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야기는 실화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재밌어요? 디아블로."

한 달 전쯤인가. 피시방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칸막이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서 물었다. 마침 창고 정리 중이었는데, 아저씨의 눈이 기자가 보유한 균열석과 죽음의 숨결을 훑는 게 느껴졌다. 온몸이 발가벗겨지는 듯했다. 이 시선은 필시 상대의 내공을 가늠하는 네팔렘의 것이렷다. 몸을 살짝 뒤로 젖혀 옆자리 화면을 봤더니 역시나.

"재밌죠."

'쿨내'나게 대답하려고 했는데 말꼬리가 흐려진다. 기자도 모르게 눈알을 잽싸게 굴려 아저씨의 화면을 흘겨봤다.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느라 입꼬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 아저씨는 완벽에 가까운 황야 장갑에 마우스를 올려둔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창고를 열어 뭔가를 찾는데, 이번엔 각종 제작 재료가 한가득이다. 기자의 시선을 느낀 아저씨가 씩 웃었다.

"뭐가 재밌어요? 하.. 난 요즘 잘 모르겠네."

입가에 '지금이 제일 재밌음.'이라고 쓰여 있는 걸 이쪽이 모를쏘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지만, 사실 파밍이 주 콘텐츠인 디아블로에서 템자랑은 천부의 권리다. 제길, 부럽다. 기자도 자랑할만한 아이템은 있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있잖아요. 황야 이제 안 쓰던데."
"..?"
"다음 패치 때 황야 망해요. 테섭 해보셨어요?"
"파티에서는 아직도 쓰던데요."
"아.. 해보셨구나.."






벌써 연말이다. 이맘때쯤이면 시간이 참 빠르다면서 새삼 놀라곤 하는데, 사실 더 놀라운 건 매년 디아블로3 현역으로 남아 있는 기자가 아닐까.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벌써 4주년을 향해 가고 있는 패키지 게임을 아직도 붙잡고 있다.

여태껏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으면 한 번쯤은 주변 사람, 혹은 자기 자신에게서 "디아블로 아직도 해요? 재밌어요?"라는 질문을 받게 되기 마련이다. 당시엔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면 "음.. 습격셋만 써보고 접으려고요." 또는 "아니~ 전설 보석이 나왔다길래 잠깐 해보고 있지.." 등이 솔직한 대답이 아니었을까 싶다.

게임? 그거 그냥 하는 거지 이유가 있나. 이것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하필 왜 디아블로일까? 어째서 아직도 피시방 옆자리 유저의 아이템과 정렙이 부러울까. 이번 시간에는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 경매장 폐쇄와 확장팩

현재의 디아블로3는 초기, 그러니까 2012년 5월~2014년 3월까지의 오리지널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변화 기점은 확장팩을 앞두고 2014년 2월 27일에 적용된 2.0.1패치라고 할 수 있다.

2.0.1패치에서는 전설 및 세트 아이템이 계정에 귀속되는 대신 높은 확률로 캐릭터 직업의 '맞춤형 아이템'이 드랍되는 '전리품 2.0'과 정복자 레벨 제한이 사라지고 계정 통합 레벨 개념으로 전환된 '정복자 2.0' 시스템이 적용됐다. 정복자 포인트를 찍는 개념도 이때 생겼다.


▲ 정복자 2.0 도입을 통해 사실상 만레벨이 사라졌다


이어서 3월 18일에는 경매장이 폐쇄됐다. 이로 인해 알람에 맞춰 새벽에 눈을 번뜩 뜨더니 5초를 마음 속으로 세고 입찰가를 타이핑하던 일은 추억이 됐다. '폐지 줍기'로 장비를 하나씩 맞춰나가거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황혼의 가면'을 감정하는 일도 없게 됐다. 하지만 3월 25일에 출시된 확장팩을 통한 콘텐츠 확장과, 2.0.1패치로 인한 아이템 획득 난이도 하락, 캐릭터 만레벨 이후 레벨링의 동기 부여는 유저들에게 많은 '할 것'을 안겨줬다.


▲ 이제 사진으로만 볼 수 있게 된 경매장


한편 경매장 폐쇄의 여파로 많은 유저들이 성역을 떠나기도 했다. 현금 거래같은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파밍'이 주가 되는 게임에서 획득한 아이템을 타인과 공유하기 어렵다는 점은 쉽게 납득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눔'같은 디아블로 특유의 문화도 사라졌다.

이에 블리자드는 다음 대규모 패치를 통해 '파밍'의 확장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시즌'과 '대균열'을 내놨다.






■ "대균열" - 패키지 게임 한계 돌파를 위한 블리자드의 제안

2014년 8월 28일에 2.1패치가 적용되면서 대균열과 순위표, 그리고 14종의 전설 보석이 추가됐다. 대균열은 몬스터의 전투력이 상한선 없이 대균열 단계에 따라 상승하는 무한 콘텐츠다. 여기에 순위표를 끼얹으면서 디아블로3 유저 전체가 경쟁하는 시스템을 엮어냈다.

대균열은 기존 주력 빌드의 한계점을 극명히 드러내면서 변화와 연구를 요구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2.1패치 전까지 강력한 딜러였다가 대균열 등장 이후 사장되어 버린 '비취 부두'가 있다. 고단계에서는 몬스터가 빠르게 죽지 않으니 비취 부두의 혼령 수확 재사용 대기시간이 초기화되지 않았고, 이는 엄청난 딜로스를 유발했다.


▲ 고행 6단계 주력 딜러였다가 대균열에선 찬밥 신세가 된 비취 부두


그렇다면 무지막지한 체력과 공격력을 지닌 대균열 몬스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많은 유저들이 고민에 빠졌고, 결과적으로 '서리심장'같은 신규 전설 아이템을 통한 즉사기 활용, 급기야는 '공포 부두'와 '버프 성전'같은 운수, 서폿 형태의 빌드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2015년을 뜨겁게 달궜던 '무한 메즈'의 시작이다.


▲ 본래 빙결된 적을 즉사 시키는 효과였으나 패치를 통해 변경됐다


물론 무한 메즈는 오리지널의 '깃팟' 시절부터 있어 왔던 전통적인(?) 사냥법 중 하나다. 대표적으론 지금은 사라진 지속 기술 '극대화 반응'을 이용한 서리법사를 들 수 있다. 당시에도 무한 메즈 뿐만 아니라 '감속 지대'를 이용한 약간의 서폿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다만 2.1패치 이후부터는 기술과 아이템 재설계로 서폿 캐릭터들이 좀 더 전략적인 세팅과 운영법을 갖추게 됐다. 기껏해야 고행 6단계 정복이 최종 콘텐츠였던 디아블로3의 게임 내용이, 이제는 '효율 극대화를 위해 어떤 파티 조합을 취할 것인가?'라는 문제 해결로까지 확장된 셈이다.






■ "시즌" - 복귀자와 기성 유저가 평등한 세계

대균열과 함께 디아블로3를 지탱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줄기는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2.1패치를 통해 추가됐으며, '일정 기간마다 초기화되는 서버에서 게임 새로 시작하세요~' 라는 시스템이다. 시즌을 해야 하는 이유로 '프라이데르의 진노'나 '구름밟이'같은 특출난 효과의 시즌 전용 아이템을 내세웠다.

시즌1같은 경우는 시즌 전용 아이템이 워낙 획기적이었기에 신규 빌드 등으로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시즌2는 전용 아이템의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시즌 참여 인구도 줄어들게 됐다. 시즌 기간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시즌1은 약 5개월이나 유지된 반면 시즌2는 2개월 정도 진행되다가 2.2패치와 함께 시즌3로 넘어갔다.


▲ 당시 성전사 유저들은 시즌을 안 해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매 시즌은 무척 중요한 순기능이 있었다. 복귀 유저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패키지 게임이라는 한계 때문에 사실 디아블로3의 콘텐츠는 폭이 넓은 편이 아니다. 반복적인 파밍과 대균열 순위 경쟁에서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할 게 없다. 그러면 게임에서 이탈하게 되고, 시간이 지날 수록 기성 유저와의 간극이 점점 벌어져 복귀할 마음을 갖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블리자드는 시즌 도입과 함께 이후 대규모 패치를 새 시즌 개시와 맞추면서, 기존 유저들은 비시즌과 시즌 중 선택, 기반이 없는 복귀 유저들은 시즌으로 가면 기성 유저와 동일 선상에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세기말'이 되면 성역을 떠나 잠시 외도를 하다가, '뭐? 호라드릭 큐브같은 게 나온다고?' 하면서 돌아오는 유저들을 자주 봤을 것이다.


▲ "할아버지.. 적당히 쉬셨으면 이제 싸우러 가셔야죠."




■ 무한 메즈 삭제와 카나이의 함으로 또 시간을 벌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균열' 도입으로 디아블로3는 유저들에게 해결해야 할 과제를 던져줬다. 그리고 이를 통해 패키지 게임으로서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수명 단절의 유예 기간을 벌었다.

하지만 유저들은 시즌1이 채 지나기 전에 새로운 도전 '대균열'에 완전히 적응했다.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대균열 최고 단계에 이른 것이다. 비결은 역시 무한 메즈였다. 군중제어기 난사로 몬스터를 묶어두고 극딜을 퍼부어 고단계를 돌파했다. 이에 블리자드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다음 시즌과 함께 진행된 패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간략하게 훑어보자. 시즌1에서는 대균열과 전설 보석 추가, 시즌2에서는 '고대'라는 아이템 등급이 등장하면서 최종 세팅을 완성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늘렸다. 2.2패치가 진행된 시즌3에서는 희대의 세트 아이템인 '의지의 철벽'. 이른바 '집자셋'이 등장하면서 화제가 됐다. 또한 블리자드가 매 시즌 대표적인 빌드와 주류 직업을 변주하면서 유저들을 휘둘렀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 시즌3를 쥐락펴락했던 의지의 철벽 세트


가장 최근인 2015년 8월 28일부터 시작된 시즌4는 시즌 고유 초상화 장식과 애완동물을 지급했고, 역대급 업데이트라고 불리는 2.3패치를 등에 업고 진행됐다.

2.3패치 골자는 카나이의 함 추가와 무한 메즈 삭제다. 유저들이 공포나 실명으로 바보가 된 몬스터를 샌드백처럼 두들기는 전투에 염증을 느끼자, 이번엔 무한 메즈를 원천봉쇄하고 카나이의 함으로 캐릭터의 전투력을 올려줬다. 이와 함께 직업별 기술과 전설 아이템 효과 개편으로 생존력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건 '자양 운전 수도사'다. 2.3패치에선 고단계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내며 전투해야 하는데, 유저들은 이 공격을 피하는 게 아니라 높은 대미지 감소율과 체력 회복량으로 상쇄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덕분에 시즌 초중반에 태생이 근접 캐릭터인 야만용사가 득세하기도 했다.


▲ 2.4패치에선 크게 하향되어 활용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편 신규 콘텐츠인 카나이의 함은 희귀 아이템을 동종의 전설 아이템으로 바꿔주거나, 전설 아이템의 속성을 전부 재부여하는 등의 기능을 가지고 나왔다. 이는 기약없는 파밍에 지쳐있던 유저들에게 희소식으로 다가왔다. 대신 조합식에 필요한 고유 재료가 모험 모드 완료 보상으로만 지급되고 카나이의 함 조합에 다량의 '잊혀진 영혼'이 소모되는 등, 전과 비교했을 때 게임 전반의 이용률은 거의 동일하게 유지했다.

카나이의 함의 간판급 기능인 '전설 효과 추출'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전설 아이템의 고유 효과를 무기, 방어구, 장신구 별로 하나씩 추출해 고유 기술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상상만 했던 세팅이 가능해졌다.

이를테면 부두술사는 쿠크리와 독침의 단검을 동시에 착용한 효과를 볼 수 있게 됐다. 이는 비전투직으로 볼 수 있는 서폿 빌드에도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부여했고, 결국 앞서 언급한 '자양 운전 수도사'같은 빌드를 탄생시킨 셈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나이의 함도 대균열처럼 별로 놀랍지 않은 콘텐츠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2.3패치 내용이 공개됐을 당시 모두가 '갓3!!'를 외치던 그 광경을 잊지 말자. 우리가 마치 연어처럼 패치 때마다 돌아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니까.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장비 구성이 현실화됐다






■ 연어들을 위한 떡밥이 가득한 2.4 PTR

2015년 11월 12일에 2.4패치 초안이 적용된 공개 테스트 서버(이하 PTR)가 열렸다. 이번에는 2.3패치처럼 대격변 수준의 변화는 없지만, 연어잡이를 위한 포석은 놓여 있다. 무엇인가하면 '보상'이다.

2.4패치와 함께 진행될 시즌5는 지난 시즌들과 달리 시즌 전용 아이템이 없다. 대신 시즌 여정 보상으로 고유 초상화 테두리 및 추가 보관함 탭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디아블로3를 오래 즐겨온 유저일 수록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셈. 만약 이런 주변적인 혜택에 관심이 없다면 그대로 비시즌에 남아 2.4패치 신규 빌드를 즐기면 된다.


▲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추가 창고 탭이 찾아온다


12월 18일에 추가 패치가 적용된 2.4 PTR 기준으로 전례없이 깔끔한 밸런싱이 됐다. 직업별 대균열 기록 편차가 크지 않고, 도약 야만, 해머딘같은 2.3 비주류 빌드가 대세로 반등했다. 마법사같은 경우는 아예 근접형 캐릭터로 탈바꿈하면서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전망이다.


▲ 몸에 보주를 감고 근접해 싸우는 형태의 법사 빌드가 나올 예정


2.4패치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보상' 이야기는 아직 안끝났다.
신규 콘텐츠로 '세트 던전'이라는 것이 있다. 지정된 세트 아이템을 모두 착용한 상태에서 특정 기술로 몬스터 80마리 처치하기, 포격 공격에 맞지 않기 등등, 여러 임무를 달성해야 하는 콘텐츠다. 이 던전들을 모두 돌파하면 유료 아이템 수준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직업별 깃발(시즌3 깃발처럼 직접 착용하는 형태다)과 날개 2종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던전 내에서 한 번이라도 '죽음에 달하는 피해'를 입으면 임무에 실패하게 되므로, 간만에 컨트롤 실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어쩌면 향후 새로운 도전 콘텐츠로 발돋움할지 모르는 세트 던전에 주목하자

▲ 야만용사 직업 깃발과 세트 던전 보상 날개
※ 출처 : 튜퓨류 유저 게시글






■ 우리는 왜 4년째 수면제를 복용하는가

디아블로3를 일컬어 흔히 '수면제'라고들 한다. 게임만 켰다 하면 잠이 오기 때문이란다. 기자 역시 동감한다. 분기별로 신규 맵, 시스템, 직업이 출시되는 온라인 게임도 지겹다는 판국에 패키지 게임이 재밌어 봐야 얼마나 가랴. 그런데 벌써 약 4년째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다. 잠깐 끊어보기도 하지만 이내 금단 현상이 찾아온다.

앞서 살펴봤듯이 디아블로3는 매우 영리하게 유저들을 끌어당겨왔다. 2.0.1패치로 불지옥 난이도 체제에서 '고행'으로 변환을 꾀했을 때도, 사실 몬스터의 능력치와 아이템 드랍률에만 변화가 생겼을 뿐, 실질적으로 게임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많은 유저들은 큰 변화가 생겼다고 느꼈다.

이유는 이전 버전에서 할 수 없던 일들이 새로운 패치를 통해 가능하게끔 바뀌었기 때문이다. 100만 딜을 내던 캐릭터가 1000만 딜을 내게 됐고, 전설 아이템을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패치 방식은 확장팩 이후에도 계속됐다.


▲ 이전 패치보다 좀 더 많을 것을 얻게 하는 게 그간의 전략이었다


특히 정복자 레벨을 계정 통합 레벨로 전환시킨 '정복자 2.0'은 신의 한 수였다. 파밍이 전부 끝나면, 전설 보석 업그레이드와 정복자 레벨업을 통한 스탯 포인트 투자 외에는 캐릭터 성장 방법이 없다. 그리고 저 두 가지 성장 방법은 결코 그 끝을 볼 수 없는 무한 콘텐츠인 대균열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시즌에 맞춰 아이템이 재설계되고, 각 직업의 정체성이 끊임없이 바뀌는 패치가 이뤄지면서 유저는 같은 게임을 4년째하는데도 주기적으로 변화가 생기는 느낌을 받게 됐다. 물론 직업 간 밸런스 불균형은 순전히 시행착오일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2.4패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매 시즌, 혹은 패치 세기말이면 우리는 수면제를 끊고 여행을 간다. 그리고 한 달 내지는 두 달 후, 다시 수면의 강을 거슬러 올라 성역으로 돌아온다. 2.4패치와 시즌5 개시까지 약 보름이 남았다. 떠났던 연어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 응? 벌써 시간이 이렇게?!




# 에필로그

지난 주말에도 어김없이 피시방을 갔다. 디아블로3를 켰더니 커뮤니티 알람으로 '가까운 플레이어(1)'이라는 문구가 떴다.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음료수를 사러 가면서도 의식적으로 더듬이를 곤두세운 결과, 이 동네 또 한 명의 네팔렘을 찾기에 이르렀다. 똥3이니 수면제니 욕하면서도 세기말에 성역을 지키고 있는 건 결국 네팔렘 본인들이다.

자리에 돌아와 '가까운 플레이어'의 정복자 레벨을 보니 의외로 초심자다. 음?! 이러면 또 디아블로 골수 유저가 잘 알려드려야지. '정석' 세팅 설파하고 대균 버스도 해주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겠다. 창고에 흩어져 있는 재료들을 한 곳에 모아 칼같이 각을 잡아두고, 혹시 모르니 끝장템의 예시로 보여줄 졸업급 장갑도 창고로 옮겼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디아블로3를 종료하고 '자리 이동' 버튼을 눌렀다. 밖에서 막 들어온 것처럼 외투를 도로 입고 가방을 멘다. '가까운 플레이어'의 옆자리로 이동하면서 처음에 말을 어떻게 걸까 고민한다. 디아블로 처음이세요? ..어? 저도 디아블로 하려고 왔는데. 속으로 속닥거리는 사이 방금 막 벨리알 처치를 끝낸 네팔렘 옆자리에 도착했다.

벨리알이 또 보스 중에선 일품이었지.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었다. 컴퓨터를 켜니 까만 화면에 기자의 얼굴이 반사된다. 가만히 화면을 응시하다가 칸막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재밌어요? 디아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