졌다..

노무현... 그와의 첫만남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정치인에 흥미가 생겼지만 ..이내 치열한 내 삶 속으로 다시 되돌아 갔다.

그리고 다시... 그를 보게 된 것은 TV속에서였다.
그 눈보라속에서 말 잘하던 정치인이 대통령 후보로써 TV속에서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연설은 이인제가 노무현을 빨갱이로 몰아가기 위해 장인의 좌익 경력을 들먹이던 그 때였다. ' 허이구, 저 아저씨 좃됐네.. ' 라며 비웃으며 내심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어 나도 모르게 TV 볼륨을 올렸다.

그 말 잘했던 정치인 노무현은 그 말을 한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입니까!......."

순간 내 머리속이 하애지며 ' 뭐지? 뭐야 저 아저씨 뭐야'
그 동안 무관심, 경멸의 대상이었던 정치에서 한 정치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해 난생 처음 자발적으로 내 손으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 했다. 그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된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두 번째 잠못 이루는 밤을 맞이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난 그를 잃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치인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써 사랑했던 그를 잃었다.처음엔 '뭔 말같지 않은 .. 뉴스야' 라고 무시 했고 그 이후엔 믿지 못했고 분노했고 좌절했고 울었다. 정말 꺽꺽대며 울었다.

다시 정치가 싫어졌고 미워졌으며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로 인해 시작한 투표이기에 멈추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단 한번도 그와 이야기 해보지 않았지만 무언의 약속같은 것이었을까?.. 그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나의 한표는 쉬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사전 투표까지 이제 4시간... 옆에 함께 잠을 들지 못하는 아내와 함께 있다. 아내는 밀렸던 드라마를 보며.. 나는 이렇게 오이갤을 보며 이 밤 새벽이 끝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두사람은 오늘 함께 투표장에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