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도 쐐기가 가고 시퍼요."
 
 이게 차단도 없는 게 까불어, 한 마디 보태려다가 사트 씨는 입을 다물었다. 요 며칠 아리따운 브릴린 옆에 앉아 점프만 뛰다가 접속을 종료했다는 걸 안다. 길드암사는 요새 부쩍 거대한 봉인에 사람이 늘었다는 생각을 했다. 타락망겜, 타락망겜하지만서도 의외로 스텟뻥튀기가 주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이다. 사람 많은 광장이 더 외로운 법이라고, 암사는 우울했다.

 "거대한 봉인에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왜 날 데려갈 파티장은 읎는 걸까."

 해적단 조끼에 잘아티스 유물형변을 끼고 있는 암사는 전에 없던 침잔한 텐션으로 팔에 고갤 파묻었다. 애써 외면하려는 사트 씨는 MDT로 시선을 돌리고 영원히 잡을 일 없는, 스킵되는 루트의 쫄몹이 무슨 스킬을 쓰나 알아본다. 이를테면 폭풍의 사원에 소른이라든지, 보랄러스에 1넴 뒤 구석에 짱박혀 있는 갈고리 투척병이라든지, 아탈다자르 한 가운데에 모여있는 토론자나 공룡 사냥꾼이라든지.

 "야,"

 사트 씨 머리에 공허의 빨대가 꽂힌다.

 "내가 심심치 않은 위로의 말씀이 필요해 보이지 않니?"

 아무 대상에게나 꽂을 수 있는 암사의 정신불태우기는 엄청 거슬린다. 소리도 췩, 췩, 췩, 췩, 반복인데 데미지가 없어 죽을 수도 없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 온종일도 쫓아다니면서 괴롭힐 수 있다. 그걸 아는 사트 씨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힐딜 스왑해서 다니는 건 어때."
 "힐하기 시러."
 "군단 땐 수사도 곧잘 했잖아."
 "딜러맘마통이나 피주머니 취급받는 거 시러."

 제대로 엇박이다. 심사가 뒤틀릴대로 뒤틀린 상태의 길드암사는 자기 직성이 풀릴 때까지 말을 시키고, 말대꾸를 해주면 별에별 이유로 어깃장을 놓아 어떻게든 대화를 늘어지게 만들었다. 이런 대화패턴은 결국 둘 중 한 명이 지쳐야 끝이 나곤 하는데, 사트 씨는 잘 지치는 성격이 아니었고, 길드암사는 대화하는 걸 좋아했다.

 "딜러맘마통이라니, 말을 좀 순화해서 해봐."
 "아, 피할 수 있는 거 다 맞으면서 힐 빈다고 타령질하는 거 스트레스야."
 "너 그거 딜혐이야."
 "그래, 나 힐미니스트다, 어쩔래."

 꼬우면 힐없이 쐐기가든가, 확실한 의도도 없이 꼬장만 가득담아 뱉은 말은 한숨으로 이어졌다. 거봉에 드러누운 암사는 세푸즈님 계실 적엔 이런 일 없었다며 오열했다.

 "네 표현대로면 지금 힐러하시는 분들은 뭔데."
 "휴가 나와서 와우하는 국경없는 의사회라든가, 몰래 와우로 도닦는 수녀님, 아님 전탱이나 화법한테 속옷을 도둑맞은 선녀."

 발화켜고 협박하는거지 막, 이거 태운다고. 사트 씨는 예시가 어처구니 없어서 웃는 건데, 그게 정말 웃겨서 그러는 줄 알고 암사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터진 웃음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금세 또 침울해진 암사는 자기 머리칼을 손가락에 감아 빙빙 돌려가며 맥을 놓았다.

 "나도 데려가, 나 엄청 잘하잖아."
 "어, 잘하지. 세푸즈 못 먹었을 때도 주황로그 찍었잖아."
 "근데 왜 안 데려가."
 "냉법이랑 암사가 어떻게 같이 다녀."

 별로 틀린 말도 아니건만, 그 말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방금 전까지 푹 늘어져 있던 암사는 또 씩씩대며 자리에 앉아가지곤 열불을 토했다.

 "너 그거 고정관념이야! 야냥 화법은 되고, 냉법 암사는 안 되냐?"
 "내가 그런 게 아니고, 사람들이 그러잖아."
 "야! 사람들이 말한대로만 할 거면 왜 사냐! 걔네 가치관은 무슨 bis니? 그럼 뭐 아예 심크 돌려서 정해진대로 갈아끼지 그러냐?"
 "그걸 사회화라고 한단다, 이 밉상아."

 게임에서 사회화 찾고 있다, 아오 이 답답한 인간아, 뭐 월드랭커 찍을거냐, 사람으로치면 경로당 들어가도 하나 안 이상할 게임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프로도 없는 놈의 게임에서 정답 타령하고 앉아 있네. 속에 맺힌 것이 많았던 것인지 길드암사는 속사포로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트 씨는 들은체 만체다.

 "나중에 손목 먹으면, 그때 같이 가자. 월드 1위 암사도 화법이랑 팀이라더라."

 재민 군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다.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하며 사트 씨는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평소 같았다면 중간에 대화를 끊고 가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겠지만 재민 군과의 약속은 꽤 중요했다. 팀으로 쐐기를 돈다기엔 멤버라곤 고작 재민 군과 사트 씨 둘 뿐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꽤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암사는 자기가 쏴댄 것에 비해 너무도 다정했던 그의 대꾸에 잠시 화낼 핀트를 놓쳤다. 사트 씨가 거봉에서 멀어갈 즈음, 괜한 억하심정을 내질러본다.

 "확팩 다 끝나가는데 손목 먹으면 뭐하냐! 에이씨."

 자꾸만 화가 난다.













 다자알로, 허수아비가 모여 있는 수련장.

 사트 씨와 재민 군은 매번 이쯤에서 만나곤 했다. 여기서 만나자, 하고 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배틀넷 친구 위치에 다자알로라고 찍혀 있으면 둘은 대부분 이곳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트 씨는 처음 와우를 시작했을 때부터 허수아비를 어떻게 하면 더 아프게 칠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고, 재민 군은 180스택까지 쌓아 천장을 뚫을 만큼 커져버린 탱커용 허수아비의 데미지를 받아내는 일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니 약속장소는 꼭 이곳일 수밖엔 없는 것이다.

 "짱재민 님."

 열심히 허수아비와 씨름하고 있는 죽탱의 뒤에 보따리를 물고 온 고양이가 얌전해보이는 자세로 앉아 그를 불렀다.

 "예?"
 "이거 거스름 너울 영약인데. 번영이 떠서 좀 많이 말았어요."

 아뇨, 아뇨, 저 이런 거 안 받아요. 재민 군은 돌아서 손사레를 치며 거절했다. 그러자마자 등으로 날아온 허수아비 평타에 즉사하고 만다. 다시 일어나 앉은 그는 여전히 고양이의 선물을 공손히 사양했다.

 "아니, 저번에 캐리해줬는데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잖아요."
 "저 잘한 거 하나도 없어요, 선생님."
 "에이, 받아요. 이거 핑계로 담에 또 같이 가려구 그래."
 "아무 때나 같이 가요, 저 이런 거 진짜 못 받아서 그래요."

 그때 이후로, 있던 길드도 탈퇴하고 혼자 지냈다. 또 누구랑 틀어지기 전에 스스로 혼자되길 선택한 것이다. 예뻐하던 어른들이 찾지 못하게 오프라인으로 바꿔놓은 배틀넷은, 2년 만에 온라인으로 돌리자마자 재민 군을 기억하던 사람들에게 귓속말이 날아오곤 했다. 토라진 소리 하나 없이 사람들은 잘 지냈냐고 물었다. 자신이 누군가의 애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걸 너무 잘 안다.
 
 "내 아들도 중학생인데요."
 "아들도 와우시키세요?"
 "아효, 그럴리가요."

 고양이는 큰일날 소리를 한다며 웃었다.

 "게임 절대 하지 말라고 그랬죠, 나야."
 "근데 저한텐 영약을 주시는 거에요?"

 물고 있던 영약묶음을 재민 군 앞에 내려놓고서 고양이는 꼿꼿이 등을 펴고 앉았다. 입술을 씰룩이며 눈가엔 웃음을 매달아놓은 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연다.

 "몰래 하겠죠, 뭐. 걔도."

 두어번 혀로 입을 적시던 고양이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영약을 주워드는 재민 군을 보곤 골골댔다. 저 중학생 아니에요, 한 캔 따서 마시며 말했다. 2년 전에 지은 건데, 돈이 없어서 닉변을 못했어요, 둘은 킬킬댔다. 고양이는 허수아비 스택을 다시 쌓는 걸 거들면서 어쩌다 와우를 시작했는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오래된 이야기다. 솔직히 들어도 리분을 해본 적이 없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군단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당신들 하는 이야기 공감도 안 되고, 그 대단하다는 템이 뭐에 쓰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재미가 있었다. 듣고 있으면 웃겼다. 영약을 줘서도 아니었고, 재료템을 안겨줘서도 아니었다. 조금 크고 나서 알게 됐다. 아무도 자기 얘기 잘 안 한다는 것. 자기 얘길 할 정도면 꽤 좋아하고 있다는 것. 자꾸만 누구 생각이 났다. 공감 안 되는 소릴 가장 잘 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때, 거짓말처럼 퍼런색에, 익숙한 닉네임이 일반대화창에 올라온다. 믿겨지질 않아 돌아본 곳엔 허수아비 바로 옆 판다렌이 보였다. 분명 그 사람이었다. 110레벨 판다렌 복원주술사,

 실전근육팡선생.

 "이 새끼랑 놀지 마세요."

 방금 말은 확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복원삼디님,
저는 거기 못감니다.

소설, '소진 시 쫑'


















 [2.거래] 실전근육팡선생: 학현중짱재민<<<<<<혼자노는 게 불쌍해서 좀 놀아줬더니 막 기어오르네요ㅎ; 욕설에 비하발언까지 서슴치 않는 인간이니 거리두세요 피봅니다 개조심개조심
 [3.공개] 실전근육팡선생: 학현중짱재민<<<<<<같이 쐐기가지 마세요 지가 제일 잘난줄 아네요; 빙신 죽탱 힐부어서 살려놨더니 지가 잘해서 시클한 줄 앎ㅋㅅㅋ;