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운명적인 만남'이란 것을 갖게된다.

 삼고초려 끝에 제갈공명을 만난 유비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

 혹은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의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

 하지만 이 운명적인 만남이란 것이 사람 대 사람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사람과 게임도 운명적인 만남이란 것이 있다...지금부터 그걸 이야기 해 보겠다.

 

 내가 pc게임을 처음 접한 것은 1996년 9살 때 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모님이 300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삼성 '매직스테이션' 이란 pc를 사셨고, 어린 나에게 그것은 비싼, 그리고 신기한 게임기일 뿐이였다. dos기반의 게임을 주로 하던 난 어느날 흡사 정의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신선한 충격을 맛보았다. 워크래프트2란 게임에 의해...

 자원을 모으고, 병력을 꾸리고, 싸워 이기고...단순한듯 하지만 묘한 매력을 가진 게임이였기에 어느새 푹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블리자드의 팬(이라 쓰고 노예라고 읽는다)으로서 나도 모르게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였고, 워크래프트3 발매 소식을 접했을 땐 친구들과 함께 가로쉬 저리가라 할 정도의 광기를 눈에서 뿜어내며 "워3 하앍하앍!"을 외치고, 동네에서 유일하게 있던 워크래프트3 베타 선정 피시방에 일요일 아침 8시부터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있곤 했다. 친구들과 함께 워크를 하며 "이거 온라인 게임으로 나와도 잘 될것같다."란 의미없는 농담을 던졌것만...머지않아 그것은 현실이 되어 월드오브 워크래프트, 속칭 와우의 개발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다릴 이유따윈 없었다...간간히 들려오는 클베 소식에 나이가 안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모든 희망을 끌어모아 신청을 하고, 피시방에서 가끔 보이는...넓고 푸른 멀고어 대지를 자유로운 영혼처럼 달리는 타우렌(클베당시 타우렌은 탈것이 없고 늑대인간처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컨셉이였다.)을 보며 슬픔의 눈물과 부러움의 군침을 흘리며 오메불망 오픈베타 소식을 기다리던 나...

 2004년 11월 12일

 드디어 대망의 오픈베타일이 발표되었다...

 잇!힝! 초 해피데쓰~~

 한마리의 광(狂)인이 된 나는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큰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어느새 고1이 되고, 고2를 바라보던 순수한 고딩이였던 나에게 금요일 오픈은 어림없는 소리였다...

 진정한 게이머라면 오픈베타 첫날 시작을 해야하지만...망할 야자땜에 과연 할수있을까? 란 의문을 끊임없이 외치던 난 제갈공명도 저리가라 할 정도의 두뇌회전력을 보이며 결국 퍼펙트한 플랜을 세우고...다가온 오픈베타 첫 날...8교시 수업이 끝나고 난 담임선생님께 찾아갔다. 온수에 적신 물수건으로 얼굴에 열을 내고, 사슴같은 눈망울을 보이며, 선생님께 오늘 너무 아파 조퇴를 하고싶단 퍼펙트(단순한...) 플랜.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라는 짐 캐리도 울고 갈 정도의, 근 30년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을 정도의 완벽한 연기력이 통해서였을까? 조퇴 허락을 받은 난 미친듯이 pc방으로 뛰어 계정을 만들고 아제로스 세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pc방은 물론 서버에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나이트엘프 드루이드를 첫 케릭으로 만들고 1시간여의 기다림 끝에 접속한 난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낮인지 밤인지 헷갈리는 오묘한 하늘과, 제 집 안방인듯 돌아다니는 스라소니...텔드랏실의 광경에 넋을 잃은 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치여 퀘스트는 포기하고 맵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내 와우 인생은 몇번의 암흑기(와우는 접는게 아니라 잠시 쉬는 겁니다...)를 거쳤지만, 고3 수능 5일 전 만렙을 찍고 학카르와 안퀴라즈 폐허를 돌며 레이드를 뛰고, 레이디 바쉬를 잡으며, 희대의 폐륜아에게 좌절을 맛보고, 용 등딱지를 때며 어느덧 10년이란 시간을 함께 해 왔다.

 

 와우의 매력은 정말 많다...대한민국 mmorpg의 역사는 와우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인듯 사냥이 아닌 퀘스트 중심의 레벨업, 넓은 아제로스 대륙에 굵은 메인 스토리부터 자잘한 서브 스토리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여주고...그리고 가장 큰 매력은 상상만으로 볼수 있던 아제로스를 눈 앞에 보여주고, 맛보여주고,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는게 아닐까...

 10년이란 세월을 와우와 함께 먹었다는 점이 날 즐겁게 해주고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아직도 친구와 술먹으며 와우이야기가 나오면 신나게 떠들어댄다.) 이런 게임이 나에게 있다는 건...뭔가 운명이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물어보겠다.

 당신에게 있어 와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