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왕관이 오픈한 그날

우여곡절 끝에 10인팀을 창설하고 얼음왕관으로 향했다.

멤버들 모두 오랫동안 같이 해왔던 사람들이기때문에

특별하게 공략을 준비 하지않아도 진도를 쭉쭉 뺐다.

그런데 캐스터템은 흑마와 법사가 나눠가져야했지만

페두부님은 처음나온 천템은 모두 LOONY에게 양보했다.

계속 템을 양보만하고 딜이 약간씩 쳐저가던 페두부님에게 

캐스터템 그만양보하고 이제 욕심좀 부리라고 말씀드렸다.

근데 페두부님은 별필요 없다고 하셨다.

 "템에 욕심좀 부리시는게 어때요?" 했더니,

 "내가 템때문에 레이드하는줄아니? 루니한테 양보해도 난 상관없다."

대단히 양보심이 투철한 법사였다.

더이상 양보하지말라고 말하진 못하고 딜이나 좀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딜을했다. 딜 재촉에 초반에는 딜이 좀 올라가는거 같더니,

넴드를 지나면 지날수록  화법도 타보고 비법도 타보고  이리 바꿔보고 저리 바꿔봐도 딜이 정체되기 시작하더니, 마냥 그대로다

내가 보기에는 템때문에 딜이  낮은거 같은데 자꾸만 특성탓만 하고 있었다.

이제 특성 조절은 다 됐으니 특성은 그만 냅두고  루니한테 템 양보하지 말라고해도

통 못 들은 척 변화가 없었다.

하드도 해야되고 업적도 해서 비룡도 좀 타야되는데...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루니한테도 말했고 템 더 양보하지 않으셔도 좋으니 그만 템드시고 딜좀 올려주세요."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양보받는사람이 템 드리겠다는데 왜그러세요? 형, 외고집이시네요. 트라이시간 부족하다니깐요."

 페두부님은 퉁명스럽게,

 "다른 법사 구해 그냥. 난 템보다 특성연구를 더해야겠어."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같이 레이드하다가 이제와서 법사 새로구할수도 없고 하드트라이는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양보하시고 특성연구나 하세요."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초초해지고 딜낮아진다니까. 법사란 제대로 특성을 찍고 딜해야지, 딜하다가 관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사울팽에서 사울팽만 딜하고 태연스럽게 나오는 쫄은 치지도 않는거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특성을 교체를 그만하더니 레이드중에 허수아비를 잠깐 치고와서는  다 됐다고 말한다. 사실 특성은 아까부터 국민 특성이였다.

레이드 진도가 밀리고 같이 출발했던 팀들을 따라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템양보하고 특성만 연구해서 딜이 될 턱이 없다. 레이드팀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도핑재료만 계속 요구한다. 레이드의 기본도 모르고 인간성만 좋은  무뚝뚝한 법사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레이드중 페두부님을 봤더니 그 형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얼음왕관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법사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으깨진 턱을 보니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페두부님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결국 신드라고사 하드와 신드라고사 업적만 남겨놨다.

호드중에선 가장 빠른 속도였다. 그동안의 리치왕 분노 레이드중 가장 빠른 스피드였다.

그러나 나는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페두부형과 LOONY가 캐스터템을 양분했었다면 더빨라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loony의 설명을 들어 보니, 얼음왕관 캐스터템은 법사에 비하여 흑마에게 효율이 더 좋고 한사람의 딜러가 템을 몰아 먹어 디피를 올리는게 템을 나눠먹는것보다

공대 전체로서는 더 이득이란다.

페두부님이 양보해서 자신의 딜이 확올랐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페두부님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듀로탄섭도 옛날에는 DART라는 전섭에서 유명한 공대가있었고 훌륭한 정공이 많았다.

그러나, 리치왕분노에 들어와서 레이드 난이도가 쉬워졌고 막공이 우후죽순처럼 생겻으며,

최악의 인던이라는 십자군시험장으로 인하여 골드셔틀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직업을 깊이 연구하는 딜러들이 사라졌다. 쉬워진 레이드 난이도탓에 대충 만렙찍고 손님으로가서 템좀 먹으면 그다음부턴 선수가 되는 식이였다.

예를들어 냥꾼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다같은 야수냥꾼으로 고평매크로만 누른다쳐도 어떤사람은 그사이에 독사쐐기를 끼워넣던가, 야수격노 타이밍을 종특과 함께 누른다던가 하면서 딜을 약간이라도 올리기위해 노력했다. 물론 결과물로만 보아서는 그렇게 한 냥꾼과 그렇지 않은냥꾼의 딜차이는 거의 없었다. 단지 그렇게 하는것이 자기 자신을 만족하는 일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것조차없었다. 그냥 가서 쿨돌아오는데로 뿅뿅 쏴대면서 대충해서 딜1등하면 주위에서 쩌는 딜러라고 했고 자기도 그냥 냥꾼 존나쉽네라면서 결과에 대한 조정은 전혀 없었다

페두부님은 그런 심정에서 특성을 연구했던 것이다.

나는 페두부님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연구만 해서 무슨 딜을하고 레이드 진도를 뺀담' 하던 말은 '그런 법사장인이 나 같은 골드셔틀 냥꾼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미터기를 뚫어버리는 딜을 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결국 우리팀은 국내에서 2번째로 얼음왕관 업적을 완료했다. 물론 첫번째로 비룡을 탄 팀이 종족변경으로 일주일에 두번 트라이를 하지않았다면 어떻게 됬을 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업적 비룡을 타고 달라란 북쪽 은행에서 비룡 자랑을 하고있던  페두부님을 찾아가서

연회용 통구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정날 리치왕 하드 트라이를 하기위해 모여 페두부형을 찾았다.

그러나 결석을 단 한번도 하지 앉았던 페두부님은 오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바라봤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얼음왕관의 지붕 추녀를 바라보았다. 리치왕이 죽고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형은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하릴없이 특성을 연구하다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페두부님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결국 페두부님은 카페 개업으로 인해서 얼음왕관 업적후 와우를 접었고, 다른 공대원들도 각자 자신의 일때문에 10인팀은 해산됬다.

그 이후 간간히 접속한 와우에서 막공을 가봤지만 페두부 님과 같은 그런 법사를 발견할수는 없었다. 세기말이라고 얼음왕관은 대거 너프됬고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했던 업적 비룡은 달라란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다. 만호도의성(萬戶 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 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