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는 나의 20대 시절을 앗아간 게임이었다.

때는 9년전 군대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데, 와우는 나의 의지로 시작한것은 아니었다.

군대에서 만난 전우의 추천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군인시절 와우를 하면서 새삼 잊고있던 기억이 떠올랐었는데,

20살이었던 나는 내가 먼저 친구들에게  같이 하자고 나섰던 기억이 나게되었다.

그때는 베타테스트였던걸로 기억한다.

우리들은 모두 스타크레프트와 워크레프트3의 열광적인 팬이었고, 워크레프트가 대규모 온라인 게임으로 나온다는것 자체가 우리들에겐 흥분 그 자체였다.

대체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너무 궁금했었고, 베타가 나오자마자 친구들과 몇일간 밤을 새가며 달렸던 기억이 난다.

켈타스 서버의 나이트엘프 냥꾼이었던 나는 해삼이라는 본인 별명의 케릭터를 키우게 되었다.

한 친구는 노움 법사, 한 친구는 노움 흑마법사, 한명은 나이트 엘프 도적 그리고 냥꾼이었던 나까지 이렇게 네명은 차후 몇년간 있을 인생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는 첫 발걸음을 디딘다.

그런게 웃긴 기억은, 본인은 일주일만에 게임을 포기했다는 사실이다.

10년전 기억이라 확실치 않지만, 그 시절 냥꾼들은 기계 공학으로 화살을 만들어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화살은 소모품이었고, 일정갯수 이상으로서 인벤에 자리를 차지해야했다.

지금도 기억나는것은 레이드 도중 화살이 다 떨어진 냥꾼들이 이따금식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냥꾼들은 항상 화살을 인벤에 채워놓고 다녀야만 했고, 그 화살은 주로 기계 공학을 통해 얻거나, 특정 상인에게 구매해야 했다.

난 전문기술이란것은 도통 몰랐고, 마을에서 떨어져 필드에 존재하는 내가 화살 파는 상인을 어떻게 찾았겠는가.

오직 랩터의 일격과 펫의 공격으로 21레벨까지 성장후 화살을 구하지 못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동반한 두통으로 인해 게임을 관둬야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것은 그때 당시엔 펫들마다 공격력이 달랐다.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던것은 어떤 해변가 마을에서 구할수 있는 역병 곰과 늑대였는데, 이런 평범한 것은 갖고 싶지 않았다.

그때 당시엔 플포가 사랑받던 시절이라 플포를 통해 알게된 정보로는, 선더 블러프 주변에서 "갈퀴" 라는 사자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갈퀴의 공격력은 상당히 높았고, 저레벨 냥꾼들이 테이밍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페트였다.

난 이때부터 갈퀴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같이 레벨업하기 위해 친구들과 게임방을 찾았지만, 난 갈퀴를 찾기 시작했다.

20레벨 이하의 나이트 엘프 사냥꾼이 호드 지역인 썬더블러프로 가기 위한 여정은 정말이지 험했다.

그 당시엔 정보가 많이 넘쳐나지도 않았고, 이것저것 정보를 조합하여 찾아야만 했다.

장차 3시간동안 걸어서 썬더블러프에 도착했다. 왜 3시간이나 걸어갔다는것을 기억하는지는 모른다.

야수 탐색을 키고 미니맵에 빨간 점에 마우스를 하나 하나 옮겨가며 갈퀴를 찾아 헤맸다.

갈퀴는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었다.

갈퀴를 테이밍한 나는 기쁨고 환희에 차올라있었지만, 테이밍에 미쳐 친구들을 등하시한 나는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졌고, 외로운 냥꾼의 인생을 걸어야만 했다.

21레벨에 게임을 접게 된 계기가 친구들과 점점 격차가 벌어져서 따라가지 못한 이유도 있는것 같다.



사실 첫 와우는 여기서 접었고, 제대로 된 와우저가 된 계기는 글 서두에서 언급한 군대 전우의 권유로였다.

내 와우의 인생은 일병 휴가때부터 시작된다.

군인이었던 나는 휴가를 나오면서부터 걱정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집은 서울 노원구였다.

그러나 휴가를 나왔을때 우리집은 경기도 죽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동차는 없었고, 지하철로 3시간정도 걸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엔 지하철 분당선이 지금처럼 길게 존재하질 않았고, 매우 불편했다.

친했던 친구들도 이미 전부 군인인 상태. 와우를 하기에 9박 10일이라는 일병 정기휴가는 와우라는 건드려선 안될 미지의 존재에 접어드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왜 하이잘에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아. 군대 전우가 하이잘에서 한다고 하기에 하이잘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휴가나오기전 군대 전우와 어떤 클래스가 가장 좋은가에 대하여 몇박 몇일을 고민했었다.

암사가 필드에서 깡패다. 필드에서 암사를 만났는데 뭣도 못해보고 녹더라. 라는 전우의 말에 따라 암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결정은 앞으로 있을 5년간의 와우 인생중 가장 큰 후횟거리가 된다.

일병 정기휴가를 나왔고, 부모님에게 인사후 식사를 했고, 가족들이 전부 바쁜 관계로 옷만 갈아입고 바로 게임방으로 향했다.

피시방 의자에 앉아 사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여유로운 한모금을 빨아들이며 민간인 코스프레를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제 담배는 프리스트가 아니라는것은 현역 출신들은 알것이다. 

그리고나서는 게이머들의 공통된 고민거리가 시작된다.

내 게임 아이디. 아이디를 짓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본다.

멋진 영어 단어

한국어로 멋잇는 영단어

어째서 그 아이디로 게임 아이디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첫 와우 아이디는 Fanatic이 되었다.

종족은 언데드였고 피부는 보라색이 감미된 파란색이었다.

머리는 뭔가 패셔너블해보이고 싶어서 닭벼슬 머리를 했지만, 머리 모양 변경이 가능한 이발샵이 나오기전까지 그 긴 세월동안 후회에 후회를 거듭해야만 했다.

군대 전우를 찾아서 지원을 받아야 했지만 군대에 있다.

혼자서 이 험난한 아제로스를 헤쳐나가야한다는 생각에 일단 10시간 정액을 넣어두고 본다.

그 당시 죽전엔 피시방이 몇개 없었는데 10시간 정액이 노원구보다 비쌌다.

투덜대며 포도맛 웰치스를 오픈하며 첫 퀘스트를 받는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저레벨대상 마나 회복이 빠르지 않았다.

성스러운 일격 몇번 사용하면 앉아서 그 가죽물통에 담긴 물인지 술인지 그것을 꼭 먹어줘야 했다.

정말 어려운 관문을 지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복귀 전날.

9박 10일동안 레벨은 27.

힐스브레드에서 수십번 죽어가며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았는데, 복귀를 해야 한다.

자살 충동이 들기 시작한다.

마치 게이머의 포악함을 알아보기 위해 전기 차단기를 내려보겠습니다. 상황의 피시방 유저들의 마음이었을까.

사제담배 몇개를 군복 바지 아래에 숨겨 몇개 사갖고 들어간다.

그 당시 우리 부대엔 사지방이 있었다.

우리 사단에선 가장 처음이었다.

난 수색대대 출신이었고 그나마 힘든 부대라 그런지 몰라도 우리 부대에선 가장 빠르게 사지방을 보급 받았다.

난 그날부터 앞으로의 레벨링 루트와 파밍 루트를 짜기 시작했다.

싸이월드 일기장을 와우 육성일기로 사용하며 각 레벨당 최적의 아이템과 레벨업이 가능한 필드를 조사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는 짓이었다.

2레벨 3레벨만 올리면 또 바꿀 아이템이고, 레벨업 과정이라 크게 중요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치밀하고 타이트한 레벨업 전략을 세운다.

레벨업부터 레벨업에 미쳤었는지 몰라도, 난 차후 서버 최초 만렙을 두번 달성하는 인생 포기자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어느덧 2007년 11월 21일 난 전역한다.

전역과 동시에 텅 빈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게임방에 출근하기 시작한다.

난 혼자였다.

와우를 같이 했던 친구들은 전부 와우를 그만뒀고, 군대 전우는 아직 군대에 있다.

난 아제로스의 외톨이였다.

쓸쓸히 오그리마의 앞마당을 지나가던 찰나 한 징기를 발견한다.

그의 아이디는 궤변, 성기사였다.

이 친구는 장차 검투사의 길로 들어섰으나 그 당시에는 그냥 평범한 유저에 불과했다.

외로웠던 나는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나보다 동생이었으나 형형 거리며 나를 잘 따랐다.

알고보니 DC였고, 거기 사람들은 전부 서로를 형형 하며 부르곤 했다.

난 그 형이 아니라 그저 bro, 형 이었던 것이었음을 한참 뒤에 깨달았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난 하이잘 DC 채널에 입장하게 되고, 뉴비라는 사실에 온갖 수모를 당하게 된다.

지금도 화나는 기억 하나는, 어떤 사람이 나그란드 투기장으로 신경마비 독을 사다주면 100골을 준다더라.

내가 처음으로 와우에서 사기를 당한 순간이었다.

흑흑.. 역시 사람은 공짜를 바라면 안된다.

아직도 쪼렙이었던 나는 준비된 레벨업 계획에 따라 레벨업을 시작한다.

지금도 미친 기억 하나, 저레벨용 에픽 착귀 지팡이를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현질을 시도해봤다.

오직 레벨업 과정중에서 잠깐 지나갈 순간을 위해 현질을 했고, 또 마부를 위해 현질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 오직 강해지기 위함에 온갖 경매장을 뒤져가며 마부 재료를 찾는다.

지금 와우저들은 경매장에서 마부 피지를 산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난 단 한사람으로부터 모든 마부와 제작을 다 받았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 사람의 아이디는 다살려줄께요, 다살려줄까요 라는 케릭터였다.

점점 강해진 나는 아웃랜드에 진출한다.

그 당시 공개창은 엄청 시끌시끌. 어디 인던 같이 가실 탱님 구해요, 어디 가실 힐러님 구해요. 라는 문구가 메이플 스토리 초딩들 도배하는것마냥 계속 올라간다.

왜 딜러를 구하는 사람은 없었을까.

난 오직 영던 퀘스트를 위해 처음으로 힐러 손이요 라는 귓말을 보내본다.

힐러로서의 첫 인던이었던 아웃랜드의 그...지옥불 반도의 첫 인던...

그....지옥불 성루? 라고 하는 인던이었고, 우리 팀은 마지막 보스를 잡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내가 힐을 못해서였다.

그 당시에는 마법을 단계별로 계속 배워야 했다.

지금처럼 저절로 습득이 가능한것이 아니라 상급 사제, 상급 마법사를 찾아가 직접 배워야 했으나, 나에게는 기본적인 힐 마법뿐이었다.

힐 이름이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좀 큰 힐이었다.

그 힐을 5번 정도 사용하니 마나는 바닥..

수중에 존재하던 마나물약도 다 먹은 상태..

결국 우리는 팀을 쫑냈고, 미안함을 느꼈던 나는 탱커에게 미안한다는 귓말을 보내봤으나, 차단당해 있었다.

슬펐다. 그 이후로 난 힐러를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우여곡절 끝에 만렙을 달성한다.

느린새를 이끌며 승리를 만끽한것도 잠시 와우는 만렙부터 시작이란다.

파밍을 해야하는데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골드는 없었다.

내 첫 인던은 카라잔으로 기억된다.

사실 이 첫 인던을 가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현금이 들어가야만 했다.

내가 와우 시장경제를 무너뜨린 주범이라는 사실을 이때는 깨닫지 못했다.

어느날 아웃랜드 마을에서 날탈을 타며 놀고 있었다.

내 위로 뭔가 화려한 색감의 혜성이 움직인다.

저게 뭐지 뭔데 잔상이 남지?

그 혜성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보이질 않았다.

이 혜성은 내 와우 인생중 일부분의 화근이 되기 시작이었다.

뭔가 알수없는 존재였던 그것은 아무리 찾아도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냥 환상적이었다는 기억뿐. 다른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뒤에 또 다시 나타난 혜성은 락타우렌 이라는 전사가 타고다니는 알라르의 재 라는 빠른 날탈이었다.

내 와우 첫 목표가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알라르의 재에 대해서 모든 검색을 해보기 시작한다.

불성시절 알라르의 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폭풍 간지 그 자체였다.

난 이것을 갖기 전에는 빠른 와이번 따윈 필요없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때 당시 암사는 형상 변환을 하면 모든 탈것이 검게 표현되었다.

난 암사가 알라르의 재를 타면 어떻게 변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구글링을 해봐도 그런것은 보이지 않았고, GM을 요청하게 된다.

암사가 알라르의 재를 타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 와우 역사상 첫번째 GM 요청이었다.

몇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포기하던 와중 하나의 귓말이 온다.

아루엘링GM : 안녕하세요?

사실 처음으로 언급하는건데 난 몇달뒤 이 아루엘링 이라는 지엠을 꼬시기로 마음먹는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gm요청에 아루엘링gm도 당황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하더니 암사로서의 알라르의 재를 보여준다.

진홍빛의 알라르의 재는 흑화된 알라르의 재가 되었다.
그 보라색 알라르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냥 흑화 알라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듯 하다.

이 지엠은 내 말도 안되는 요구를 다 들어주기 시작한다.

아루엘링은 GM부서내에서 짬밥이 좀 있는 GM이었나보다.

거의 한시간동안 나와 대화를 지속했다.

너무 착했고, 요구하는것은 다 들어주며, 점점 개인적인 이야기도 오가게 된다.

난 그날 이후로 GM요청을 계속하게 된다.

아루엘링gm님좀 불러주세요 라는 어처구니 없는 지엠요청에도 아루엘링이라는 2살 많던 누나는 내 요청에 딱딱 나타나 주기 시작했다.

몇달 뒤에 뜬금없이 모르는 아이디로 귓말이 오길래 받아줘보니 집에서 와우를 접했다며, 친구추가를 하더라.

아루엘링 지엠님과 사적으로 만나게 된 첫 하루였다.

원래는 다른 서버라는데 나와 놀기 위해서 하이잘로 넘어왔단다.

너무 재밌던 날들이었는데, 내가 무슨 연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그린라이트일것 같았던 그 상황은 종료된다.

왜 종료됬는지도 모르겠다. 기억도 안나는 에피소드중 하나인듯 하다.

불성이 끝나가기전 난 빠른 날탈을 배우게 된다.

알라르의 재를 골드 파티에서 먹었기 때문이다.

이때가 와우 내에서만 갖게 되는 와우 인생중에선 가장 짜릿했던 기억이다.

11500골에 먹게 되었다.

사실 100골만 더 불렀으면 내 전재산 초과로 패배가 확실시 되는 순간에 공장님께서 gg를 선언하고 난 알라르의 재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빠른 날탈 숙련을 배울 돈이 없어 알라르를 타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됬고,

난 DC채널에 급하게 골드를 팔 사람을 구하게 된다.

나에게 골드를 팔았던 사람의 아이디는 Mentalkiller.

투기장 점수먹이로 골드를 벌던 사람이었다.

급하게 골드를 구한 나는 알라르의 재를 배운다.

처음으로 알라르의 재에 올라타던 나는 정신적인 오르가즘에 도달하게 된다.

이제 목표도 이뤘겠다.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사실 이때쯤에서만 와우를 관뒀어도 되는거였는데...

정공이라는 것에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사실 지금에야 정공이란게 몇개 없지 그 당시에만 해도 서버당 정공은 정말 많았다.

물론 와우 인구수 자체도 폭발적으로 많았을 뿐더러, 피시방엔 온통 와우저 투성이었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들어간 정공은 Team blood 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정공이었다.

사실 이 정공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DC채널에서 보던 사람들과의 친분관계에서 시작된다.

채널사람들과 친했던 나는 자연스레 정공을 시작하게 되었고, 멘탱이었던 전사가 호주로 유학가는 바람에 단기간에 정공은 쫑나기에 이른다.

두번째로 들어간 정공은 락타우렌 이라는 전사가 운영하던 RN25인가? 뭔가 하던 정공이었는데..

여기 정공이 마음에 안들었던 이유는 회사원들이 너무 많아 레이드 자체가 진행이 어려웠다.

너무 마음에 안들어 탈퇴하고 세번째로 들어간 정공은 하이잘에서 수재들로 구성되었다는 Thek25

카이스트 출신들이 모여있는 정고이었다.

확실히 카이스트 출신들이 뭔가 달라도 다르더라.

똑똑한 사람들이 게임도 잘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이 공대에서 배운것이 정말 많다.

택틱, 클래스 이해도, 전반적인 dps를 올리기 위한 수단 등 온갖 잡다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은 이 공대에서 다 배웠다.

이때 알게된 유저로부터 내 암사는 버려지게 되었다.

같은 공대내에서 활동하던 형이었는데, 경준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법사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여운 채팅을 시도하는 형이었는데, 항상 냉정한 경준씨라는 케릭터가 형 부케냐며 매일같이 고정적으로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경준형과 암사와 법사에 대해서 싸우게 되는데, 서로 차단까지 해가면서 심하게 다퉜다.

법사대 암사의 이론 싸움은 끝이 나질 않아 결국 내가 법사로 전직을 하게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만나본적은 없지만, 잠깐동안 딜킹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면서 법사로서의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법사는 누가해도 dps높다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기위해 시작한 법사였지만..

실제로 법사는 정말 간단한 이론만 알면 누구나 잘하게 되더라.

그 이후로의 dps 차이는 누가 중요한 타이밍에 속거를 주느냐, 공대의 rdps가 높은가 낮은가, 공대의 택틱이 법사의 딜에 효과적인가 아닌가에 따라 나뉜다.

사실 이 공대에서 와우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분의 지인들이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디는 언급하지 않겠다.

난 이 여자친구과 1년 반이라는 기간동안 연애를 하게 되었는데, 사귀는 도중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여자친구는 마법사, 난 암사. 우리는 같은 아이템을 두고 경쟁해야 했으며, 서로에게 양보란 없었다.

막공을가도 고민이었던 것은 니가 먹냐, 내가 먹냐였다.

서로 욕심이 많았고, 딜욕심은 많았으나, 누가봐도 내가 더 와우를 잘했고, 내가 먹는게 더 효율적이었다는 점에서 내가 박박 우기며 싸우기도 했다.

사실 그 여자앤 와우를 잘 못했다.

여자치고 딜러 잘하는 여자는 몇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보통 힐러가 많은데, 잘하는 힐러는 많더라.

근데 딜러인 여자 유저중에서 딜을 잘하는 유저는 흔하지 않다.

여튼 각설하고, 우린 엄청 자주 싸웠고,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한다.

그 와중에 내가 와우를 한번 접게 된다.

더이상 싸우는게 지긋지긋해서 와우를 아예 그만둬 버린다.

이때부터 점차 멀어지게 됬고, 결국 우린 헤어지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만났지만 1년 반동안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잘 지내냐?

그때는 비록 안좋게 헤어졌지만 어차피 누나나 나나 서로 제 갈길 가고 있고, 이제 오래된 일들이니 언제 미국 동부로 올 일 있으면 인벤쪽지로 연락해

맛있는거 많이 사줌 ^_^

여튼 한동안 와우를 접은 나는 거의 일년이란 시간뒤에 복귀하게 된다.

복귀했던 시점은 얼왕시절. 죽기들이 서리한을 들고 난리를 치던 시절이다.

복귀하자마자 파밍을 시작하고, 정공을 물색해본다.

그와중에 레게에 눈에 보이던 글은 the zenith clan.

사실 이 공대는 내가 처음으로 접해보던 하드한 정공이었는데, 아침 6시까지 레이드 달려긴 이때가 처음이었다.

제니스 공대가 사실상 쫑나게 되었던 이유는 어떤 전사 멘탱때문인데, 이 전사 멘탱은 게임을 너무 못했다.

의욕은 있었으나, 이 하드한 공대엔 어울리지 않는 막공형 전사였다.

어찌어찌 정공은 진행되고, 공대장은 게임을 접게 된다.

그 이후 다른 공대장이 공장을 잡았고, 사실 난 이 공장과 싸우고 제니스 공대에서 추방당했다.

하지만 지금도 확실하게 말할수 있는건 난 내가 공장과 싸웠던 부분에서만큼은 잘했다고 생각하는것이, 이 공장은 공대를 마치 자기 부케 파밍용으로 써먹었기 때문이다.

여튼 기분 더럽게 공대를 추방당한 나는 또 다시 막공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즐거운 공격대에 들어가는데, 사실 이 공대에선 내가 워낙 잘못한게 많아서 그냥 언급하고 싶지가 않다.

그저 드레노어의 군주에서 좋은 성과를 이루길 바랄뿐이다.

즐거운 공격대 시절에 공대 자체가 아즈서버로 넘어오게 된다.

이때 내 마법사 아이디는 limitbreak로 변하게 된다.

와우 레이드 유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법한 아이디는 카게후미 라는 아즈서버 막공장인데,

내가 와우를 마지막으로 하던 시절에 나를 거둬준 사람이다.

난 카게후미 라는 공장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느낀것이 뭐냐면, 내가 처음으로 이 사람 막공에 들어가게 되었을때, 아이템이 좋질 못했다.

사실 하드 공략을 시작하는 막공에서 템도 안좋은 사람을 껴준다는것은 어찌보면 불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공장님 이라는 말 한마디에 날 거둬준다.

사실 막공을 모으다보면 템은 안좋은데 열심히 할게요!! 라고 말한다면 그닥 반갑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거둬준 카게후미님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여튼, 카게후미님 막공이 왜 대단한지 말해보자면, 지금은 정공의 시대보단 막공의 시대다.

와우 역사상 고수들이 많았지만, 카게후미 막공 자체엔 각 클래스 이해도가 높고, 진짜 고수 다운 고수들이 많다.

지금이야 wmo가 존재하질 않아 wol만 본다지만, wol 자체에도 카게후미 막공러들의 랭킹이 엄청나게 많은 수준..

물론 본인도 한때는 wol에 올라가곤 했다.

아! 지금와서 한가지 말하고 싶은것이 있다.

와우 dps에는 두가지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1. 좋은 컴퓨터 (단, 사양은 최저로 낮추는것이 좋다. 블러드시에 잠깐의 렉이 dps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2. 좋은 인터넷 선.

사실 카게후미 막공에서 나름 이름을 날렸다고 생각한다.

Limitbreak 라는 아이디로..

중간에 주춤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경우가 바로 인터넷선이 바뀌었을때의 일이다.

우리 가족은 사업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사를 오게된다.

나를 남겨놓고 다른 가족들은 먼저 미국으로 오게됬고, 한국은 깔끔하게 정리한 상태.

나만 두어달동안 한국에서 더 머물게 됬는데, 잠깐동안 혼자 살 집을 찾아서 옮겼고, 그 집의 인터넷이 동네 인터넷이었다.

확실히 인터넷선에 바뀌니 딜이 떨어짐을 느껴진게, 모두가 내가 실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사실 바뀐건 인터넷 선 뿐인데...

잠깐 개인적인 인터넷 회사 비교를 해보자면..

KT는 주기적으로 끊김 현상이 발생한다.

이건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유저들이 겪고 있는 문제인데, KT사용자인데 수시로 인터넷이 끊긴다면..

그건 KT 문제다.

본인은 KT 회선을 사용할때 이 문제를 겪었는데 이때가 즐거운 공격대에서 활동을 할 시점이다.

하아..

여섯달간의 KT 와의 싸움에서 얻은 결론은, 결국 KT 고질적인 문제였다.

KT측에선 자기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은 KT 문제..

만약 주기적으로, 수시로 끊기는 KT유저가 있다면 당장 해지하기를 바란다.

SK는 수시로 핑이 튀는데 이것이 레이드시에 발생한다면 심각한 dps 하락을 동반한다.

가장 추천하는 인터넷은 엘지 유플러스.

타사와는 속도 차이는 크게 없지만 안정성 하나는 기가 막히다.

여튼..

혼자 사는 동안 동네 인터넷으로 인한 와우 인생의 피날레는 좌절의 순간이었다.

마치 100m 달리기도중 5m 남겨두고 넘어진 경우랄까.

화려한 막을 내리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지 못한 막을 내리게 됬다.

내가 지금 이렇게 모든 내용들을 다 작성하는것은 더이상 와우에 미련이 없어서일까.

사실 내 존재를 하나 하나 다 들춰내면 당당한 사람은 못되지만, 이렇게 담배 한대 피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서 많은 부분을 포기해가면서까지도 와우를 즐겼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르지 못했던 모습들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10년 이라는 기간동안 나름 와우의 끝을 봤다고 생각한다.

물론 와우는 앞으로도 변하고 더 많은 확장팩이 나오겠지만, 아마 내 인생에서의 와우는 드레노어가 아닌 판다리아에서 그 막이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거쳐갔던 많은 정공들, 사람들 그리고 어떻게든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마저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와우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와우 인벤을 찾는것은 와우와 함께했던 기억들을 추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직접 만날일이 없는 와우지만, 이따금씩 찾는 와우인벤에서 변화하는 와우를 접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부디 내가 기억하는 동안은 와우가 계속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