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 냥꾼의 템렙이 484에 다다르자

더 즐길 컨텐츠가 별로 없다는 걸 알았다.

 

업적이나 위업을 수집하기에는 귀찮고

애완동물은 재미가 없고

조련술 레이싱은 이미 다 따 버렸다.

 

레이드는 정공이 있고

쐐기는 수요일 길드 주차 버스로 횟수를 채우게 되니

더 할 일이 없어졌다.

 

목표가 사라지니 공허하고 복잡했다.

국민연금 수령을 앞두고 계신 부모님이 이런 감정일까.

 

고민하다 나는 부캐생성을 시작하였다.

문득 힐러를 하고 싶었다.


냥복치인 나를 살리기 위해 오지게 고생했던

힐러들의 마음을 십분지 일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길드에 판금클이 유난히 적었기 때문에,

나는 신기를 선택했다.

시던 뺑뺑이로 70을 만들면서 알았다.

 

, 초보 캐릭 추천할 때 야냥이 오지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구나


비어있던 단축키 창은 각종 축복과 힐, 딜 기술로 가득찼다.

공간이 부족해 한 줄을 더 추가했다.

 

템을 대충 맞추고 공찾에 들어갔다.

도무지 피가 닳지를 않으니 할 게 없었다.

 

그 와중에 한 신사의 힐량이 나머지 인원을 합친 것보다

3배가 많았다.

압도적인 힐량 앞에서 나는 애드온이 고장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디테일즈를 열었다.

 


484

 


그랬다.

대체 공찾에 왜 왔는지 모를

그 템렙으로 아군의 피를 채우고 있었다.

 

카이스트 교수님께서 초등학교에서 과학시간에

돋보기로 개미를 태우는 것 같은,

그 생경한 모습에 나는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그의 힘이 시이이이인 서어어어어엉이라면

내 힘은 '셩' 으로 끝날 것 같았다. 


다음 넴드 트라이 전 

나는 N을 눌러 징벌을 선택했다.

개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의 달달한 힐 앞에서 이기라의 창은 작은 이쑤시개였고

스몰데론은 말 그대로 스몰이었다.

 

다음 공찾을 돌렸다.

그 신사가 또 와주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그는 없었다.

 

두 번의 공찾 동안

나는 단 한 개의 템도 먹지 못했다.

 

한 게 없으니 빈 손으로 가는 게 맞는 것이었을까.

내가 아미드랏실에서 꿈을 꾼 것이었을까.


군단석과 문장이라도 얻었으니

마음이라도 든든하게 들어가는게 맞겠지.

아니면 공찾의 공은 빌 공자였을까.

 



옹이뿌리의 잔 가지가 타들어가며 깊어지는,

겨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