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을 보며 이런저런 추억에 잠겨 나도 글을 써볼까했는데
막상 글을 쓸려니 말문이 막히는게 이래서 평소에 책을 좀 읽어야 하나보다.

 

콘솔과 패키지겜만 하던 난 어느 날 알던 동생을 통해
와이번을 타고 오그리마 상공을 날아가는 캐릭터가 찍힌 한 장의 스크린샷을 보게 되었고
그대로 온라인 게임에 손을 댔다.
당시 내 컴퓨터램 256..ㅎㅎㅎㅎ
마침 아는 오빠가 자기 서버로 오라고 하여 달라란 서버에 간 것 까진 좋았으나,
처음 가 본 오그리마에서 귀환석마저 렉이 걸렸기에..
난 시작과 동시에 와우를 접었다가 램을 하나 더 사서 512램으로 다시 겜을 하게 됐다.
램 끼울 줄 몰랐어야 했어.

 

뭐 다들 그렇듯이 나도 레벨업을 했다.
처음엔 정말 적응을 못 해서 퀘스트에 적힌 대로 북쪽으로 이동했다가 마주친
동굴 벽 앞에 서서 뭐지..하고 서있다가 끄기도 했다.


같이 쪼렙을 키우던 친구가 주구장창 퀘스트를 하며 몹만 죽이던 나에게
사자의 힘 물약과 하급 치유의 물약을 <내가 만든거야..ㅎㅎㅎㅎ>하고 줬을 땐
친구의 숨겨진 귀여움에 감동도 하며 둘이 만렙을 찍고 싶었는데
난 공부크리 친구는 남친 군대크리로 상심하여 20렙도 못 찍고 게임을 접게 되었다.

 

그러다 삶에 조금 여유가 생기고 남친도 유학을 가면서 한 눈 팔지 말란 소릴 하길래
알았어 게임만 할게라고 대답했던 어느 날,
다른 친구의 <야 내가 지원 팍팍해줄게>라는 말에 다시 시작한 아서스섭.
친구는 나에게 5골드와 룬매듭 가방 4개를 팍팍..지원해줬고 여기가 내 고향섭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난 정말 아서스에서 블러드후프까지 이어진 내 서버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알던 모르던 너무 좋아한거 같다.
어디였는지 기억이 가물한데 서버 최초 클리어 업적 소식이 채널에 뜬 날은
클리어 한 공대가 어딘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기뻐서 친구랑 술도 마셨다.

 

여기서는 내가 제대로 플레이하기 시작한 내 첫 캐릭 흑마로 열심히 퀘스트를 했고,
군바리남친에게 익숙해진 친구도 아제로스로 돌아와서 함께 만렙을 찍었다.
친구의 남친 제대하면 만렙캐릭 선물할거야ㅎㅎㅎㅎ라는 기특한 여심에 감동한 난
친구남친 캐릭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 첫캐 만렙을 달자마자 처박아놓고
부캐를 키우며 알 수 없는 오묘함으로 퀘스트마스터가 되어가기도 했다.

 

친구네 냥이랑 우리집 강아지 이름을 더해놓은 2인 길드를 만들어 그저 필드에서 뛰어놀았고
당시 네파리안을 잡으면 벼락처럼 꽂혔던
스랄의 2시간 버프를 불모의 땅에서 맞으며
이게 뭐지 우왕하고 알 수 없는 감동의 물결에 차오르던 그 시절
그립다ㅎㅎㅎㅎ

 

그러다 만렙 두 명이 허구헌날 오그리마 마당에서 돌 던지고 있는 모습이 이상했던지
(정말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저땐 아침 7시까지 친구랑 오그에서 무거운 돌멩이를 던지고 놀았다)
지나가던 분이 길드에 가입하지 않겠냐고 여쭤보셨고 어차피 우린 길드에 둘 뿐이었기 때문에

조금 고민하다가 OK한 뒤 그 길드에 뼈를 묻으며 여러 사람들을 알게됐다.

 

 

 

길드 쪼렙분들 도와주는게 좋아서 거의 항상 인던버스를 돌고

황야의 땅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냉기오일과 태엽시계를 쥐어주고

조금이라도 퀘스트 동선을 잡아주기 위해 메모를 날리던 시절

캐릭명은 괜히 누가 알아볼까봐 부끄러워서 모자이크ㅎㅎ

야채농사를 지으러 떠나시는 냥꾼 도적님들께

오그은행 앞에서 빵 한 덩이 빚어드리며 손인사하던게 그저 즐거웠던 오리지널 시절이었다.

 

나중엔 나도 운좋게 공대에 참여하며 우왕..했지만

저 시절 내 와우플레이의 태반은 저렙도우미였다.

연세가 많으셨던 길원분이 탱커로 인던을 가보고싶은데 힐러님들한테 부담이 될 것 같다고 하셔서

사제를 키워 나 친구 탱커님 탱커님을 형님으로 생각하며 같이 겜 하셨던 분까지 함께 자주 다녔는데

길드에서 맘 상하는 일이 생겨 따로 나왔을 때도 곧잘 찾아주셔서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한참 와우를 하며 오리지널의 세기말을 맞이하고,

오닉시아 한 번 잡아보는게 소원이었던 나와 내 친구는 정말 고생고생하며

오닉시아 입장퀘를 모두 마쳐 비룡불꽃아뮬렛도 손에 넣었으나

결국 오닉시아를 잡진 못한 채 오리지널은 막을 내렸다.

 

그 후, 난 게임은 할 만큼 한 것 같다 중독되기 전에 싹을 잘라야겠어..라는 마음에

캐릭터를 곱게 다 정리하고

계정탈퇴를 하여 복구의 가능성조차 막아버리는 것으로 와우를 접은 뒤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영원히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지.

 

좋은 착각이었다.

 

불성 정말 열심히 했다.

리분도 열심히 했다.

대격변은 쉬고 판다리아는 쉬엄쉬엄 했다.

 

저러고도 잘도 공부하고 취업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일상과 양립하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을 많이 하기도 했다.

 

내 인생도 여러가지 변화를 맞으며

와우시즌이 오면 아제로스에 돌아가는 정도로 게임을 하고 있지만,

나와 함께 열심히 달리며 성장하고 나이를 먹어 온 와우의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기타 추억짤

하드가 여러번 터져서 남은게 거의 없다.

 

 

 

그만 터질 때도 됐는데 볼 때마다 터지는 리넨옷감

글이 너무 길어서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