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생각해 봐도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는 없지 싶다. 지금의 심정은 영화 '트루먼 쇼'에서 평생 동안 새장 안에 갇혀 지내며 철저하게 농락당한 '짐 캐리'가 남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다. 물론, 선택은 내가 했지만, 마치 100층 높이의 롤러코스터에 태운 듯 이렇게 까지 장난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들은 가공됐다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다양한 수법을 총동원 해 두 눈과 귀를 마비시켰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한, 그리고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도록 한 후 만든 후 무자비한 생체실험을 본격적으로 자행하기 시작했다.


변명을 대기는 부끄럽지만, 나 또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꽤 굵은 편이다. 2차 대전은 아예 질릴 정도며, 판타지부터 공상과학 미래까지 안 가본 데가 없다. 내가 죽인 오크와 외계인의 시체를 바닥에 쌓으면 하늘에 닿을 정도다. 그뿐인가? 절대 못 잡는다던 무시무시한 드래곤도 아이템에 눈이 멀어 제 정신이 아니면 하기 힘들다는 대장 역할까지 해내며 무적의 연합공격으로 잡아냈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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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떠난 뒤에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있겠는가? 이미 나는 완전히 당했으며, 한동안은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드디어 밝힌다. 이처럼 잔악한 만행을 저지른 자들의 이름은 '인피티니 워드'(Infinty Ward). 그들이 만든 게이머 무차별 학살무기는 '콜오브듀티4-모던 워페어(Call of Duty 4: Modern Warfare, 이하 콜오브듀티4)'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이런 고발장을 작성하게 된 이유도 독자가 이 글을 읽은 후 7번을 복사해 다른 곳에 퍼 나르지 않는다면 '큰' 불행이 닥치기 때문 아니라, 그들의 행태를 철저하게 고발한 후에 그에 마땅한 정신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보상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고발에 앞서, 사실 인정해야 할 것들이 있다.


전쟁이라는 주제는 참혹하고, 우리에게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지만, 영화와 게임에서는 특히 현실과 가장 근접해 있는 '밀리터리 물'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쭉 스테디셀러가 될 만큼 가장인기 있는 아이템으로 사용되어 왔다. 아마, 현실에 철저히 기반한 만큼 게이머에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긴장감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궁극의 재미를 안겨주기 때문이리라.


콜오브듀티 시리즈는 가장 리얼리티(Reality)한 전장이라는 컨셉을 본편부터 잘 이어오고 있으며, 이번에 발표된 신작 콜오브듀티4에서는 축적된 노하우와 진보한 기술을 녹여내 역사 상 가장 화려한 꽃을 탄생시켰다.


특히, 게임 환경 면에서의 업적은 흠을 잡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완벽한데, 공기 중의 미세한 입자와 정신 없이 빗발치는 총탄의 사실적인 표현, 전장에서 보게 되는 아군과 적군의 뛰어난 인물 묘사는 테러범과의 살벌한 전쟁터가 내 방안으로 여과 없이 압축되어 들어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적절한 최적화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눈부신 반사효과와 탁월한 색감 선택으로 이루어 낸 전체적인 테두리다. 우울하고 장엄한 느낌의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콜오브듀티4의 세계는 지금까지 허구와 리얼리티의 경계선에서 게이머의 눈을 이토록 강하게 붙잡아 둔 게임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들 정도다.


사운드 또한 현대전을 다룬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을 연상시키는 비장한 배경음악을 중심으로, 과장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전쟁터의 입체적인 느낌을 그대로 구현한 음향 효과와 적군과 아군이 내뱉는 현실적인 대사들의 조화를 더해 '밀리터리 FPS 게임의 사운드학 개론'을 완성하고 있다.


무자비한 학살자(?) 인피니티 워드는 평점 99.99짜리의 그래픽과 사운드를 양손에 쥔 채로, 싱글플레이의 미션들을 하나씩 구현해 냈는데, 가장 훌륭한 결과물은 액트2에서 만날 수 있는 '스나이퍼 미션'이다. 실제 미군 특수부대에서 사용되는 스나이퍼 위장복과 무기를 착용한 후 고참병과 함께 적진을 향해 침투하는 이 미션은 현대전 스나이핑 플레이의 기초부터 훈련, 그리고 활용까지 맛볼 수 있게 하며, 빈틈없이 튜닝 된 연출은 쏟아지는 즐거움을 배가 시키기에 충분하다.







콜오브듀티4의 유일무이한 단점으로 지적되는 짧은 싱글플레이를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 튜토리얼, 프롤로그, 액트1,2,3, 에필로그로 구성된 큰 줄기 사이에 실제 브리핑을 연상시키는 동영상을 삽입했고, 싱글플레이 전체 스토리도 한편의 영화 같은 완결성을 가지게 했다. 또한, 특정 난이도를 클리어 하게 되면 주어진 시간에 적군을 사살해 높은 점수를 얻게 되는 ‘추억의 오락실’ 아케이드 모드가 활성화되어 이미 클리어 했더라도 게이머를 다시 싱글플레이에 매진하게 만드는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헬기를 타고 적 선박으로 침투해서 목표를 달성하고 탈출까지 해야 하는 긴박한 프롤로그 미션을 완료한 후, 화면이 어두워 지면서 중앙에 "인피티니 워드 제공(Infinity Ward Presents)"이라는 문구가 나올 때의 감동은 정말 직접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땅을 치고 후회할 듯 하다. 전쟁물과 FPS를 좋아한다면 돈을 얼만큼 주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 아니 게임이 바로 콜오브듀티4인 것이다.








드디어 밝히는 고발의 근본적인 이유


인피니티 워드의 콜오브듀티4가 이 정도 깜냥에서 멈췄다면 굳이 열을 내며 고발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게이머 무차별 학살 무기라는 위험천만한 타이틀도 붙이지 않았다.


FPS 중 게임 진행 도중 퀵 세이브와 로딩이 언제라도 가능한 게임에서는 플레이 난이도가 월등히 높다고 하더라도 게이머는 퀵 세이브를 보험으로 두고 전체 플레이를 조금씩 쪼개가는 방식으로 헤쳐나가게 된다.


이 방식이 아니라 특정 포인트에 도착하거나 특정 임무를 수행해야 세이브가 되는 게임에서는 일반적으로 게이머의 감각적인 상황판단에 의해 진행하게 되는데, 만약 그 난이도가 살인적이라면 수많은 재시도를 통해 해당 구간 전체의 플레이를 머리 속에 그린 후 끊김 없이 실천해 나가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물론,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지만.







그러나, 콜오브듀티4는 여기서 한술 더 떠 특정 포인트와 임무에 도달할 때까지 적들을 무한 재생성시키고 다급한 위기의 순간을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 수법은 예전에도 자주 등장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욱 교묘해져서 게이머는 알면서도 그들이 미리 짜둔 함정에 걸리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쥐게 만드는 사명감까지 불타오른다.


시각적, 청각적 감각을 총동원해서 직관적인 판단력을 극대화시키지 못하면 장애물을 헤쳐나갈 수 없는 것이 콜오브듀티4를 플레이 하는 게이머의 운명이다. 사전 계획 또는 준비가 아닌 각각의 상황에 따른 게이머의 본능을 중시하는 이러한 플레이는 전자의 방식에 비할 수 없는 무한 (Infinity) 카타르시스를 남긴다.







그러나, 이 수법은 맹목적으로 목표지점을 향하게 만들어 게임 내 재미 요소들을 미처 다 즐기지 못한 채 다음 구간으로 넘어가버리는 '목표의 대치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정교한 함정을 짜기 위해서 도입한 직선형 플레이가 게이머의 순수 자유도를 크게 방해하는 단점도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선택은 5시간 가량의 짧은 플레이 타임을 가진 콜오브듀티4의 싱글플레이가 단시간에 게이머를 완전히 녹초로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으리라. 정말 인피니티 워드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집단이다.


즉, 그들은 앞서 말한 훌륭하고 탁월한 각각의 요소들로 만들어진 '콜오브듀티4'라는 틀 안에 게이머를 몰아 넣고 새장 안에 갇힌 실험용 쥐를 바라보듯, 한번은 긴장시키다 갑자기 놀래 키고, 또 한번은 유쾌하고 즐겁게 만들다가 슬프게 만들기도 하는 등 게이머의 감정을 도저히 견디지 못할 정도로 몰아치게 하는 일련의 고문을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지한 고발의 근본 이유며, 그들의 고문에 완벽하게 당한 후 내지르는 무한한 즐거움의 탄성이다.








실, 콜오브듀티4가 게임계를 깜짝 놀랄게 할 만큼의 혁신적인 시스템을 선보인 것은 아니다. 혹자는 전작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2차 대전에서 현대전으로 껍데기만 바꿨다고 평하는 것도 들었다.


하지만, 콜오브듀티4는 전작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출시된 밀리터리 FPS를 기반으로 궁극적인 리얼리티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펼친 인피니티 워드가 창조한 사상 최고의 업적이다. 게이머의 플레이 패턴을 수십, 수백 번 분석하고 연구한 후 자신만의 색깔을 덧칠하지 않았다면 정말 고발하고플 정도의 즐거움을 우리는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FPS 대작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지금, 콜오브듀티4가 당당히 그 속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고수하는 이유도 입이 아프도록 칭찬해도 모자랄 싱글플레이를 한낱 튜토리얼 정도로 전락시켜버리는, 온라인 FPS 통틀어 톱5 안에 들만한 멀티플레이 컨텐츠를 추가로 더해 하나의 '완성된' 패키지를 출시했다는 데 있다.






요즘 마땅히 끌리는 액션 영화가 없다거나, 방바닥을 뒹굴며 누가 제발 멋진 컨텐츠로 괴롭혀 줬으면 하는 '마조히스트 스타일'의 게이머라면 고민할 것 없이 콜오브듀티4를 받아들인 후 기자와 함께 정식으로 고발하자. 만약 우리의 외침이 인피니티 워드의 귀에 들린다면, 더욱 잔악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가득 차 있는 차기작 또는 확장팩을 빨리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인피니티 워드는 자신들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음을 콜오브듀티4를 통해 '다시 한번' 입증시켜 줬다.





※ 지면 관계 상 소개하지 못한 콜오브듀티4의 멀티플레이는 다른 주제들과 함께 '조만간(?)' 기획기사로 다루겠습니다.




= 콜오브듀티4는 현재 액티비전 코리아에 의해 국내 정식 발매가 되었으며, ‘콜오브듀티4’는 PC, XBOX360은 11월 22일에 영문판을 먼저 선 발매하고, 12월 중 한글판을 발매할 예정이며, PS3 버전은 12월 중 한글판으로 출시될 예정입니다.

= 액티비전 코리아에서는 한글판이 출시될 경우 영문판을 한글판으로 교체해줄 것을 밝힌 바 있습니다.



[ ▲ 국내 정식 발매된 콜오브듀티4 패키지 개봉 스크린샷 ]




Inven Vito - 오의덕 기자
(vit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