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창 국내 노가다성 mmo에 질려있던 차,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캐릭터가 이쁘지 않아서 제껴뒀던 와우를 접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를 꿈꾸며 백발의 남캐 법사를 생성,
작지만 훈훈했던 길드를 만나 동년배의 인게임 친구들도 만났다.

돌발톱 산맥에서 엄청 힘들게 몹 한마리 한마리 잡고 있는 와중에,
쓩쓩 아무렇지 않게 몹들을 학살하는 냥꾸니 커플 길드원!
에라 모르겠다 나엘 여캐 냥꾼으로 전향! 거침없는 렙업을 했다.



와우를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한 터라 만렙이 되었을 때 줄구룹 패치가 이뤄졌다.
라이트한 초보 유저였기에 40인 레이드는 꿈도 꾸지 못할 때,
괜찮은 룩과 성능으로 무장한 에픽을 비교적 손쉽게 넣을 기회가 온 셈이다.

만도키르의 독니, 혹은 구루바시 부족 드워프 파괴자.
라이트 사냥꾼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자 로망 그 자체.

이 두 녀석들만 보고 몇 주 몇 달을 달렸다.
그 시절 사냥꾼과 도적, 전사는 서로의 무기를 탐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는데
3일 쿨타임인 줄구룹을 계속 돌아도 도적과 전사에게 주사위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대의 해골장궁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줄구룹을 돌고 돌았는데,
한 2달이 지났을 무렵, 
또 다시 학카르의 시체 앞에서 전사와 주사위를 마주하고 앉게 되었다.

구루바시 부족 드워프 파괴자를 두고 무득 전사와 단둘이 남은 것, 
그리고 그 주사위를 이겼을 때, pc방인 것도 잊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렇게 그 아이템이 내 와우 인생 첫 에픽이자, 가장 의미 있는 아이가 되었다.

후에 정규 포인트 공대에 가입해 거인추적자 풀셋과 라크델라,
용추적자 풀셋과 용숨결 손대포를 손에 넣었지만 여전히 그 총은 내게 최고였다.

그 무렵 와우에서 만나 실제로 사귀게 된 여자 친구는,
불타는 성전이 등장하며 오리지널과 함께 퇴장한다.



2.
오리지널 시절, 
정규 공대의 일원으로 화심과 검둥, 안퀴 사원을 헤딩하면서 상당히 지쳤었다.
때문에 불타는 성전은 라이트하게 즐기려 노력했고,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카라잔의 칙칙한 분위기와 고자 말체자르 뿐이다.



3.
역대 최강 존재감의 아서스 메네실 등장.
워크래프트의 이야기 그 중심을 통과하는 확장팩의 등장에 마음이 설렜다.

그리고 정규 공대원을 모으는 공대장의 광고에 손을 해버리고 만다.
역대급 던전이라 일컬어지는 울두아르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확장팩이 거듭되면서 아이템이란 결국 부질없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사실 리분에서도 템 욕심은 없었지만 난 정공에서 다른 걸 노리고 있었다.
바로 아서스와 함께 등장한 업적 시스템, 그리고 그 보상인 탈것.

노스렌드 렙업을 하면서 봐왔던 원시비룡의 그 그로테스크한 룩은
내 특이한 취향을 저격하며 워너비 아이템이 되기에 충분했다.


정규 공대와 함께 울두아르 하드모드와 업적을 정말 열심히 달렸다.
넘사벽이었던 딜죽의 뒤를 이어 항상 리카운트의 2번째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그렇게 얻은 녹슨 원시비룡은 오리지널 줄구룹의 총과 더불어 
내 와우 역사상 가장 뜻깊고 의미 있는 아이템 목록에 들어갔다.


우리의 정규 공대는 결국 리치왕을 때려잡는 것 까지 성공했고,
내게 서리고룡 탈것도 안겨 주었지만 난 꽤나 오랫동안 원시비룡을 타고 다녔다.



4.
그 후 대격변과 판다리아라는 걸쭉한 확장팩이 2번이나 지나갔다.
새로운 도전 과제들은 공격대 찾기의 등장과 함께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흔히 와라버지라 불리는 오리지널 세대에겐, 
더 편해지고 더 커지고 더 풍부해진 지금의 와우를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오리지널의 향수를 품고 나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너무나 힘겹게 먹었던 아이템 때문이던,
열렬히 정성했던 처자와의 기억이던,
이도 저도 아닌 그저 레벨업과 레이드의 고생의 기억 때문이던,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그 향수는 나를 드레노어의 복판으로 안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