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코리아 이근우 아트디렉터

  • 주제: 마블과 아트어셋 협업하기
  • 강연자 : 이근우 - 넥슨코리아 / NEXON KOREA
  • 발표분야 : 비주얼아트&사운드
  • 권장 대상 : 게임업계 아트 지망생, 주니어 아티스트
  • 난이도 : 사전지식 불필요 : 튜토리얼이나 개요 수준에서의 설명


  • [강연 주제] 마블배틀라인 초기 비주얼 개발에 관한내용과 까다로운 IP홀더 검수아래 많은 아트 어셋들을 어떻게 관리 했는지 소개합니다. 개발하면서 겪어본 미국과 한국의 아트적 관점차이도 얘기 해볼 수 있을거 같습니다.

    아트에 대해 얘기할 때 흔히 북미풍, 동양풍이라고 구분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북미 쪽은 근육질의 마초적인 걸 좋아하고 동양 쪽은 미소년, 미소녀 같은 슬림하고 예쁜 걸 좋아한다는 관념이다. 그렇기에 동양 아티스트가 북미풍으로 일러스트를 그린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마블 배틀라인'의 작업물들은 국내 아티스트가 맡고 있다. 국내 아티스트들로 이뤄졌지만, 그 깐깐한 마블의 검수를 통과했다는 얘기다. 도대체 그 비결이 뭘까? 이근우 아트디렉터의 '마블과 아트어셋 협업하기' 강연을 통해 그 비결을 들어봤다.

    * 본 강연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강연자의 시점으로 서술되었습니다.



    ■ '마블 배틀라인'의 아트필라는? - 북미 코믹스풍에 아시아의 감성을 더하다

    대략 2016년 경이었던 거 같다. 업계 전반으로 유명 IP를 활용한 게임 개발이 한창이었다. 그런 만큼, 마블은 참 군침이 흐르는 IP였다. 그런데 운 좋게도 우리가 그 마블 IP를 이용해 게임을 개발하게 됐다. '마블 배틀라인'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마블 배틀라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코믹스 기반이어야 했다. 영화로 마블 IP를 접한 대중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나도 캡틴마블을 몰랐는데 이때 처음 알게 됐다.

    아무튼, '마블 배틀라인'은 카드 게임이어서 일러스트가 중요했다. 목표는 북미 코믹스였다. 강하고 임펙트 있는 이미지들을 상상했는데 처음에는 레퍼런스가 있으니 쉽게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국내에는 북미 코믹스 스타일로 그리는 아티스트가 적어서 섭외부터 쉽지 않았다. 그리고 북미 코믹스는 누구는 스케치를 맡고 누구는 펜터치를 하는 등 프로세스화됐는데 이런 식으로 게임 일러스트를 만드는 것도 무리였다.

    그래도 찾아보니 마블 히어로 팬아트를 그리시는 분들이 있어서 중점으로 섭외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아티스트마다 스타일이 매우 달랐기에 코믹스풍이라는 큰 틀 아래 통일성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R&D 결과물들이 나와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마블에 검수를 받으러 갔는데 그때 이렇게 얘기해줬다.

    "완전한 북미풍의 코믹스 스타일은 권하지 않습니다. 아시아권 아트의 미적 감성도 존중합니다."

    이 얘기를 듣고 본격적인 아트의 기준점(아트필라)을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마비노기 듀얼' 카드 비율로 제작했는데 캐릭터들이 워낙 덩치가 큰 경우가 많다 보니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비율을 바꾸니 그럴듯하게 나왔다. 그런데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코믹스에서 보여준 히어로의 임팩트를 주고 싶었는데 그게 안 느껴졌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우선 익숙한 방식을 쓰기로 했다. 북미풍으로 그리는 게 아닌 컬러 그레이딩으로 결과물만 코믹스 느낌으로 살렸다. 이렇게 하니 정말 코믹스같은 느낌이 났다. 그래서 이걸 기반으로 다른 캐릭터들도 작업했다.


    스파이더맨의 경우 캐릭터를 배경으로부터 더욱 돋보이게 후처리를 한다든가 블랙 팬서처럼 검은색이기에 디테일이 묻히는 경우에는 간접광을 살려서 디테일이 잘 보이도록 했다. 다만, 아트는 전적으로 아티스트의 재량에 맡겼다. 리드 아티스트가 끌고 가기보다 코믹스풍이라는 기조만 유지하면 각자가 오너쉽을 갖고 스타일은 연구하는 게 괜찮을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아이언맨 같은 메카닉 캐릭터를 주로 그리는 아티스트 분은 그전에는 애니메이션 풍의 라이트한 그림을 그리던 분이셨다. 그럼에도 작업 방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좀 더 양감있게 컬러를 칠하는 걸 연구해서 메카닉의 금속 재질이나 디테일을 효과적으로 살리는 식으로 스타일을 개선하셨다.


    여성 히어로 위주로 그리던 분은 원래 수채화 스타일의 순정만화풍을 그리던 분이셨는데 히어로가 가진 역동성, 원색적인 색채를 살리면서 그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도록 연구를 많이 하셨다. 특히, 표정을 다이나믹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많은 연구를 하셨다.

    이외의 아티스트 분들도 전부 많은 노력을 하셨다. 다크 히어로를 주로 그리시던 분은 원래부터 다크 히어로를 주로 그리셨지만, 특유의 무드를 극대화하기 위해 북미 코믹스풍 잉킹룩을 연구하셨고 임팩트 있는 슈퍼 빌런을 그린 분은 그 무게감을 표현하기 위해 글레이징 기반으로 그리셨다. 덕분에 슈퍼 빌런들의 묵직함을 잘 살릴 수 있었다.


    섬세한 남자 캐릭터를 그리시던 분은 '마비노기 듀얼'에서도 남자 캐릭터를 주로 그리셨는데 원래 스타일을 가져오되 캐릭터의 가독성을 더 높이고 간접광을 통해 캐릭터가 돋보이도록 했다. 그 결과 북미 코믹스와 동양풍 일러스트의 감성이 융합됐다고 생각되는 아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 마블의 검수 - '마블 배틀라인'의 방향을 정해주다

    마블의 협업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통해 '마블 배틀라인'의 일러스트는 정돈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인게임 배틀 레이아웃들은 대부분 정적이었으나 검수를 통해 다이나믹한 구성으로 개선됐다. 캐릭터와 상황에 어울리도록 표정도 신경썼다. 로키의 경우 무표정으로 마법을 썼었는데 표정을 드러나도록 했다.



    구도 역시 수정했다. 캡틴마블의 경우 동세가 횡으로 이동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를 입체적으로 바꿔 카메라를 향해 이동하는 느낌으로 수정을 가했다. 북미에서는 이런 캐릭터의 구도나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또한, 무기에 대해서도 신경을 썼는데 캐릭터의 무기를 더욱 부각해줄 수 있는 구도를 원해서 원래 로우 앵글이었던 퍼니셔의 일러스트를 총이 부각되면서 꽉 차도록 만들었다.

    이외에도 코믹스에서 슈트의 경우 대부분 스판인데 이걸 재해석해주길 원해서 영화에 나오는 슈트에 가까운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슈트 질감이나 텍스쳐를 수정했다.

    한편, 여성 캐릭터의 얼굴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검수가 있었다. 북미풍과 아시아풍의 중간을 찾기 위한 작업이었는데 보통 동양권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입과 턱을 작게 그린다. 그런데 북미쪽 정서와는 맞지 않았다. 북미에서는 턱과 입의 볼륨을 살리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스쿼럴 걸의 경우에는 너무 만화적이었기에 반실사적인 느낌이 되도록 했다.


    끝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표현 배려 역시 검수를 받았다. 예를 들어 폭발물의 경우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다 보니 EMP로 대체했고 총구도 유저가 아닌 프레임 밖을 향하도록 해야 했다. 아무리 그림이라도 총구가 향하면 불쾌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피부 노출도 제한됐다. 어떤 캐릭터는 코믹스를 보면 흉부에 십자로 피부가 노출되는 디자인의 슈트를 입었음에도 사회적 이슈에 이런 노출도 주의 깊게 다뤄야 했다.





    ■ 동양과 서양의 디자인이 만나고 있다 - 북미 스타일을 노리기 보단 잘하는 거에 집중하자


    최근 아트 스타일들을 보면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작아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동양풍과 서양풍 그림이 극명하게 갈렸는데 점점 이 갭이 줄어들고 있다. '마블 배틀라인'의 일러스트 역시 그 중간에 해당하는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걸 보면 서로의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 같다. 다 떠나서 그웬 풀과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 나오는 페니 파커만 봐도 10년 전에는 북미에서 소비될 거로 생각하기 힘들었는데 이걸 보면 취향이 많이 완화된 거 같다. 스테레오 적으로 북미는 마초적이고 과격한 걸 좋아하고 동양은 슬림하고 예쁜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고정관념이 많이 사라졌다.

    그렇기에 북미나 글로벌을 타겟으로 한다고 해서 마냥 그쪽 스타일을 노릴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잘하는 거에 비중을 높여서 하는 게 오히려 지금 분위기에는 더 바람직하지 않나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