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팔라딘
2012-12-09 01:22
조회: 3,937
추천: 13
박정희 혈서 날조론에 대한 반박 part-2오늘 출근길에 처음 본글이 논객이 글이었고
내 글이 블로거들에 의해서 펌질 되고 있다는데 대해서 깜짝 놀라서
혹시나 싶어서 오유와 일베를 가봤더니 ㅡㅡㅋ
세상에나 ㅡㅡㅋ
오유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90447
일베
둘다 베스트에 올라가있더군;;
새삼 인터넷의 무서움을 느끼게 되더라
쓴지도 얼마 안되고 많이 알려지리라 생각한글도 아닌데 말야;;;
일단 퍼가는 애들을 위해서 이전글의 제목을 고친다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762&query=view&p=1&l=189535&iskin=&sort=&orderby=
각설하고 part.2부분은 일베에서 의외로(정말로 놀랐다) 내글에 대해서 공감해주는 애들이 꽤 있어서
일베를 다시보기도 했지만 몇가지 part.1의 본문내용은 부정하지 못하면서 다른 논지로 부정하는 애들이 있어서
그에 대한 반박을 다시 해보기로 한다
대충 반박하는 내용들이 이러하다
1. 당시에 징모과라는 부서가 없었으며 치안부 훈련과 라는 곳에서 모집을 담당했다
2. 박정희는 하사관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연령제한에 걸려서 떨어질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 두가지지
이 두가지중에서 첫번째 징모과 관련 논란은 이곳에서 부터 시작한다
보수쪽에서 놀아본 애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진명행의 글에서 시작된 논박인데
글을 읽어보면 아~~~주 그럴듯 해
모르는 애들이 보면 정말 속을만 하지
---------------------------------------진명행 글+ 굵은글씨 08반론-----------------------
- part.1에서 설명했듯이 박정희의 서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게 만주일보 기사내용에 나와있다 또한 이미 떨어졌다손 치더라도 박정희가 합격되었을 당시의 입교일자가 4.1일이고 만주일보 기사화는 3월 말경 서신이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일주일가량(유증선증언)이 걸린다는 것을 생각해볼때 모집에 떨어진 박정희가 특별입교(?)를 호소할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 진명행은 일계 군관모집요강이라는 것은 그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라는 것은 어디서 기인한 말이라는 것인가?
-역시나 마찬가지로 징모과의 실체여부가 없다...라고 주장은 하지만 그것에 관한 근거는 찾아볼수가 없다 진명행이 직접적으로 근거를 가지고 주장한 부분은 아래 덧붙인다고 말한 4번 내용이 전부이다
그렇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938년에는 군형과(軍衡課)에서 원서를 접수했고 1940년에는 훈련과(訓練課)에서 전형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군형과(軍衡課)와 훈련과(訓練課)는 모두 치안부內 참모사(參謨司) 소속부서이다. 만주신문에서는 치안부 군정사 소속 징모과에서 원서를 접수했다고 하는데, 육군군관학교 편제, 운영 담당은 군정사 소관이 아니라 참모사 소관이다.
--- 자 드디어 근거라고 할만한게 나왔다 아마 많이들 본 사진일거다
일베애들이 주장하는 '당시의 원서접수는 징모과 소관이 아니었다'라는 그 사진이다
근데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못찾겠나?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라는 혈서의 내용이 있다
근데 저 사진에서 우측 네모칸을 보도록 하라
만계...라고 적혀있다.
이 네번째의 근거가 쓰이려면 당시 만계와 일계의 모집부서자체가 같아야한다는 전제가 되어야한다
결국 근거라고 제시한 것은 사진한장이고 나머진 사실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글들뿐이다.
물론 진명행은 저 위에 '만계모집요강'이라고 적어놨다 거의 모든 선동자료들이 그렇듯이 '진실은 작게 감추어야'
선동되는 사람들은 오해하고 달려드니까
마치 39년 합격자 명단이 이미 발표되었으므로 박정희는 혈서를 쓸 이유가 없다...란 주장을 펴면서
'박정희 이름이 빠져있는 합격자 명단 사진을 내걸어서 박정희가 합격했기 때문에 쓸 이유가 없다'란
오해로 선동되도록 하는 기법을 쓰듯이 말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진명행의 레토릭이 있는데
그건 '박정희가 징모과로 원서를 냈다'라고 그 자신부터 '상대방이 하지도 않은 주장을 하는 것이다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가 봉입(封入)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係員)를 깊이 감격시켰다
라는 글에는 그 어디에도 그것이 '원서접수'를 말하는 것임이 드러나지 않는다
즉 '박정희가 원서접수를 한 곳과 혈서를 동봉한 편지를 쓴 곳이 다를 수 있다'
= 원서접수는 군형과나 훈련과에 냈지만 혈서는 징모과에 냈을수 있다
라는 것은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글상자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설사 1.2.3의 진명행이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쓴 부분이 전부 맞다고 할지라도 '자기멋대로 주장을 지어낸 진명행의 레토릭'의 핵심은 이부분이기에 원서접수를 한곳과는 다른 곳(아마도 원서에 떨어진 사람이 호소할 수 있는 다른 부서)에 혈서와 서류들과 편지를 전달한다고 해서 이상할건 없지 않은가?
두번째 박정희는 하사관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연령제한에 걸려서 떨어질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글을 쓴애는 한글을 못읽거나 사고회로에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반박도 쉽다
만주신문 기사내용에서 나온 내용이 뭐였지?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가 봉입(封入)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係員)를 깊이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라는글을 제발 좀 잘 살펴보도록 해라
박정희가 지원 한 것이 '군관학교 지원자'인가? 군관 지원인가?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라는 대목에 주목해서 보길 바란다
하사관자격을 가진 사람이 지원할 수 있는 것은 '군관'이지 '군관학교 지원자'가 아님을 알수 있다
즉 박정희는 하사관 자격을 가지고 있지만 연령제한이 없는 군관지원에서는 '군적에 없는 자'이므로
군관지원에서 배제된 것이다(당시 문경소학교 훈도였기 때문에 군적소속이 아니었다)
또한 연령에 관해서는 군관학교를 언급하고 있다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첫번째와 두번째를 종합해보면 결론이 나온다
박정희는 당연히 '군관학교 원서접수를 하던 쪽에 편지를 쓴게 아니다'
글 본문에 글상자로 묶어서 강조했던 것처럼 말이다
왜? 박정희는 군관학교이던 군관채용이던 둘중에 어떤 방법이던지 '군관'이 되길 원했음이 혈서 본문에 나타난다
그 방법이 군관학교 모집이던 하사관에서의 군관채용이던 말이지
진명행이 말했던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가 다 맞더라고 하더라도 혈서날조론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게 이것이다
박정희가 원했던 것은 '군관이 되는 것'이지 그 채용과정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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