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S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누구나 렐릭 엔터테인먼트(Relic Entertainment, 이하 렐릭)에 대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과거 스타크래프트와 커맨드 앤 컨커가 RTS 시장을 점령할 때 '홈월드'라는 독창적인 RTS 게임으로 국내 플레이어들에게 이름을 알린 렐릭은 캐나다에 위치한 하드코어 RTS 전문 제작사이다. 이후 임파서블 크리처, 워해머 시리즈,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 이르기까지 진보적인 개념과 그래픽을 갖춘 대작들을 여럿 발표한 렐릭의 프로듀서 Stephen Willams의 강연이 26일 KGC2013 2일차 일정에서 진행되었다.

▲ 생기넘치면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은 Stephen Willams 프로듀서


Stephen Willams의 첫 인상은 기자가 생각하던 게임 프로듀서와는 사뭇 달랐다. 인터넷이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양 미남과 같다고 할까? 조금 긴장한 듯 싶었지만 자신있는 모습으로 강단에 선 그는 차분히 렐릭의 역사와, 가장 최근 작품인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2(이하 COH2)'에 대한 말을 시작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COH2의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워게이밍의 '월드오브탱크'가 그러하듯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나 2차 창작물의 경우 엄정한 고증이 필수로 요구된다. 기존의 렐릭 작품인 홈월드나 임파서블 크리쳐처럼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 이런 면에선 자유롭지만 실사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의 경우 런칭과 동시에 유저들의 날카로운 고증 지적이 어김없이 날아온다. Stephen은 렐릭이 COH2 제작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집했는지에 대해 말했다. 수천 수만장의 사진을 찍었고, 당시 전장을 조사했으며 당시의 병사들 사진과 장비 등 역시 직접 수집했다.

▲ 렐릭이 수집한 개발용 자료 중 일부


하지만 Stephen이 말하는 개발 과정의 진짜 난점은 비단 단순한 자료 수집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이전의 렐릭 엔터테인먼트는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게임의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간의 협업은 삐걱거렸으며 쓸 데 없는 작업이나 했던 일을 또 하는 경우, 요청한 작업이 몇 달간 이루어지지 않다가 결국 유야무야되는 경우 역시 흔했다. 각 팀들은 그들끼리만 뭉쳐 활동했으며, 다른 팀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Stephen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뛰었다. 업무 중간중간 계속 아트 팀과 디자인 팀 사이를 왕복하며 그들의 문제와 고충을 들었고, 양 팀이 유기적인 협업 체계를 갖추도록 종용했다. 개인적으로 디자이너를 만나 어떠한 일을 해달라고 설득하며 그들이 필요한 일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간단한 단계부터 손수 시작한 그는 몇 달에 걸쳐 스튜디오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어나갔다.

▲ 중앙 팀이 양 개발팀을 모두 지원해야 하다 보니 유기적인 협업이 힘들던 당시의 계통도


수 개월 후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 각 팀간의 유기적인 협업이 이루어졌으며 팀 내의 팀워크는 더욱 향상되었다. 폐기되는 자료나 쓸모없는 업무의 양 역시 대폭 감소해 효율적인 업무 형태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리드 디자이너였던 브라이언 우드(Brian R.Wood)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타계한 사건은 스튜디오 전체에 큰 타격을 준 일이었다. 다른 디자이너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긴 했지만 빈자리는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예산 문제 역시 발목을 잡았다. THQ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항상 부족한 예산 하에 제작을 해야했고, 직원들은 모든 창의력을 동원해 제작비를 줄이는 쪽으로 개발에 임해야 했다. 동시에 모든 개발자료와 자재 등을 재활용해가며 소소한 비용 역시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모회사인 THQ의 부도였다. Stephen은 이때를 회상하며 수없이 '이 개발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고 말했다. 회사의 중견 간부들이 아예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Stephen과 개발진은 좌절하지 않고 게임 개발에 더 몰입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뭔가 아련해 보인 Stephen은 그 때의 이야길 하며 "오히려 회사의 힘든 상황이 우리를 더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촉진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세가가 렐릭을 인수하게 되었고 상황은 급변했다. 돈 한푼 없던 스튜디오는 순식간에 엄청난 지원을 받게 되었고 세가와 기존 직원간의 협업 역시 활발히 이루어졌다. 기존 렐릭의 개발방식은 미리 모든 계획을 짜 두고 업무를 분담해 해결하는 방식이었지만 흔히 애자일(Agile) 방식이라고 하는 기민한 개발 체제 역시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많은 애자일 개발자들을 영입했다.

Stephen은 이전의 위기들을 담담히 나열하며 "한국에 오기 전 계산을 해보았는데 사내에 5년차 이상의 직원이 총 114명 중 40%에 달하고 15년 이상 근무한 직원 역시 존재해서 놀랐다. 아시아권에서는 장기 근속이 비교적 흔한 일이지만 북미권에서는 1년 미만의 퇴사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흔치 않다. 숱한 위기 상황을 겪으며 우린 가족처럼 단합하게 되었고 현재에 이르러 서로의 어려운 일을 모두 알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곧이어 그는 COH2의 사후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기존의 렐릭의 이미지는 작품은 좋으나 사후대책은 형편없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워해머 40K: Dwan of war 2 이후는 이런 면이 조금 개선되긴 했지만 그 이전의 렐릭 게임들의 경우 유저가 돈을 주어야 업데이트를 해준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Stephen은 오늘의 강연에서 이전의 이러한 이미지를 완전히 깨버리겠다는 듯 COH2의 경우 커뮤니티를 굉장히 많이 참고하며 이를 통해 수시로 업데이트를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Stephen이 말하는 렐릭의 사후 서비스는 커뮤니티를 주요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그들은 포럼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커뮤니티의 반응에 따라 개발 방향을 바꿔나간다고 말했다. COH2의 경우 원래 3-4주간의 베타 서비스를 계획해 게임 내 오류나 수정점에 대한 데이터 수집을 노렸지만 일정 간 수많은 피드백과 개선요구점을 문의받았고 나아가 플레이어들 역시 장시간 게임을 즐겨 줘 16주라는 유래없는 기간동안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렐릭은 850가지 더불어 렐릭은 트위치TV(Twitch TV)와의 연계 역시 추진중이었다. 이를 통해 Stephen은 게임을 좀 더 대중에게 알림과 동시에 얻을 부가적인 효과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러한 사후 서비스에 대한 마인드를 항상 유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각종 사후 서비스를 통해 기존 렐릭의 이미지 탈피를 꾀하고 있다.


Stephen은 이러한 사후 서비스의 강화를 위해 '게임 젬'과 '피쳐 젬'을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 젬'은 회사 내에서 독립적인 자금 팀을 만들어 직원들의 간단한 게임 제작을 돕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스스로 개발하고 싶은 게임을 마음껏 제작할 수 있고, 동시에 스튜디오의 개방성과 창의력, 팀간의 팀워크를 돋울 수 있다. 그는 이러한 프로젝트가 스튜디오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기존의 악영향들로부터 직원들의 개발 의지를 고취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피쳐 젬'은 기존에 개발된 게임에 새롭게 적용시킬 요소들의 개발을 팀별로 경쟁하는 것이다. 디렉터가 이미 결정된 사항을 전하는 것이 아닌, 일선 개발자가 독자적인 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요소들을 내놓고 경쟁해 더 좋은 요소를 택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서 각 팀의 팀워크 역시 추가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불과 1시간의 짧은 강연이었지만 Stephen은 그동안 렐릭이 걸어온 가시밭길과 세가를 만나 다시 양지에 떠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강연의 제목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2 를 회상하며'였지만 현재 몇 남지않은 RTS 전문 제작사인 렐릭이 지난 위기를 잘 극복했음을 알리며 동시에 앞으로 나갈 길을 제시하는 출사표라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강연이었다.

강연의 종장에서 Stephen은 "아마 'COH2'라는 개발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세가와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강연 후 짧은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아래는 내용 전문이다.






Q. 러시아 역사 고증 문제로 복잡한 상황을 많이 겪었을 것 같은데 이 문제를 게임 디자인 관점에서 해결한 방법은 무엇인가?

Stephen Williams :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비록 제작 과정에서 실제 전투의 흐름과 대치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게임으로서의 연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큰 문제가 되는 전투나 요소의 경우는 뺀 후 무료로 추가 콘텐츠를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하는 쪽으로 해결하려 한다.

Q. 한국에 COH의 팬이 많은데 이 시리즈를 이스포츠 종목으로 시도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가?

Stephen Williams : 나 역시 그런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지 않다. 하지만 COH를 제작했을 때 부터 THQ의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이런 추가적인 문화 콘텐츠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사실상 없었다. 비교적 여유로워진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스포츠 분야 역시 많이 고려하고 있다. 한국의 팬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팬들 역시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이스포츠화를 원하고 있다.

Q. 기존의 개발 형식에서 애자일 형식으로 바뀌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는가?

Stephen Willams : 애자일 형식은 완전한 애자일이 아니면 애자일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의 개발형식은 애자일이 아니다. 완벽한 애자일 체제로의 변환은 개발의 모멘텀을 늦추고 기존의 개발방식을 수정하기엔 너무 큰 리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우린 애자일 형식을 기존의 개발 방식에 추가하는 쪽으로 개발 진로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린 기존의 개발 방식의 안좋은 점들을 반성할 수 있었고, 현재의 경우 추가적인 업데이트나 콘텐츠의 모든 것을 애자일 형식으로 개발중이다.

Q. 게임 개발 중 어느정도 검증된 요소라도 개발을 하다 보면 그다지 유저들에게 어필하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변경하는 것은 규모나 예산 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수정을 하거나 하지 않는 기준이 있는가?

Stephen Willams : 프로듀서로서 질문에 답해주자면 해당 콘텐츠의 가치와 리스크를 먼저 따질 수 밖에 없다. 그 후 전반적인 재미 요소 역시 확인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추가적인 어떤 것에 대한 점은 모든 부서와 협업해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