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그닥 다그닥..
쇠가 마찰하는 소리와 온갖 폭발음으로 가득한 전장을 힘찬 말굽 소리가 흙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가로질렀다.
창 끝으로 인간 성기사를 꿰어 들고 있던 타우렌 사냥꾼 하나가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다 순간 눈빛이 보라색으로 가득차며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는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후방에서 이를 발견한 트롤 하나가 크게 외쳤다.

"쓰사노오다! 쓰사노오가 나타났다!"

쓰사노오라고 불린 남자가 말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듯 오크 세 마리가
그에게 전속력으로 달려들기 시작하고 쓰사노오는 양팔을 좌우로 벌려 뭐라 궁시렁대며 중얼거렸다.
순식간에 짙은 보라색의 투사체가 손 끝으로부터 뻗어나가 좌측과 우측의 오크를 멀리 튕겨내었다.
하나 남은 오크가 이제 마지막 걸음을 남겨두고 그의 거대한 전쟁도끼를 머리 위로 크게 치켜들었지만
쓰사노오는 아무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뎅겅-

오크 전사는 잘려나간 자신의 손목으로부터 밀려오는 고통에 못이긴 나머지 크게 울부짖었다.
쓰사노오의 지옥수호병이 재차 검을 들어 오크의 목을 내리치니 그 비명도 온데간데 없이 잠잠했다.

연이은 전사들의 죽음에 호드 일원들은 매우 동요하며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탈주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승기가 기울자 사기가 크게 고무된 얼라이언스가 탈주자들을 추격하려 승마하기 시작하자,

"그만! 지금 저 패잔병들을 쫓을 때가 아니다!"
라고 쓰사노오가 일갈함에 모두들 그의 말에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듯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현 시각, 옛 지옥불 반도와 천둥의 섬에서도 아즈샤라 호드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이 곳 타나안 밀림은 정리 되었으니 나는 장가르로 떠날 것이다, 너희들은 무리를 둘로 나누어 남은 분쟁을 말소하도록 해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라이언스 일원들은 순식간에 공격대를 재정비 한 뒤 귀환석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사라져가는 용사들의 잔영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그의 어깨를 감싸오는 손이 있었다.

"팔궤님, 오늘도 금방 끝내셨군요? 호호."

쓰사노오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잖소, 드림해피."

"어머, 까칠하시긴? '나를 어찌 부르던 상관 없소, 그저 불러만 준다면 난 언제 어느때나 그대에게 가리다.'
라고 저에게 달콤하게 속삭이셨던건 벌써 잊으신건가요?"

"어허, 지금은 전시중이지 않소?"

그 순간,
"쓰사노오님! 조심하십시오!" 하는 척후병의 외침과 동시에 허공을 가르며 폭풍의 망치가 쓰사노오에게 날아들었다.
어깨뼈가 욱신거림을 느끼며 땅에 무릎으로 주저앉은 쓰사노오의 약 여섯 간 앞에 블러드 엘프 전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직 호드 쓰레기가 남아있었군." 라고 중얼대며 쓰사노오는 마우스로 계급장을 클릭해
다시 꼿꼿하게 일어나 블러드 엘프 전사의 불쾌한 표정을 가만히 응시했다.
블러드 엘프 전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왜 너희들은 무고한 사람들에게까지 가차없이 공격을 가하는 것이냐?"

쓰사노오는 코웃음을 치며 짧게 대꾸했다.

"내가 분명 너희 오늘 여기서 일퀘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쓰사노오는 블러드 엘프에게 시선을 고정한채 드림해피에게 손짓하며 수신호를 보냈다.
이를 본 드림해피가 낯빛이 살짝 어두워지며 "팔궤님, 군단 오면서 법사 동결 삭제됐어요." 라고 속삭이자
쓰사노오가 재차 자신의 하수인에게 손짓하니 지옥수호병은 허리춤에서 도끼를 꺼내 블러드 엘프를 향해 던졌다.
휘잉- 하며 날아가는 투사체가 블러드 엘프의 몸에 닿을때쯤 그가 몸을 한바퀴 빙 돌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스스로 칼날의 폭풍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오던 악마의 도끼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사물을 휩쓸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짓을.."

코웃음을 치며 마력을 끌어모아 '악마 화살'의 시전을 끝낸 쓰사노오가 손을 정면으로 크게 내뻗었다.

헌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가득 차있어야할 캐스팅 바는 어느새 텅 비어 다시 1%부터 차오르고 있었다.
블러드 엘프 전사는 여전히 빙빙 돌고 있었다.
쓰사노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양 옆을, 뒤를 돌아보았다.
드림해피도, 정찰병도, 지옥수호병도, 호드 쓰레기들의 시체도, 빙빙 돌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도 빙빙 돌고 있었다.













신궁 : 돌아왔느냐?

돌아온사루만 : 예.

신궁 : 나쁜 꿈을 꾸었느냐?

돌아온사루만 : 아닙니다.

신궁 : 슬픈 꿈을 꾸었느냐?

돌아온사루만 :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신궁 :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는게냐?

돌아온사루만 :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