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 터벅..


"이런 볼거리가 다 있나, 사냥꾼이 사냥감이 

되었군. 사실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




나타노스 블라이트콜러는 피로 물든 해안가에서 

저항 끝에 무릎 꿇은 감시관을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


"아니야! 이럴... 리는...!"

중상을 입은 감시관은 피를 토하며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비참한 현실을 부정했다.


"뭘 망설이나? 어서 끝을 내게."

비열한 냉소를 머금은 나타노스는

호드 용사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아무도.. 오지 않다니.."

다음 순간, 호드 용사의 무기가 감시관을 향해 

날아들었고, 최후의 순간 엘룬의 빛이 아닌

끝없는 어둠만이 그녀를 삼켰다.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마지막 의문을 토해냈다.

"어디.. 계신.. 거지....?"





문워든.

그것은 감시관이 되는 것이 특권이라 

여겨지던 시절, 시라에게 붙은 이름이었다.


시라 문워든은 그 이름을 스스로도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달과 감시관,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녀는 동족과 엘룬을 위해 평생을 바쳤고,

동족 또한 그녀에게 명예를, 엘룬의 이름은 

그녀에게 영광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명예도, 영광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마이에브 섀도송, 그녀는 아마도 시라가 아는

감시관 가운데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노련하고,

열정적인 최고의 감시관일 것이다.


그녀는 어둠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적을 추격하면서도

한순간도 굴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많은 감시관들이 그녀를 존경하였고, 시라 또한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제로드 섀도송을 해치고 달아난 배신자, 

일리단 스톰레이지를 쫓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기던 마이에브는 결국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다. 

고향, 인간성, 자신을 믿고 따르던 자매들까지..


'마이에브는 우릴 버렸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최소한 시라는 가슴 속 깊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얼마 뒤 감시관의 금고에서 일어난 배신은 

상처투성이인 그녀의 가슴에 커다란 쐐기를 박었다.




감시관의 금고가 군단의 공격을 받았을 때 시라가 들었던 

장 충격적인 소식은 마이에브가 가장 신뢰하는 자매들중 

하나인 콜다나 펠송이 군단의 앞잡이로 변절했다는 것이었다.


'대체 왜?'




의문과 함께 절망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씁쓸한 감정을 곱씹으며, 시라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불안한 표정으로 훈련용 글레이브를

떨리는 손으로 쥐고 있는 나이트엘프 신병들이 있었다.


'적을 공포에 떨게 해야할 감시관이.. 적에게 떨고 있다고?'


지도자가 버리고 떠난 감시관에, 충직한 동료가 

죽음보다 배신을 택한 감시관에 명예 따위는 없었다.


평생을 바쳐 지키려했던 것을 잃어버린 

시라 문워든에게 남은 것은 이제 달빛뿐이었다.

동요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는 기도했다.


'나를 비추는 달빛.. 나를 인도하는 달빛..

엘룬이시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의심을 거두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엘룬을 위해 싸웠다.

그래. 마지막 순간까지는 말이다.




"일어나라! 밴시 여왕이신 실바나스 님의 

이름으로.. 네게 이 선물을 주겠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뜬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호드 병력과 싸우다 전사했던 델라린 서머문과.

밴시 여왕의 용사 나타노스와 싸우고 있는

달의 여사제, 티란데 위스퍼윈드였다.


"마음 속 어둠에 맞서야 합니다. 자매들이여!"

티란데는 서머문과 문워든에게 외쳤다.


그 순간 시라의 마음 속에, 오래전에 들었던 

작은 의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체 왜?'




"당신을.. 믿었는 데.."

델라린 서머문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 또한 달의 이름을 가졌고, 달을 믿었고,

그토록 흠모했던 달에게 버림받았다.


"당신은 우릴 버렸지. 엘룬도 마찬가지야!"

시라는 티란데를 향해 소리쳤다.


시라 문워든, 감시관에게도 달에게도 버림받은 그녀는

문워든이라는 이름을 더 이상 자랑스러워 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버림받았다."

분노와 결의에 찬 델라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대로였다.

감시관의 명예도, 엘룬의 영광도 

더 이상 그녀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버림받았다. 배신에 대한 슬픔은 의문으로 변했고, 

의문은 분노로 변했고, 분노는 자신이 평생에 바쳐 

지켜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증오로 변했다.




"잘 들어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선

여기 있는 되살아난 칼도레이들과 협력해야한다. 


... 그만! 내키지 않더라도 따라야한다! 전쟁에선 

이보다 더 잔혹한 일도 많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린 이 땅을 지켜낼 것이다! 호드를 위하여...!"


어둠해안을 사수하기 위해 모인 병력 앞에서

나타노스 블라이트콜러가 말했다.


그렇게, 추악한 배신과 타오르는 증오로 더럽혀진 

그녀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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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델라린의 "we are forsaken" 부분은

한국 와우에선 "우리는 포세이큰이다." 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버림받았다'랑 '언데드 포세이큰' 어느쪽으로도 해석되는 

중의적 표현이지만, 상황과 스토리 흐름을 따져봤을 때,

"우리는 버림받았다."가 더 어울릴 것 같아 그렇게 썼습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도 안오다니.." "어디 계신 거지" 

부분은 설득력이 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포장하고 지어내서 썼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신다면 그것보다 기쁜 일은 없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