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뭣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던 어린시절을 지나고
나름 머리가 굵어져가며 모든게 불합리하게 느껴지던 10대를 거친후에
온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갈것만 같았던 20대를 거쳐서
뒤늦은 후회와 방황. 온갖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30대의 풍파를 넘어선 후에
불혹이라 불리우는 40대에 들어선 나.

내가 나이를 먹어가며 세상의 중심에서 한발 한발 멀어지는것처럼
내 인생의 긴 시간을 함께한 취미 생활중 하나인 '게임' 
그 게임이라는 큰 바구니 안에서 꽤나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와우' 라는 이름의 이 녀석.
이 녀석도 참 많이도 늙고 변해버린것 같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와우한번 해보지 않을래? 블엘이라는 신규 종족도 나올꺼야" 라는 친구의 꼬드김에
오리시절 뒤늦게 참여한 이 레이스에서
뭣도 모른채로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너흰 아직 준비가 안됬다' 

라고 외치던 녀석을 잡기위해 '정공' 이라고 불리던 그룹에 참여하며
내 인생의 황금기를 쏟아부었던 이 녀석.

어찌보면 이 녀석도 그시절이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이후로 취직도 하고 이런저런 생활에 치이며
예전만큼 열정적이지는 않아도 나름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며
끊어질듯 말듯. 애처롭게 이어지는 얇은 한줄기 끈을
양손 가득 꼭 쥔채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나이를 먹어서 일까.
아니면 내가 소질이 없는걸까.

예전의 빠릿빠릿한 움직임과 다르게
요즘은 점점 도태되는 느낌을 떨쳐버릴수 없는 일들이 많아진다.

동영상은 고사하고, 제대로된 공략조차 인벤이 아닌 PF로 불리우던 옛사이트에
논문처럼 올라온 글귀가 전부이던 시절.

그 글귀.단어. 한글자 한글자 정독하며 익히고 행하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가고
이제는 아주 간단한 공략조차 가끔씩 실수하며
혹여나 스피커 너머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내 아이디가 불리지 않을까
콩닥콩닥 마음 조리는 나날이 늘어만 가는데....

흔한 풍자중에 하나인 틀딱이 되어가는걸까?

마음은 예전에 열정 넘치던 그 시절 그대로인데
누구보다도 갈망하고 갖고싶고, 잡고싶고, 누구에게든 뽐내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그대로인데

내가 책임져야하는 많은 일들로 인해
'게임' 이라는 이 녀석이 뒷전이 되어버린게 핑계아닌 핑계가 될 수 있으려나 고민해보지

나를 지적하는 상대방도 예전의 열정넘치는 20대가 아닌 나와같이 늙어가는 또다른 사람일것인데
과연 현실이라는 핑계가 정당한것일까?
다시한번 고민해본다.

그러다 어느순간 부터일까.

공략파티 라는 그 험한 파도에서 한발자국씩 물러나게 되었다.

남들이 뭐를 잡았다.

어떤 칭호를 달았다.

'선수'를 뛴다.

그 모든 논쟁의 주역이 '예전의 나' 였다면
'지금의 나' 는 그런 주연을 바라보는 관전자의 입장이 되어버렸다.

남들이 신화를 잡고, 몇단을 돌던.
이미 나에게 있어서 그건 어느덧 다가갈수 없는 일이 되었고,

그들이 공략행위에 심드렁함을 느끼고 한발자국 뒤늦게
손님팟이라는 또다른 뒷문을 열어주어야 비로소 
나의 뒤늦은 기웃거림이 그들의 행보에 은근슬쩍 편승을 해보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지.

그래.

손님팟의 손님.

어느덧 내 위치는 '판'의 '중심' 에서 '변두리' 로 밀려난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마음이 가볍고, 오히려 안절부절 하던 시절과 다르게 어떤 의미로는
'게임' 이라는 본질에 더 다가선듯한 느낌이 든다.

'손님' 이라고 불리는 이질적인 존재.
거기다 더해서 파티가 열리자마자 '신화 손님' 까지 그냥 냅다 질러버릴 정도로
다른 의미의 여유가 생겨버린 나.

몇달전에 몇번 곁다리로 묻어간 그 손님이라는 행위의 결과로
내 나름의 파티를 즐기는 작은 무대에서는 
늦어버린 손가락의 리듬을 높아진 아이템의 레벨로 커버를 해주고는 하더라.

난 정말 한것 없는데, 손님이라는 행위의 결과로 따라온 몇몇 숫자의 결과를
작은 무대의 다른 사람이 부러워함을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느끼는게 정당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나름 손님으로 다녀온게 보람? 차기도 하다.

솔직히 이 데이터 쪼가리에 그 비용을 들이는게 맞느냐? 라고 되묻기도 하는데...

억지로 인맥을 유지한다고 새벽부터 지방 CC를 찾아다니며 라운딩 하는 비용이면.

최상위 공대의 곁다리로 묻어서 원하는 아이템 모두 골라담은채로
1~2달은 참 편안한 게임 생활이 되고는 한다.

어찌보면 가성비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해야할까....

'게임' 즐겁기 위해 하는게 아닌가?

뒤쳐짐을 두려워하며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하지?

예전의 나에게 열정 및 실력이 있었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그들이 갖지못한 또다른 도구가 있는게 아닐까.

이러한 글을 쓰게 된다면 수없는 지탄을 받을거라는걸 알면서도
문득 '게임' 이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목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내 나름의 방식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듯하여 주절 거리게 된다.

아마 이 글 밑에는 잔뜩 욕지거리가 늘어나겠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도 그들과 다름없는 열정 넘치는 시절이 있었고 패기도 있었고.
그들이 범접할수 없는 업적 취득 일자가 아직도 내 케릭터에 박제되어있는데
나라고 예전처럼 그렇게 즐기고 싶지 않을까?

그저....

즐기는 방식이 달라졌으뿐.

어찌보면 '게임' 이라는 존재의 목적 그 자체에 방식만 달라졌을뿐인데
냉소적으로 내 행위를 바라보며 하루에 몇시간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략이라는 답안지를 그대로 배끼려 애쓰는 몇몇 인원의 쓴소리를 한귀로 흘리며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남들이 뭐라하든 난 지금의 내 환경에 맞춰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즐거움을 찾아가며
'게임' 이라는 목적에 맞게 즐기며 지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