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대충 했었던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이번 호얼간 대통합은 잘만 이용한다면 향후 게임 발전방향에 있어서 상당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봄미다.




왜냐하면


1. 인구불균형 문제의 원천적 해결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만 블엘 등장 이후 호얼간 인구 불균형 문제는 심각하여,

오리지날 시절 '게임내 설정에 더 쉽게 몰입하게 해준다'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반대급부로 소수진영이 느낄 수밖에 없는 본질적 소외감이라는 부정적 효과가 더 커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바


진영간 대립의 종식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는 '억울하면 호드하면 되지 않냐?'라고 많은 사람들이 반박하곤 했습니다만

사실 인간이나 드워프로 플레이를 하고 싶었지만 하드 컨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인구수 문제 때문에 결국 호드를 해야한다

라는 작금의 상황은

사실상 '롤플레잉 게임'으로서 되레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요소이며

게임이 시스템적으로 유저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좋게 보기 어렵지요.


진영간 대립이라는 게 좋고 나쁨이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게임 자체가 늙을대로 늙어버린 현실의 상황을 두고, 까놓고 말해 세력간 대립 시스템은 '긍정'보다는 '부정'이 크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2. 양대진영 구조에서 나오는 일차원적 선악구도의 해결

와우의 스토리는 그지같습니다.

걸핏하면 타락에 설정변경은 일상다반사고 대체로 그 피해는 호드가 받기 마련이었죠.



하지만, 이번에 어이없게 승하하신 사울팽 형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그러한 사태의 원인은 호드..그중에서도 호드 세력의 주축인 오크가 가진 원죄에 있습니다.

설정변경 밥먹듯이 하는 블리자드조차 쉽사리 뒤집을 수 없는, '초창기의 설정'말이지요.


이제 와 개과천선하였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크는 '악당'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잘하면 '이미지 세탁' / 못하면 '호드 차별' 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사울팽 형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말하건대 쓰랄이 초록 피부를 가진 모세(선지자 : 파시어)였다면,

사울팽 형님이야말로 진정 오크를 구할 메시아로서 그들 대신 십자가를 짊어진 채 희생하였고, 그로써 오그리마의 백만 오크들은

비로소 이러한 "굴레"를 끊을 수 있었던 겁니다.


록타르 오가르.


어찌되었건 이렇게까지 해놓은 마당에 또 다시 오크를 타락시키니 마니 하는 전개는 무리수가 될 것이고


호드중에서도 가장 사악하고 호전적이었던 포세이큰 진영에조차 

'칼리아'라는 얼라측 확고 찍은 캐릭터가 수장으로 들어오게 된 이상 

한동안 이러한 평화구도를 뒤집기는 어렵겠지요.



글쎄요.

스토리 전개와 연출이 좋았다고는 하지 못하겠으나

(오히려 아주 개발(足) 같았다고 하는 게 맞겠으나)

만약 이러한 방향이 잘만 정착된다면 와우는 오픈한지 15년만에 

비로소 RPG게임이 가져야할 안정적인 첫 발판을 마련하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바로, 플레이하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죠. 



기본적으로 스타워즈 시절때부터 내려져오는 헐리우드 공식 상 대중은 '악인'에게 몰입하기 힘듭니다.

성선설이니 뭐니를 언급하려는 게 아니라,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상업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이고...

하다못해 '악인'을 그려야 할 때조차...'나쁜 사람'을 주인공으로 그릴 수는 있으나 '비호감인 사람'을 주인공으로 그릴 수는 없다.

..와 같은 일종의 불문율이 있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는 '조커'조차도 이러한 공식을 철저히 지키고 있죠)

그 이유까지 하나하나 설명드리려면 말이 너무 길어지니까 그렇고...


어찌되었건 그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호드의 구성 종족들..

특히나 오크(전체주의자)와 포세이큰(그냥 악당)의 경우 상당이 몰입하기 힘든....

업계 용어로 치면 '비상업적으로' 내러티브가 디자인 된 캐릭터였거든요?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을 어찌 해보려하는 듯한 노력(대격변 초창기 가로쉬의 모습처럼)이 보이기는 하였으나

기존에 만들어두었던 설정들이 발목을 잡기도 하고(악마에 타락하여 학살을 벌인 오크 / 애시당초 복수귀로서 시작한 포세이큰)



무엇보다 얼라이언스vs호드 라는 대립 구조 자체 때문에

어찌되었건 기존 두 진영이 지속적으로 충돌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데

두 세력을 붙여두면 원래부터 죄 많은 종족이었던 호드 측이 결국 악역을 맡게되더라는 말이지요.
(이렇게 안 하면 설정이 붕괴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실 그렇습니다.

진영대 진영이라는 일대일 구도는 결국 한쪽은 '선'이고 한쪽은 '악'이라는 구도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한 구도는 표현가능한 내러티브가 무척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 그 한정된 내러티브조차도 20세기 람보 같은 영화에서 죄다 써먹었던지라 지금보면 유치하기 짝이없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헐리우드는 온갖 클리셰를 비틀거나 다대다 구도를 형성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만....



대격변에서 군단까지 이어져내려온 이야기 전개를 보면

'비틀기'라는 측면에서 와우는 그래도 지금까지 할만큼 해오지 않았나 싶은 면이 있죠.

뭐...한참 예전에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무리수 남발의 역사이긴 했습니다만.






3. 다대다(多vs多) 구도를 통한 기존 게임성의 유지(발전)


판타지를 예로 들게되면 이러한 구도의 변화를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초의 판타지였던 "반지의 제왕"의 경우, 

그냥 "선"한 간달프 및 반지원정대 vs 그냥 "악"한 사우론 휘하 세력들의 일차원적인 구도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지요.


애시당초 반지의 제왕은 톨킨이 '신화를 직접 만들어내보자'라는 맥락에서 만들기 시작한 작품이고,
이야기의 구도가 주는 재미 보다는 세계관이 주는 웅장함이 무기가 되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대박을 치면서 나오게 된 수많은 유사판타지들의 경우

톨킨처럼 거대한 세계관을 새로 만들어내려 노력하거나

그것이 힘들 경우 하다못해 이야기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비틀기를 들어가지요.



나폴레옹 시대의 군인이 판타지 세계로 넘어간다면..? 

현대인 고등학생이 판타지 세계로 넘어간다면...? 

검기를 뿜어대는 무협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로 넘어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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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가 선하고 인간이 악하다면? (워크래프트 3)


그리고 이러한 워크래프트의 등장 이후



현대인 고등학생이 오크로 환생한다면?

검기를 뿜어대는 무협 주인공이 오크로 환생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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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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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와우는...아니 그 이전에 워크래프트 세계관은 족보를 따지고 올라갔을 때 

반지의 제왕에서 파생된 선vs악 대립구도를 끌고 갈 데까지 충분히 끌고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여러분도 다들 아시는 바 대로이며....




애초에 요즘 판타지라는 장르의 메인스트림은 세계관으로 압살해버리는 "반지의제왕"이라기 보단

"왕좌의 게임"으로 대변되는 얼음과 불의 노래 라인이 되어버렸거든요?



"세계관이 주는 웅장함"이라는 것은, 업계 용어로 치면 일종의 '스펙타클'인데

이것만 가지고 관객의 흥미를 유지시키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예컨대 영화 '아바타'의 경우 최초의 상업 3D영화라는 무기를 통해 공전절후의 히트를 기록하였으나


이후 그것과 똑같이, 혹은 그보다 더 압도적인 비주얼의 영화가 무수히 나오더라도 아바타를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는


관객이 3D라는 새로운 충격에 이미 '적응'해버렸기 때문이지요.


아프리카에 살다 나이 서른에 태어나 처음 아이스크림을 먹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조차

두번째 세번째 먹을 때부터는, 처음 먹었을 때의 그 감동을 느끼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더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더라도 



그러니까 결국, 세계관을 확장시켜서 관객를 끌어모으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관에 몰입시켜 관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와는 전혀 다른 무기


세계관으로부터 비롯된 치밀한 갈등(드라마)이 필요하다는 걸 사람들은 깨달았으며, 요즘 메타는 이쪽이라는 거죠.




와우 스토리가 언제 재밌습니까?

치고 박을때입니다.


얼라가 A라는 작전을 세우면 호드가 B라는 작전을 세우고, 거기에 얼라가 C라는 대응을 내세우면 호드는 D라는 맞대응을 내세울 때죠.



와우 스토리가 언제 재미 없습니까?


그렇게 열심히 치고박던 년놈들이 갑작스레 나타난 공공의 적 앞에서, 시들어버린 와저씨 소중이마냥 꼬접하고 딴짓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사람은 결국 '갈등'과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야기적인 재미를 느낍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이건 많은 사람이 플레이하는 MMO 게임이고,

가뜩이나 레이드가 엔드컨테츠인 지금 호드건 얼라건 같은 보스를 잡게 하려면


마지막엔 결국 대립을 접고 기승전 X 엔딩이 될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다 대 다 대립 구도의 도입은 긍정적이 될 수 있습니다.



내러티브 디자인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인물들의 몸이 가는 동선(레이드 보스)와는 별개로


극중 텐션을 유지시키는 내적 갈등(스토리)은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느조스 사후, 공허에 오염되어 막장화된 세계를 바로잡겠다며 실바나스가 등장했습니다.

공허라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실바나스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기존의 구도에서라면 호드는 동의하고 얼라이언스는 반대한다

호드 얼라 둘다 반대한다

호드 얼라 둘다 찬성한다


이정도 경우의 수밖에 만들 수 없지만


이제는 


그녀를 따르겠다는 일부 포세이큰, 전략적 동맹 정도는 맺을 수 있지 않겠냐는 일부 온건파들,
공허고 뭐고 시체년부터 죽여야겠다는 나엘과 늑인 공허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뒤에서 삽질을 시작하는 공허 귀쟁이


...이처럼 다양한 갈등 양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스토리를 전개해 나갈 수 있다는 거죠.



애시당초 스토리를 떠나 게임 내 적용 문제만 보더라도


비둘기파 vs 매파의 얼라이언스간 대립 전장

실바추종자 vs 명예호드 간의 호드간 대립 전장이 열릴 수도 있고


여러 정치적 관점이 얽혀있는 만큼 

이러한 싸움이 열렸을 때 타종족들이 개입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얼라이언스 내부에서 일어나는 내전이니 "아이언포지 공방전" 전장이라든지

호드 내부에서 일어나는 "센진마을" 공방전이라든지


이와 같이 지금까지는 시도할 수 없었던 형태의 전장도 충분히 나옴직하다는 말입니다.



진영간 대립의 종식으로 기존의 컨텐츠의 핵심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오히려 컨텐츠의 제한이 풀려 컨텐츠 만들기는 더 쉬워진다는 말이지요.










...물론 블리자드라는 회사가 그렇게 될 때까지 제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가정하에.









- 결론
 : FREE HONGK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